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이야기

봄밤 2010. 1. 3. 16:27

 

 

 

시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일부러 동시집을 찾아 읽지는 않는다. 누가 권하거나 어떤 우연한 기회가 아니라면 동시를 읽을 일은 많지 않다. 그런데 드물게 읽는 동시에서 큰 감동을 받는 경우가 있다.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를 읽다 알게 된 권태응 동시집 <감자꽃>이 그런 경우다.

 

친구의 소개로 읽게 된 안학수 동시집 <낙지네 개흙 잔치> 역시 마찬가지다. 시집을 읽는 내내 잔잔한 감동이 일었다. 아이들과, 바닷가 생물들과, 자연에 대한 시인의 마음이 가져다 주는 감동이다. 

 

 

개펄 마당

 

 

 

밀릉슬릉 주름진 건

파도가 쓸고 간 발자국,

고물꼬물 줄을 푼 건

고둥이 놀다 간 발자국.

 

스랑그랑 일궈 논 건

농게가 일한 발자국,

오공조공 꾸준한 건

물새가 살핀 발자국.

 

온갖 발자국들이 모여

지나온

저마다의 길을 펼쳐 보인 개펄 마당

 

그 중에 으뜸인 건

쩔부럭 절푸럭

뻘배 밀고 간 할머니의 발자국,

 

그걸 보고 흉내낸 건

폴라각 쫄라락

몸을 밀고간 짱뚱어의 발자국.

 

시에서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시인이 만들어 낸 풍성한 의태어들이다. 밀릉슬릉, 고물꼬물, 스랑그랑, 오공조공, 쩔부럭 절푸럭, 폴라락 쫄라락...... 이런 의태어들만 따라 읽어도 기분이 막 좋아진다. 또 이런 단어들은 대상에 대한 시인의 오랜 애정과 관찰의 결과물이기에 시를 읽으면 그 모습이 생생하게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런데 파도, 고둥, 농게, 물새 등의 발자국만 얘기했다면 그냥 재미있는 시가 됐을 거다. 하지만 시인은 그 개펄 마당에서 "뻘배 밀고 간 할머니의 발자국"도 찾아낸다. 맞다. 개펄에는 갯것들만 있는 게 아니다. 하루 온 종일 개펄 농사를 일구는 주름진 할머니의 삶도 거기에 있다. 그게 진짜 현실이다.

 

그런데 할머니의 발자국으로 끝을 맺었다면 조금은 구태의연하고 식상한 시가 됐을지 모른다. 하지만 시인은 몸으로 개펄을 밀고간 짱뚱어가 할머니를 흉내낸 것이라고 노래한다. 짱뚱어의 우스꽝스런 모습이 떠오르면서 입가에 웃음이 머금어진다.

 

'개펄 마당'은 정말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시다. 삶이 섞이지 않고서는, 그냥 지나가면서 허투로 보아서는 결코 쓸 수 없는 시다. 바닷가 생명체들과 바닷가 사람들에 대한 애뜻한 마음이 없으면 불가능한 시다. 실제로 시인은 충남 보령에서 그렇게 살며 시를 쓰고 있다. 

 

 

공기놀이

 

 

 

공기알이 춤춘다

손 따라 콩당꽁

한 알 따기 조막손은

모이 쪼는 꼬꼬닭.

 

두 알 따기 어렵다

두 뼘이나 멀구나

하늘 높이 올리고

날렵하게 집어라.

 

세 알 따기 조심조심

틀리면 언니 차례

모아진 것 먼저 집고

남은 한 알 살짝콩.

 

막알 따기 재밌다

차돌 공기 다섯 알

쓸어 집고 고추장

손가락이 찍었다.

 

키질하기 까불까불

손등 위에 얹어라

쭉정이는 나가고

알맹이만 남아라.

 

청소는 이따하고

숙제는 밤에 하자

언니랑 둘이 앉아

공기놀이 재미난다.

 

 

참 쉬운 시다. 공기놀이를 해 본 사람이라면, 애 어른 할 것 없이 누구나 쉽게 알아먹을 수 있는 시다. 공기놀이가 이렇게 재미있었던가 싶게 흥미진진한 시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도 공기놀이를 할까? 아니 요즘 아이들이 어른이 되고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들은, 그리고 그 아이의 아이들은 공기놀이를 하며 자라게 될까? 혹 우리 아이들과 그 아이의 아이들이 더이상 공기놀이를 하지 않게 되더라도, 이 시가 없어지지 않는 한 사람들은 공기놀이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백석의 시를 읽으며 1900년대 북쪽지방의 풍습과 삶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것처럼.

 

사실 <낙지네 개흙 잔치>에는 아름답고 즐거운 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실의 고단함과 힘겨움이 더 많이 묻어 있다. 바닷가는 사람들이 버리고 간 과자봉지, 소주병, 담배꽁초, 깡통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고 또 포크레인 삽날에 상처입고 있다. 아버지의 이마는 주름졌고 속은 담뱃재처럼 까맣게 타거나 구멍나 있다. 엄마도 아빠도 없는 아이는 빗물 고인 운동장에서 빈 병과 함께 놀거나, 네 번째 새엄마 치마를 만지고 또 만진다. 그게 시인이 살아가는 현실의 모습이다.

 

어른이 동시를 읽는 것 하고 아이들이 읽는 것 하고는 그 감상이 많이 다를 것이다. <낙지네 개흙 잔치>를 읽고 아이들은 어떤 느낌을 받을까? 초등학교 4학년 조카에게 선물해 줬는데 읽어봤는지, 재미있었는지 미처 물어보질 못했다. 그래서 장담은 할 수 없지만, 주위의 아이들이 있다면 많이 많이 선물해 주기를 적극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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