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08. 5. 30. 00:53
 

대안 없는 수돗물 불소화,

누구를 위한 강제 의료행위인가



박병상(인천 도시생태ㆍ환경연구소 소장)








들어가면서


세계는 조류독감 공포에 떨고 있다. 전문가는 1918년 세계 인구 1퍼센트를 사망케 했다고 추측하는 독감보다 더 위험할 가능성을 경고한다. 스위스의 다국적 제약회사에서 타미플루라는 치료제를 독점적으로 만들지만 공급이 모자라 많은 국가들은 아우성친다. 조류독감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로 사람이 죽어가는 국가들은 특허를 풀어 치료제 생산을 자유롭게 하자고 국제사회에 호소한다. 영양과 면역이 부족한 빈곤층의 어린이나 노인들은 상대적으로 조류독감에 취약하다. 그들의 생명을 일개 제약회사의 이익에 내맡길 수 없다는 보건의료계의 절박한 요구일 것이다.

 

생산이 자유화되어 충분한 치료제를 저렴하게 확보했다고 치자. 늦가을 보건소 담장을 둘러쌓는 시민을 위해 독감 백신을 무료로 투약하듯 타미플루를 일일이 처방하려고 하는데 찾아오는 이가 생각 외로 적다면 어떻게 하나. 정작 투약이 필요한 저소득 계층일수록 맞벌이로 지쳐 시간이 없기 때문이라는 점을 사회복지 차원에서 고려, 수돗물에 넣는 편이 예방에 기여한다고 어떤 보건 전문가가 주장한다면 우린 감사해야 할까. 아무리 안전한 약품도 사람에 따라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전문가의 주장에 따라 모든 국민들이 마시는 수돗물에 치료제를 섞는다면 부작용으로 위험에 처하는 사람들은 어찌하나. 그들은 예외적이므로 병원에 가서 치료하라고 외면해버릴까.

 

다행이라 해야 할까. 부작용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진 예방 백신도 강제로 접종하지 않는다. 보건소에서 독감 백신을 주사하듯 원하는 시민에게 선택적으로 투약한다. 시민의 선택권을 배려하는 것이다. 충치를 줄이려는 목적으로 미국의 많은 지역에서 수돗물에 불소를 첨가한다는 걸 강조하는 우리나라의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이하 건치)와 건치의 주장에 동조하는 치과의사와 일부 시민단체는 보건복지 차원으로 우리의 수돗물에도 불소를 첨가해야 한다고 집요하게 주장한다. 모든 계층이 마시는 수돗물에 불소를 첨가해야 평등하게 섭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불소는 섭취 대상일까. 부작용은 없을까.

 

미생물을 전공하는 학자가 수돗물에 바이러스가 발견되었다고 주장한 적 있다. 한 10년 전이다. 그 학자의 주장은 관계당국을 당혹하게 했고, 당시 ‘공식’이라는 권위를 가진 방법으로 재조사한 결과 바이러스는 검출되지 않았다고 당국은 눈을 치켜뜨며 반박했다. 그렇다면 수돗물에 바이러스가 없었던 것일까. 아니다. 방법을 새롭게 바꾸어 과거에 볼 수 없던 결과를 얻어내는 건 과학의 상식이다. 수돗물에 바이러스는 분명히 있었다. 당국은 그 바이러스가 얼마나 위험하고 어느 정도 존재하는지, 어떻게 제거해야 안심할 수 있는지 검토해야 옳았다. 기존을 고집하며 진실을 호도하다가 망신당하고 권위만 떨어졌다.

 

토머스 쿤은 일찍이 과학기술 분야에도 패러다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절대 진리를 밝히는 까닭에 과학기술은 가치중립이라고 믿었던 관념의 철옹성을 뒤흔든 토머스 쿤의 주장은 당시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현실에서 정확하게 반영된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완벽하게 실험하고 분석한 과학이나 기술이라고 해도 개선된 방법으로 들어다보면 허점이 눈에 띄니 오류가 있을 수 있고, 자료 해석도 학자에 따라 다르고 새로워질 수 있다. 기존 학설에 반기를 드는 주장이 대두되고, 소장 학자의 도전에 권위주의를 앞세우는 편견이 부당하게 개입할 수 있다. 그렇듯 기존 학설이 새로운 학설과 만나 충돌하며 경합하다 주도권을 넘기는 현상에 과학도 예외가 아니다.

 

과거 과학기술은 현재 수준으로 볼 때 천박하다. 입에 머금고 후 불어 촛불을 꺼도 입천장이 멀쩡하다는 걸 증명한 프레온 가스의 안정성 실험은 당시 훌륭했다. 냉매로 암모니아 가스를 사용하던 시절이므로 보는 이의 눈을 휘둥그레 만들었다. 하지만 당시 아무도 오존층을 걱정하지 않았다. 아니, 아무도 오존층 파괴를 연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리 완벽해 보이는 현재의 과학기술도 내일 다시 볼 때 미숙할 것이다. 의약품의 안전성 실험은 철두철미하다. 안전성이 과학적으로 확인되지 않으면 당국은 허가하지 않는다. 하지만 임상에서 사용하는 숱한 의약품 중에서 10년이 지나도 안전성이 인정되는 경우가 얼마나 되던가.

 

과거에 쓴 논문의 양이 많다고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는 논문을 무시한다면 과학은 발달할 수 없다. 수돗물 불소화의 위험성이 바로 그렇다. 50년이 지나면서 봇물 터지듯 드러나는 위험성과 그 사실을 증명하는 논문을 언제까지 외면할 수 없다. 기득권의 권위로 드러나는 문제를 억압하고나 무시하며 수돗물 불소화를 추진한다면 내일 그 피해를 감당할 수 없을 수 있다. 자칫 가족과 자신의 노후, 그리고 후손의 건강에 대한 씻을 수 없는 범죄가 될 수 있다.



수돗물 불소화의 실체


본질을 수정하지 않고 핵폐기장이라는 용어를 연구소인 양 원전센터로 바꾼 핵폐기장 추진측의 혹세무민 의도와 유사하게, 수돗물 불소화 사업을 ‘수돗물 불소농도 조절사업’으로 개명한 수돗물 불소화 추진측(이후 추진측)은 수돗물에 불소를 0.8ppm 농도로 섞으면 안전하게 충치를 예방할 수 있다고 아직도 주장한다.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와 그들과 의견을 조율하는 치과대학의 일부 교수는 ‘정설’이라는 낡은 우산에서 나오지 않으며, 세계 곳곳에서 위험성이 속속 드러나고 유수 국제학술잡지에 게재된 수돗물 불소화에 대한 부정적 사례에 눈을 감는다.

 

추진측은 수돗물에 적당량의 불소를 넣으면 치아가 튼튼해진다는 견해는 폭넓은 지지를 받는다고 주장한다. 불소는 치아에 닿을 때 이 표면을 단단하게 해주어 충치를 예방한다는 것이다. 부모가 일을 나가야 하는 가난한 집의 7세 이하의 아이들을 위한 보건의료 차원으로, 가난을 대물림하고 빈부격차를 증폭하는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사회정의 차원으로 수돗물에 일정 농도의 불소를 첨가하자는 것인데, 수돗물 불소화로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의 타당성 여부는 따지지 않기로 하고, 0.8ppm 이하이면 안전하고 비용도 저렴하니 안심해도 좋은 것일까.

 

추진측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60여 개국에서 수돗물 불소화를 실행한다고 주장하지만, 불소를 넣는 비율이 그 나라 수돗물에 몇 퍼센트인지 정확히 밝히기를 꺼린다. 우리나라는 10%도 안 되는데, 우리의 수돗물 불소화 지역들마저 실상을 안 시민들의 강력한 반대로 사업을 속속 취소했고, 종주국을 자체하는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반대 목소리가 거세 수돗물 불소화가 위축되고 있다는 사실은 외면한다. 7세 이하 빈곤층 어린이에게 효과가 있다지만 이가 없는 아기에게 위험하다는 미 보건당국의 경고를 시민에게 알리지 않는다. 미국 영향권에 있는 캐나다 수돗물 불소화 지역인 토론토와 프랑스 영향권인 몬트리올 사이에 충치의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는 사례를 주목하지 않는다. 불소를 미화하는 미국과 달리 프랑스와 같은 유럽은 수돗물 불소화를 죄악시 한다는 사실을 감춘다.

 

불소는 몸에 흡수돼 이를 강하게 만드는 게 아니다. 양치나 칫솔질을 통한 접촉 효과에 의존한다. 그렇다면 누구나 다 마시는 수돗물에 불소를 넣을 일은 타당하지 않다. 뱉어내는 치약이나 양치액으로 충분하다. 물론 삼키면 대단히 위험하다. 불소화된 수돗물 비율이 가장 높은 미국의 경우, 어린이가 불소가 첨가된 치약을 먹었을 경우 급히 병원에 가라고 경고한다. 치약에 들어있는 불소의 양은 양치액보다 현저히 적다. 추진측은 수돗물 불소화를 공중보건사업을 주장한다. 하지만, 공중의 민주적 동의도 없는 수돗물 불소화는 아무리 거룩한 표정을 지어도 부당하다. 비타민도 개인에 따라 부작용이 있듯, 불소에 대한 반응은 사람에 따라 다르고, 지역과 식성에 따라 불소 섭취량도 제각각이다. 충분한 역학조사 없이 강요하는 0.8ppm 불소화는 어처구니없다.

 

수돗물에 불소를 넣으면 아무도 불소를 피할 수 없다. 추진측은 가난한 사람도 불소를 섭취할 수 있으므로 평등 차원이라고 주장하지만, 어떨까. 불소는 비타민처럼 섭취 대상일까. 수돗물에 넣는 불소의 실체를 알고 그런 주장에 동의할 시민이 있을까. 불소가 싫으면 생수 사 마시라고 주장하지만, 불소가 싫은 가난한 계층은 그와 같은 평등 주장에 수긍해야 할까. 수돗물 불소화는 평등이 아니라 무차별이다. 싫던 좋던 마시지 않을 수 없다. 여유 있는 가정에서 생수를 사마실 수 있지만 밖에서 사먹어야 하는 경우, 피할 수 없다. 무차별과 평등을 구별하지 않는 의도된 모순화법은 속임수에 불과하다.

 

불소가 싫다면 생수를 사 마시라는 추진측의 태도에서 전체주의 냄새가 난다. 밖에서 먹고 마시는 음식과 음용수는 어쩌란 말인가. 백보천보 양보하여 7세 이하 빈곤층의 충치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치자. 그들에게 불소 농도가 조절된 음용수를 무료로 보급하는 보건사업이 사리에 맞지 않은가. 충치를 유발케 하는 과자나 음료의 자제를 당부하고, 사회 양극화를 해결하려는 정책의지와 더불어 식후 양치를 적극 홍보하는 자세가 근본적이 아닌가.

 

연탄가스중독이 뜨거운 사회문제일 때 한 대학병원의사는 식초산이 효과 있다고 발표해 주목된 바 있다. 지금 의료계는 부끄러운 과거로 돌리지만 당시 떠들썩했다. 경험을 확대 해석하는 수돗물 불소화도 같은 운명을 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납득할만한 임상조사도 없이 맹독성물질을 음용수에 섞는 행위를 내일의 과학은 어떻게 평가할까. 오늘의 과학도 위험성을 거듭 경고하는데, 가난한 계층을 위한다는 명분을 앞세우는 과거의 ‘정설’은 패러다임을 놓칠까봐 눈물겹게 무리한다. 대다수 시민들이 눈치 채지 못하는 틈을 이용해 강제 의료행위를 시도한다.



불소는 인체에 축적되는 독극물


추진측은 불소가 치명적인 독극물이라는 사실은 이제까지 숨기고 있다. 인산비료공장 굴뚝에서 받는 불화규산은 주변 생태계를 황폐화시키는 물질로 살충제와 쥐약으로 사용되며 수돗물 불소화 용 불화규산은 부대에 해골마크가 선명하다는 점은 쉬쉬한다. 수돗물불소화의 이점만 들은 시민들은 불소를 비타민과 비슷한 물질로 착각할 정도다. 치밀한 몸속 조직을 단단하게 하는 것으로 알려진 불소는 몸에 축적된다. 끓이면 농축된다. 나이 들면 몸에 축적된 불소의 작용으로 뼈에 이상을 초래하여 골반골절이나 골육종과 같은 암을 적지 않게 발생시키는 것으로 최근 과학자들은 유수의 학회지에 속속 발표하고 있다. 그래서 수돗물불소화를 거부하는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은 물론 50년 가까이 수돗물에 불소를 넣었던 미국에도 문제제기가 줄을 잇고 있다. 더는 가릴 수 없는 과학적 진실이기 때문이다.

 

화합력이 큰 불소는 자연에 많다. 모두 화합물 상태로 존재한다. 지하수나 약수에 포함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자연에서 발견되는 불소화합물은 대부분 비교적 안정된 상태다. 그렇다고 인체에 안전하다는 것은 아니다. 수돗물에 넣으려 하는 불소화합물에 비해 현저히 안정적인 것은 물론이지만 몸에 지나치게 흡수되면 건강의 위험을 피할 수 없다. 강원도 강릉에서 불소가 10피피엠 이상 포함된 지하수를 마신 어린이의 이가 부서지는 사고가 2006년 발생했다.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흡수할 불소는 음용수에 국한하는 게 아니다. 각종 채소를 통해 들어오는 불소도 적지 않다. 0.8피피엠은 안전하다고 추진측은 주장하겠지만 개인차를 무시하면 안 된다, 문제는 자연수 속의 불소보다 수돗물에 넣을 불소의 위험성이 크다는 사실이고, 수돗물로 불소의 양과 농도를 전혀 조절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독극물이라도 낮은 농도로 마시면 괜찮을까. 새로운 증거를 무시하는 추진측의 정설은 그렇다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아니다. 뼈에 불소가 농축되는 현상은 추진측도 인정하는데, 골절과 암 발생 가능성에 대한 학술논문들은 분명한 근거를 바탕으로 한다. 이에 생기는 반점은 미용 측면의 예외적인 현상이라기보다 감추고 싶은 결함이고, 치료하자면 개인은 거액을 준비해야 한다. 고가의 설비비용을 제외하고 인구 일인 당 몇 백 원이면 충분하다는 불소화 비용을 크게 초월한다.

 

자연수에 포함된 농도를 조사한 후 기준에 따른다는 애리조나 피닉스 시의 수도국 책임자는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불소를 첨가한다는 것을 전문가로서 동의한다. 불소를 원하는 사람에게 불소화 이외의 대안이 존재하지만, 불소화를 시행한다면 불소를 원하지 않는 사람에 대안이 사라지는 게 아니냐는 지적에 동의하며 문제가 드러나면 바로 중단할 것을 단언한다. 대안이 사라진 피닉스 시는 불확실한 행정을 시행하고 있다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뜻이었다. 불소화를 추진하기 전에 투명하고 납득할만한 논의와 조치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을 고백한 것이다.

 

30년 전에 먹었던 DES라는 여성호르몬 유도체는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미국 FDA에서 안전을 승인했지만 과년한 딸을 난소암으로 죽이는 비극을 낳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한다. FDA의 기술은 예나 지금이나 세계 최고다. 하지만, 확실하다고 믿었던 DES와 광우병만이 아니다. 오존층을 파괴하는 프레온가스도 당시 아무런 문제도 밝혀지지 않았다. 의심조차 없었다. 안전성에 논란이 있는 불소화에 대해 우리는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까. 확실치 않은 문제는 ‘사전예방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값비싼 교훈이 아니겠는가.

 

일반적으로 불소는 면역이 약한 이에게 위험이 크다. 가난한 계층의 면역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은 상식이다. 추진측은 엉뚱하게도 불소는 장애인을 위하는 것처럼 홍보하지만, 전혀 과학적 근거를 가지지 못한다. 오히려 그 반대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어린이는 물론 노약자에게 위험성이 크다. 특히 노인층에 골절이 발생할 경우 불소가 축적돼 단단해진 뼈는 부러질지언정 쉽게 붙지 않는다. 끓이면 농축되고, 흡수되면 뼈에 축적되는 불소는 노후의 골절을 치명적으로 악화시킨다고 그 방면의 연구가 논문으로 발표되고 있다. 반점이 생기더라도 이가 단단해지기 위해 뼈를 포기하라고 의사가 주장할 수 있을까.

 

미국에서 수돗물에 불소를 넣게 된 동기에 대한 음모를 주장하는 책이 미국에서 발간되었고, 그 일부가 녹색평론에 소개된 적 있다. 자본이 지배하는 미국에서 허위사실을 유포해 손해를 끼칠 경우, 그 당사자는 이어지는 소송으로 거액의 배상금을 감당해야 한다. 수돗물 불소화가 가장 강력하게 실시되는 미국에서 수돗물 불소화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책이 버젓이 출간되고 해외에 번역되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과학적 사실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추진측은 논문의 양을 논하지만, 그건 과학적 태도가 아니다. 불소의 위험성을 주장하는 논문을 폄하하는 태도 역시 과학적이지 못하다.



수돗물 불소화 여론조사가 공정하려면


“수돗물에 불소를 넣을까요, 말까요?” 하고 지나는 이에게 묻는다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상식에 준하는 여러 반응이 나올 텐데, 이번에는 조금 구체적으로 물어보자. “불소는 이를 튼튼하여 충치를 막아줍니다. 수돗물에 불소를 넣을까요, 말까요?” 아마 대부분은 넣자는데 동의할 것이다. 한데, 그 여론조사는 어떤 목적을 가진 상식을 응답자에게 일방적으로 제시했다.

 

여론조사는 자칫 선동이 될 수 있다. 다시 물어보자. 이번에도 조금 구체적으로, “몸속에 축적되는 불소는 비소 다음으로 독성이 높은 물질입니다. 뼈를 부서뜨리는 불소를 수돗물에 넣을까요, 말까요?” 이번엔 넣지 말자는 반응이 압도적일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역시 목적이 뻔한 상식을 일방적으로 제시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단순하게 물을까. 하지만 단순한 상식에 의존하는 여론조사는 합리성을 결여한다.

 

정확한 문구는 아니지만, 십여 년 전의 여론조사 문항은 이랬다. “귀하는 수돗물에 불소를 넣는 이유를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선택지는 3개였다. 첫째, 충치를 예방하려고. 둘째, 예산이 남아서. 셋째, 할 일이 없어서. 이런 식이었다. 수돗물 불소화를 반대하는 사람도 1번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데, 발표된 결과는 어처구니없었다. 87퍼센트의 시민이 수돗물 불소화를 찬성한다는 게 아닌가. 이렇듯, 문항 공개 없는 여론조사 결과는 선동에 활용될 수 있다.

 

최근 개최된 인천시의회 산업위원회 간담회장에서 수돗물 불소화를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은 실시 여부를 시민에게 묻는 공정한 여론조사를 제안한다. 물론, 여론조사 이전에 수돗물 불소화에 대한 양측의 주장이 시민들에게 가감 없이 전달되고, 궁금해 하는 시민을 위한 공청회와 토론회가 필요한 만큼 개최되어야 하겠지만, 양측의 여론조사 제안은 일단 긍정적이다. 시민운동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십여 년 넘게 논란되는 수돗물 불소화, 이번에 확실한 매듭을 짓기를 바란다.

 

흔히 통계를 3대 거짓말이라고 한다. 악의 없는 거짓말과 악의에 찬 거짓말에 이어 통계다. 왜곡된 통계는 지독한 악의가 될 수 있으므로 여론조사는 합리적일 뿐 아니라 공정하며 투명해야 한다는 점, 새삼스레 강조한다.



나가면서


불소화된 수돗물의 위험성을 밝힌 소장 학자의 논문을 기존 패러다임을 틀어쥔 기존학자가 억압하며 무시한다고 위험성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불소화된 수돗물이 안전하다는 연구를 수돗물불소화를 주장하는 측에서 아무리 많이 연구해내어도 반대측은 그 과학적 사실을 인정하지 못할 수 있다. 나름대로 과학적 방법을 놓고 문제제기가 빗발칠 수 있다. 물론, 수돗물불소화를 반대하는 측에서 그 위험성을 증명하는 논문을 발표해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양측 모두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 연구 방법은 무엇일까.

 

2002년 초, 노화도에 상수도를 공급하기 위해 인근의 보길도에 댐을 증축하는 문제로 지역갈등이 거세지고 보길도의 시인이 단식을 했던 적이 있다. 댐의 대안으로 바닷물 담수화를 제안하고 제주도 남쪽의 우도로 담수화된 바닷물을 맛볼 기회가 있었다. 댐 증축을 반대하는 보길도 주민들은 담수화된 바닷물을 마시곤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노화도 주민들은 짜다며 인상을 썼다. 어떤 주민의 말이 사실에 가까울까. 전문가는 담수화된 바닷물에 포함된 염기가 제주도의 생수인 ‘삼다수’보다 적다고 자료를 보여주었다. 민감한 사람도 느낄 수 없는 수치보다 더 낮다고 귀띔했지만, 노화도 주민들은 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럴 때 ‘이중맹검법’이 필요하다.

 

담수화된 바닷물과 댐에서 정수한 수돗물을 동시에 제공하고 어떤 물이 더 짠지 물어보는 실험을 하면서, 물을 마시는 사람은 물론이고 물을 제공하는 사람도 어떤 물이 바닷물인지 댐에서 정수한 물인지 모르게 하는 실험을 한다면, 모두 믿어야 할 정도의 객관적인 결과가 나올 것이다. 바로 이중맹검법이다. 소장 학자가 수돗물 불소화가 뼈에 문제를 일으킨다는 주장을 펴자 기존 과학계에서 무시하며 반박하는 논문을 쓸 경우, 또는 소장학자의 연구 기회를 박탈하거나 억압할 경우, 기존 학계의 주장은 객관적이라고 평가하기 어렵다. 세상의 수많은 과학적 업적은 억압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정 소장학자의 주장이 미덥지 않다면, 다른 연구자에게 객관적인 연구를 의뢰하고 함께 검토하거나, 이중맹검법으로 재조사해야 한다. 수돗물 불소화를 주장하는 기존 연구자에 의해 소장학자의 주장이 아무리 반박되어도 그 주장에 과학적 힘은 실릴 수 없다.

 

그동안 진행된 논의를 들여다보면 불소가 이빨을 튼튼하게 한다는 점과, 몸에 축적되는 불소는 뼈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양측에서 인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다면 서로 대안을 찾아볼 수 있겠다 싶다. 즉, 이빨은 튼튼하게 하면서도 뼈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불소 함유 치약이나 양치액을 사용하는 대안, 외출중인 가난한 맞벌이 부모의 아이들에게 많다는 충치를 예방하기 위해 보건소나 동사무소에서 불소가 함유된 치약이나 양치액을 무료로 보급하는 사회보장 차원의 대안도 강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충치를 유발하는 당분 섭취를 억제시키고 양치를 생활화하도록 아동교육을 철저히 시행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이지 않을까.

 

가난한 계층의 충치 예방을 적극 찬성하지만, 위험성이 증명되는 불소를 면역이 약한 아기와 노인, 불소에 민감한 이도 피할 수 없게 만드는 방법뿐인가. 수돗물에 불소를 넣으면 아무런 대안을 찾을 수 없다. 불소에 민감한 체질을 가진 사람들, 미국 보건당국도 주의를 당부하는 치아가 없는 어린이들, 불소가 이미 축적된 노인들도 대안을 찾을 수 없다. 당분이 많은 과자와 음료를 피하고 양치질을 잘 하도록 유도하는 보건운동은 회피하고 수돗물에서 빼야할 성분인 독극물을 넣으려는 태도는 보건의료에 오히려 역행한다. 치아 대신 뼈를 잃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불소는 삼키지 않아야 한다는 걸 전제로, 양치용으로 충분하다. 가난한 집 아이들의 충치 발생과 불소의 관계를 조사한 토론토와 몬트리올의 비교 결과를 보며 구태를 벗어야 한다. 제발 당부하건데, 모든 시민들이 마시는 수돗물은 안전이 우선이다. 불소 운운하는 낡은 주장을 되풀이하지 말기를 바란다. 건강사회는 진실을 오도하는 수돗물 불소화로 오지 않는다. 불소 함유 수돗물을 PET병에 담아 사회복지와 보건정책 차원에서 무료로 공급하는 방안도 눈여겨볼 수 있을 것이다.

 

인권, 환경, 통일, 불공정한 교역을 포함해 우리사회는 해결해야 할 문제는 수두룩하다. 건치와 시민단체가 전과 같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도 풀릴까 말까하는 한결같이 난제들이다. 충치 문제도 풀어야하지만 불특정 다수에게 시행하는 불소화는 충치 해결만을 위한 최악의 강제적 의료행위다. 건강사회를 위해 충치와 비만을 심화시키는 당분이 넘치는 과자나 음료의 문제를 사회에 부각하고, 아이를 방치하면서 맞벌이에 나서야 하는 사회를 개선하려는 노력에 함께 나설 것을 제안한다. 수돗물 불소화는 건강사회를 위한 행동일 수 없다. 오히려 후손의 처지에서 범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씻지 못할 과오로 남을 수돗물 불소화 논쟁은 건강사회를 위해 거두어야 한다.(인천문화비평, 2008년 하반기)

그 동안 어떻게 잊고 살았는지 모르겠어요. 좋은 글 퍼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