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8. 11. 20. 00:07

 

가을답지 않게 무덥던 날씨가 기상관측 이래 계속되더니 추위가 느닷없이 찾아왔다. 학원에 가는 아이에게 외투를 뒤집어씌워야 하는 계절이 다가온 것인가. 텔레비전은 시의적절한 프로그램을 편성했다. 시간에 쫒기는 운전기사는 아이가 내리기 무섭게 문을 닫고 바로 출발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 생각하기도 싫은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며 경각심을 유도하는 내용이었다. 호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내리던 아이의 외투가 학원버스의 문에 낄 경우, 출발한 차 아래로 아이가 딸려들어가는 사고는 겨울철에 드물지 않다.

 

갑작스런 날씨 변화는 기력이 쇠잔해진 사람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지만 그건 자연의 생물도 마찬가지다. 따뜻했던 가을에 봄꽃을 준비하던 나뭇가지가 얼고 미처 땅 속 깊이 들어가지 않았던 곤충 애벌레들이 내년을 기약하지 못할 것이다. 혹독한 추위에도 따뜻한 실내에 머물던 아이를 현관에서 학원버스 탈 때까지 잠시 밖에 내보내는 부모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닌데, 인천 남동공단 유수지와 주변 습지에 도래한 철새는 이 추위를 어찌 맞을까. 겨울철새들은 추워지면 물이 얼지 않는 남쪽으로 이동하는데 그 철새들의 상태가 궁금하다. 얼마나 남고 떠났을까. 북쪽에서 새로운 무리가 내려앉았을까.

 

광활한 갯벌을 매립해 조성한 남동공단에는 빗물을 완충하는 넓은 유수지가 있다. 공단과 인근 아파트단지에서 발생하는 오수를 정화처리한 하수종말처리장의 물이 고였다 바다로 나가는 호수다. 하수종말처리장 완공 전에 모여든 오폐수의 두터운 오니가 여전한 까닭에 악취가 진동하더라도 겨울철새는 그 유수지에 내려온다. 송도신도시 개발로 대안이 없는 까닭이다. 남쪽의 오염된 시화호와 화옹호 주변도 개발이 거세다. 멀리 천수만은 조용하지만 수십만 가창오리를 비롯해 백만에 가까운 겨울철새들로 이미 만원이다. 하수종말처리장 생긴 후 먹이가 늘어난 남동공단유수지는 겨울이 지날 때마다 철새가 늘어나고, 인천의 환경단체는 철새보전 대책을 호소하고 나섰다.

 

갯벌이 줄어들수록 밀도가 높아지니 겨울철새들은 질병에 노출될 확률이 그만큼 커진다.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와 지치고 허기진 겨울철새는 면역이 떨어진 상태인데, 몇 마리가 옮기는 질병은 바글거리는 철새 무리에 쉽게 전이될 테고, 이동하며 흘리는 철새들의 배설물이 양계장 가까이로 떨어질 가능성은 높다. 조류독감이 해마다 발생하는 이유가 맹렬하게 진행되는 곳곳의 갯벌매립과 무관하지 않을 텐데, 남동공단 유수지와 주변 습지의 겨울철새는 이 시간, 무탈할까. 갯벌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도 양계장이 없으니 조류독감이야 퍼뜨리지 않겠지만 마냥 안심할 수 없다. 날씨가 예사롭지 않다.

 

갑작스런 추위에도 중학교에 다니는 막내는 굳이 여름 운동화를 신고 나갔다. 토요일 남동공단유수지 주변 습지에서 6시간이나 계속한 자원봉사 때 신은 신발에서 고약한 냄새가 그치지 않기 때문이었다. 보통 환경단체는 수업이 없는 토요일에 주관해왔는데 이번엔 사정이 급박했다. 사람에게 해를 주지 않지만 새를 마비시켜 죽게 만드는 보툴리즘균에 오염돼 겨울철새들이 속절없이 죽어가기 때문이다. 죽은 새의 몸에는 구더기가 들끓고, 새들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덩달아 내려온 철새들은 구더기를 허겁지겁 먹을 텐데, 그러면 새들의 죽음을 걷잡기 어려울 것이다. 죽었거나 죽어가는 새들을 얼른 수거해야 했던 환경단체는 수업 마치자마자 와달라고 학생들에게 호소했고, 죽은 새를 수거할 때 신었던 겨울신발은 한번 세탁으로 냄새를 지우지 못한 것이다.

 

보튤리즘균은 이번의 가을 무더위가 원인이라고 전문가는 판단하는 모양이다. 부패하는 유기물에 발생한 구더기가 보튤리즘균을 매개했다는 설명이다. 하필 남동공단유수지에 겨울철새가 내려와 구더기를 먹었고, 그 철새는 전신이 마비된 채 꼼짝없이 죽어갈 수밖에 없었다는 거다. 집게로 건드려도 달아나지 못하던 철새는 아직 살았지만 몸은 이미 구더기로 뒤덮였다고 한다. 습지 가장자리의 갈대숲에는 썩어가는 철새를 수거하면서 빠져야 했던 개흙은 시커멓게 썩었으며 구토가 나올 정도로 악취가 진동했다고 한다. 몸은 힘들어도 견딜 수 있었지만 죽어가는 철새를 수거하며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고 자원봉사에 참여한 한 여학생은 안타까워한다.

 

선선해야 할 가을이 전에 없이 더워지자 수도권 최대의 철새도래지는 죽음의 현장으로 참혹해졌다. 8월에 악취가 심해진 유수지에 9월부터 철새가 찾더니 잠시 선선해진 11월에도 보튤리즘균은 기승을 부렸다. 내려오는 철새가 늘었기 때문인데, 갑자기 추워진 요즘, 보튤리즘균은 주춤할 것인가. “갯벌에서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날개만 퍼덕거리는 쇠오리와 고방오리, 고개를 떨구고 죽어있는 넓적부리, 흰죽지, 흰뺨검둥오리 그리고 민물도요들이 계속적으로 죽어가고 있”다고 애달파하고 “국제적인 멸종위기 조류인 저어새와 천연기념물인 검은머리물떼새 등이 죽은 사체 옆에서 관찰되고 있어 멸종위기종까지 피해가 확산될 위기에 있”으니 수거작업을 도와달라고 절박해하던 환경단체는 이제 숨 돌릴 수 있을까.

 

거센 추위로 보튤리즘균과 구더기의 위세는 주춤하겠지만 감염된 채 죽어가는 철새의 몸속에 균은 그대로일 것이다. 그 새가 죽은 뒤에도 계속 추우면 균도 구더기도 없어지겠지만 다시 따뜻해진다면? 보튤리즘균은 다시 창궐할 수 있다. 막 감염된 철새가 추위를 피해 남쪽의 습지로 이동했다면? 밀집된 습지에서 금세 확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남동공단 유수지의 보튤리즘균만이 아니다. 시화호에는 살모넬라균으로 철새들이 죽어간다고 하는데, 살모넬라균은 사람도 감염시킨다.

 

갑가지 추워지자 은행잎이 한꺼번에 떨어져 길가에 소복이 쌓였는데 파란 잎도 꽤 많다. 지구온난화의 여파인지 알 수 없지만 기분이 얹잖다. 내일 아침이면 다시 세탁한 신발을 신을 아이는 고된 자원봉사에서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제 눈으로 파악했고 죽어가는 철새에 대한 동정과 연민, 죄스러움을 동시에 체험했을 텐데, 갯벌 매립을 막지 못한 현 세대의 처지에서 아이에게 미안하다. 철새의 떼죽음은 인간의 생명도 위태로워졌다는 징후인데, 우리는 아이 춥다고 외투를 입힐 뿐이다. 그래서 다음 세대의 안위가 새삼 불안해진다. (물푸레골에서, 2008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