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黃龍골 황용사지黃龍寺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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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경주인근자료

2021. 11. 10.

황룡사터

경주에서 감포로 가는 길을 따라 약 20분쯤 달리다 보면 덕동댐이 나타나고 조금 더 가면 황룡동 사시목에 이른다.

여기에서 북쪽계곡을 따라 좁은 산길로 2km정도 올라가면 속칭 '절골'이라고하는 계곡이 서북쪽으로 계속되고 있다.

계곡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황룡사라고 하는 조그마한 절이 있는데, 1987년 2월부터 종연(宗然) 스님이 이곳에 있던 민가를 사들여서 불사를 일으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곳 황룡사에서 보면 계곡 북쪽 산중턱에 대나무숲과 함께 자연석으로 쌓은 석축이 높이 약 3m, 길이 20m 정도 남아 있는 것이 보인다.

이 석축 위에는 폭이 좁고 동서로 긴 부지敷地에 무너진 석탑 2기가 대나무숲 앞에 10m 간격을 두고 동서로 놓여 있는데 이곳이 황룡사터이다.

탑은 무너져서 하층기단 일부만 제자리에 남아 있고 깨어진 탑몸, 지붕돌, 기단석 등 탑 부재들이 주위에 아무렇게나 나뒹굴어 있고 서탑 북측 기단부에는 고사枯死한지 오래된 아름드리 고목이 썩어가고 있어 이미 오래 전에 탑이 무너졌음을 말해 주고 있다.

석탑 북쪽 산기슭의 법당이 위치하였던 자리에는 민묘 2기가 있으며 민묘 주위와 대나무밭 속에 주춧돌, 신방돌, 계단지대석 등의 여러 가지 석재가 흩어져 있다.

이 탑 서쪽의 작은 계곡 너머 산기슭에는 남북이 좁고 동서가 긴 부지에 윗면이 바른 자연석을 이용한 9개의 주춧돌이 2~3m 간격을 두고 동서로 길게 놓여 있어서 요사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며, 다시 조그마한 계곡을 사이에 두고 서쪽 소나무숲 속에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또 다른 석탑 1기가 무너져서 탑재가 흩어져 있고, 그 윗쪽의 민묘 상석 앞에 석탑의 맨 윗층 지붕돌(屋蓋石) 1개가 놓여있다.(출처 : 黃龍谷 黃龍寺터 地表調査)

 

황룡사터

[불국사고금역대기(佛國寺古今歷代記)]에 다음과 같은내용들이 실려 있다. "옛기록에 전하기를 신라 제27대선덕여왕2년(633)에 장인들을 모아 절을 세우고 약사여래상을 만들어 모시고 '황둔사(黃芚寺)'라 하였다.

그 후 제39대 소성왕(798∼800)때에 5년간 큰 가뭄이 계속되어 전국의 초목이 말랐으나 유독 이 골짜기의산은 계곡의 물이 흘러 초목은 이슬을 머금은 듯 푸르렀으므로 산의 이름을 이슬이 숨은 듯 하다는 뜻으로 은점산(隱霑山)이라 했다.

조선조 제16대 인조대왕1년(1623)담화스님이 조정의 명을 받아 일본에 사신으로 갔다 와서 왜란중의 왜군으로 인해 잿더미가 된 절을 보고 비분강개하여 사찰을 재건하고는 황룡사(黃龍寺)라 했고, 그후 제19대 숙종27년(1701)에 절을 불국사에 합속시켜 심작암이라 했다."는 것이다.

이상의 기록에서 몇 가지를 살펴보면 이 산골은 가뭄을 타지 않는 습기가 많은 곳으로 일찍이 황둔사(黃芚寺)를 창건하고, 약사여래상을 모셔 병든 사람들의 심신을 치유한 신령스러운 곳으로 이는 최근까지도 많은 약초가 이곳에서 채집되는 사실로도 충분히 수긍된다.

조선조에 이르러 왜란을 당하자 많은 사람들이 이곳 골짜기로 피신했는데, 이 기미를 안 왜병이 뒤쫓아가서 힘없는 부녀자와 노약자들을 닥치는 대로 참살한 내용이 동경잡기(東京雜記)에 전해오고 있으며, 이때 황둔사도 불타 없어졌으나 왜란 후 일본에 사신으로 갔다 온 담화스님이 사찰을 재건하고 황룡사라 한 것은 왜란을 겪은 뒤 호국불교의 재현사상이 싹튼 흔적이라고 볼 수있다.

옛 황둔사(황룡사)의 절터에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2기와 금당지와 석축 그리고 각 시대의 각종 기와와 불상대석(근년에 없어짐)등과 석탑재가 남아 있다.

황룡사는 지형으로 보아서 산지의 쌍탑가람배치(雙塔伽藍配置)로 뒤에 산을 두고 남향한 절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현재 유구(遺構)는 쌍탑을 포함한 3기의 석탑터와 법당터, 건물터, 석축 등이 있는데 법당터를 비롯한 건물터는 확실하지 않다. 특히 법당터는 위치만 짐작될 뿐민묘가 있어서 유구는 전혀 남아 있지 않은 상태이다.

쌍탑은 동서 75m, 남북35m 크기의 동서로 길쭉한부지 가운데에 무너진 탑부재가 10m간격을 두고 동서로 놓여 있다.

대체로 보아서 탑 상륜부의 부재는 보이지 않고 탑몸(塔身)과 지붕돌(屋蓋石), 그리고 기단부(基壇部)등이 남아 있으며, 2중 기단을 갖춘 3층석탑으로보인다.(출처 : 황룡사)

          

경주 황용동 황용사터 발굴조사 현황(2018에서2020년)
건물 등 유적현황
경주 황용동 황용사터에서 출토된 금동제 유물 일괄 사찰에서 의식용으로 깃발을 매달아두는 장대로 썼던 보당(寶幢) 금동귀면 금동사자상 금동불상 옷자락 조각 금동촉대받침 등 다양한 유물이 쏟아져나왔다/불교문화재연구소
경주 황용동 황용사터에서 출토된 금동 보당 기단부/불교문화재연구소
경주 황용동 황용사터에서 출토된 금동 보당 당간부/불교문화재연구소
경주 황용동 황용사터에서 출토된 금동 보당을 다른 보당 유물과 비교한 모습/불교문화재연구소
경주 황용동 황용사터에서 출토된 금동귀면/불교문화재연구소
경주 황용동 황용사터에서 출토된 금동사자상/불교문화재연구소
경주 황용동 황용사터에서 출토된 사자상과 받침을 다른 유물과 비교해 추정 비교한 모습/불교문화재연구소
동탑과 서탑
서탑
동탑
동탑
동탑
주춧돌
황용사지黃龍寺址에서 본 황용골(보이는 사찰은 1987년 2월부터 종연(宗然) 스님이 이곳에 있던 민가를 사들여서 세운 현재의 황용사)
황용골

경주에서 감포로 가는 길을 따라 약 20분쯤 달리다 보면 덕동댐이 나타나고 조금 더 가면 황룡동 사시목에 이른다.

여기에서 북쪽계곡을 따라 좁은 산길로 2km정도 올라가면 속칭 '절골'이라고하는 계곡이 서북쪽으로 계속되고 있다.

계곡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황룡사라고 하는 조그마한 절이 있는데, 1987년 2월부터 종연(宗然) 스님이 이곳에 있던 민가를 사들여서 불사를 일으켜 지금에 이르고 있다.

 

황용사의 가을 풍경
바퀴가 유난히 큰 수레
황용사의 가을 풍경
답사 모습
황용골의 가을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