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4. 21. 00:32

 

신록의 계절이다. 벚꽃이 꽃잎을 우수수 떨어뜨린 뒤 느티나무 가로수마다 보드라운 연두색 잎사귀를 선보인다. 이맘때 영동고속도로에서 보는 산기슭은 신록의 향연을 벌이는데, 요즘이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울 때라고 생각한다. 한데 자라는 아이들에게 신록은 눈에 띄지 않는 모양이다. 아무리 알려줘도 시큰둥했다. 신록의 다른 이름은 젊음이고, 젊음은 아름답다. 젊은이가 아니라 젊음이 아름다운 거다. 그렇다고 나이듦이 아름답지 않은 건 아니다. 누구나 경륜이 쌓여야 세상사 이해의 폭이 넓어지지 않던가.

 

신록의 세상이 펼쳐지기 전, 그러니까 봄꽃이 만개할 때, 들과 산은 상춘객으로 붐볐다. 지방자치단체는 벚꽃이 만개할 때를 맞춰 축제의 마당을 연다. 서울 여의도는 차도를 개방하고 지하철 막차 시간을 연장해야 할 정도로 인파가 몰리고, 기회를 잡으려는 상인은 가족과 연인들을 얼마나 성가시게 만드는지 모른다. 하지만, 비록 허가 받지 않은 상인일지라도 호객이 지나치지 않다면 대개 양해한다. 그들도 봄을 맞는 생활인이므로.

 

아파트로 빼곡한 인천시 연수구의 한 이면도로를 장식한 가로수에도 벚꽃이 흐드러졌다. 마침 주말이라 가족과 연인 단위의 시민이 운집했는데, 모두들 행복한 표정이다. 오염에 특별히 약한 벚나무는 어떨까. 이면도로에도 교통량이 많아 그런지 오염물질로 시커먼 수피는 상처투성이다. 그래도 꽃은 화려하기 그지없는데, 어딘가 모르게 허전하다. 알았다! 꿀벌이 없었다. 아무리 살펴도 군중 속에 꿀벌 한 마리 나타나지 않았다.

 

대부분의 꽃처럼 벚나무 역시 나비나 꿀벌, 그 밖의 곤충이나 새가 꽃가루를 수정시켜야 번식이 가능하이다. 나비는 아직 드물 때고, 꽃가루 수정은 벌처럼 능하지 않다. 꿀을 빠는 새는 흔하지 않고 어떤 곤충도 꿀벌만큼 훌륭하게 꽃가루를 옮기지 못한다. 꽃은 꿀벌을 끌어들이려고 투자를 많았다. 화려한 꽃 안에 꿀을 담고 있다. 바람으로 꽃가루를 수정하는 나무를 보라. 소나무, 느티나무, 은행나무…. 꽃이 소문도 없이 피고 지는 그들은 키가 크고 수명도 길지 않던가.

 

우리 언론에서 주목하지 않아 그렇지, 꿀벌이 줄어들거나 사라지는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유럽을 비롯한 북중미 국가들은 이미 3, 4년 전부터 꿀벌이 줄어들었다고 아우성쳤는데, 정도가 덜했을지언정 우리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우리 언론은 아직도 무심한데, 보라. 흐드러진 꽃 주변에 사람만 왁자지껄하지 꽃은 외롭기 그지없지 않은가. 벚나무들은 가을에 버찌를 매달 수 있을까.

 

언젠가부터 아파트단지의 녹지를 독차지한 직박구리들이 꿀벌대신 목련과 벚나무 가지를 활발하게 옮겨 다닌다. 참새보다 훨씬 큰 직박구리가 앉자 가지가 휘청거리는데, 직박구리가 많아 보여도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 아파트단지 역시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꿀벌은 보이지 않는데, 도시라서 그런 것일까. 작년에도 그랬을까. 산이나 농촌과 떨어져 있어도 한 마리의 꿀벌도 접근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닐 텐데. 저 많은 꽃들의 가루수정은 누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산은 어떨까. 농촌도 사정이 비슷한 게 아닐까.

 

꿀을 얻어먹지 못하는 데에서 끝나지 않으니 걱정이다. 사람이 가루수분을 하는 건 한계가 있다. 사람이 감당할 양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람이 일일이 수정할 꽃가루의 양이 많을 수 없는 걸 넘어, 문제는 유전자의 다양성이 크게 위축돼 종자의 질이 크게 후퇴할 것이며 그런 상태로 얻을 수 있는 농산물은 크게 줄어들 거라는 사실이다. 당장 대부분의 계절 과일을 먹지 못하는 것을 넘어 생태계에 감당할 수 없는 혼란이 벌어질 것이다. 먹이사슬에 채워져야 할 공간이 갑자기 사라질 테니. 아인슈타인이 이야기했다던가. 꿀벌이 없으면 사람은 4년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고.

 

해외 언론은 넘쳐나는 이동전화를 의심했다. 지구를 감싼 전자파가 집으로 돌아오는 꿀벌을 방해한다는 연구가 있다는 거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꿀벌이 왜 최근에,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사라지겠는가. 그게 사실이라면, 꿀을 잔뜩 채워놓고 찾아오지 않는 벌통을 바라보아야하는 양봉업자는 시민들에게 이동전화 사용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할 수 있고, 시민들은 그 부탁을 귀담아 들어줄 것인가. 이동전화 제조회사와 이동통신회사들은 사업을 축소하려 할까. 그럴 리 없다. 인과관계가 명확해질 때까지 광고도 줄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과관계는 분명히 밝힐 수 있을까. 그 또한 확신하기 어렵다. 이제까지 경험을 미루어, 학자들의 연구결과가 반드시 중립적이거나 돈 앞에서 독립적일 거라 믿을 수 없다.

 

다행이라 해야 하나. 이동전화 중계소가 없는 지역과 전자파로 뒤덮인 곳을 비교했더니 이동전화와 큰 관련이 없는 연구가 나왔다고 한다. 유전자조작 농산물을 의심하는 연구와 종자에 방사능을 조사하는 것이 원인이라는 주장도 대두된다. 그렇다고 논란이 종료된 건 아니다. 영향을 검증한 연구 못지않게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결과도 나왔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도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되지만 그 해결방법은 매우 어렵다. 온난화 때문이라면 꿀벌이 서서히 줄어야 하고, 더운 지방의 꿀벌로 교체되는 현상이 나타나야 하는데, 아니었다. 역시 가장 강력한 원인은 농약으로 드러났지만 농약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꿀벌이 사라지는 정확한 이유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원인을 알아야 대책을 제대로 세울 수 있다.

 

걱정에 걱정을 더한 연구자와 양봉가들은 자연스럽지 않은 양봉문화와 더불어 획일적인 농산물 재배관행에 심각한 원인이 있다는 걸 최근 밝혀냈다. 결국 욕심이 문제를 일으킨 건데, 안일하기만 한 우리나라에서 연구한 건 아니다. 가장 많은 꿀을 가장 빨리 모으는 벌을 가장 대규모로 키우고 분양하면서 큰돈을 남보다 더 벌어들일 수 있도록 양봉방식과 벌을 획일화시킨 것이 문제를 일으켰으며, 유전적 다양성을 잃은 벌을 한군데 모아 키우다보니 천적인 응애가 창궐하거나 미생물에 쉽게 감염되는데 그때마다 농약과 항생제로 해결해 면역이 아주 약해졌다는 거다. 근본을 살피지 않고 벌통부터 새로 구입하는 양봉산업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결론이었다.

 

자연에서 이 꽃 저 꽃을 찾아다니고, 경쟁을 통과한 여왕벌이 여러 수컷과 교배를 한 후 낳은 꿀벌은 질병이나 천적으로 피해를 보더라도 이내 회복되었지만 아몬드와 같이 단작에 의존하는 농장을 찾아다니던 벌통의 꿀벌은 속절없이 죽어갔다는데 우리의 사정은 어떤가. 유전적 다양성을 상실한 농작물은 어떤 해는 풍작이지만 어떤 해는 망친다. 환경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약한 탓인데 그런 농작물은 지구온난화에 무방비일 수밖에 없다. 이제 꿀벌마저 그리 되었다는 것이다. 꿀벌이 없으니 결실이 없을 내일이 불안한데, 우리는 시방 너무 조용하다. (작은책, 2009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