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황상동 마애여래입상(龜尾凰顙洞磨崖如來立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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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구미

2022. 5. 20.

구미 황상동 마애여래입상(龜尾凰顙洞磨崖如來立像. 보물. 경상북도 구미시 황상동 산 90-14[옥계2공단로 91-26])

거대한 자연암벽의 동남쪽 평평한 면을 이용하여 조각한 거구의 마애여래입상이다.

민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큼직한 머리(육계)가 있고, 얼굴에는 이목구비가 잘 정제되어 있다. 귀가 길게 늘어지고 목에는 3개의 주름이 있어 근엄하면서도 자비스러운 인상이다.

양 팔에 걸쳐 부드럽게 흘러내리고 있는 옷은 가슴부터 배꼽에 이르는 무늬가 양쪽 다리에 이르러 각기 완만한 활모양의 주름을 이루면서 흘러내린다.

손은 가슴까지 올리고 있는데, 왼손은 바닥이 안을 향하게 하고, 오른손은 밖을 향하게 하여 설법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 불상은 원만한 인상, 잘 정제된 이목구비, 부드럽게 흘러내리고 있는 옷 등에서 통일신라시대의 뛰어난 작품으로 추정된다.(출처 : 문화재청)

 

이 불상은 속칭 석현(石峴)이라 불리는 고갯길 좌측으로 솟아있는 암벽 전면에 조각된 높이 7.3m의 여래입상이다. 암벽 위에는 별도의 판석을 얹어 불상의 머리 부분을 덮고 있다. 이는 야외에 노출된 고려시대 불상에서 흔히 나타나는 형태이다.

불상은 바위의 굴곡을 따라 자연스럽게 조각하여 전체적으로 율동감을 준다.

전체적인 조각 수법으로 볼 때 고려시대의 조각 양식이 잘 반영되어 있어 10세기 이후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전설에 의하면 백제군에게 쫓기던 당나라의 장수가 어느 여인의 도움으로 이 바위 뒤에 숨어 목숨을 구하였는데, 그 여인은 간 곳이 없었다 한다.

그 여인이 부처님이라고 생각한 장수가 이 바위에 불상을 조각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출처 : 구미시청)

 

경상북도 구미시 황상동 금강선원에 있는 고려시대 마애여래입상.

구미시 황상동의 속칭 석현(石峴)이라 불리는 고갯길 왼쪽으로 솟아 있는 암벽의 앞면에 조각된 마애여래입상이다.

높이는 약 7m이며, 다리 밑에는 연화(蓮華)를 새긴 대(臺)를 갖추었고, 머리 위는 별석(別石)으로 갓 모양을 갖추었을 것으로 여겨지나 일부가 파괴되어 원래 모습을 찾을 길이 없다. 머리카락은 아래로 내려져 있고, 큼직한 육계(肉髻)가 솟아 있는 소발(素髮)에 둥글고 충만한 얼굴은 거의 비만형에 가깝다.

큰 귀는 양 어깨에 닿아 있고, 가늘게 뜬 눈 위에 간격을 두고 새겨진 초승달 모양의 눈썹은 작고 평평한 코의 윤곽선과 연결되었으며, 작고 굳게 다문 입술 밑에는 주름진 아래턱을 표현하여 근엄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두 귀는 어깨 위로 길게 드리워져 있으며, 짧은 목에는 삼도(三道)가 표현되었다.

수인은 두 손을 가슴 위에 올렸는데, 왼손은 손등이 보이도록 엄지와 소지를 대고 있고, 오른손은 손바닥이 보이도록 엄지와 검지를 맞대고 있으나 표현이 어색하고 부자연스럽다.

법의(法衣)는 통견(通肩)으로 얇게 밀착되어 어깨 아래로 풍만한 육체의 굴곡선이 바람에 날리는 듯한 얇은 천의(天衣) 안에서 노출되어 상당히 회화적인 면을 강조한 듯하다.

가슴 부위를 약간 노출한 듯한 천의의 선은 곱게 U자선을 이루었고, 발끝은 연화대(蓮華臺)에 좌우로 약간 벌리고 서 있는데, 풍만한 각선이 그대로 표현되었다.

의습선은 대체로 형식적으로 처리한 경향을 보이는데, 특히 하반신에 표현된 옷주름은 다리의 굴곡을 따라 형식화된 의문(衣文)을 반복하여 시대적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복련(覆蓮)의 대좌 위에 새겨진 두 발은 특이하게 발끝이 바깥쪽으로 향하도록 표현하였다.

연화대는 중앙 앞면의 연화판(蓮華瓣)을 크게 조각하였고, 좌우로 돌아가면서 차츰 작게 조각하는 등 상당히 회화적인 데 치중했다.

바위 면이 고르지 못하고 균열과 박락이 심하지만 보존 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암벽 위에는 별도의 판석을 얹어 불두를 덮고 있는데 이는 고려시대 야외 불상에서 흔히 나타나는 형태이며, 불상은 바위의 굴곡을 따라 자연스럽게 조각하여 전체적으로 율동적인 느낌을 주지만 자세는 정제되지 않고 부자연스럽다.

어깨와 팔, 다리 할 것 없이 몸 전체가 풍만하고, 특히 하반신을 둔중하고 비대하게 강조하고 있는 점은 고려시대 마애불의 공통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자비스러운 모습이며, 시각적으로 압도할 수 있는 커다란 불상이다.

일반적으로 고려불(高麗佛)에서 비슷한 유형을 찾을 수 있다.

주변에 기와조각과 탑편(塔片)이 나타나, 옛날에는 근처에 절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으나 절에 관한 문헌 기록은 찾을 수 없다.

전체적인 조각 수법으로 볼 때 고려시대의 조각 양식이 잘 반영되어 있어 10세기 이후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향토문화전자대전)

 

복련(覆蓮)의 대좌 위에 새겨진 두 발은 특이하게 발끝이 바깥쪽으로 향하도록 표현하였다.
머리 위는 별석(別石)으로 갓 모양을 갖추었을 것으로 여겨지나 일부가 파괴되어 원래 모습을 찾을 길이 없다.
주변에 기와조각과 탑편(塔片)이 나타나, 옛날에는 근처에 절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으나 절에 관한 문헌 기록은 찾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