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보경사 승탑浦項 寶鏡寺 僧塔과 포항 보경사 원진국사비浦項 寶鏡寺 圓眞國師碑

댓글 0

경상북도/포항

2022. 1. 23.

                                      

포항 보경사 원진국사비(浦項 寶鏡寺 圓眞國師碑. 보물. 경북 포항시 북구 송라면 보경로 523, 보경사 (중산리))

보경사에 있는 고려 중기의 승려 원진국사의 탑비이다.

원진국사(1171∼1221)는 13세에 승려가 되어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며 수도를 하기도 하였고, 왕의 부름으로 보경사의 주지가 되었다. 51세로 입적하자 고종은 그를 국사(國師)로 예우하고, 시호를 ‘원진’이라 내리었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운 간결한 모습으로, 비몸 윗부분의 양 끝을 접듯이 잘라 놓았는데, 이러한 모습은 당시에 유행하던 양식이다.

넓다란 바닥돌과 하나의 돌로 이루어진 거북받침돌은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머리를 하고 있다. 등에는 6각형의 무늬마다 ‘왕(王)’자를 질서정연하게 새겨놓았으며, 등 중앙에는 연꽃을 둘러 새긴 네모난 받침대를 조각하여 비몸을 끼워두게 하였다. 비몸의 둘레에는 덩굴무늬가 장식되어 있는데 이 역시 고려 중기의 특색이라 할 수 있다.

비문에는 원진국사의 생애와 행적이 기록되어 있으며, 글은 당시의 문신이었던 이공로가 지었고, 김효인이 글씨를 썼다. 비문에 의하면, 비가 완성된 것은 고종 11년(1224)으로 원진이 입적한 지 3년 후의 일이다(출처 : 문화재청)

 

비는 이수가 없고 신석양각(身石兩角)을 귀접이한 독특한 형식으로 귀부와 대석은 단일석이며 비 좌는 폭이 배면과 거의 같은 정도의 넓이로 주위에 단판(單瓣) 44연 판(蓮瓣)을 조각하였고 귀두(龜頭)는 여의주를 머금은 용형화(龍形 化)하였으며 양각을 귀접이 한 신석 둘레에는 넓이 7.4cm의 당초문 대를 조식하였다. 귀부(龜趺)는 화강암이고 비신은 사암(砂岩)으로 되어 있는데 비신높이 1.83m, 폭 1.04m , 두께 17cm이다.

 

비몸의 둘레에는 덩굴무늬가 장식되어 있는데 이 역시 고려 중기의 특색이라 할 수 있다.

 

등에는 6각형의 무늬마다 ‘왕(王)’자를 질서정연하게 새겨놓았다.

 

포항 보경사 승탑(浦項 寶鏡寺 僧塔. 보물. 경북 포항시 북구 송라면 보경로 533, 보경사 (중산리))

보경사 뒷산의 중턱에 서 있는 묘탑으로, 원진국사의 사리를 모셔두고 있다.

원진국사 신승형(申承逈)은 고려 중기의 승려로, 51세에 입적하자 고종이 그를 국사로 추증하고 ‘원진’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기단부(基壇部)의 아래·중간·윗받침돌 가운데 3단으로 이루어진 8각 아래받침돌은 맨윗단에 연꽃조각이 둘러져 있다.

중간받침돌은 8각의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의 조각을 새겨두었다. 윗받침돌에는 솟은 연꽃무늬를 새겼는데, 꽃잎의 끝이 뾰족하고 중앙의 세로선이 볼록하게 돌출되어 당시로서는 드문 모습이다.

탑신(塔身)은 몸돌이 매우 높아 마치 돌기둥처럼 보이며, 앞면과 뒷면에 자물쇠모양을 새겨놓았다.

지붕돌은 낙수면의 경사가 느리고, 모서리에서 뻗어나가는 곡선의 끝마다 꽃장식이 조그맣게 솟아있다. 처마의 곡선은 양쪽 끝에서 가볍게 들려있고, 추녀는 두터워 보인다.

지붕돌 위의 머리장식으로는 활짝 핀 연꽃받침 위에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을 올리고, 연꽃조각이 새겨진 돌을 놓은 다음,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를 얹어서 마무리 하였는데 보존이 잘 되어 원래의 모습을 잘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8각형을 기본으로 삼고 있으나, 몸돌이 지나치게 길어 전체가 길쭉해 보이며 너비도 좁아 안정감이 적다. 각 부분의 조각에도 생략이 많아 단순한 감이 들고 밋밋하다.(출처 : 문화재청)

            

탑신(塔身)은 몸돌이 매우 높아 마치 돌기둥처럼 보이며, 앞면과 뒷면에 자물쇠모양을 새겨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