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09. 11. 13. 01:36

 

올해 단풍이 유난히 붉고 아름다웠다. 강원도 높은 산부터 붉게 물들이던 단풍이 남도로 이어지며 절정을 이뤘다. 계절이 순조로웠기 때문이라고 기상 전문가는 풀이했다. 겨울은 더 두고 보아야겠지만 올 봄과 여름도 가을처럼 계절다웠다. 봄엔 따뜻했고 무더웠던 복을 지나 특별한 이상기후도 없었다. 실로 오랜만에 만난 계절다운 계절의 연속이었다.

 

작년 이맘 때 우리 가을은 늦여름처럼 더웠다. 늦더위가 11월까지 계속 이어졌다. 그러자 남동산업단지의 유수지에 구더기가 들끓었고 그 구더기를 먹은 철새들이 연쇄적으로 죽어가는 사태가 발생했다. 썩은 유수지에 발생하는 구더기도 찬바람이 돌면 없어져야 정상인데 철새가 날아오도록 이어졌고,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시베리아 인근에서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온 겨울철새들은 전처럼 갯벌 주변의 습지에 허기진 상태에서 내려앉았을 텐데 반가운 마음으로 구더기들을 허겁지겁 먹었을 것이다. 한데 그 구더기가 보툴리누스균에 오염되었을 줄이야.

 

보툴리즘 독소에 마취된 꼼짝도 못하는 철새가 죽어갈 때 옆구리를 뚫고 썩은 물로 흘러나가던 구더기는 연쇄반응을 일으켰다. 내려앉은 철새를 하늘에서 보고 반갑게 내려온 철새들이 그 구더기를 신나게 먹은 뒤 연거푸 죽어나가는 일이 이어진 것이다. 자원봉사 점수를 원하는 중고등학생을 위해 여는 환경단체의 바깥 행사는 보통 수업이 없는 토요일을 고르는 게 보통이지만 작년 이맘때 환경단체는 마음이 급했다. 철새의 죽음이 이어지는 걸 차마 볼 수 없었기에 수업을 있는 토요일에 철새 구조작업에 돌입했고, 그날 추적추적 내리는 차가운 가을비를 맞으며 죽은 철새를 걷어내고 속절없이 죽어가는 철새들을 구조했으며 구더기를 먹지 못하게 소리소리 질렀던 청소년들은 자연의 생명가치에 대한 연민의 정과 함께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아직까지 올해의 계절은 순조롭다. 도시의 가을도 아름답게 지나갔다. 새벽까지 내린 비가 말끔하게 갠 어느 오전, 평상시처럼 집에서 일찍 나와 인적이 드문 보행자도로를 따라 지하철 몇 정거장을 걷는데, 문득 도로를 덮은 가로수 낙엽들이 다채롭다는 걸 느꼈다. 느티나무와 포플러, 은행나무와 회화나무, 아파트단지 둔덕에 심은 소나무와 잣나무에서 떨어진 낙엽들과 사이사이의 무궁화 낙엽이 흩어져 푹신하게 밟히는 보행자도로는 멀리까지 한 폭의 가을 그림을 펼치고 있지 않던가. 막 개기 시작한 파란 하늘은 양떼구름을 연출해 누구라도 지나가는 이가 있다면 함께 감상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실로 모처럼 도시에서 새하얗게 뭉친 구름을 보았던 거다.

 

가을비가 내리면 보통 추워지기 마련인데, 그날은 따스했다. 그런 날씨가 사나흘 이어진다면 철모르는 개나리가 노란 꽃잎을 몇 개 펼칠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꽃눈은 겨울을 맞을 것이다. 비 내린 뒤에도 따뜻했던 그 가을 날씨가 기상이변으로 생각할 정도는 아니었다. 가을이 깊어진다고 빗물이 낮은 곳으로 흘러나가듯 수은주를 일방적으로 내리기만 하는 건 아니다. 해안에서 바닷물이 하루에 두 번 밀거나 썰 때처럼 아침저녁 내려갔다 오후에 오르던 수은주는 어떤 날은 더 떨어지고 어떤 날은 덜 떨어지며 겨울로 접어들 게다. 삼라만상의 생명들은 계절의 유연한 변화에 이미 적응되어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얇은 옷을 가방에 하나 더 챙겨 넣고 낙엽 푹신한 보행자도로를 걸었던 나도 물론이고.

 

어느 해 가을이었을 거다. 강원도를 지나는 고속도로 휴게소였는데, 삼삼오오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주전부리를 입에 넣으려고 애를 쓸 때 문득 하늘에 걸린 뭉게구름이 눈에 띄게 푹신하다는 걸 느꼈고, 하늘을 대고 정신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내 행동을 재미있게 보는 일행에게 이제 저런 뭉게구름을 볼 날이 얼마 없을 거라 말했는데, 비 개인 가을철 강원도로 갈 일이 없어서 그런지 그때처럼 푹신한 뭉게구름은 본 적이 없다. 사실 가을이 무르익던 날 문득 보았던 양떼구름 사이의 파란 하늘은 예전과 사뭇 달랐다. 우리 하늘을 언제는 깊은 바닷물처럼 코발트빛이라고 했는데, 그날은 코발트가 아니었다. 그저 빛바랜 파랑이었다. 그나마 가장자리에 붉은 기운을 머금은. 간밤에 내린 비 정도로 도시의 찌든 매연을 모두 몰아내지 못한 것이리라.

 

깊게 파란 하늘은 2월 스페인과 독일에서 보았다. 울울창창했던 숲을 15세기 대항해 시절 모두 잘라낸 스페인의 바닷가는 1년에 비가 몇 차례 내리지 않는다고 한다. 눈이 부신 지중해의 햇살은 따사로운 2월에도 집집마다 창을 닫게 만들었는데, 낮은 지붕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어릴 적 가을걷이 마친 주안의 들판에서 가오리연 날리며 보던 하늘과 색이 같았다. 루루 지방의 오염 때문에 덴마크와 스웨덴의 호수가 더러워질 지경이었다는 독일의 하늘도 진하게 파랬다. 펜대를 올리면 파란 잉크가 고일 것처럼. 애국가 3절에 나오는 우리의 하늘이 왜 스페인과 독일에 와있는지 약이 올랐다. 자동차도 많고 공업단지도 큰 그네들은 언제 우리 하늘을 가지고 간 거지. 언제 바꿔친 거지.

 

높은 건물을 결코 자랑하지 않는 그네들은 자동차는 물론 공장의 굴뚝을 철저하게 단속한다고 들었다. 우리도 많이 나아졌다지만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 영흥도로 가려고 시화방조제를 건널 때 오른편 차창을 보면 인천의 하늘이, 왼편 차창을 보면 화성 쪽의 하늘이 보인다. 시커먼 하늘 아래 썩은 이빨처럼 삐죽삐죽 아파트가 솟은 곳이 연수구고 나는 거기에 산다. 한데 화성의 하늘은 그나마 파랗다. 맑은 날 김포공항 하늘 위에서 창문을 열고 먼저 내리는 비행기를 보라. 시커먼 공기층으로 자맥질한다. 저기로 가면 폐가 남아날 것 같지 않은데 곧 내가 탄 비행기도 바퀴를 내린다.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다.

 

정말 아무렇지 않은 걸까. 독일에서 보름 정도 있다 돌아오니 남동산업단지를 옆에 둔 연수구의 공기에서 뭔가 설명하기 어려운 냄새가 난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주변 냄새에 금방 익숙해지는 코는 며칠 지나지 않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낼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진정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닐 텐데 아무렇지 않은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사람의 신체는 다소 유연하므로 충분히 이겨내기 때문이라기보다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개구리처럼 모르고 지나가는 건 아닐까. 공기뿐이 아니다. 파리도 외면하는 농약 묻은 포도를 즐겨먹고, 구더기를 죽일 정도로 강한 독성이 남은 밀가루로 과자를 만들어 먹는 우리 인간은 자신의 몸이 축나고 있다는 사실을 여간해서 깨닫지 못한다.

 

고맙게도 계절은 또 이어진다. 가끔이던 기상이변이 일상으로 반복돼도 겨울은 가을보다 춥고 여름은 봄보다 더울 것이다. 사람의 지나친 개발로 지구가 연실 더워지지만 아직 감내할 범위 내에 있다. 우리의 몸에 그 정도 유연성은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계속 견뎌낼 수 있을까. 아토피와 조류독감은 이제 자연스러웠던 시절로 돌아가라고 거듭 경고하는데, 인간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4대강은 막히고 갯벌은 메워지며 땅은 인간이 살포하는 독약으로 죽어가는데 하늘은 더럽기 짝이 없다. 도로와 골프장으로 생태계의 뭇 생명가치들은 자취를 감추는데 텔레비전 오락물에 정신이 빼앗긴 사람은 통 하늘을 볼 줄 모른다.

 

무던한 자연은 고맙게도 인간에게 기회를 뉘우칠 여전히 준다. 아직까지는 그런데 언제까지 인내해줄 것인지. 계절이 계절다울 때, 생태계가 살아 있기에 자연스러웠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직 돌이킬 수 있을 시간이 남았을지 모르나 그 순간은 그리 충분해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자신의 폐쇄된 공간에서 당장 일에 치어 살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라도 가끔은 하늘과 땅과 생태계의 어제와 오늘을 바라볼 수 있는 ‘환경의 창’을 내주길 바란다. 생태계에서 태어난 사람도 생태계의 일원일 때 가장 건강하므로. 그건 우리의 자식들도 마찬가지이므로. 벌써 12월이 다 지나간다. 곧 찬 바람이 불겠지. (인천in, 2009년 12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