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모든 님들은 행복해지이다

59권 담마의 거울 2014 III, 지혜에 의한 두려움의 통찰 상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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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5. 28.

59권 담마의 거울 2014 III, 지혜에 의한 두려움의 통찰 상베가

 

 

인간사 알 수 없다. 전화 한통에 차를 돌렸다.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고객사 영업담당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납품한 것이 불합리가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실크인쇄가 잘못되어서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차를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금요니까야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 고속도로를 탔었는데 광명 아이씨에서 차를 돌렸다. 사무실에 도착하여 문제를 처리했다. 다시 제작 발주 의뢰했다. 고스란히 손실 난 것이다.

 

고성제에서 원증회고(怨憎會苦)가 있다. 사랑하지 않는 것과의 만남에 대한 것이다. 사랑하지 않는 것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사건이 될 수도 있다. 전화 한통에 차를 돌렸다면 사건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살면서 종종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원증회고와 함께 잘 쓰이는 말은 애별리고(愛別離苦)이다. 이는 사랑하는 것과 헤어짐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사물이 될 수도 있다. 아마 사람이 되기 쉽다. 역시 살아가면서 종종 발생한다.

 

원증회고와 애별리고는 삶의 과정에서 빈번히 일어난다. 강도가 큰 것도 있고 약한 것도 있다. 어떤 것은 꽤 오래 가지만 어떤 것은 하루밤 자고 나면 잊어 버린다.

 

어제 사건은 하루밤 자고나자 잊어버렸다. 손실 나는 것으로 끝난 것이다. 이런 것은 문제도 아니다.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 것이 진짜 문제이다.

 

글을 쓰는 목적은 사랑하지 않는 것과 만남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한 것인지 모른다. 이를 불교 경전에서 찾고자 했다. 그 결과 많은 글을 남겼다. 이제 책으로 만들고자 한다.

 

2014년에 써 놓은 글을 편집했다. 담마에 대한 글이다. 이를‘59 담마의 거울 2014 III’라고 제목을 지었다. 여기서 5959번째 책의 의미이다. 모두 25개의 글로 351페이지에 달한다. 참고로 목차를 보면 다음과 같다.

 

 

목차

 

1. 부처님의 마지막 유훈 압빠마다(不放逸)

2. 작은 꽃 그러나 큰 열매

3. 팔뚝의 힘으로 이마의 땀으로

4. 낭만의 바다와 통곡의 바다

5. 사띠(sati)는 그런 줄 아는 것

6. 어린아이처럼 어리석은 자들의 바보축제

7.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8. 진리에는 양보와 타협이 있을 수 없다

9. 현법열반(現法涅槃)에 대하여

10. 수메다 존자는 왜 현자의 상징인가?

11. 선장은 왜 팬티바람으로 탈출했을까?

12. 부처님의 논파할 수 없는 가르침

13. 바라문학생 마가의 일곱 가지 소박한 서원

14. 존우화작설과 자유의지

15. 장로가 되는 네 가지 원리

16. 모든 집착을 지혜의 불로 태워

17. 그들은 완전히 새로운 불교를 만들었다

18. 하느님도 윤회할 수밖에 없는 존재

19. 있는 그대로 세상의 발생과 소멸을 관찰하면

20. 행위의 두려움, 존재의 두려움, 윤회의 두려움

21. 퇴전과 불퇴전을 거듭하다 보면

22. 세 수행승은 왜 자결했을까?

23. 마음은 경망스런 것, 자신의 지배하에 두어야

24. 불교는 축복의 종교

25. 인간이 천상보다 좋은 것은

59 담마의 거울 2014 III.pdf
3.57MB

담마에 대한 글은 경전을 근거로 한 것이다. 지금 읽어 보아도 크게 잘못이 발견되지 않는다. 그것은 경전과 주석을 근거로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 있게 세상에 내놓을 수 있다.

 

목차에서 25번째 글을 읽어 보았다. 지금 읽어 보아도 손색없다. 내가 쓴 것이지만 마치 남이 쓴 글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내가 쓴 글을 보고 내가 인정하는 것이다. 누구나 수긍하는 글쓰기 한 것이라고 자화자찬해 본다.

 

25번째 글은 인간이 천상보다 좋은 것은’(2014-08-08)이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다. 천상보다 인간이 수행하기에 적합한 조건이라는 취지의 글이다. 글에서 하나 눈에 띄는 말이 있다. 그것은 상베가(savega)라는 말이다.

 

최근 빠알리어 상베가에 대하여 글을 여러 편 썼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8년전에도 상베가라는 말을 썼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그 의미를 절절하게 모르고 썼던 것 같다. 그렇다면 상베가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상베가는 상윳따니까야 사자의 경’(S22.78)에서 발견된다. 부처님 설법을 들은 천신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묘사가 있다.

 

 

“수행승들이여, 저 장수하는 하늘사람들은 아름답고 지극히 행복하고 높은 궁전에 오래도록 살아도 여래의 설법을 듣고 대부분 ‘벗이여, 우리들은 영원하지 않은 것을 영원하다고 여겼다. 벗이여, 우리들은 견고하지 않은 것을 견고하다고 여겼다. 벗이여, 우리들은 상주하지 않는 것을 상주한다고 여겼다. 벗이여, 우리들은 실로 영원하지 않고 견고하지 않고 상주하지 않지만 개체가 있다는 견해에 사로잡혀 있다’ 라고 두려움과 전율과 감동에 빠진다.(S22.78)

 

 

천신들은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 산다. 삼십삼천에서 하루는 인간의 백년에 해당된다. 삼십삼천의 천신들은 수명이 3,600만년이다. 이렇게 오래 살다 보니 영원히 사는 것으로 착각한다. 이에 부처님은 윤회할 수밖에 없는 무상한 존재임을 알려 준다. 이런 사실을 알았을 때 천신들의 반응에 대하여 경에서는 두려움과 전율과 감동에 빠진다. (bhaya santāsa savegaṃ)라고 표현했다.

 

부처님의 설법을 들으면 두려움과 전율과 감동에 빠지게 되어 있다. 이는 다름 아닌 지혜에 의한 두려움을 체험하기 때문이다. 특히 오래 사는 천신에게 그렇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두려움과 전율과 감동에 대하여 주석에서는 거룩한 님(阿羅漢)에게서 이러한 자각은 성취해야 할 것을 성취했기 때문에 체험하는 ‘지혜에 의한 감동’이지만, 다른 신들은 무상을 깨닫고는 정신적 전율로서의 두려움을 체험하고 강력한 통찰을 할 때에는 ‘지혜에 의한 두려움’을 체험한다.”(Srp.II.288)라고 했다.

 

두려움은 바야(bhaya)을 번역한 말이고, 전율은 산따사(santāsa)를 번역한 말이고, 감동은 상베가(savega)를 번역한 말이다. 이 세 가지 말은 천신처럼 사는 자들에게 해당되는 말에게 절절한 것이다.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의 설법을 들으면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는 초기경전을 보면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다. 어느 것 하나 진리 아닌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은 모두 진리이다.

 

본래 깨달은 자가 말한 것은 모두 진리의 말씀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진리를 보는 자는 나를 보고 나를 보는 자는 진리를 본다. (dhamma passati so ma passati, yo ma passati so dhamma passata)”(S22.87)라고 말씀하셨다.

 

진리의 말씀을 가난한 자가 듣는 것과 부자가 듣는 것은 느낌이 다를 것이다.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겪은 자가 부처님 설법을 들었을 때 마음 속으로 다가올 것이다. 부처님이 이것이 진리이다.”라며 사고와 팔고를 설했을 때 이를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적극 받아들일 것이다. 왜 그런가? 자신이 처한 상황과 비교했을 때 꼭 들어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확신을 가지고 믿게 된다.

 

모든 것을 가진 부자가 부처님 설법을 들을 때 어떤 마음이 들까? 아마 처음에는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왜 그런가? 부처님이 무상, , 무아를 설했을 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이 모두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들것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수명과 행복이 보장되어 있는 천신들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부처님이 천신들에게 설법했을 때 천신들은 처음에는 두려움으로 떨었을 것이다. 자신의 입지가 영원하지 않은 것을 안 것이다. 윤회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까? 복과 수명이 다하면 어떤 세계에 태어날지 모른다. 지옥이나 축생 같은 악처에 태어날 수 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두려움에 떨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천신들에게 부처님의 설법은 날벼락 같은 것이다. 지금 누리고 있는 영화가 덧없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두려움은 이내 전율로 바뀐다. 그리고 감동의 물결이 된다. 왜 그런가?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괴로움과 윤회를 끝내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알았을 때 감동하지 않을 자 없을 것이다. 지혜로 두려움을 통찰했을 때 두려움과 전율과 감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상베가에 대하여 영어로는 ‘agitation, fear, anxiety; thrill, religious emotion’라는 뜻이 있다. 전율과 공포의 뜻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종교적 감정의 뜻도 있다고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부처님의 설법을 들었을 때 강렬한 반응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것은 충격적인 것일수도 있다. 왜 그런가? 세상의 흐름과는 반대되는 가르침이기 쉽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 간다. 세상 사람들이 탐, , 치로 살때 무탐, 무진, 무치로 살라고 말한다. 그래서 출세간의 가르침이라고 한다. 이런 부처님의 가르침을 역류도(逆流道)라고도 한다.

 

역류도로서 부처님 가르침을 접하면 사람이 변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믿음, 신념, 사상, 종교를 내려 놓아야 한다.

 

부처님의 설법을 들으면 인격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것인가? 영원한 것을 무상하다고 보고, 즐거운 것을 보고 괴로운 것이라고 보고, 자아에 대하여 실체가 없다고 말했을 때 처음에는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잘 관찰해 보면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전도된 인식이 깨졌을 때 두려움과 전율과 감동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혜로 두려움을 통찰했을 때 감동이 일어난다. 이런 감동을 상베가라고 한다. 초기경전을 읽을 때 감동하게 되는데 이런 것도 상베가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책만들기 하면서 상베가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새겨 보았다.

 

 

2022-05-28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