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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권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14-15 I, 내 등에 진 감당할 수 없는 짐이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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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6. 14.

62권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14-15 I, 내 등에 진 감당할 수 없는 짐이 있기에


등의 짐은 무겁다. 감당할 수 없는 짐을 지고 가는 사람이 있다. TV에서 중국 명승지 산을 올라가는 짐꾼을 본 것이다. 그러나 청소년 시절에 본 연탄배달꾼의 등짐을 잊을 수 없다. 1970년대 산동네에 살았을 때이다.

연탄배달꾼은 시커먼 연탄을 20장가량 지고서 산동네 언덕을 오른다. 한발한발 떼는 것에서 천근만근 삶의 무게가 느껴졌다. 속된 말로 '쎄가 빠진다'는 말이 있는데 짊어진 연탄의 무게에서 실감했다.

 


연탄배달꾼의 숨소리는 매우 거칠었다. 눈빛은 형형했다. 연탄배달꾼은 나보다 불과 서너 살 많았던 것 같다. 중학교 때 본 것이다.

산동네의 가파르고 비좁은 골목은 차도 리어커도 들어갈 수 없었다. 오로지 지게에 의존하여 연탄을 날라야 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연탄창고를 가득 채워 놓아야만 안심이 되었다. 그때 연탄배달꾼의 거친 숨소리와 형형한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내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세상을
바로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내등에 있는 짐 때문에 늘 조심하면서
바르고 성실하게 살아 왔습니다.
이제 보니 내 등의 짐은 나를
바르게 살도록 한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시의 앞부분이다. 시의 제목은 '내 등에 짐'이다. 어느 복지단체 액자에서 처음 보았다. 처지가 나와 비슷한 것 같아 공감했다. 내등에 진 짐이 너무 무거웠기 때문이다. 그런 한편 청소년시절 산동네에 살 때 연탄배달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가슴을 울린 '내등에 짐'은 누가 지었을까? 액자에는 정호승 시인이라고 되어 있었다. 글을 쓸 때는 출처를 밝혀야 한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역시 정호승 시인으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2012내 등에 짐이 있기에, 바라경(짐의 경, S22:22)’(2012-11-07)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을 때 정호승 시인이 쓴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시는 정호승 시인이 쓴 것이 아니었다.

어느날 정호승 시인으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시인은 시가 자신의 시가 아니라고 했다. 사연은 이랬다.


진흙속의 연꽃님 귀하

안녕하세요?

시인 정호승입니다.

어제(10 5) 연꽃님의 다음 블로그에 게시된 <내 등에 짐이 있기에, <바라경>에 대해 게시중단 신청을 했습니다.

좋은 글을 게시해주셔서 제 영혼에 크게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게시글 하단에 정호승 이름으로 <내 등에 짐>이라는 제목의 시가 게시돼 있었습니다.

이 시는 제가 쓴 시가 아닙니다. 저는 지금까지 그 어디에도 이런 제목을 시를 쓰거나 발표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제 산문집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2006, 김영사 비채 刊)에 위 게시글의 내용의 극히 일부분을 누구의 글인지 모른다고 분명히 밝히면서 인용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제 이름으로 다른 내용의 시와 산문으로 다양하게 첨가 변형돼 <내 등의 짐> <내 등에 짐> <인생의 짐> <짐 없이 사는 사람은 없다> <짐이 없는 사람은 없다>

<
내 등에 짐이 없었더라면> <인생 자체가 짐이다> 등으로 인터넷상에 계속 전파되고 있습니다.

아마 연꽃님께서도 당연히 제가 쓴 글이라고 생각하시고 인터넷에서 이 글을 퍼오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제가 쓴 글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이름으로 인터넷에 끊임없이 전파되는 것을 그냥 두고 보고만 있을 수가 없어 게시중단을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이와같은 메일은 2021 4월에 받았다. 시인은 '내등에 짐'이라는 시가 자신의 시가 아니라고 했다. 참으로 놀라운 선언이었다. 시인은 자신의 산문집에서 작자미상의 시를 소개 했는데 인터넷에 자신의 시인 것처럼 유포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자 미디어 다음에 게시중단을 요청한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글이 차단 되었다. 누군가 명예훼손으로 신고한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글이 차단당할 만한 이유가 없다. 종종 기독교 단체에서 신고한다. 대개 이단으로 평가 받는 단체를 말한다. 2020년 코로나 공포가 시작되었을 때도 그랬다. 차단 당하면 복원신청할 수 있다. 특별한 것이 발견되지 않는 한 한달이 지나면 원상회복된다.

글이 복원되고 나서 시인으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그제서야 게시중단을 요청한 사연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시인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것인지 모른다. 이에 적극 협조했다.

블로그에서 '내 등에 짐'과 관련된 글이 몇 편 있다. 글에서 정호승이라는 이름을 모두 삭제했다. 이에 시인은 진흙 속의 연꽃 님...주신 메일 잘 받았습니다. 잊지 않고 수정해주시고 메일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메세지를 남겼다. 더구나 전화번호까지 남겼다.

하나의 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기에 충분하다. '내등에 짐'이라는 시도 그렇다. 이런 시를 쓰고 싶었다. 영혼을 울리는 시를 쓰고 싶었다. 그래서일까 처음으로 블로그에 시를 쓰게 되었다. 그때가 2014년도의 일이다.

나도 시인이 될 수 있을까? 나도 시인이 되고 싶었다. 일단 써 보기로 했다. 한번도 시를 써 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다.

어떻게 해야 시를 잘 쓸 수 있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경전에서 본 게송을 흉내 내보는 것이다. 네 구절로 된 게송을 참고하여 네 구절로 된 짤막한 시를 써보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 안 사실이 있다. 시는 말하듯이 써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많은 시를 썼다. 마치 시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매일 썼다. 걷다가도 시상이 떠오르면 그 자리에서 멈추어 스마트폰 메모앱을 쳤다. 이렇게 쌓이고 쌓이다 보니 수백편이 되었다.

나는 시인일까? 시를 썼다고 해서 시인이 되는 것일까? 그러나 나는 시인이 아니다. 시인임을 인정하는 자격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시인으로서 자질과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지금은 시를 쓰지 않는다. 아니 쓸 필요가 없어졌다. 명백히 한계를 보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잘 쓴다고 해도 초기경전에 있는 게송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심오한 게송에 비하면 나의 시는 아이들이 낙서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더 이상 시를 쓰지 않는다. 그 대신 게송 외우기를 하고 있다. 부처님 가르침은 게송형식으로 되어 있다. 읽어보면 놀라운 가르침으로 가득하다. 진리의 말씀이기 때문일 것이다. 법구경을 예로 들 수 있다.

법구경을 읽으면 마음이 청정해진다. 이런 이유로 법구경 423게송을 외우고자 발원 했다. 현재 3품까지 외웠다. 빠알리 원문으로 외운 것이다. 조만간 4품인 뿝파박가(꽃의 품)을 외울 것이다.

시인이 되고자 했던 것은 한편의 시 때문이었다. 복지단체 액자에 걸려 있었던 내 등에 짐을 보고서 나도 저와 같은 시를 쓰고자 했다. 그 결과 수백편의 시를 썼다. 그러나 만족스럽지 않다. 특히 경전에 있는 게송과 비교해 보았을 때 부끄럽고 창피했다. 그럼에도 과거에 써 놓은 시를 한권의 책으로 내고자 한다. 시절인연이 된 것이다.

책의 제목을 ‘62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14-15 I’로 정했다. 62번째 책으로 2014년과 2015년에 쓴 시에 대한 모음이다. 영어 알파벳 'I'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시리즈의 첫번째 책이라는 뜻이다. 시를 포함해서 수필과 같은 짧은 글에 대한 모음이다. 62번째 책에는 백편 넘는 글이 있다.

이 글은 나의 첫번째 시집에 대한 서문이다. 서문에서 시를 쓰게 된 동기를 알렸다. 정호승 시인과 관련된 이야기도 써 놓았다. 그렇다고 시집을 출간할 생각은 없다. 그 대신 피디에프(PDF) 파일을 만들어 인터넷에 유포하고자 한다. 블로그 안에 있는 '책만들기' 카테고리에 글을 올려 놓으면 된다.

 

62권 나에게 떠나는 여행 2014-2015 I.pdf
5.58MB


작자미상의 시인은 아름다운 시를 남겼다. 시인은 내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세상을 바로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라고 노래 했다. 그 짐은 무엇일까?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내 등에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이 있기에 나는 오늘도 죄인처럼 사는지 모른다.


짐은 다섯 가지 존재의 다발이며
세상의 짐꾼은 사람이니
짐을 짊어지는 것은 괴로움이며
짐을 내려놓는 것이 안락이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사람
다른 짐을 짊어지지 않는다.
갈애를 뿌리째 뽑아버리고
욕심 없이 완전한 열반에 드네.”(S22.22)

2022-06-14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