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08. 11. 9. 15:26

 

이른 아침.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낙엽 쌓인 길을 걷는다. 완연한 가을이다. 어젯밤 찬바람에 떨어진 바싹 마른 낙엽들이 발길에 밟힌다. 바람에 휩쓸린 낙엽은 길 한쪽으로 모이고, 밟을 때 푹신함을 전한다. 아파트단지 사이의 하늘은 공활하지 않지만 높고 구름 없다. 모처럼 심호흡을 해보고 싶어진다.

 

발길에 바스락거리는 낙엽은 왕복 10차선 아스팔트도로와 그 양 옆의 보행자도로 사이에 심어놓은 가로수에서 떨어졌고, 출근인파가 분주하지 않은 지금도 연실 떨어진다. 한여름 수고해 누렇게 변한 잎사귀를 떨어뜨리는 가로수의 가지들이 파란 하늘아래 벌써부터 쓸쓸하다. 곧 겨울이 성큼 다가올 것이다. 겨울을 준비하는 가로수는 잎을 떨어뜨리고, 그 아래를 종종 걷는 사람들은 두툼한 옷을 걸쳤다.

 

다시 하늘을 본다. 높고 구름 없는 하늘 가운데는 과연 파랗다. 심호흡을 할만하다. 하지만 눈길을 돌려 앞쪽 먼 하늘을 보니 가슴이 갑갑해진다. 구름 한 점 없이 분명히 맑은 날이건만 가장자리 하늘은 붉으죽죽하다. 대기의 밀도가 진하게 드러나는 하늘 가장자리가 붉으죽죽한 우리의 도시에서 얼마 전에 다녀온 독일 공업지대의 파란 하늘이 생각난다. 우리의 가장자리 하늘도 언제나 파랬던 멀지 않은 시절, 그들의 하늘은 언제나 누랬건만 지금은 아니다. 우리의 하늘이 유럽으로 옮겨간 모양이다.

 

아침에 소복한 낙엽은 저녁이면 부지런한 미화원의 빗자루로 커다란 자루에 들어간 뒤 길 한 컨에 수북이 쌓일 것이다. 자루에 담긴 낙엽은 어디로 갈까. 시립 양묘장으로 옮겨져 퇴비로 활용된다면 다행인데 쓰레기소각장으로 직행하는 건 아닐까. 서울시는 겨울이 다가오기 전까지 쌓이도록 놔둔다고 하던데, 우리도 그냥 두면 어떨까. 지난 주말 오후, 떨어진 낙엽을 한 움큼 집어 던지며 사진 찍는 연인들로 북적이는 덕수궁 돌담길을 흐뭇하게 지났는데, 회색도시에서 삭막해진 시민들이 잠시나마 가을정취에 취하게 배려할 수 없을까.

 

바쁜 도시인들의 구두에 밟혀 잘게 부셔진 낙엽은 바람이 불면 옷깃을 더럽히지만 문제는 가을비다. 가을비에 젖은 낙엽은 추레해져 도시의 미관을 해친다. 빗자루에 잘 쓸리지도 않는다. 그래서 미화원들은 낙엽을 서둘러 치우고 싶을 수 있겠다. 문득, “내년 이맘때까지 낙엽을 그대로 두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본다. 사람도 다니지 않는다면 길은 떨어진 낙엽으로 완전히 뒤덮이겠지? 비와 눈을 맞으며 쌓인 낙엽 사이로 새 풀이 돋겠지? 아예 사람이 사라진다면 보도블록 사이로 작은 풀이 비집고 나온 이 길은 어떻게 변할까?

 

얼마 전, 우리 비무장지대를 방문한 앨런 와이즈먼은 《인간 없는 세상》(랜덤하우스 2008)에서 사람이 갑자기 사라지면 지구는 어떻게 변할지 상상했다. 50년 동안 인간의 출입이 차단되자 두루미가 날아든 비무장지대가 한국의 게티즈버그와 요세미티를 합친 자연생태계로 거듭나기를 희망하면서 인간이 사라진 뒤의 지구를 묵시론적으로 예측했다. 이틀이 지나자마자 지하철에 물이 가득해지고 일주일 후 핵발전소의 냉각수 순환모터가 정지되리라 추정하면서, 1년 후 고압전선에 부딪혀 희생되던 10억 마리의 새들이 살기 좋아지며 100년 후 더는 상아를 잃을 일 없는 코끼리가 20배 이상 늘어나겠지만 너구리와 여우는 야생화된 고양이에 의해 밀려날 것으로 짐작한다.

 

300년 후 댐이 무너지고 1000년 후 인간의 구조물 중 영불해협만이 남을 것이라고 보는 앨런 와이즈먼은 10만 년 후 이산화탄소가 인류 이전으로 돌아가고 수백만 년 후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미생물이 진화할 것이며 30억 년 후 상상이 불가능한 갖가지 생물체가 번성할 지구는 50억 년 후 태양과 더불어 불타버릴 것이라 예상한다. 그래도 인간이 남긴 라디오와 텔레비전 전파는 영원히 외계를 떠돌아다닐 것으로 예상하는데, 우울하지만 인간은 그 장면을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사람이 사라진 뒤, 낙엽이 더욱 푹신할 이 거리는 누가 어떻게 차지해나갈까? 낙엽 속의 톡톡이와 거미를 먹으러 도롱뇽과 두더지가 돌아다니고 뱀을 노리는 올빼미와 족제비가 삵과 경쟁하는 동식물의 터전, 바로 아스팔트와 보행자도로가 생기기 이전처럼 회복되려나.

 

가운데 하늘이 파란 오늘, 가장자리 하늘도 파랗던 시절을 생각하며 바삐 지하철로 걸어 들어간다. 그런 생각에 젖어 더 걸으면 약속시간에 늦는다. (인천e뉴스, 2008년 11월 ?일)

인간없는 세상의 지구를 상상한것이 참 흥미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