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이야기

봄밤 2018. 9. 16. 12:09


2018년 9월 15일(토) 충북문화재단에서 마련한 권태응 시인 문학기행에 다녀왔다. 충북문화재단에서는 충북 보은 출신 오장환 시인과 충주 출신 권태응 시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두 시인의 동시 각 10편을 그림과 함께 전시하는 기획전을 열었는데, 그 행사의 일환으로 9월 8일에는 오장환 시인 문학기행을, 9월 15일에는 권태응 시인 문학기행을 마련했다.

 


권태응 시인은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를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되어, 1995년 창비에서 나온 시집 <감자꽃>을 읽고 좋아하게 되었다. 십여 년 전에 충주에 왔다가 생가터를 찾아가봤지만 근처까지만 가보고 어딘지 몰라 아쉽게 발걸음을 돌렸는데, 이번에 문학기행이 있다기에 꼭 참가하고 싶었다.



마침 9월 15일이 기획전 마지막날이어서 문학기행 출발을 기다리며 전시를 둘러볼 수 있었다. 두 시인의 동시를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들 중 가장 마음에 든 것은 광목천에 재봉질로 시 '북쪽 동무들'을 쓰고 철조망으로 시를 표현한 최익규 작가의 작품이었다. 



문학기행은 충주시 금릉동 광명산(팽고리산)에 있는 권태응 시인 묘소를 참배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예전엔 나무와 숲이 우거진 산속이었다는데, 지금은 큰 길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시인의 묘소가 있었다. 묘소는 잘 단장되어 있었는데 오른쪽에는 비석이, 왼쪽에는 감자꽃 시비가 서 있었다.


안내를 맡은 이종수 시인은 우선 권태응 시인의 '아버지 산소'라는 시를 소개했다.

"아버지 산소는 쓸쓸한 곳, / 떼 덮인 그 위엔 꽃 하나 없고 / 소나무 숲에선 바람이 울 뿐. // 아버지 산소는 쓸쓸한 곳, / 명절 때 식구가 겨우 찾고는 / 소나무 숲에선 비둘기 울 뿐."


권태응 시인이 2005년 대통령 표창을 받고 독립유공자로 인정되기 전까지는 시인의 묘소도 시 '아버지 산소'와 같이 사람들이 찾지 않는 쓸쓸한 곳이었다고 한다.




산소를 참배한 뒤 칠금동 옷갓마을, 시인의 생가터를 찾았다. 생가터는 십여년 전 찾아와 못찾고 발걸음을 돌린 것이 당연할 정도로 잡풀 무성한 빈 땅이었다. 특히 생가터 바로 옆으로 큰 도로공사가 한창이어서 파헤쳐진 흙더미들로 더 정신이 없었다. 다만 잡풀더미 사이 덩그러니 세워진, 감자꽃 노래 악보를 새긴 표지석만이 이곳이 시인의 생가터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오래 전부터 생가터에 권태응문학관을 만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데, 아직까지는 땅을 소유하고 있는 충주시에서 적극적이지 않다고 한다. 시간에 쫓겨 옷갓마을을 천천히 둘러보지 못한 것은 아쉬웠다.



생가터에서 나와 점심을 먹고 탄금대에 있는 감자꽃 노래비를 찾았다. 감자꽃 노래비는 1968년 5월 5일 새싹회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동시작가 다섯 명의 노래비를 세우는데 그 중 하나로 선정되어 세워졌다고 한다.


자주꽃 핀 건 자주 감자,

파 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 보나 마나 하얀 감자.


감자꽃 노래비는 이제껏 본 어떤 시비(詩碑)보다도 시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매우 단순하면서도 울림이 큰 시 '감자꽃' 처럼 노래비도 돌로 조각한 감자꽃 하나로 모든게 다 표현된다. 특히 동그란 꽃잎 안의 오각형 음각과 양각의 비대칭은 무언가 알 수 없는 감정을 뭉클 솟아나게 만든다.


노래비의 설명에 따르면, 본래 노래비에는 시 '감자꽃'을 새긴 동판을 달았다고 한다. 그런데 동네 주민 누군가가 떼어가서 검은 돌판에 다시 새겨 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에 다시 원래대로 동판으로 교체를 추진하고 있다는데, 내 생각에는 그냥 놔두어도 좋지 않을까 싶었다. 다시 동판으로 교체한다고 그것이 '원래'의 동판일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냥 조금 모자란 역사도 오랜 시간 그래온 것처럼 노래비가 그대로 품고 있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었다.



노래비를 둘러보고 역시 탄금대에 있는 충주문화원 강당에서 토크 콘서트가 2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밴드 조'와 '민들레의 노래'의 합동 공연도 참 좋았고, 임승빈, 이안, 정민 세 분의 시인이 진행한 토크 역시 귀를 쫑긋 기울여 경청하게 했다.


시집 <감자꽃>을 1999년에 읽었으니 거의 20년만에 권태응 시인의 시를 다시 읽어보게 된 셈이다. 특히 시인의 동시를 노래로 들을 수 있어서 더 없이 좋았다. 다음에 또  권태응 시인의 발자취를 찾아보게 된다면, 그때는 꼭 '권태응문학관'이 만들어져 시인의 육필원고 등 삶의 자취를 풍성히 느낄 수 있기를 바래본다.













 
 
 

시이야기

봄밤 2018. 6. 16. 13:56




  멸치볶음

 

 

     

  내가 집에서 잘 해 먹는 밑반찬은

  멸치볶음

 

  호두, 아몬드, 해바라기씨, 브라질넛, 캐슈넛, 시차인치

  어머니가 남대문시장에서 사 보내준 각종 견과류를

  먼저 볶아놓고

  통영 중앙시장에서 산

  잔멸치를 볶는다

  양념과 간은 다른 것 필요 없이 매실청으로만

  매실청 넣고 좀 더 볶다가

  견과류 넣고 다시 볶다가

  참깨 왕창 넣고 또 볶다가

  마지막으로 불 끄고 물엿 조금 넣고 버무려주면 완성되는

  멸치볶음

 

  얼마 전 어머니가

  요즘엔 무슨 반찬을 해도

  멸치볶음을 해도 맛있는 줄 모르겠다고 하시길래

  전 어머니가 알려주신 레시피대로 잘 만들어 먹는데요 하니

  내가 그런 걸 알려줬니

  이젠 기억이 하나도 안 나 말씀하신다

 

  내가 집에서 잘 해 먹는 밑반찬은

  어머니가 알려주신

  맛있는

  멸치볶음


  (2018. 6. 16.)

 
 
 

시이야기

봄밤 2018. 4. 11. 03:19



자리끼



추운 겨울밤
또는 새벽녘


감기몸살에
뒤척이다 일어난
콜록이다 깨어난
당신의 바짝 마른 목을 적셔주는
한 모금
물처럼


팔 뻗치면 닿을 수 있게
가까이
오래 오래
당신 곁을
당신의 밤을
지키고 싶습니다


(2018. 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