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08. 2. 2. 09:34
 

녹색평론 최근호는 발행인 김종철 선생과 원로 영문학자 김우창 선생의 ‘신념대담’을 실었다.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대담에서 김종철 선생은 ‘FEC 자급권’을 소개한다. 일본의 경제사상가 우치하시 가츠토(內橋克人)라는 분이 오래 전부터 제창한 ‘FEC 자급권’은 식량(Food)과 에너지(Energy)와 돌봄(Care)은 자유무역의 대상에서 제외시켜 각 나라와 지역사회의 자급능력이나 자주적 선택에 맡겨야 한다는 제안이라고 김종철 선생은 덧붙인다.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은 우리의 식량 자급률은 이미 비참한데, 국내 농경지는 개발 유보지로 취급된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개발 사업은 논밭을 갈아엎으니 이제 우리는 외국 식량에 굴종할 수밖에 없다. 에너지는 더하다. 환경단체에서 내복을 입자고, 실내온도를 섭씨 18도에 맞추자고 제안하지만, 사둔 내복을 입을 일이 없을 정도로 천지사방의 겨울이 덥지만 거의 전량의 에너지를 수입한다. 돌봄은 아직 자급에 가까운데, 한미FTA 타결 이후 사정은 달라질 것이다.

 

식량과 에너지와 돌봄은 국내와 지역 내에서는 사고팔아도 좋다지만 맹목적인 이윤추구는 지양해야 한다. 일찍이 이반 일리치와 칼 폴라니가 통찰했듯, ‘우정과 환대’로 나눌 것을 제안한다. 담거나 퍼가는 사람이 서로 모르는 ‘마르지 않는 뒤주’나 ‘밥퍼 공동체’ 같은 마음으로 음식을 나누고, 산동네에 연탄 날라주듯 에너지를 마련해주며, 이웃집의 아기와 노인 보살피듯 의료나 복지를 제공하자고 한다. 그와 같은 우정과 환대는 내 얼굴을 기억하는 이와 거래하는 공동체에서 빛을 발할 것 같다. 팔면 그뿐인 국내외 교역에 우정과 환대는 끼어들 틈이 없을 것이다.

 

지금 세계는 가히 에너지 전쟁이다. 석유자원에 대한 살벌한 국제 경쟁은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우리는 어떤 대안을 마련해야 할까. 남의 자원을 가로챌 자본이나 군사력이 부족하니 한정된 자원을 선점하려 세계 오지의 생태계를 파괴해야 할까. 우리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다. 경쟁은 전쟁을 낳을 수 있다. “태양은 청구서를 보내지 않는다.”고 한다.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을 발굴과 보급하면서 에너지 체계를 생태 친화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효율화와 절약을 말한다. 하지만 전국의 개발 열풍은 내일을 걱정하게 한다.

 

정부는 식량 자급을 위해 농경지를 보전하고 농사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이를 우대해야 마땅한다. 소비자는 농사꾼에 빚진 마음으로 감사해야 한다. 그들은 다가올 식량안보 시대의 마지막 보루이므로. 한데, 기후변화로 세계 식량 수급이 불안전하면서 가격 앙등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절대농지를 해제하겠다는 이명박 정부 인수위원회의 발상은 황당하기 그지없다. 돌봄은 어떤가. 아이를 산후조리원에 맡기는 풍조가 만연되는 가운데 시댁과 친정 부모는 집을 은행에 맡기고 해외여행을 즐기란다. 의료는 국가에서 책임지는 국가도 많은데 감기 치료에 수백만 원이 들어가는 미국계 병원이 곧 진주할 예정이다. 받는 사람의 자존심까지 헤아리는 돌봄은 점점 실종된다.

 

식량과 에너지와 돌봄은 우정과 환대로 거래해야 한다면 돈과 땅과 사람은 절대 사고팔 수 없어야 한다고 김종철 선생은 지적한다. 그런데 어떤가. 카지노 판이 아닌데 세상은 돈을 사고파는데 눈이 뒤집혔다. 외환거래는 말할 필요도 없지만 국제 에너지와 식량 시장마저 투기장이 된 지 이미 오래다. 돈다발을 든 투기꾼이 아파트 분양시장에서 침 흘리는 일은 이제 뉴스거리도 안 되고, 인력시장은 노예시장과 다르지 않다. 모든 걸 상품화하는 신자유주의의 폐해인데, 이제 우리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

 

기승을 부리는 신자유주의에 더 큰 날개를 달아줄 새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낙담할 수만은 없다. 제국주의 시절에 독립운동이 펼쳐지고 군사독재 시절에 민주화운동이 꽃을 피웠듯, 신자유주의의 성장 지상주의에 맞서는 시민운동에 나서야 한다. 그에 앞서 우리는 사고팔지 않아야 할 것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갈라진 시대의 기쁜소식, 2008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