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08. 12. 26. 15:29

 

백화점 명품매장을 구경한 적이 없어 그런 곳을 어슬렁거리는 소비자의 행태를 짐작하지 못하지만 명품이라는 벼슬을 쓴 물건은 이웃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의 행복과 무관하다는 생각이 든다. 품질보다 상표, 실용보다 과시를 위해 만든 물건은 익명사회에서 천박한 가치를 잠시 발할 뿐, 개성을 속속 깊이 이해하는 이웃이 서로 배려하는 공동체에서 거추장스러울 것이다. 소비자의 자극적 취향에 배타적으로 봉사하는 고가 상표의 물건은 위화감을 촉발할지언정 사회에 대한 연대나 책임의식과 아무런 관계가 없을 것이다. 팔면 끝인 물건일 뿐이다.

 

한 경제학자는 일반 시민이 느끼는 소득과 행복의 상관관계를 전한다. 소득이 미화 1만 달러까지 오르는 동안 행복은 대체로 비례하지만 1만 달러를 넘으면 행복은 정체되고, 소득이 4만 달러를 넘어서면 오히려 행복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필요보다 과시, 과시보다 질시가 소비를 부추기는 까닭이란다. 명품이 그런 천박한 소비를 부추길 텐데, 최근 도시축전을 준비하는 인천은 온통 ‘명품’ 타령이다. 명품이라. 역사와 문화가 이웃 사이에 숨 쉬어야 하는 도시는 과시를 목적으로 하는 상품인가. 아니면 도시는 한낱 투기장이고 시민은 고작 익명의 소비자인가. 투기장이 된 도시에서 시민의 정주의식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먹고 튄다고 해서 이름붙인 이른바 ‘먹튀현상’은 헐값으로 인수한 은행을 고가로 팔고 나가면서 세금 한 푼 내지 않은 외국의 투기자본에 한정되지 않는다. 익명의 도시에서 먹튀현상은 아주 자연스럽다. 투기 목적으로 거래되는 아파트가 대개 그렇다. 프리미엄을 노리는 전매가 횡행하는 분위기에서 실수요자의 고충은 배려되지 않는다. 먹고 튀면 그만이다. 주택경기라는 게 대개 먹튀현상을 기반으로 유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다. 교통이나 학군의 차별성은 물론이고 수려한 조경이나 따사로운 햇살은 주거보다 프리미엄의 조건일 따름이다. 그런 주택에서 마음 따뜻한 이웃을 만나기 어렵다.

 

주거시설이 오래되면 많은 주민은 재개발을 원하는데, 기준은 단연 부가가치다. 재개발할 때 포함되는 공간이나 시설은 소통과 거리가 멀다. 내 집의 가격이 상승되는데 기여할 것인가를 세세하게 따진다. 건물의 수명과 관계없이 다세대주택과 저층아파트는 고층으로, 고층아파트는 초고층을 지향한다. 부식된 배관이나 구식 전기통신 설비를 교체하거나 건물의 내부를 수선하면 얼마든지 더 지낼 수 있건만 그건 고려 대상이 아니다. 유명 건설회사의 상품명이 아로새긴 명품 아파트로 재개발하길 바랄 뿐이다. 재개발하면 떠날 수밖에 없는 세입자의 고충은 물론 아랑곳하지 않는다.

 

익명의 사회는 범죄에 온상을 제공하니, 은행은 물론이고 현금지급기와 아파트 주차장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야 안심이 된다. 그렇게 감시가 번득이지만 범죄는 줄어들지 않는다. 옆 사람의 숨소리가 들리는 지하철이든, 옷깃이 부딪히는 양판점의 지하 식품매장이든, 민원인이 몰리는 관공서든, 눈에 띄는 이는 대개 낯설다. 건물이 높은 만큼 그늘이 깊은 회색도시가 그렇다. 위아래는 물론 앞집과 인사가 없는 도시의 주거공간도 마찬가지다. 익명의 사회에서 마음 터놓고 지낼 이웃을 만나기 어렵다. 이해관계에 따라 이리저리 몰리거나 아예 외면하는 사람들은 서로 눈길 주기 두려워한다.

 

싫든 좋든 수많은 시민들이 머물 수밖에 없는 곳이 도시라면, 소통을 배려하는 생태적 공간을 곳곳에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시민들은 자신이 사는 도시에 관심과 애정을 갖고 함께 살아가는 이웃을 비로소 마주보게 된다. 더 근사한 상품이 출시되는 순간 가치를 잃고 마는 명품보다 역사와 문화가 보전되는 도시에서 시민은 정주의식을 배양하게 된다. 그를 위해 시민들은 얼굴을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 꽁꽁 닫힌 아파트에서 마음 맞는 이에 은밀히 인터넷으로 접속하기보다 실제 공간에서 이웃과 반갑게 만날 수 있는 도시라야 시민들은 숨쉴만하다. 바로 생태도시다.

 

뒷골목에서 서로 외면하는 사람들은 나무가 우거진 숲이나 잔디가 펼쳐진 녹지에서 눈길 마주치면 가볍게 인사하게 된다. 아이나 애완동물이 매개하여 두 번, 세 번 눈인사 나누면 친해지고, 친해진 이웃은 직장이나 아파트, 월급 높낮이나 아파트 평수를 비교하기보다 같은 취미나 관심사로 끈끈한 우정을 유지한다. 도시 곳곳에 마련된 녹색공간도 시민의 훌륭한 소통공간이 된다. 그런 공간이 많은 도시일수록 범죄 발생이 적다. 마음을 나눌 이웃이 자랑스러운 시민은 정든 도시를 떠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도심에 녹지가 풍부할 뿐 아니라 시민에게 텃밭을 저렴하게 임대해주는 유럽의 많은 도시들이 그렇다. 그런 도시의 시민들은 자긍심을 주는 자신의 고장을 명품이라며 과시하지 않는다.

 

거품이 꺼지면 부담으로 남는 주거공간을 공동체로 가꿀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다. 투기를 조장하는 건설업체의 감언이설에 속아 창문너머 냄비 주고받던 다세대주택을 허문 자리에 세입자 내쫓는 고층 아파트를 일사분란하게 세우기보다 세입자도 함께 어우러져 살 수 있는 소통공간으로 꾸밀 방안을 머리를 맞댄 이웃들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논의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무척 어렵고 고단한 시간이 흐를지라도 세입자는 물론이고 다음세대도 당연히 포함된 이웃이 제안한 다양한 의견을 함께 검토하고 수정하면서 합의에 이른다면 그 논의과정에 참여한 주민들은 모두 한마음이 되어 열린 공동체를 가꿀 수 있을 것이다.

 

그 가능성의 확산을 위해, 누구라도 앞장서서 시범적인 공동체를 구상하고 발표하고 실행에 옮겼으면 좋겠다. 초고층이나 고층아파트는 이미 틀렸다. 수명도 남았거니와 명품이라 거들먹거리는 재개발은 소통하는데 관심이 크지 않을 것이니 일단 생각은 접기로 하자. 헐어내야 할 정도로 낡은 아파트나 다세대주택부터 떠올려보자. 주민들은 고층아파트에 비해 잘 알고 지낼 뿐 아니라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조금이나마 도와주려 노력해왔을 것이다. 그들 스스로 자신의 마을을 소통이 활발한 공동체로 바꾸면 어떨까. 가족과 부부의 개인공간을 배려하면서 이웃과 어울리는 공간도 어느 정도는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노력하기에 따라 난방과 전기와 물 소비를 줄이거나 효율화하는 도시 공동체로 얼마든지 승화할 수 있을 것이다.

 

텃밭과 녹지는 물론이고 작은 도서관과 회의실을 겸한 식당과 놀이터와 노인정을 두루 갖춘 마을을 만든다면 이웃사촌이 생긴 아이들은 제 방에서 더는 컴퓨터게임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 텐데. 사소한 일로 낯붉히며 싸우는 이웃은 줄어들 텐데. 정주의식이 높아진 시민들은 이사 가고 싶지 않을 텐데. 천박한 명품을 과시하기보다 개성을 배려하는 이웃을 자랑스러워할 텐데. 그 모든 게 모이면, 참여로 한층 끈끈해진 공동체에서 민주주의는 꽃을 피울 텐데. (작은책, 2009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