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4. 29. 03:40

 

올해는 그냥 넘어가려나 했다. 그 전 해에 이은 재작년에도 조류독감이 창궐해 전문가들은 토착화를 걱정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발생한 고독성 조류독감으로 긴장을 더하게 만든 게 작년이었다. 철두철미한 방역에 힘입었는지 다행히 올해는 철새가 다 날아가도록 조용했는데, 웬걸. 전혀 예측하지 않은 돼지독감이 돼지가 아닌 사람 사이에서 발생한 게 아닌가. 멕시코 여행에서 막 돌아온 50대 시민 한명이 우리나라에서 추정하는 환자로 발생한 이후 현재까지 10명 가까이 새롭게 의심되지만, 대부분 회복 중이거나 음성으로 나타났는데, 조류독감의 토착화를 막았다는 안도감으로 편안해질 순간 맞게 된 돼지독감은 시방 우리를 조류독감과 차원이 다른 불안감에 휩싸이게 만든다.

 

멕시코에서 세계 곳곳으로 비행기를 타고 퍼져나가는 이번 돼지독감은 몇 가지 사항에서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보인다. 현재까지 150명이 넘게 희생된 멕시코인은 연령대로 보아 면역이 가장 강한 20에서 50대라는 점, 그리고 사육하는 닭과 오리를 떼로 죽게 만드는 조류독감과 달리 정작 돼지는 돼지독감에 감염돼 죽지 않았다는 점이 불가사이라는 거다. CNN 인터뷰에 응한 미국의 전염병 전문가는 “건강하고 젊은 면역체계가 바이러스에 강렬하게 반응하면서 치명적 결과를 낳았을 가능성”을 추론하지만, 납득하기 어렵다. 세계적으로 5000만 명을 희생시킨 것으로 알려진 1918년 스페인독감으로 유럽에서 젊은 군인 위주로 죽은 점을 강조하는데, 그건 1차 세계대전 참호 속의 열악한 환경을 고려해야 한다. 다른 대륙에서 희생된 대다수도 젊었다던가.

 

초기 대응이 늦어 멕시코에 사망자가 집중되었다는 보건당국의 설명에 수긍이 가지만 하필 멕시코에서 돼지독감이 창궐하게 되었는지 납득할만한 설명은 제시되지 않았다. 이번 돼지독감은 항원 변이 과정을 거쳐 새와 돼지와 사람에서 나타나는 유전자 변이를 동시에 지닌 H1N1형으로 진화되었다던데, 왜 관광객이 몰려드는 멕시코가 발원지였을까. 돼지나 닭을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이 사육하거나 조류와 사람의 독감으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을 정도로 곤혹을 치룬 경험이 몹시 드문 멕시코에서.

 

북미의 조류독감 바이러스에 유럽과 아시아의 돼지독감 바이러스가 결합되었다는 이번 돼지독감 바이러스는 대륙을 초월한 셈이다. 이와 같은 바이러스의 세계화는 사람과 화물의 끊임없는 국제 이동과 무관하지 않을 텐데, 진앙으로 지목된 멕시코는 물론이고 세계 돼지고기 소비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국에도 이번 돼지독감으로 죽은 돼지는 없었다. 미국과 중국을 포함하여 감염환자와 감염의심 환자가 발생한 어떤 나라의 돼지도 죽지 않았기에 국제수역사무국은 바이러스를 분리된 지역의 이름을 사용하는 전례에 따라 이번 독감의 이름을 스페인독감처럼 북미독감으로 바꾸자고 제안하는데, 잔뜩 긴장한 돼지 사육 농가들은 그 제안에 적극 동의한다는 소식이다.

 

조류독감(avian influenza)을 조류인플루엔자로 바꾼다고 그 독성이 줄어들거나 얼어붙은 닭과 오리의 거래가 당장 살아나지 않듯 세계보건기구에서 정한 돼지독감(swine influenza) 용어를 돼지인플루엔자로 어색하게 바꿔 부른다고 사료 가격 상승으로 도산 위기에 몰린 돼지 사육 농가에 위안이 되는 게 아닐 텐데, 양돈 농가를 위하는 척 명칭을 아리송하게 붙인 정부는 미국이 지배하는 국제수역사무국의 제안에 적극 호응하려는 건지 멕시코인플루엔자로 바꿔달라고 언론에 요구했다. 하지만 조류독감이든 돼지독감이든, 기존의 사람독감이든, 감염 대상에 관계없이 그 독감들은 증상 뿐 아니라 바이러스의 유전자까지 거의 같다. 감염대상에 따라 유전자의 일부를 능수능란하게 변화시키는 독감 바이러스는 지역은 물론이고 종의 장벽도 쉽사리 넘나드는 까닭이다.

 

전문가들은 독감 바이러스의 둥근 표면을 가득 채운 두 항원을 주목한다. 막대형의 단백질 헤마글루티닌(hemagglutinin)과 버섯 비슷한 모양으로 헤마글루티닌 사이에 돌출한 단백질 뉴라미니다아제(neuraminidase)의 미세한 차이로 독감 바이러스를 구분하는 것이다. 2005년에서 2006년 사이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70여 명을 사망케 하고 작년에 우리를 잔뜩 긴장시킨 고독성 조류독감은 H5N1이고 1918년 스페인독감은 H1N1이다. 이번 돼지독감이 H1N1형이라니 스페인독감과 같은 형으로 다시 탄생했다는 건데, 1918년 당시 닭과 돼지는 괜찮았을까.

 

조류독감이 발생하면 정부는 즉시 안전반경을 설정하고 그 안에서 사육하는 닭과 오리, 그리고 메추리와 같은 가금류를 일제히 살처분한다. 발생 농가 이외의 가금류는 멀쩡하지만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고육책이라고 주장하는데, 특이한 것은 안전반경 안에 사육된다면 돼지도 살처분한다는 점이다.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돼지를 감염시킬 경우 돼지에서 사람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하니, 이번 돼지독감도 같은 경로를 밟았는지 모른다. 한데, 멕시코에서 조류독감이 돌았다는 소문은 일찍이 없었다. 멕시코가 이번 돼지독감의 발원지인 건 틀림없는 사실일까. 멕시코를 방문한 다른 국가의 관광객이 퍼뜨렸다고 짐작할 수는 없는 것일까.

 

대부분의 바이러스 질환은 DNA 유전자로 이루어진 반면 독감 바이러스는 RNA 유전자인데, RNA는 DNA보다 복제가 정교하지 못해 복제하는 과정에서 변이체가 많이 만들어진다고 전문가는 말한다. DNA에 비해 100만 배나 높을 정도라니 그만큼 새로운 환경에 성공적으로 적응하는 확률이 높을 테고, 조류에서 돼지로, 다시 사람으로 옮겨갈 때 미처 면역을 갖추지 못한 사람에게 치명적으로 다가갈 것은 자명한 일이다. 더 큰 걱정거리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바이러스의 환경이 바뀌는 한, 백신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소용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이번 독감 바이러스로 돼지가 먼저 죽지 않았다면, 육종을 담당하는 축산과학이 용도에 따라 유전자를 획일화시켜 보급한 전 세계의 돼지들은 이미 오래 전에 H1N1 바이러스에 완벽한 내성을 가진 것일까.

 

학교의 휴업이 계속되고 성당에서 미사를 잠정 중단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멕시코시티는 마스크를 착용한 일부 시민들만 걸음을 재촉해 유령도시처럼 적막해졌다는데, 돼지독감이든 북미독감이든, 발원지가 어디인가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세계보건기구에서 각국의 여행 규제에 회의적인 시각을 표명한 바와 관계없이 우리를 포함한 세계 각국은 멕시코를 여행 규제령을 내리고 여행과 항공업계의 주식가격이 곤두박질쳤지만 돼지독감은 비행기 속도로 미국과 유럽, 중남미과 아시아, 호주와 뉴질랜드를 비롯한 오세아니아로 두루 퍼지고 말았다. 돼지독감이 창궐할 때 멕시코를 경유해 우리나라에 입국한 사람만 만 명을 헤아린다. 여행 규제로 실효성을 기대할 수 없다는 의미다.

 

공항에 고성능 열 감지 카메라를 설치하고 감염자와 동승했던 승객의 주거 위치를 정확히 파악해 질병의 확산을 차단하는 방화벽을 완벽하게 설치한다 해도 돼지독감을 완전하게 통제할 수는 없다. 전파 속도를 완화시키고 감염자를 최소화할 수 있을지라도 바이러스 자체는 사라지게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건강하게 입국했다 잠복기가 지닌 후 증세가 발현되는 사람이 퍼뜨리는 경우만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외출하고 돌아와 손을 잘 씻든, 바이러스를 걸러주는 마스크를 착용하든, 사람이 많은 곳의 출입을 자제하든, 감염자를 초기부터 완벽하게 격리해 성공적으로 치료하든, 대부분의 바이러스가 그렇듯 면역이 강화된 숙주의 유전자 사이에 삽입된 채로 조용히 머물러있다 숙주의 면역이 약하진 뒤에 발현되거나 세계보건기구가 이미 경고한 바와 같이 이번 돼지바이러스가 새롭게 정착한 지역의 환경에 맞게 변형된다면 아무리 최첨단인 지식과 장비로 대응하는 과학기술이라도 속수무책일 것이기 때문이다.

 

가파르게 늘어나던 멕시코의 사망자가 급히 진정되고 있지만 세계보건기구는 이번 돼지독감을 ‘전염병 경보 4단계’로 격상시켰다.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염되더라도 한 지역에서 기원하기 때문이라고 담당자는 설명했는데, 두개 지역 이상에서 동시에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파된다면 경보 단계는 다시 수정될 것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은 어떻게 전개될지 점치기 어렵게 만드는데, 우리 못지않게 방역이 철저한 미국에서 인간 대 인간 감염 사례가 확인되었다는 세계보건기구의 발표가 나왔다. 유전학적으로 볼 때 조류독감이 사람 사이로 전파되다 나중에 사람의 독감으로 변화되었을 것으로 전문가들이 추정한다. 그렇다면 일단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파된 돼지독감이 사람 사이에 정착하는 일은 조류독감보다 어렵지 않을 텐데, 지구온난화를 비롯해 환경변화 요인은 지구촌에 차고 넘친다. 진정한 방역은 어떻게 해야 실현될 수 있을 것인가.

 

세계보건기구의 조치에 따라 경보 수준을 ‘관심’에서 ‘주의’로 한 단계를 높이고 돼지독감 일일점검 체계를 가동한 우리 정부는 북중미의 씨돼지 용 돼지 수입을 잠정 중단하고 돼지독감에도 효과가 있는 조류독감 치료제의 비축량을 현재 비축량보다 늘리면서 동시에 백신도 개발하겠다고 당찬 포부를 발표했다. 백신 개발하는데 걸리는 5개월 동안 돼지독감이 새롭게 변하지 않으리라 확신할 수 없더라도 일단 개발하면 변형 돼지독감에 적용될 백신을 다시 개발하는데 도움이 될 가능성이 있을 테니 수긍하기로 한다.

 

그런데 정부와 전문가는 섭씨 71도 이상으로 익혀먹는 돼지고기는 돼지독감과 관계없다고 주장한다. 언제나처럼 돼지고기 시식회를 열지 않아도 독감 바이러스가 열에 약한 게 사실이므로 그 주장이 그르지 않지만, 아무리 축산농가와 돼지고기 관련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염두에 두었더라도 멕시코 발 돼지독감이 세계로 전파하게 된 원인을 먼저 고민하지 않은 채 살코기의 안전을 언급한 점은 참으로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유전적 다양성의 폭이 단순한 만큼 조류독감을 비롯한 숱한 질병에 감염되기 쉬워진 돼지를 열악한 환경에서 공장 식으로 대량으로 사육하는 양돈 체계에 대한 문제의식이 결여되었다는 점이다. 얼마 안 되는 씨돼지로 살코기용 돼지들을 성체가 되기 전까지 사육한 뒤 일제히 도살하는 탐욕스런 이제까지의 양돈 체계를 개선할 생각은 여전히 하지 않는 것이다.

 

정부는 3에서 7일인 잠복기를 감안해 앞으로 4에서 5일이 지나면 고비를 넘길 것이라 추정한다. 그를 위해 공항의 방어벽과 방역을 철저히 실시하고 이후에 다시 발생할지 모르는 감염자에 대한 완벽한 관리를 전제해야 할 텐데, 운도 적지 않게 따라야 하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조류독감처럼 돼지독감이 변형되거나 강화되어 나타날 가능성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한다는 점이다. 진정한 방역을 고려한다면, 과거에 없었던 질병이 요즘 들어 갑자기 자주 창궐하는 이유에 대한 깊은 성찰을 바탕으로 항구적인 대책을 근본에서 강구해야 한다. 돼지독감으로 우리와 세계의 주식가격이 떨어지고 전염병으로 지구촌에 동시에 창궐할 경우 세계은행 추산 3조 달러의 비용이 들어간다는 점을 기껍게 보도하는 언론도 마찬가지다. 조류독감 치료제를 독점 시판하는 다국적 제약회사의 호황을 부러워하기보다 내일의 환경을 걱정해야 옳다.

 

이번 돼지독감의 원인은 다분히 사람의 탐욕에 있다. 돼지의 유전적 다양성을 회복시키지 않은 채 앞으로도 본성을 억압하는 공장식 사육을 고집한다면 돼지독감은 인간의 과학기술 속도보다 빠르게 변화되는 환경에 적응되면서 거듭 변형될 것이다. 앞으로 어디가 발원지가 될지 알 수 없는 제2 제3의 돼지독감의 원인은 이미 잠재돼 있다. 이번 돼지독감은 탐욕을 먼저 반성할 것을 요구하는 묵시론적 경고다. 강력한 조치로 일시적으로 삭으러들 돼지독감보다 다시 창궐할 돼지독감이 지금보다 훨씬 무서워질 것이라는. (사이언스올, 2009년 4월 마지막주)

좋은 글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소원성취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