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8. 8. 22:10

 

현재와 같은 추세로 아이를 적게 낳는다면 2350년 쯤 우리의 인구는 500만에 그칠 것으로 예측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인구가 줄면 군인의 수도 줄어들 테니 방위력이 감소한다며, 역사적으로 인구가 드문 국가가 주변국에 흡수된 사례가 많다는 걸 부각하는 주장도 눈의 띈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만큼 인구는 아직은 늘어나지만 젊은 부부의 평균 출산율이 터무니없이 낮아지면서 줄어들기 시작해 340년 지나면 국가의 존립이 불가능할 지경으로 위축될 것으로 예측한 1차함수다.

 

인구 규모가 작은 국가를 주변국이 병합한 역사도 있고, 잘 공존한 역사도 많을 텐데, 앞으로 340년 뒤 주변국의 인구는 어떻게 될까. 그들의 출산율을 고려한다면 역시 크게 줄지 않을까. 여성의 마라톤 기록단축 속도가 남성보다 훨씬 빠르다는데, 그렇다면 얼마 못가 여성이 남성 기록을 앞설까. 그런 1차함수는 희망사항 축에도 못 낀다. 선수층이 두터워지고 기록이 한계에 다다를수록 경신은 어려워진다. 인구도 마찬가지다. 환경이 윤택하고 풍요로워지면 인구는 적정수준까지 자연스레 늘어난다. 물론 반대의 경우는 줄어들겠지. 역사를 들먹일 필요 없이, 사람을 포함한 지구촌 모든 동식물과 미생물이 그랬고, 앞으로도 예외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인구를 새삼 문제 삼는 건 저출산에 이은 ‘고령사회’가 가깝기 때문이란다. 가임여성 일인 당 아이를 1.13명 낳는 추세가 이어지면 2050년에 65세 인구가 전체의 38퍼센트에 달해 ‘생산인구’가 턱없이 부족해진다는 거다. 젊은이의 수입이 노인 부양에 다 들어가므로 14세부터 65세에 해당하는 생산인구를 늘려야하는데 그를 위해 이 땅의 가임여성은 아이를 부지런히 낳아야한다고 정부는 주장한다. 그를 반영하여 보건복지부에서 지원하는 모자보건학회는 123캠페인을 전개한다. 결혼 1년 만에 아이를 갖고 2명의 아이를 30세 이전에 낳자는 거다. 그러자면 적어도 만 27세 이전에 결혼해야 할 텐데, 서울시 평균 여성 초혼 연령은 29.3세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부터 여성은 자신의 꿈과 이상을 포기해야 하는 사회에서 결혼이 늦어지는 건 아주 자연스럽다. 자신을 위해 희생한 부모를 믿고 열심히 학교에서 공부한 여성이라면 자신의 뜻을 십분 이해하고 적극 지원할 배우자를 만나 결혼해야 온당하고 육아에 대한 합의가 있은 뒤 아이를 낳아야 옳다. 그러자면 결혼과 아이가 늦는 건 당연하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사회의 건전한 일원으로 활동하는 것을 전제로 경쟁이 치열한 제도권 교육이 길게 이루어지는 우리나라에서 123캠페인은 지켜질 가능성은 애당초 없고 사실 바람직하지도 않다.

 

모자보건학회의 캠페인에 대항하는 여성계의 ‘1234’ 경구를 보자. “결혼 1년 이내에 아이를 갖고 2명의 아이를 30세 이전에 낳는 여성의 가정은 40세 이전에 파산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아닌가. 기저귀찰 때부터 경쟁이 시작되는 사회에서 자식을 해외 언어연수나 유학 보내지 않는 부모는 불안하다. 도태되지 않도록 아이에 들어가는 비용이 도대체 얼만데 어찌 둘을 낳을 수 있겠는가. 요즘의 세태를 방종한 정부는 시민들이 서로 감시하게 만든 ‘학파라치’ 말고 이렇다 할 사교육 대책을 마련하지 않더니 자급자족 농경사회도 아닌데 “아이는 제 먹을 걸 가지고 태어난다!”는 무책임을 남발하면서 저출산의 책임을 여성에게 덮어씌운다.

 

20대의 태반이 백수인 ‘이태백’에서 90퍼센트가 백수라는 ‘이구백’으로 악화된 마당에 기존 생산인구의 일자리는 안정되어 있다던가. ‘노동유연화’라는 미명으로 늘어난 비정규직의 일자리도 불안해진 세상에서 아이를 더 낳으라니. 경륜이 사장된 노동자들이 길거리에 방치되는 사태는 개선될 기미조차 없는데, 출산장려금 조금 쥐어주며 생산인구를 늘리라는 요구는 무책임을 넘어 사기행각에 가깝다. 그런 사탕발림으로 더 태어난 아이의 내일을 정부는 조금이라도 생각한 걸까. 짐짓 노인 부양을 핑계 삼지만, 65세 넘은 노인은 힘도 경륜도 거의 그대로인데, 그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지하철 경로우대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일을 놓아야 한다는 겐가.

 

기실 정부는 세금이 줄어드는 걸 걱정하는 건지 모른다. 나가는 돈이 더 많아지면서 연기금들이 바닥날까 두려워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노인복지 예산도 줄겠지만 공무원 자리도 줄어들게 틀림없다. 어떤 지방은 통폐합이 두려워 주민등록 이전과 출산에 거액의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던데, 결국 시민이나 후손의 행복보다 공무원의 자리보전을 더 생각한 행정이 아니던가. 더 있다. 생산인구를 강조하는 걸 보니, 생산인구를 싼 값으로 고용해야 이윤이 나오는 기업의 이해와 무관하지 않는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실제로 저출산 위기를 부각하며 아이 더 낳을 정책을 정부에 요구하는 곳은 대기업이고 그들에게 연구비를 받는 교수와 연구자들이다. 대개 ‘철밥통’이다.

 

아이를 더 낳으라는 분위기가 팽배한 이즈음의 우리 인구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를 넘어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던 시절보다 훨씬 많다. 그 사이 식량자급률은 형편없이 떨어져 쌀을 포함해도 식량의 4분의3을 수입해야 한다. 쌀을 포함하면 고작 5퍼센트만을 내 땅에서 자급할 뿐인데, 누구의 이익을 고려하려는 건지 농경지만 보이면 아파트를 짓고 신도시를 만든다. 우리보다 고령화가 일찍 시작된 유럽과 일본은 주택이 남아돌기 시작했다고 한다. 양가부모가 넘겨주지 않던가. 이미 주택보급률이 100퍼센트를 넘은 우리는 아직도 공급부족이라던데, 주택통계는 누가 내나. 분명한 건 소비자는 아니라는 사실인데, 중요한 것은 세계 곡창지대의 여건이 전 같지 않다는 점이다.

 

육상에서 흘러내린 오염물질을 정화할 뿐 아니라 지구상 어느 곳보다 활발한 탄소동화작용이 이루어지는 갯벌은 지구온난화를 예방하면서도 막대한 먹을거리를 내주는 천혜의 생태공간이다. 그런 갯벌을 매립하는데 앞장서 온 정부는 이제 4대강마저 질식사시키려 든다. 지구온난화는 해수면을 상승시켜 지구촌의 곡창지대를 못 쓰게 만들고, 사막이 늘어나는 만큼 농경지의 표토가 유실되며 에너지는 머지않아 바닥을 드러낼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세계 인구는 곧 70억 명을 돌파할 거라는데 농토를 파괴해온 정부는 아이를 더 낳아야 한다고 엄한 여성에게 닦달한다. 기득권의 이익을 위해 내일을 저당잡자는 겐가.

 

이런 상황에서 저출산은 오히려 기회다.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연착륙의 마지막 기회다. 아직 여유가 있을 때 노인들의 일자리를 보전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청장년이 자신의 일자리를 스스로 찾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내 땅에서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서둘러 준비해야 한다는 점이다. 자급할 수 있는 농토를 확보하기 위해 갯벌을 되살리고 골프장을 경작지로 활용하는 연구도 진행해야 하고, 남은 인구들은 건강한 내일을 위해 공동체와 땅을 살리는데 적극 참여해야 한다. (작은책, 2009년 11월호)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