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08. 11. 24. 10:36

 

기상관측 이래 가장 뜨거웠던 가을이 잠시 선선해지더니 한겨울 추위가 느닷없이 모습을 드려냈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주말의 낮 시간을 촉촉이 적시곤 겨울이 성큼 다가온 거다. 포플러의 넓은 낙엽이 발길에 채이던 보행자도로는 수북하던 낙엽을 차분히 내려앉혔다. 낙엽들이 빗물을 머금은 거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자 역할 마친 잎사귀를 일제히 털어낸 가로수들은 파란 하늘 아래 더욱 앙상해 출근길을 서두르는 인파의 외투를 바싹 당기게 한다. 마침 거세게 분 바람도 한몫했을 텐데, 내린 비에 비해 바람이 거세었는지 오후가 되자 낙엽들은 다시 바스락거린다. 잎사귀 하나 남기지 않은 은행나무 아래의 도로는 노랗게 물들어, 오가는 이의 발길을 푹신하게 한다.

 

가을을 맞은 시민들은 모처럼 도시에서 낭만에 젖는다. 주말이면 햇살이 따사로운 거리에서 가족과 연인들이 낙엽을 끼얹으며 사진 찍기에 즐겁고, 따라 나온 강아지는 줄이 짧다며 덩달아 흥겹다. 하지만 낙엽은 곧 치워질 것이다. 일부러 방치했던 서울시 종로구 일부와 덕수궁 돌담길도 마냥 놔둘 수 없다. 인파의 구두 굽에 밟혀 부셔진 낙엽은 행인의 옷깃을 더럽혀 민원을 발생시키지만 가을비로 추레해진 낙엽은 낭만에 방해가 될 거고, 무엇보다 미화원들이 가만히 두지 않을 게 틀림없다. 눈이라도 내리면 낙엽 치우는 일은 홀로 감당할 수 없을 테니.

 

가을이 뜨거웠던 만큼, 올해 가로수들은 언제 잎사귀를 떨어내야할지 종잡지 못했을지 모른다. 한꺼번에 떨어진 낙엽에 푸른색이 남은 걸 보면. 엽록체를 가장 많이 남긴 가로수는 은행나무로 보인다. 자동차와 보행자도로 사이의 경계를 푹신하게 덮은 낙엽들은 전처럼 샛노랗지 않았다. 역시 기후변화 때문인가. 얼마나 많은 보행자들이 파란 기운을 남긴 낙엽을 보며 걱정할지 여부와 아무 관계없이 낙엽은 부대에 담겨 어디론가 사라질 텐데, 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가로수만이 녹색이던 이 도시에서 낙엽은 상당한 양인데.

 

부지런한 미화원의 손길로 도로 구석에 쌓인 부대에 벌써부터 꽉 들어찬 낙엽들은 가로수를 보급하는 시립 양묘장으로 가려는가. 거기에서 1년 이상 푹 썩으면 새로 심는 가로수를 튼실하게 키울 퇴비로 모습을 바꿀 수 있을 텐데, 모든 낙엽이 양묘장으로 가지 못할지 모른다. 남은 낙엽은 부대 째 소각장 아궁이로 들어가는 건 아닐까. 사실 많은 자치단체는 대부분의 낙엽을 태운다. 생활쓰레기만 받는 소각장에서 거부하는 까닭에 1톤의 낙엽을 별도의 시설에서 태우는데 대략 20만원이 들어간다고 한다. 숲을 가꿀 자원을 태워 온난화를 부추기는 꼴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양질의 퇴비로 숙성시키려면 낙엽의 상태가 좋아야 한다. 그런데 도시 가로수의 낙엽은 질이 떨어진다. 인파에 밟혔기 때문이 아니다. 크고 작은 건축물과 공장, 그리고 자동차에서 뿜어지는 배출가스에 오염되었지만 문제는 낙엽 사이에 쓰레기가 많다는 점이다. 담배꽁초는 기본이고 썩지 않는 과자봉지를 포함해 온갖 깡통들이 뒤섞어 기껏 만든 퇴비를 부어도 나무와 농작물의 뿌리가 뻗지 못한다는 게 아닌가. 낙엽에 묻힌 쓰레기를 분리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자치단체들이 퇴비화를 망설이게 된다고 언론은 아쉬워한다.

 

해결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낙엽 수거 미화원의 이름을 부대에 적어 쓰레기 분리를 유도하자 퇴비화를 위해 낙엽을 요구하는 농촌이 늘어나 예산을 절감했다는 자치단체도 있다. 그 경우 절감된 예산을 담당 미화원에게 분배할 수 있을 것이다. 숲이 있는 학교로 낙엽을 보내는 자치단체도 있다고 한다. 퇴비 만드는 교육을 위한 것으로 학교 숲의 긍정적인 측면이 새롭게 부각되는 셈이다. 노인의 취로사업과 별도로 학생의 자원봉사로 보행자도로에서 쓰레기를 분리해도 좋을 것 같다. 학생들은 자신이 버리는 쓰레기의 문제를 새삼 느낄 테니까.

 

낙엽을 태우지 말아야할 이유는 더 있다. 끈적거리던 살충제가 가뭄 때문에 충분히 씻기지 않아 태우는 사람의 폐로 들어갈지 모른다는 거다. 잠시 낭만을 베풀어준 도시의 낙엽은 아무래도 소각보다 퇴비화가 옳겠다. (인천e뉴스, 2008년 11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