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11. 18. 12:04

 

날씨가 춥다. 겨울이라 그렇다지만 삼라만상의 생물은 기온이 갑자기 내려갔을 때 특히 춥게 느껴진다. 열대지방에서 건너온 동물이 이런 겨울에도 동물원 바깥을 서성일 수 있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물기가 많은 곳에 뿌리내리는 버드나무가 매서운 추위에 얼지 않는 것은 온도가 서서히 바뀌기 때문이다. 사람도 온도가 갑자기 변할 때 병이 도진다. 환절기에 부고장이 많이 날아오는 이유가 거기에 있을 것이다.

 

이른 봄 두툼한 얼음을 깨고 잡은 개구리를 갑자기 따뜻한 물에 넣으면 거의 죽는다. 미처 모미 대비할 수 없기 때문인데, 여름철이라면 대부분 튀어나갈 것이다. 물론 아주 어리거나 늙어 기력이 빠진 개구리는 미처 빠져나가지 못하고 죽을 수 있다. 한데 수온을 서서히 올린다면 어떻게 될까. 기력과 관계없이 아주 민감한 녀석을 제외한 대부분은 따뜻해지는 수온에 차차 길들여지다 혼미해진 채 결국 죽고 말 것이다. 더운 여름 기진맥진한 채 축 늘어지는 동물원의 북극곰이나, 햇살 비추는 곳에 꼼짝 않고 몰려있는 겨울철의 아프리카 동물들이 대개 그렇다. 다시 계절이 바뀌지 않는다면 견디기 어려워질 게 틀림없다.

 

2003년 유럽의 지독한 여름 더위로 희생된 3만 명 가까운 목숨들은 주로 에어컨이 없는 계층의 노약자였다. 한데 서서히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온난화되는 요즘, 어느 순간부터 노약자의 희생이 시작되겠지만 결국 희생자의 폭은 확대될 것이다. 문제는 서서히 바꿔 익숙해진 환경은 그만큼 돌이키기 어렵다는 점이다. 겨울에 덥고 여름에 추운 에너지 과소비형 생활습관을 고치지 못하는 건 시민들만이 아니다. 기업과 정부도 멀지 않았던 과거로 돌아가길 한사코 거부한다. 그래서 그런가. 온난화는 온실가스 증가보다 지구 자전축 변화 때문이라는 전문가의 주장이 이따금 제기돼 석유산업체가 열광한다. 하지만 그런 연구는 대개 편협한 자료를 근거로 작성되었다는 게 나중에 밝혀지곤 한다.

 

지난 해 11월 17일, 대통령이 주제한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정부는 2020년의 온실가스 배출을 2005년 기준으로 4퍼센트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유엔 산하 ‘정부 간 기후변화위원회(IPCC)’에서 개발도상국에 권고한 감축 범위의 최고 수준이다. “저탄소 녹색성장은 정부 정책과 산업기술만으로는 달성될 수 없으며, 소비와 교통생활에서 의식주 전반에 이르기까지 녹색생활, 녹색습관이 정착돼야 가능하다”고 강조한 대통령은 “정부ㆍ기업ㆍ국민이 삼위일체가 돼 달라”고 당부하면서 ‘선진국형 발상의 전환’을 선언한 날이므로 “역사적인 날”로 규정했다는데, 그에 발맞춰 정부는 올해부터 부문 별 구체적인 실천 목표를 정해 관리해나갈 것을 천명한 바 있다.

 

“적극적인 온실가스의 감축을 통해 첫째, 선진 각국의 탄소무역장벽에 대비하고 둘째, 유가변동에 취약한 에너지 패러다임을 바꿔 국가의 에너지 안보를 높이면서 셋째, 세계적으로 급팽창하고 있는 녹색시장을 선점할 것”을 주문한 대통령은 청와대 회의장의 온도를 19도로 낮추고 내복과 조끼를 입었다고 밝히자, 여권에서 소신 있는 학자 출신이라는 소문이 자자한 국무총리를 비롯해 내각 모두 내복을 입었다고 화답했다는데, 불편함을 감수한 훈훈한 자들의 내복입기가 얼마나 지속될지 두고 볼 일이다. 집과 사무실과 승용차가 바깥 날씨와 관계없이 겨울에 덥고 여름에 춥지 않던가. 그래도 연탄 값은 이번 겨울 들어서 크게 올랐다. 4대강 예산 때문에 정부 보조금이 줄었기 때문이라는 의구심은 소용없으니 내복을 껴입을 수밖에.

 

도대체 지구온난화가 얼마나 걱정스럽기에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에 발벗는 모습을 연출해야 했을까. 현재까지 농축된 온실가스 만으로 어느 정도의 온난화는 피할 수 없다는데, 인류가 견딜 수준을 찾는 시나리오는 지금보다 섭씨 2.4도 상승하는데 그치길 원한다. 그때 북극해는 물론 그린란드 빙하까지 녹아 태평양의 도서 국가를 비롯해 지구촌 해안 저지대가 해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견하고 산호초와 더불어 생물종의 3분의1이 절멸할 거로 전망한다. 3.4도가 오르면 아마존 열대우림과 미국의 농토가 사막으로 바뀌고 아프리카는 버림받을 거로 예상하는데,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은 시베리아 동토가 녹으면 발생할 것으로 전망한다. 막대한 메탄가스와 이산화탄소의 방출하면 6.4도 이상을 오르는 걸 막을 수 없어 극지방 이외의 생물이 절종한다는 건데, 앞으로 10년 이내에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100년 이내에 비극이 시작될 수 있다는 거다. 벌써 3년 전에 나온 경고다.

 

이런 판국에 우리 산업계의 하소연은 한가롭기 짝이 없다. “원가 부담으로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면서 정부에 산업계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제도를 요구했고 정부는 국제 경쟁력이 저하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감축량을 배분하겠다고 화답했다고 언론은 전한다. 결국 흐지부지될 공산이 크다 하겠는데, 예상한 대로 환경단체는 정부의 자세를 환영하면서도 감축 목표가 초라하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개발도상국이라고 강변하지만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세계 9위 수준이고 누적 배출량은 22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위상과 책임에 맞게 “2005년 대비 2020년에는 25% 정도는 줄여야 합당하다”고 환경단체들은 이구동성으로 주장했다는 것이다. 벌써부터 해외 공장 이전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우리 산업계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키 크고 용모가 고운 우리 여대생들이 ‘방송에 출연해 키가 작은 남자는 외모가 중시되는 현대 사회에서 패배자이고, 남 보기 창피해 그들과 사귈 생각이 조금도 없다’는 주장을 서슴지 않아 작년 가을 인터넷 공간은 한동안 시끄러웠다. 1960년대 인기 있던 남성4중창단은 “사랑을 하면 못생긴 아가씨도 예뻐진다”고 노래했고 1980년대 말 한 인기가수도 ‘그대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꿈속으로 찾아가고 싶다’고 했다. 젊은 시절의 외모는 한시적이다. 충분히 이해하며 서로 배려하던 시절은 어느새 전설이 되었는가. 소형차를 몰고 데이트 나오는 애는 딱 질색이라는 목소리가 젊음을 지배하는 외모지상주의 시대의 풍토는 과연 온실가스 감축에 얼마나 능동적일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2년 전 대표적 전자상가 밀집 지역인 일본 동경의 아키하바라에서 백주에 묻지마 살인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 충격은 살인 자체보다 피를 흘리며 쓰러진 이를 피해 지나가는 이들의 무관심에서 비롯되었다. 일본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연탄값 상승보다 종합부동산세 인하에 관심이 높은 이들의 과소비가 진정되지 않는다면, 온실가스 배출 규제가 없는 국가로 공장을 옮기려는 자세를 반성하지 않는다면, 강부자 정권의 선언은 공염불로 그칠 것이다. 자신의 행동이 연탄값 걱정하는 시민, 해수면 아래 가라앉을 태평양의 작은 국가, 멸종되는 생물종을 먼저 생각해서 우러나오지 않는다면, 내 자식의 내일이 더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다. 품격이나 경쟁력부터 앞세우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내복입기보다 훨씬 어려울 것 같다. (작은책, 2010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