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3. 20. 00:52

 

1918년, 지금보다 사람의 이동이 자유롭지 못했던 지구촌에 감당할 수 없는 독감이 퍼졌다. 이름하여 ‘스페인 독감’. 스페인 연구진이 분리해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지 유독 스페인에 환자가 많았던 건 아닌데, 연구자에 따라 2천만에서 무려 1억 가까운 인구가 목숨을 잃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미국인 평균 수명을 10년이나 단축했던 당시의 지구촌 인구가 10억이었다고 하니, 스페인 독감의 무서운 위력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200만 명 이상 숨진 유럽은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다. 오랜 대치 속에서 오물과 배설물이 뒤섞인 참호에 번진 독감은 수많은 젊은이의 희생을 불렀지만 1200만 명 이상 사망한 인도의 상황은 끔찍했을 것이다. 막 생산한 곡물을 영국에 빼앗기듯 수출해야 했던 인도에서 영양실조로 시달리는 농민들이 독감으로 먼저 쓰러졌고, 날마다 수백구의 시체가 강으로 흘러내리는 걸 보며 공포에 질린 농민들이 도시의 슬럼으로 몰려나갔지만 그 길이 재앙일 줄이야. 아무런 위생 시설이 없는 슬럼에 독감이 번지자 주검이 한꺼번에 뒤엉킨 참상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고 역사는 전한다.

 

스페인 독감의 희생자가 많았던 이유를 오랜 굶주림으로 면역력이 약화된 사람에게 바이러스가 집중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는 전문가들은 머지않아 비슷한 사태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한다. 해마다 굶주려 죽는 이가 3천만을 헤아리고 만성 기아에 허덕이는 인구가 8억에 이르는 지구촌에서 위생 상태가 매우 불량한 슬럼에 몰려사는 형편이 아닌가. 독감이 만연할 조건은 이미 충분하다는 뜻인데, 스페인 독감은 인간에서 인간 사이로 퍼져나간 조류독감이다. 비슷한 독감이 아직 발생하지 않은 걸 천만다행으로 여기는 전문가들은 스페인 독감과 같은 질병이 다시 창궐한다면 당장 1억 이상의 인구가 희생될 것으로 염려하는데, 몇 년 이내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확신한다.

 

에이아이(AI, avian influenza)라고 말하는 조류독감은 명색이 조류독감인데 왜 사람을 공격할까. 그건 바이러스의 놀라운 변화 능력에 원인이 있는데, 《조류독감》(돌베개, 2008년)을 쓴 마이크 데이비스는 조류독감이 유발하는 위기의 핵심을 “지구적 규모의 농업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생태적 조건에 확고하게 적응한 치명적인 변종 독감이 새로운 유전자를 찾고 있다는 사실”에서 찾는다. 능수능란하게 변하는 조류독감은 환경 적응력이 매우 뛰어나 어떤 상황에서 만나는 새로운 숙주라도 능히 공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호주의 풍뎅이가 사탕수수가 가득한 낯선 환경에 금방 익숙해지듯 조류독감은 전에 없었던 숙주에 쉽게 파고들어갈 수 있다는 거다.

 

조류독감은 대부분의 바이러스와 달리 내부의 유전자가 DNA가 아니라 RNA로 구성된 특징을 가진다. RNA는 복사되는 과정이 DNA보다 훨씬 부정확해 변이가 DNA의 100만 배에 달한다니 그 중 새로운 숙주를 공격할 능력을 가진 조류독감이 새로 나타날 가능성은 그만큼 높을 것이다. 새들을 숙주로 삼던 조류독감이 놀라운 적응력으로 돼지나 사람을 공격할 수 있고 돼지를 공격하던 조류독감이 사람을 공격할 수 있으며 스페인 독감처럼 사람의 몸에서 빠져나간 바이러스가 다른 사람을 직접 공격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조류독감이 돌 때, 그 반경 내에서 사육하는 돼지는 감염여부와 관계없이 불문곡직 살처분한다. 전문가들은 독감을 A형과 B형, 그리고 C형으로 분류한다. C형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감기이고, B형은 주로 어린이를 괴롭히는 일반적인 독감으로 A형에서 약화된 모습으로 여기며, A형은 바로 사람에 번진 고병원성 조류독감이라고 본다. 결국 독감 바이러스의 현란한 적응력을 반영하는 건데, 바이러스를 분류한 지역의 이름을 붙여 홍콩A형, 파나마B형과 같이 구별한다.

 

조류독감의 표면에는 H로 표기하는 헤마글루티닌과 N으로 표기하는 뉴라미니다아제라는 두 가지 항원이 있다. 2008년 4월 전라북도에서 시작된 조류독감은 H5N1로 감염력이 높아 질병 발생지점에서 반경 3킬로미터 이내의 닭과 오리와 메추리와 같은 가금류를 모두 살처분한 이른바 ‘고병원성’이었다. 1968년 이후 세계의 연구자들은 15가지의 H와 9가지의 N을 밝혀냈다. 모두 조합한다면 135가지의 조류독감이 나타날 수 있는데, H5N1은 그 중 하나인 셈이다. 그 조합은 계속 추가될 수 있을 텐데, 문제는 내부에 8가닥 존재하는 RNA의 변화다. 두 가지 조류독감이 동일한 숙주에 동시에 들어가 8가닥의 RNA가 유전자를 교환할 경우, 이후 재배열되어 나타날 조류독감의 변이체는 무궁무진할 수밖에 없다.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파될 수 있다는 거다.

 

양계장의 어린 닭을 대부분을 죽어 널브러지게 만드는 무서운 조류독감일지라도 사람까지 그렇게 몰살시키는 건 아니다. 조류독감이므로 그런 것일 리 없다. 사람의 유전자가 양계장의 닭보다 다양하고 면역력이 높기 때문인데, 슬럼은 사정이 다를 수밖에 없다. 백신과 치료제를 준비해야 하는데, 조류독감의 종류가 많고 변화가 하도 빨라 다양하고 정확한 백신을 준비하는 일은 무척 어렵다. 우리나라에 슬럼이 없는 게 그나마 다행인데 그렇다고 방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조류독감이 해마다 반복되는 환경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고병원성 조류독감이 사람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고, 그러다 사람 사이에 우리나라에서 분리된 A형 독감이 세계로 전파될지 모른다.

 

우리나라에 조류독감이 해마다 반복되는 이유를 전문가들은 철새 이동로에 양계장과 같은 가금류 사육 축사가 밀집되었다는 점을 꼽는다. 우리나라를 찾는 겨울철새 대부분이 여름철에 머무는 시베리아의 호수는 그야말로 조류독감 바이러스의 온실과 다름없다고 마이크 데이비스는 자료를 인용해 이야기한다. 야생조류의 창자 내에서 무해한 상태로 번성한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호수를 매개로 다른 오리의 창자로 들어갈 테고, 우리나라로 날아오면서 배설물을 떨어뜨릴 경우, 에어로졸 상태로 공기 중에 확산되는 배설물이 철새 이동로에 위치하는 양계장이나 그 양계장을 출입하는 자동차에 묻을 수 있다. 철새가 떠날 때에도 조심해야 한다. 도래지를 가득 채웠던 철새들의 창자에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남아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2007년 이전에 가금류를 살처분하게 만든 우리나라의 조류독감이 그랬다.

 

그런데, 왜 변이가 현란한 조류독감은 와글거리는 도래지의 철새보다 사육장의 가금류를 몰살시킬까. 논두렁이나 갯벌에 어쩌다 한두 마리 발견된 사체에서 간혹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검출되고 말 정도로 철새는 조류독감에 내성을 갖는데 양계장의 닭은 속절없이 죽어가는 까닭은 무엇일까. 조류독감 발생지역에서 고병원성은 반경 3킬로미터. 그 이외의 조류독감은 300미터 이내의 가금류는 예외 없이 살처분하는데, 마당에 풀어놓고 기르는 농가의 전통 가금류는 면역이 강해 잘 견딜 수 있는데도 살처분되는 건 아닐까.

 

수수께끼 하나! 세계적 상표를 가진 미국의 한 식품회사에서 한 봉투에 1달러 하는 통닭을 팔았는데, 봉투 속에 있어선 안 될 닭대가리가 나와 소비자를 경악시켰다. 그 회사 주식 가격은 떨어졌을까. 수수께끼 둘! 갯벌을 매립할 때 보통 커다란 호수도 조성하는데, 그 호수에 철새가 많이 내려앉는다. 철새가 매립지의 호수에 몰려드는 이유는 환경이 좋아졌기 때문일까. 두 가지 수수께끼는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관련이야 성사시키기 나름이다. 답을 알아보며 두 수수께끼의 연관성을 살펴보자.

 

미국은 물론이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의 산업국가에서, 거대 식품회사는 닭을 한 마리씩 튀기지 않는다. 한 번에 수십만 마리를 자동으로 처리하는 까닭에 한 봉투에서 닭대가리가 나왔다면 다른 봉투도 그러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닭대가리가 나오자 소송을 한 소비자는 10만 달러의 배상을 받았다. 그 소식은 다른 소비자를 유인했다. 기왕에 사먹을 통닭, 내가 받아든 봉투에 닭대가리가 나오면 로또다. 1달러 내고 10만 달러를 챙길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그래서 그 회사의 주식이 잠시 올랐다나 어땠다나.

 

광활했던 갯벌을 편평하게 매립하면 쏟아지는 빗물은 갈 곳 몰라 제 자리를 맴돌 것이다. 그래서 일정 면적의 호수를 조성해 빗물로 인한 피해를 완충하고, 필요할 때 고인 물을 사용하고자 한다. 이른바 유수지(遊水池)다. 공단으로 사용하는 매립지의 호수는 공업용수로, 농토로 활용하는 매립지는 농업용수로, 주택단지로 바뀐 매립지의 호수는 홍수 피해를 완충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사람과 자동차의 접근이 거의 없고 오폐수의 유입량이 작은 유수지에는 철새가 내려앉는데 농토로 활용하는 서해안의 유수지에는 유난스레 철새가 많은 건 내려앉을 곳이 거기 밖에 남지 않은 까닭으로 보아야 옳다. 드넓었던 갯벌이 사라졌기에 온갖 철새들로 바글거리는 유수지라도 마다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람의 독감이 전에 없었던 게 아니듯 조류독감도 늘 있었을 테고, 특별히 면역이 약한 노약자가 아니라면 며칠 푹 앓다 멀쩡해지듯 자연 속의 조류도 그랬을 것이다. 철새도 자연에서 부대끼며 오랜 세월 살아왔다. 자연계의 모든 생물종이 그렇듯 제 눈에 맞는 암수가 짝을 이루며 후대를 이어오면서 다양한 유전자를 축적했다는 뜻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인데, 독감이 돌 때, 부모는 아이에게 사람들 많은 곳에 가지 말라고 당부한다. 하지만 갯벌을 잃은 철새에게 대안은 없다.

 

시베리아에서 무해한 조류독감 바이러스를 갖고 먼 길, 오랫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날아온 철새들이 바글거리는 유수지는 여러 가지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뒤섞여 있을 텐데, 힘겹게 날아온 철새는 면역력이 약화된 상태일 것이다. 그 중 일부가 시름시름 앓다 결국 남들처럼 날아오르지 못하고, 이동이 자유롭지 못해 먹이를 구할 기회가 적었을 테니 갯벌 구석이나 논 가장자리에 곤두박질쳐 죽어갈지 모른다. 매립되지 않았다면 철새의 밀도가 높지 않은 가까운 갯벌이나 강 하구에서 남 못지않게 먹고 금방 회복되었겠지만 먹이 다툼에서 밀려 그만 생을 마감해야 했을지 모른다.

 

여기에서 세 번째 궁금한 점이 생긴다. 수수께끼는 아니다. 한여름인 중복, 전국의 군인들은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삼계탕을 점심으로 먹는다. 군인 뿐 아니라 수많은 직장인과 학생들도 삼계탕을 즐길 텐데 그만한 물량을 어떻게 한꺼번에 조달할 수 있을까. 어리석은 질문이다. 그와 같은 우문에는 “양계장에서 미리 사육해 삼계탕 재료 포장공장에서 준비해두었다!”는 현답이 기다리고 있다. 특수 사료를 특수한 환경에서 35일 먹이며 사육하면 뚝배기에 쏙 들어가는 삼계탕용 닭이 완성된다. 대한민국의 뚝배기의 크기는 동일하다. 따라서 삼계탕용 닭의 크기가 들쭉날쭉하면 안 된다. 기계로 찍어낸 듯 똑같아야 한다. 들쭉날쭉한 닭들을 사가려는 포장공장은 없다. 기계에 걸리면 손해가 막심하다. 천편일률적인 닭들이 한꺼번에 포장공장으로 들어가면 기계가 털을 벗기고 대가리를 떼며 내장을 긁어낸 자리에 찹쌀과 대추와 인삼 잔가지 하나를 넣고 다리를 오므려 묶고 출하하기 좋게 포장할 것이다. 사람은 살아 있는 닭, 아니 병아리의 다리를 고리에 거는 일만 하면 그뿐이다. 윤리도 안타까움도 사절이다.

 

삼계탕용 닭의 원가는 마리 당 얼마일까. 그 방면에 과문해서 알 수 없는데, 삼계탕이 거의 팔리지 않는 겨울철, 아파트 입구에서 장작구이 두 마리에 만원에 파는 것을 보면 가격이 그리 높지 않을 거로 짐작할 수 있다. 35일 동안 들어가는 사료, 찹쌀, 대추, 인삼 잔가지의 비용도, 양계장과 포장공장의 운영비용도, 닭의 숫자로 나누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장차 삼계용으로 출하될 계란은 다른 계란에 비해 결코 싸지 않을 거고, 그 계란을 낳는 암탉과 수탉의 가격도 꽤 높을 것이다. 그런 닭만 대량으로 사육하는 양계장의 유지비용도 적지 않겠지. 분명한 건, 과학축산이 지시하는대로 사육해야 천편일률적인 닭이 쏟아져나오고, 동시 다발적으로 전국의 뚝배기에 쏙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당연히 축산과학은 용도에 맞도록 극단적인 품종개량을 실시했을 테니 조상이 물려준 유전적 다양성을 잃은 닭은 공산품과 같은 예측 가능한 식재료가 되고 말았는데, 그를 뒷받침한 건 녹색혁명이 주관한 넘쳐나는 사료였다.

 

이번 겨울은 기상관측 사상 유래 없이 따뜻했던 가을을 이어받은 만큼, 잠시 춥다 말았다. 시베리아를 떠나 허기져 찾아온 철새를 맞은 인천의 갯벌은 얼마 남지 않은데 그치는 게 아니었다. 새에 치명적인 보툴리즘 균으로 오염된 구더기가 번진 것이다. 허기져 내려와 구더기를 본 철새는 허겁지겁 먹었는데 내장에 퍼진 보툴리즘 균이 철새를 마비시켜 죽음에 이르게 했다. 하늘에서 마비된 채 앉아 있는 새들을 보고 덩달아 내려온 철새들이 주변에 퍼진 구더기를 먹고 희생되기를 반복하자 지역 환경단체는 발을 동동 굴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전에 없이 뜨거웠던 가을은 보툴리즘 균을 불렀는데, 올 겨울에 별 일이 없을지 걱정이다. 우리의 날씨는 기상관측 사상 유래 없이 더워지기만 하는데, 환경변화에 쉽사리 적응하는 조류독감은 올 봄을 건너뛸 것인가.

 

허기진 철새를 받아주었던 우리의 갯벌이 위축되면서 오염되자 온난화를 맞는 철새는 재앙을 맞았는데, 철새의 안위에 무심한 우리는 조류독감의 경고에 둔감하기만 하다.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백신 개발 속도를 비웃는데, 치료제인 타미플루와 살처분으로 대응하는 사람은 자연의 포용력을 형편없이 위축시켰다. 예측 가능한 양계를 위해 획일화시킨 유전자는 환경변화에 속수무책인데, 품이 전에 없이 좁아진 자연은 예측 불가능해졌다. (사이언스올, 2009년 3월 4번 째)

황사를 보면서 어김없이 조류독감 생각을 했습니다.
각 계절마다 전자동으로 떠오르는 것들이 해마다 늘어갑니다.
사람 고생이야 댈 것 아니겠지요.
닭도 오리도 돼지도 또 고통의 문이 훤히 열리는 건 아닐지.
무사히 넘기길 바라는 게 도둑놈 심보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조류독감 올해는 없이 그냥 지나가야만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