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11. 3. 23:46

 

이번 여름, 서해안 피서지는 해파리로 몸살을 앓았다. 한결 따뜻해진 해류를 타고 들어온 무게 1톤 날개 2미터의 노무라입깃해파리만이 아니다. 멸치어장의 그물을 대신 차지한 크고 작은 해파리들은 멀지 않은 과거에 볼 수 없었다. 피해자는 어민에서 그치지 않았다. 해수욕장까지 파고드는 해파리가 젊은 여성의 다리를 볼썽사납게 휘감자 피서객들이 해수욕을 기피하게 되었고, 김장철을 앞둔 주부들은 멸치젓의 가격을 걱정해야 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아열대 지역의 해파리가 우리 해역에 출몰하는 원인으로 지구온난화를 꼽았다. 내년이 걱정이다. 지구온난화 속도가 좀처럼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올해보다 시원해지지 않는다면 피해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지 않은가. 이 와중에도 정부나 시민, 어부나 농부, 모두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하다. 우리 해역으로 들어오는 해파리는 앞으로도 많은 그물을 선점해 어획고를 위축시키겠지만, 해양학자들은 그 해파리들이 아예 우리 바다에서 번식할 가능성을 주목한다. 유생이 바위에 붙지 못하면 성체로 성장할 수 없는 해파리는 서해안의 갯벌이 보전되어 있다면 부착할 곳을 찾지 못하니 줄어들겠지만 시방 우리 서해안에서 갯벌은 전 같지 않다. 해파리들은 갯벌을 메운 자리에 높게 올린 제방에 부착할 거로 학자들은 경고한다. 게다가 서해안 곳곳에 자리하는 화력발전소와 핵발전소마다 터빈을 식힌 막대한 온배수를 연실 배출하면서 수온을 경쟁적으로 높이지 않던가.

 

호주나 남아프리카 연안에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무게가 300킬로그램에 몸길이가 5미터에 달하는 초대형 가오리가 잡히더니 아열대 해역에 분포하는 보라문어가 동해안의 그물에 걸리는 일이 작년과 올해 거푸 발생했다. 소화기관을 해부해 조사한 연구원은 따뜻해진 동해안으로 먹이를 따라온 것으로 추측했다. 올해 초에는 동해안에서 예년의 배가 넘는 복어가 잡혔다. 독성이 매우 강해 먹을 수 없는 ‘돌돔’으로 추정하는 전문가는 역시 따뜻한 바다에 분포하는 먹이의 이동을 따라 들어왔을 것으로 분석한다. 전에 없었던 현상이다.

 

그뿐이 아니다. 미역과 다시마, 모자반을 비롯한 온갖 해조류가 너울너울 춤을 추고 수많은 산호가 울긋불긋하던 바다가 하얀 바위만 드러낸 채 사막처럼 버림받는 섬뜩한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학자들이 ‘갯녹음’이라고 말하는 ‘백화현상’이다. 바다가 따뜻해지면서 늘어나는 미생물이 원인이라고 학자들은 지목하는데, 백화현상의 원인은 물론 지구온난화지만 사람의 욕심도 한몫했다. 과밀하게 양식하는 전복과 성게의 먹이를 위해 미역과 다시마를 마구잡이로 뜯어내자 햇볕을 차단하지 못하는 바다는 더욱 뜨거워졌고, 발전소가 내놓는 막대한 온배수로 인해 여름이 지나도록 수온이 떨어지지 않자 미역과 다시마가 뿌리를 제때 내릴 수 없게 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양식장을 빠져나온 전복과 성게가 얼마 안 되는 미역과 다시마마저 먹어치우니 백화현상을 일으키는 미생물이 극성을 부리게 되었다는 게 아닌가. 바다의 생태계는 그 결과 절망스럽게 황폐화될 수밖에 없었다는 거다.

 

그 상황에서 화물선을 따라 우리 바다에 들어온 아무르불가사리는 해조류를 잃은 바닥에서 몸을 피하지 못하는 성게를 쉬 잡아먹으며 개체수를 늘렸고, 엉겁결에 어부의 그물에 걸려들었다. 어부들은 아무르불가사리를 백화현상의 주범으로 오인하지만 그물에 걸렸다 선창가에서 맥없이 말라죽어가는 아무르불가사리는 성게의 천적인 돌돔을 남획한 어부들은 원망해야 할지 모른다. 돌돔이 줄자 성게 늘었고, 늘어난 성계가 해조류를 마구 먹어치우자 바다가 뜨거워졌으며, 백화현상이 가속되면서 어획고가 고갈되지 않았던가.

 

우리 바다에서 우울한 소식만 전해지는 건 아니다. 더워진 우리 바다의 로또, 다시 말해 참치가 떼로 잡히는 일이 간혹 벌어지고, 동해와 서해안에 고등어를 비롯해 오징어와 멸치가 전에 없이 풍년이라고 어부들이 환호한다고 한다. 한데 그런 호사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잠시 혼란스러워진 우리의 해양 생태계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라면? 이후의 대안은 점치기 어려워진다. 인공어초를 집어넣고 치어를 아무리 방생해도 먹이사슬에 치명적 변화가 생긴 바다는 생태계를 회복하는데 오래 걸릴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음식문화는 여전히 보수적이기만 하다. 노무라입깃해파리나 보라문어를 먹으려 들지 않는다.

 

바다가 먼저 아열대화 되었지만 육지의 온난화도 만만치 않다. 대나무와 감의 북방한계선이 나날이 올라가면서 사과 재배지도 강원도까지 북상했다. 1997년과 2007년의 농작물 재배 면적을 조사한 농촌진흥청은 전통적으로 제주도와 남도에 많았던 감이 중부지방으로 확산되고 사과와 포도와 배 재배 지역이 점차 경기도와 강원도 일원으로 옮겨가는 현상을 주목했다. ‘경북 능금’은 옛말이 되어 가는데, 과일 만이 아니다. 밀과 보리의 재배 지역도 점차 북상하고 있으며 감자와 녹차 역시 마찬가지 현상을 보인다. 학자들은 기온 상승과 더불어 강수량 증가를 그 원인으로 분석하는데, 강수량 증가의 원인은 기온 상승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전통 농작물의 재배지가 북상하는 과정이 순조로운 건 물론 아니다. 새로 재배하는 지역이나 여전히 철수하지 않은 지역 모두 전에 없던 병충해로 시달린다. 온난화된 기후로 인해 면역력이 약해진 농작물에 해충은 늘어나는데 살상가상으로 중국에서 기원하는 병해충까지 몰려오는 일이 빈발한다. 생태계의 오랜 조화가 무너졌기 때문일 텐데, 다행이라 해야 하나. 농촌진흥청은 높은 온도에도 잘 견디는 품종의 보급을 연구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벼와 옥수수, 사과와 배처럼 우리 농토에 심어오는 농작물과 과일도 있지만 외래 과일인 참다래도 연구 대상에 들어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지구온난화 시대를 앞두고 이채롭다 여길 수만은 없다. 천진난만한 희망사항으로 그칠 공산이 크다.

 

전통 농작물과 과일의 재배 면적이 줄어드는 전라남도는 새로운 작물의 발굴에 심혈을 기울인다는데, 그 대상도 망고와 파파야와 같은 열대과일이다. 이미 재배하고 있는 참다래와 무화과도 추워 걱정이 없어지는 만큼 경작지를 넓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면서 시험 재배 후에 구아바와 블루베리의 경작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는데, 한결같이 농가 소득의 증대를 목적으로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온난화되는 기후는 예측 가능하지 않다. 보일러를 가동하면 방이 조금씩 따뜻해지듯 재배 환경의 변화가 서서히 진행되는 건 아니다. 이미 해마다 경험하듯, 그 과정에서 종잡을 수 없는 기상이변이 거듭될 텐데, 기상이변은 외래 농작물에 특히 치명적이지 않던가. 한데 자신이 먹어오던 음식의 종류를 갑자기 바꾸고 싶지 않을 게 분명한 연구자들이 내 고장 음식문화의 보수적 측면을 먼저 염두에 두지 않는 것 같으니 씁쓸하기 짝이 없다. (사이언스올, 2009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