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12. 1. 21:06

 

물리학자들은 변수가 많아도 그걸 모두 염두에 두고 결과를 계산할 능력이 있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많은 이들이 20세기 물리학자의 최고봉이라는데 생각을 일치하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꿀벌이 사라지면 사람은 4년을 버티기 어렵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 근거가 궁금한데, 분명한 것은 사람이 먹는 수많은 과일과 채소들은 꿀벌이 꽃가루를 암술에 묻혀주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언제부터인지 우리에게 낯익은 견과일이 된 아몬드. 대부분 미국의 캘리포니아에서 생산하는 그 아몬드가 일종의 살구 씨라고? 하긴 오돌토돌한 모습이 살구 씨와 비슷하기는 하다. 3월 말이면 살구나무는 배드민턴공의 날개처럼 퍼진 가는 가지마다 연분홍빛이 감도는 꽃을 가득 피워내는데, 그 화사한 꽃들은 꿀벌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꿀벌이 찾아와야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일 텐데, 꿀벌을 기다리는 건 살구나무의 꽃만은 아니다. 복숭아도 사과와 배도도 꿀벌이 없으면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한데 캘리포니아는 얼마나 많은 아몬드나무를 심었기에 우리나라에도 그렇게 많은 아몬드를 수출할 수 있을까. 열매 하나에 겨우 아몬드 하나 나올 텐데.

 

젊은 시절의 신사임당이 아름다운 꽃 그림을 보고 벌과 나비가 없어 향기를 느낄 수 없다고 말했다던가. 꿀벌과 꽃의 관계는 그들이 진화한 이래 지금까지 계속되었고 앞으로 변함없을 텐데, 꿀벌이 급속히 사라진다는 소식이 들린다. 미국과 유럽발 외신은 꿀벌이 예년에 비해 70퍼센트 이상 줄었다고 전하는데, 우리나라도 전 같지 않다고 한다. 한 신문은 사람이 벌을 대신해 과수원에서 붓으로 일일이 가루수정을 하는 사진을 내보냈다. 벌이 드물어졌기 때문이라는 건조한 설명과 함께.

 

꿀벌이 사라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꿀벌집단붕괴’라 하는데, 전문가의 의견을 인용하는 외신은 농약도 무시할 수 없지만, 유전자조작 농산물의 광범위한 파종과 이동전화를 의심한다. 해충 방제 목적으로 조작한 농작물의 유전자가 수평이동해 꿀벌의 유전자를 교란했을 가능성과 더불어 세계를 뒤덮은 이동전화와 그 기지국에서 내보내는 전자파가 꿀벌 사이의 정보교환을 방해했을 가능성을 의심하는 건데, 《꿀벌 없는 세상, 결실 없는 가을》의 저자 로완 제이콥슨은 집단 붕괴를 일으킬 정도로 영향이 큰 건 아니라고 전문가의 연구를 근거로 주장한다. 제주왕나비를 죽이는 것으로 드러난 해충 저항성 유전자조작 농산물이 꿀벌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고 이동전화 기지국과 꿀벌집단붕괴는 연관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이동전화 전자파와 관계가 없다니 다행이긴 하다. 만일 관계가 있다는 결과가 나온다 해도 사람들이 이동전화를 당장 포기할 것 같지 않고, 관련 기업이 순순히 사업을 접을 가능성이 아주 낮을 테니까. 유전자조작도 그런 점에서 마찬가지다. 인과관계가 정확하게 밝혀질 때까지 사업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양봉업자들은 일단 꿀벌 애벌레의 몸에 알을 낳는 응애를 의심했다. 응애가 들어와 벌통을 버린 경험이 많기 때문인데, 응애 피해 없는 벌통의 꿀벌도 붕괴되는 거로 보아 아니었다. 다음으로 바이러스를 의심했지만 비슷한 이유로 아니었다. 결국 농약일까. 농약의 독성이 강해지고 꿀벌이 농약에 약한 건 사실이지만 세계에서 거의 동시에 급격히 줄어드는 현상을 설명하는데 무리가 있었다.

 

로완 제이콥슨은 유전적 다양성이 줄어든 것을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사납지 않고 꿀을 많이 가져오는 종류로 세계가 획일화되면서 꿀벌의 유전적 다양성이 크게 위축되었다는 주장인데, 거기에서 그친 게 아니란다. 그런 꿀벌이 한 지역으로 모였다 퍼지며 질병을 공유하게 되었다는 걸 주목한다. 바로 아몬드를 보자. 세계 소비량의 80퍼센트를 떠맡을 정도로 아몬드 과수원이 밀집된 캘리포니아는 꽃이 피는 2월이면 미국 전역에서 벌통이 몰려와 북적인다고 한다. 아몬드를 많이 생산하는 나무로 획일화되어 동시에 핀 꽃을 한꺼번에 꽃가루 수정하려면 그럴 수밖에 없다는데, 그 과정에서 꿀벌들이 바이러스나 곰팡이에 쉽게 감염된다는 게 아닌가. 중국에서 벌꿀이 수입되면서 수익이 낮아진 양봉업자들은 아몬드 꽃을 수정시키는 대가로 벌어들이는 수입을 포기할 수 없겠지만 그를 위해 미국의 전역에서 덜컹거리며 달려온 꿀벌들은 기진맥진해진 상태에서 질병에 쉽게 노출된다는 거다.

 

아카시아 꽃이 피는 시기를 따라 제주도에서 강원도까지 벌통이 몰려다니는 우리나라도 상황이 비슷할 것이다. 과수원에 심은 나무의 유전적 다양성이 낮아 한꺼번에 꽃봉오리를 여니 그때마다 벌통을 옮겨와야 한다. 꿀벌에게 피해주지 않고 오로지 응애만 죽이는 살충제는 결국 응애의 내성을 높였고 꿀벌의 병원균과 바이러스도 백신을 거듭 이겨내는데, 벌통 속 꿀벌의 유전적 다양성의 폭은 좁아지기만 했다. 그런 벌통이 한 군데 모였다 퍼지면 질병은 급속히 확산될 수밖에 없다. 낯선 지역으로 옮겨지면서 기력이 떨어진 만큼 농약에 맥없이 쓰러질 수밖에 없다. 꿀벌이 집단적으로 붕괴하는 현상은 결국 사람의 탐욕이 원인을 제공한 것인데, 꿀벌이 없으면 4년을 버틸 수 없는 사람은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할까.

 

역시 자연스러움이다. 자연 속의 다양한 꽃에서 꿀과 꽃가루를 모아 먹으며 꿀벌의 면역력을 높이는 것은 물론이고, 획일적인 양봉산업과 관계없는 개체를 찾아 교배시키며 꿀벌의 유전적 다양성을 넓혀야 한다. 로완 제이콥슨은 극동아시아의 꿀벌을 지목했다. 바로 우리의 토종벌을 의미한다. 벌통을 고정시켜 한해에 딱 한 차례 벌꿀을 따는 우리 시골의 토종벌은 사납지만 활발하고, 모으는 꿀의 양은 적어도 건강하다고 한다. 미국과 유럽의 양봉벌과 달리 여왕벌이 자연에 나가 많은 수벌과 교미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꿀벌이든 아몬드든, 과일이든 채소든, 자연스러울 때 가장 건강한 것은 상식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학교와 학원에 틀어박혀 국어, 영어, 수학, 과학과 사회탐구 시험문제에 몰입하면 좋은 대학과 월급이 많은 기업에 잘 들어갈지 모르지만 창의력은 그만큼 위축된다. 길들어진 만큼 시키는 일을 잘하겠지만 거기까지다.

 

꿀벌이 줄어들자 꿀이 잘 든 남의 벌통을 빼돌리는 양봉업자가 늘어난다는 뉴스가 등장하건만 우리는 조용하다. 로완 제이콥슨의 기대와 달리 우리 토종벌도 전 같지 않다는데, 대책을 서둘러야 하지 않을까. 사람보다 먼저 진화한 꿀벌은 사람이 없어도 잘 살아가지만 사람은 아니다. 꿀벌 덕분에 밥 먹고 사는 우리는 꿀벌이 사라지기 전에 지나친 꿀벌 착취부터 반성해야 옳지 않을까. (사이언스올, 2009년 12월)

선생님. 이 글 제 블로그로 퍼 갑니다. 괞찮지요? 선생님 블로그만 가지고도 환경공부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요.
물론 가능합니다. 앞으로도 어느 글이든 필요하시면 활용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