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모든 님들은 행복해지이다

암송하며 걷다 보면

댓글 1

수행기

2022. 5. 23.

암송하며 걷다 보면

 

 

요즘 날씨가 좋다. 오월의 날씨에는 걷기에도 좋다. 이른 아침 걸어서 일터로 향했다. 이십여분 걸린다. 아무 생각없이 걸을 수도 있다. 주변도 둘러보고 잡생각도 하면서 걸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애써 외운 경을 암송하기로 했다.

 

 

빠다나경을 암송하면서 걸었다. 암송하며 걷다 보면 천천히 걸을 수밖에 없다. 게송이 이십오개나 되고 천자가 훨씬 넘는 경을 머리속에서 떠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뒷짐 지면서 나지막이 소리 내며 암송한다. 이런 모습을 다른 사람이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두 가지로 볼 것이다. 이상한 사람 아니면 무언가 있어 보이는 사람일 것이다.

 

어떻게 긴 경을 암송하는 것이 가능할까? 실제로 외워 보면 알 수 있다. 게송 첫단어만 떠오르면 다음은 자동으로 달려 나온다. 수십번, 수백번 암송하다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보지 않고도 암송할 수 있다.

 

경을 암송하다 보면 이점이 있다. 경을 암송하는 순간 집중이 된다는 것이다. 정신을 집중해야만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 이에 대하여 이것이 어쩌면 순간집중(khaikasamādhi)일지 모른다고 생각해보았다.

 

카니까사마디는 찰나삼매라고 번역된다. 위빠사나 수행에서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것이다. 움직이는 대상을 하는 것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행선할 때 집중을 요하는데 이는 움직이는 대상을 하는 것이다. 발도 움직이고 이를 아는 마음도 있는데 모두 알아차려야 할 대상이다.

 

경을 암송하는 것이 왜 찰나삼매가 될 수 있을까? 그것은 순간적인 집중을 요하기 때문이다. 전에 외웠던 것을 떠 올리려 하는 것 자체가 집중을 요하는 것이다. 이렇게 집중하며 걷다 보면 암송하는 나만 있게 되는 것 같다.

 

암송하며 걸을 때 스스로 거룩한 느낌이 든다. 남이 볼 때는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왜 그런가? 암송하며 걷다 보면 절대 빠른 속도로 걸을 수 없다. 암송하며 걷다 보면 절대 주변 경관을 보며 걸을 수 없다. 암송하며 걷다 보면 절대 아무 생각 없이 걸을 수 없다.

 

암송하며 걷다 보면 오로지 경의 내용에만 집중된다. 가르침에 대한 것을 계속 생각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담마눗사띠(dhammānussati)가 된다. 법수념(法隨念)하는 것이다. 그런데 법수념은 사십가지 사마타명상주제 중의 하나라는 사실이다. 이렇게 본다면 경을 암송하며 걷는다는 것은 사마타수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경을 암송하고 나면 상쾌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암송했을 때 사두!사두!사두!”하는데 나에게 하는 것이다. 애써 이루어낸 것에 대하여 자신을 칭찬하는 것이다. 이렇게 경을 암송하며 걷는 모습을 누군가 보았다면 어떻게 볼까?

 

뒷짐 지고 한발 한발 천천히 떼며 걷는다. 계속 기억해 내야 하기 때문에 두리번 거리며 걸을 수 없다. 오로지 앞으로만 간다. 그러나 주변을 살피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운전하는 것과 같다. 어찌 보면 사띠(sati)하며 걷는 것과 같다. 가르침을 기억하면서 동시에 걷는 것이다.

 

암송하며 걸을 때 신호등등 장애가 있기는 하지만 대세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기억해 내는 것이 주된 것이고 주변 살피는 것은 부차적인 것이 된다. 이런 모습이 남에게는 어떻게 비추어 질까? 분명한 사실은 암송하며 걷다 보면 스스로 거룩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무래도 부처님 가르침을 암송하기 때문일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은 다름 아닌 진리의 말씀이다. 진리의 말씀을 암송하면서 걷다 보니 스스로 거룩한 자 같은 착각이 드는 것 같은데 나만 그럴까?

 

 

2022-05-23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