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5. 21. 20:42

 

2. 신기루에 가까운 GMO 약속

 

얼마 전 몽골에 다녀왔다. 재작년 여름에 이어 두 번째다. 살코기를 사양하는 까닭에 식사 때 불편한 일을 겪을까 다소 걱정했지만 고기와 더불어 나오는 음식의 맛이나 양이 대체로 만족스러워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다. 여행사는 이번에도 몽골의 별식 ‘허르헉’을 식단에 올렸다. 양철통 안의 뜨거운 돌 사이에 양고기를 포개 넣어 익힌 요리로, 다리와 가슴살이 넓은 접시에 듬뿍 담겨 제공되었다. 재작년엔 익숙하지 않은 냄새 때문인지 많이 남겼는데 올해는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그릇을 싹 비웠다. 한국 관광객이 자주 들리는 만큼 요리법을 바꾼 모양이었다.

 

수퇘지는 어려서 고환을 제거한다. 그래야 특유의 역한 냄새가 사라진다고 한다. 누가 처음 생각해냈는지 알 수 없지만 이제 수퇘지는 어린 나이에 거세당한 채 생이 마감당한다. 같이 구운 묵은 김치를 삼겹살에 얹으면 맛이 신통하다는 건 누가 퍼뜨렸을까. 입소문이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게 이끌었을 텐데, 냄새 없앤 허르헉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렇듯 음식문화는 경험과 개성으로 형성돼 지역과 시기에 따라 다양하게 이어왔다. 개인의 취향으로 우열을 평가할 대상일 수 없는 음식문화는 오랜 경험이 빚은 까닭에 이유를 알 수 없는 부작용을 여간해서 일으키지 않는다. 만일 자본과 결합된 과학기술의 자의적 판단으로 음식문화를 새롭게 창출해 대대적인 광고 공세와 더불어 광범위하게 보급한다면 어떨까. 인류복지를 유난스레 앞세우는 GMO를 생각해보자.

 

묵은 김치에서 삼겹살 맛이 나게 하는 게 더 쉬울지 모르겠으나, 삼겹살에 묵은 김치를 얹어먹는 이를 위해 묵은 김치의 맛과 향이 삼겹살에 들어가도록 아예 돼지의 유전자를 조작한다면 어떨까. 살코기용 수퇘지는 거세되어 태어나도록 유전자를 조작할 수 없을까. 특정 형질을 가진 어떤 생물의 유전자를 농산물에 조작해 넣으면 그 형질이 엉뚱한 생물에서 발현되리라는 생각은 과학기술자에게 GMO를 구상하게 했다. 하지만 유전자는 자동차 부품과 성격이 다르다. 환경이 조성돼 있지 않다면 형질이 발현되지 않을 뿐이 아니다.

 

유전자조작 농산물로 제2녹색혁명을 창출할 거라는 장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과연 그럴까.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식량증산이 가능하게 될 것인가. 유전자가 바뀐 농산물의 안전성만이 걱정의 전부는 아니다. 선인장 유전자를 넣으면 사막에서 밀과 옥수수를 재배하고 포도 유전자를 넣으면 딸기가 송이처럼 주렁주렁 열려 세상은 질 좋고 값 싼 칼로리로 넘친다고 하자. 그런다고 식량이 남아도는 상황에도 3초마다 한 명이 기아로 사망하는 현실이 과연 극복될 수 있겠는가. 식량과 기아, 기아와 인구증가의 복잡한 상관관계는 식량중산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한데 유전자조작 농산물의 약속은 식량증산에서 그치지 않는다. 영양을 개선하고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를 줄이겠다고 과감하게 주장한다. 쌀알에 당근에 많은 비타민A가 포함된 이른바 ‘황금쌀’을 개발한 생명공학이라는 과학기술은 냉해에 강한 감자와 고구마를 개발하겠다고 호언한 것이다. 물론 감자와 고구마가 냉해를 입는 원인에 대한 고민은 생략되었다.

 

황금쌀을 개발한 과학자는 채소를 먹지 못해 야맹증에 걸리는 가난한 이를 위한 배려인 것처럼 주장하지만, 비타민A는 현미에 붙은 쌀눈으로 충분히 섭취할 수 있다는 점은 애써 외면했다. 가난한 이는 비싼 백미를 먹지 않는다. 그저 저렴한 현미를 찾는다. 백미만 먹는 부자는 채소를 곁들여 먹을 테니 호기심이 아니라면 굳이 익숙하지 않은 황금쌀을 찾을 것 같지 않다. 감자와 고구마에 냉해가 자주 발생하는 건 유전적 다양성이 결여된 종자를 고도가 지나치게 높은 지역에서 재배하기 때문일 것이다. 추위에 강하게 하는 유전자조작으로 유전적 다양성을 더욱 줄이면 감자나 고구마는 냉해 이외의 질병에 쉽게 노출되고 말 텐데, 그 대책은 없다. 특정 유전자의 효과를 기대하는 약속이야 얼마든지 창조할 수 있지만 엉뚱한 생물에 조작돼 들어간 유전자는 신기루에 불과하거나 예상하지 못한 형질이 발현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GMO로 이제까지 어떤 성과를 얻었던가. 시방 지구촌의 식량은 GMO 덕분에 증가했고 질은 향상되었는가. 현실은 희망과 다른 게 보편적이라 해도, GMO를 연구개발해 시판하는 대부분의 초국적기업은 식량의 증산이나 질적 개선을 위해 자본을 투자하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황금쌀보다 흰 쌀에 당근을 곁들여 먹는 걸 더 좋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GMO 시판 이후 제 식사량을 늘리지 않았다. 다시 말해 식량이 모자라지 않는 상황에서 농산물의 양을 늘린다고 돈을 더 벌어들이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주식 가격의 하락으로 최고 경영자의 자리가 위협받는 초국적기업이 돈벌이가 신통치 않는 분야에 투자할 리 없다. 단순히 생산량이 늘어나는 GMO에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1998년 우리나라의 한 대학 연구소에서 400그램 가까운 GMO 미꾸라지를 개발한 바 있다. 미꾸라지가 보통 10그램 정도이니 40배나 커진 것인데, 당시 한 유력 언론은 식량 문제가 당장 해결될 것처럼 수선을 떨었지만 그 미꾸라지가 시중에 판매되었다는 소식은 아직까지 듣지 못했다. 그 GMO 미꾸라지는 동일한 조건에서 40배 더 커진 걸까. 모르긴 해도 사료와 사육장 관리 비용이 보통 미꾸라지에 비해 40배 이상 들어갔을 테고, 안전성을 위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비용이 추가되었을 것이다. 같은 시기에 20배 가까이 성장하는 연어를 개발한 캐나다는 알은 물론이고 비늘 하나도 자연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3중 안전장치를 설치해야 했다. 그렇다고 유전자가 섞이는 배설물까지 걸러내는 건 아니다. 미꾸라지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 미꾸라지, 먹어도 안전할까.

 

대부분의 초국적기업은 수익이 보장되는 GMO를 연구 개발한다. 자기 회사에서 독점 판매하는 제초제에 저항성을 가진 GMO가 가장 많고 특정 해충이나 바이러스에 내성을 가진 GMO가 그 뒤를 따른다. 생산되는 농산물의 양이나 질을 개선하는 GMO는 거의 없다. 예를 들어, 미국계 초국적 화학회사인 ‘몬산토’는 자신이 독점 판매하는 비선택적 제초제 ‘라운드업’(‘Round Up’, 한국 상품명은 ‘근사미’)에 내성을 가진 GMO, 다시 말해 라운드업을 뿌려도 끄떡없게 준비(ready)된 콩이나 옥수수, 유채의 씨앗을 개발해 전 세계에 독점적으로 판다. 이름하여 ‘라운드업 레디’ 종자들이다.

 

끝 간 데 없이 동일한 품종의 씨앗을 획일적으로 심고 비행기로 농약과 화학비료를 살포하는 미국은 잡초를 그때그때 효과적으로 제거하지 못하면 손해가 크다. 그렇다고 비선택적 제초제인 라운드업을 뿌리면 잡초와 함께 콩도 옥수수도 유채도 죽겠지만 라운드업에 내성을 갖도록 유전자를 미리 조작했다면 농작물은 끄떡없을 것이다. 잡초에 빼앗길 비료와 수분을 독차지할 테니 수확량이 늘 것이고 제초제를 자주 살포하지 않아도 되니 영농비용도 줄 것이며 환경도 개선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해충 저항성과 바이러스 내성 GMO도 같은 논리를 앞세운다. 그렇다면 그런 GMO를 파종한 이후 제초제나 살충제와 같은 농약의 판매량이나 살포하는 횟수가 줄었을까.

 

잡초나 해충에 빼앗길 영양분을 농작물이 독차지한 까닭에 초기 적잖은 효과가 반짝 나타나기는 했지만 효과는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농작물이든 잡초든, 그 지역에 오래 전부터 자연스레 퍼져 살고 있는 모든 생물의 유전자는 그 환경에 최적으로 적응된 상태다. 따라서 그 생물의 생김생김이 가장 이상적이고 또한 경제적이다. GMO 씨앗으로 잠시 생산량이 늘어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대가는 쓰다. 질병이 많거나 기상이변에 약할 수 있다. GMO가 아니라 육종 지술이었지만, 줄기가 줄어든 만큼 알곡이 늘어났던 통일벼를 생각해보자. 맛이 없어 곧 외면되었지만 병충해에 약했고 바람에 쉬 쓰러졌으며 무엇보다 농가에서 무척 유용했던 짚을 사용할 수 없었다. GMO도 결국 마찬가지다.

 

 

3. 자연의 섭리에 어긋나는 GMO 약속

 

파란 카네이션은 있어도 파란 장미는 없었다. 하지만 꽃말은 있다. 파란 장미의 꽃말은 ‘불가능’이기에 전 세계의 내놓으라는 생명공학자들은 연구 의지를 불태웠다. 사실 호주 기술이 일본 자본의 지원으로 개발하기 전에 파란 카네이션도 세상에 없었다. 페튜니아의 파란색 유전자를 조작해 넣자 파래진 것인데, 파란 카네이션이 ‘문더스트’라는 상품명으로 비싸게 팔려나가면서 세계의 재주 있는 생명공학자들은 파란 장미 개발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우리나라에서 경쟁하던 한 생명공학자는 파란색이 꽃잎 뒤에 지저분하게 흩어진다고 고민하기도 했는데, 이번에도 일본 자본에 의해 호주 과학자가 파란 장미 개발의 선두를 차지했다. 페튜니아가 아니라 팬지의 유전자를 넣어 성과를 거둔 것인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파란색과 거리가 있다. 자주 빛이 도는 하늘색에 가까운 거다. 아직 파란 장미의 경쟁은 끝나지 않은 건가. 한데 개발회사의 이윤에 기여할 파란 장미는 인류의 복지와 거의 관계가 없다.

 

인류복지를 내세우는 GMO는 농산물에서 그치지 않는다. 장미와 카네이션에서 거듭 성공한 GMO는 하트무늬를 가진 백합까지 상상력을 넓힐 수 있겠다. 우리나라에도 있는 에사키뿔노린재는 등딱지에 노란색 하트무늬가 도드라진다. 어느 염색체에 몇 개나 있는지 아직 모를 테지만 만일 관련 유전자들을 모두 찾아 백합의 유전자 사이에 교묘하게 넣을 수 있다면? 노란 하트무늬가 선명한 순백의 백합을 기대할 수 있다. 밸런타인데이에 날개 돋치듯 팔릴 게 틀림없을 그 백합의 가격은 얼마나 될까. 개발회사는 거금을 벌어들일 거라 충분히 단꿈에 젖을 수 있을 것인데, 더 나아가 하트 무늬 앞에 영어 알파벳 대문자 아이(I)와 뒤에 유(U)가 놓인다면? 금상첨화일 테니, 부지런히 세계를 돌아다니며 그런 무늬를 가진 곤충을 뒤질 필요가 있겠다. 우리나라의 하늘소 종류 중에 비슷한 무늬를 가진 종류가 있긴 하다. 그 백합은 인류복지에 조금이나마 관계가 있으려나.

 

아들이 둘인 집은 통닭 한 마리를 놓고 번번이 싸운다. 아빠 몫으로 다리 하나 떼어놓은 엄마가 남은 하나의 몫을 착각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자기 차례로 확신하던 동생이 엄마가 형 앞으로 떼 주려하자 폭발하는 건데, 그런 현상은 우리나라만이 아닌 모양이다. 닭에 개 유전자를 넣어 날개가 다리로 바뀌게 만들어보겠다는 구상이 미국에서 나온 적 있다기에 이르는 말이다. 닭이 개처럼 뛰어다닐 날도 멀지 않은 셈인데, 이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는 속담은 사라질 것인가. 하지만 답답하다. 아이가 둘보다 많은 집도 많다. 비록 유전적 근연관계는 멀지만 더욱 발전된 과학기술에 기대야 하지 않겠나. 개보다 게 유전자를 조작해 넣으면 닭다리는 8개 확보할 수 있다. 성게 유전자는 어떤가. 다리가 훨씬 많으니 단체 급식용으로 유리할 것이다. 편의성을 따지자면 지네 유전자가 나을 텐데, 아무래도 지네에 닭 유전자를 넣는 편이 기술적으로 수월할지 모르겠다.

 

허르헉을 포기하는 우리 관광객을 생각해 몽골 요리사가 어떻게 냄새를 제거했는지 알 수 없는데, 거세해 냄새를 없애기보다 고기에서 입맛 당기게 하는 향기가 나도록 돼지의 유전자를 조작할 수 없을까. 메론 유전자를 넣는다면? 메론 소비량과 관계없이 돼지고기 생산량이 급증할지 모르지만 돼지는 자신의 유전적 정체성을 잃을 것이다. 유전적 정체성만 잃는 게 아닐지 모른다. 처하고 있는 환경에 적응되지 않은 유전자가 들어온 만큼, 돼지는 생존에 위협을 받을 수 있다. 쇠고기와 양고기, 어느 것이 세계 시장에서 더 인기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쇠가죽보다 털이 북슬북슬한 양가죽이 훨씬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는 점은 안다. 소에 양의 가죽 유전자를 넣으면 부가가치가 높은 양가죽에 쇠고기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실패했지만 그런 시도는 미국에서 있었던 모양인데 덕분에 어깆어깆 걷던 GMO 소는 죽지 못해 살아야 했다.

 

딸기우유만 먹는 아이가 있다. 슈퍼마켓에 딸기우유가 떨어지면 흰 우유에 토마토케첩이라도 넣어야 했던 엄마를 위한 배려였을지 알 수 없는데, GMO의 실용성을 설명하던 어떤 생명공학자는 딸기우유를 직접 생산하는 소를 개발할 수 있다는 청사진을 청중에게 늘어놓았다. 세상에서 생산되는 우유의 대부분을 사람이 독차지하고 있더라도 젖소는 오직 송아지를 위해 우유를 생산할 따름인데, 그 과학자는 젖소의 처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초식동물이므로 잘 익은 딸기를 마다할 리 없겠지만 송아지가 딸기우유를 막무가내로 좋아하지 않는 한 딸기우유를 생산할 리 없는 젖소가 그 과학자의 주장을 이해한다면 얼마나 어처구니없어 할까. 한데 그 과학자는 바닐라우유만 찾는 어른이나 찻집에서 초콜릿우유를 즐기는 고객이 꽤 많다는 점을 염두에 두지 않은 것 같다. 젖소의 유방이 4개이므로 흰 우유를 포함해 딸기우유, 바닐라우유, 초콜릿우유를 따로 쏟아내는 GMO 젖소를 개발할 궁리가 더 실용적이지 않았을까.

 

닭다리 놓고 아이들이 싸우는 게 보기 싫은 엄마는 통닭을 가끔 두 마리 씩 사거나 닭다리만 여러 개 구입하면 되는 일이다. 인간의 농담과 같은 욕심을 위해 동물의 본성을 왜곡하는 행위는 전혀 자연스럽지 않다. 돼지고기는 돼지고기다워야 하고 멜론은 멜론다워야 한다. 냄새 없는 허르헉을 몽골 관광지의 요리사가 찾았듯, 원하는 손님을 위해 멜론 향이 나는 돼지고기는 조리방법으로 찾아 메뉴에 추가하는 게 바람직하다. 매운 밥을 좋아하는 이는 고추장을 넣어 비벼먹으면 된다. 그런 이를 위해 고추 유전자를 쌀에 넣을 이유는 없다. 딸기우유처럼 황금쌀도 마찬가지다. 비타민A는 당근으로 보충하는 게 자연스럽다. 필요하다면 가난한 가정에 당근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법을 고려하는 복지행정이 더욱 인간적일 것이다.

 

생명공학자는 GMO의 기능을 업그레이드 하겠다고 포부를 밝힌다. 병원에 가지 않으려 하거나 병원이 먼 지역의 어린이를 위해 바나나를 먹어 소아마비 백신을 대신할 수 있는 시대를 열 것으로 장담하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과일의 본성을 왜곡시키지 말고, 맛있고 편리하게 먹을 수 있는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하는 편이 훨씬 자연스럽고 비용도 줄어들지 않을까. 농산물 고유의 맛과 향을 강화하는 방법의 연구는 육종으로 연구하는 편이 자연스럽다. 이마에 외뿔이 달린 말이 없듯 앞다리가 있는 닭도, 날개 달린 개도 없다. 파란 장미가 없어야 꽃말이 여전히 신비스럽다. 닭다리 놓고 싸우던 형제일수록 나중에 우애가 깊어지지 않을까. 그게 자연스러우므로.

 

우유는 모유보다 단백질이 많은 대신 두뇌의 기능을 활발하게 하는 성분은 모유에 비해 절대 부족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집안 어른들은 흔히 분유를 먹고 자란 아이는 덩치가 크고 모유를 먹은 아이는 또랑또랑하다고 말한다. 생명공학자들은 모유성분을 가진 젖소를 개발하려고 노력한다던데, 그러다 송아지의 눈매가 사람의 아기처럼 또랑또랑해져 새끼를 키우는 암소들이 당황해할지 모르겠다. 한데 정작 당황해 할 일은 사람 사이에서 벌어질 가능성이 더 높다. 피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생명공학자도 있다.

 

최근 생명공학은 사람의 유전자 지도를 맹렬하게 그리는 중이다. 사람의 어느 염색체에 무슨 기능을 하는 유전자가 어떤 순서로 배열돼 있는지 파악한 생명공학은 GMO 기술을 어디로 향하고 싶어 할까. 유방암 유전자를 분리해내는 기술은 치매 유전자를 비롯해 각종 질병과 관계하는 유전자를 찾아 치료하겠다고 나설 게 틀림없다. 수정란 단계에서 질병을 예고하는 유전자를 큰돈을 들여 건강한 유전자로 치환하려 들 텐데, 심각한 문제는 거기에서 출발할 것이다. 사람의 수명이 계층에 따라 크게 차이가 벌어질 이후에 발생할 치명적 갈등과 사회병리적인 현상보다 더 걱정스러운 건 따로 있다. 유전자 치환 기술을 외모에 대한 성형이나 지능과 체력향상 들에 집중 적용할 다음에 벌어질 인간사회의 유전적 획일성이다. 유전자가 단순해질수록 환경변화에 매우 취약하다는 점, 인간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우수한 유전자는 현재 환경에 적응된 유전자다. 지구온난화가 심화되는 세상에서 앞으로 환경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데, 자연의 섭리에 어긋나는 GMO 약속은 내일을 불안하게 할 따름이다. (사이언스올, 2009년 5월 3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