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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자가 명성을 얻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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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마의 거울

2022. 2. 27.

어리석은 자가 명성을 얻으면

군대에서는 힘이 있는 자가 존중받는다. 군대에서는 축구 잘 하는 자가 대우 받는다. 그가 제 아무리 잘나고 똑똑해도 허약체질이라면 대접받지 못한다.

군대에서는 힘 센 자가 제일이다. 기력이 세면 남보다 두 배, 세 배 일을 잘 할 수 있다. 머리 쓰는 일은 아니다. 무거운 물건을 운반하는데 있어서 약골은 무시된다.

주먹이 센 자가 골목을 지배한다. 더 넓은 지역을 자신의 영역으로 두려면 깡도 있어야 한다.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깡다구에 힘까지 갖추었다면 지역보스가 될 수 있다. 여기에 머리까지 있다면 전국구 스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힘은 남용되기 쉽다. 조폭의 주먹이 근질근질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정의롭지 않은 자에게 힘이 주어지면 힘을 행사하고자 할 것이다. 어떻게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것일까? 자타카에 이런 게송이 있다.

"말리까 대왕은
강한 자에게는 강하게 대하고
유연한 자에게는 유연하게 대한다.
또한 선한 자를 선함으로 이기고
불선한 자를 불선으로 이긴다.
이 왕은 이러한 분이니,
마부여, 어서, 길을 비켜라." (자타카 151)

자타카 151번 '왕의 훈계에 대한 전생이야기'에 실려 있는 게송이다. 언뜻 보기에 대단히 합리적인 왕의 통치방식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뜯어 보면 힘의 논리에 따른 것이다.

강한 자에게는 깅하게 약한자에게는 약하게 대한다고 했다. 상대가 강하다고 생각하면 힘으로 누르려 하는 것이다. 이런 통치스타일을 아수라의 리더십이라 해야 할 것이다. 아수라의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상윳따니까야 제석천상윳따(S11)를 보면 알 수 있다.

아주 오랜 옛날 신들의 전쟁이 있었다. 선신 제석천과 악신 아수라와의 전쟁을 말한다. 악신 아수라 대왕은 "제어 하는 자가 없으면, 어리석은 자들은 전보다 더욱 화를 내네. 그러므로 강력한 처벌로 현자는 어리석은 자를 눌러야 하리.”(S11.5)라고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힘에 의한 제어이다. 힘이 센 자가 법이고 정의인 것이다.

선신의 리더십은 어떤 것일까? 선신의 제왕 제석천은 "참으로 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힘없는 자에게 인내하네. 그것을 최상의 인내라 부르네. 힘 있는 자는 항상 참아내네.”(S11.5)라고 했다. 이는 힘의 절제를 말한다. 힘 있는 자가 참고 견디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 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소수자도 해당될 것이다. 인종적 소수자, 지역적 소수자, 종교적 소수자 등을 말한다. 이 범주에 여성도 포함될 수 있다. 소수자는 힘이 없기 때문에 인내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자를 힘으로 제압하고자 한다면 폭력이 될 것이다.

선진국의 조건이 있다. 여러가지가 있지만 소수자 또는 소외자가 존중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차별이 없어야 한다. 힘 있는 자가 인내하는 제석천의 리더십이 요청되는 것이다.

꼬살라 말리까 대왕의 마부는 바라나시 왕의 마부에 길을 비키라고 했다. 이에 바라나시 왕의 마부는 바라나시 왕의 덕성에 대해스 이렇게 게송으로 말했다.

"분노의 여읨으로 분노를 이기고,
선한 것으로 악한 것을 이기고,
보시하는 것으로 인색한 것을 이기고,
진실한 것으로 거짓된 것을 이긴다.
이 왕은 이러한 분이니,
마부여, 어서, 길을 비켜라." (자타카 151)

여기서 길을 비키라는 것은 두 왕의 행렬이 길에서 맞딱뜨렸기 때문이다. 외길에서 한편이 양보하지 않으면 지나갈 수 없는 구조이다. 이에 두왕의 마부는 서로 양보하라고 했다.

어떻게 해야 양보를 받아낼 수 있을까? 처음에는 왕의 나이로 따졌다. 한살이라도 나이가 어리면 자리를 비켜 주어야 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나이가 같았다. 다음 비교 대상은 국력이다. 국토의 크기와 병력, 경제력으로 따지자는 것이다. 그런데 또 공교롭게도 똑 같았다. 마지막으로 왕의 덕성으로 가르자고 했다.

두 왕의 덕성은 서로 달랐다. 꼬살라의 말리까 대왕은 힘에 의한 통치를 덕성으로 삼았다. 그래서 "강한 자에게는 강하게 대하고, 유연한 자에게는 유연하게 대한다."라고 했다. 이는 아수라의 리더십에 해당된다.

꼬살라의 말리까 대왕은 힘에 의한 통치를 천명했다. 자신의 말이 법이고 정의인 것이다. 이에 반하여 바라나시 국왕은 제석천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래서 "분노의 여읨으로 분노를 이기고, 선한 것으로 악한 것을 이기고, 보시하는 것으로 인색한 것을 이기고, 진실한 것으로 거짓된 것을 이긴다."라고 했다. 이는 여법한 또는 법다운 통치에 해당되는 것으로 힘의 절제에 따른 인내의 리더십에 해당된다.

꼬살라 국왕의 마부는 바라나시 국왕의 마부의 이야기를 듣고 길을 비켜 주었다. 덕성 대결에서 여법한 인내의 리더십이 승리한 것이다. 이와 같은 자타카 151번 '왕의 훈계에 대한 전생이야기'는 부처님이 전생에 바라나시 국왕로 살 때에 대한 것이다.

다양성의 세상이다. 다양한 것들이 모여서 하나의 세상을 이루고 있다. 다양성의 세상에서 주류가 힘을 과시하고자 한다면 어떻게 될까? 소수자와 소외자는 인내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이는 다름아닌 차별이다.

힘이 생기면 힘을 과시하고자 한다. 조폭의 주먹이 근질근질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인내의 리더십을 발휘하면 힘 있는 자가 인내하게 된다. 힘 있는 자가 힘을 절제할 때 다양성이 존중 받는 사회가 된다.

"어리석은 자가 명성을 얻으면
스스로 자신에게 해로움을 가져온다.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그는 실로 상해를 유발할 뿐이다."
(자타카 122)

2022-02-27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