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0. 2. 1. 02:06

2004년 12월 남아시아를 휩쓴 쓰나미에 이어 이번에 카리브의 아이티를 휩쓴 지진도 20만에 가까운 가난한 생명을 걷어갔다. 2005년 8월 미시시시 강변의 뉴올리언스를 침수시켜 만 명 가까운 시민들의 목숨을 걷어간 허리케인 카트리나도 상대적으로 가난한 이를 재물로 삼았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1995년 1월 일본의 대도시 고베를 강타한 지진도 6천여 명의 희생자를 요구했는데, 대부분 중산층 이하였다. 방진 설계로 지은 고급 건물에 사는 계층에게 큰 피해가 돌아가지 않았지만 판잣집에서 석유곤로로 밥해먹는 가난한 계층과 더불어 목조건물의 시민들은 호되게 당했다. 갖은 태풍을 이겨내기 위해 무거운 기와로 지붕을 얹은 중산층의 집은 직하 지진에 속절없이 무너졌을 뿐 아니라 불에 타버린 것이다. 전기로 취사를 해결하는 부자들과 달리 가스에 의존했기 때문이라고 당시 언론은 분석했다.

 

1923년 9월 동경만 일대를 뒤흔든 관동대지진은 어떤가. 혼란에 빠진 인파는 조선인이 불을 지른다거나 우물에 독을 탄다는 유언비어에 흥분, 조선의 복장을 한 동포는 물론이고 발음이 다르다는 이유로 중국인과 오키나와인까지 마구 학살했고, 그 와중에 요주의 인물로 등록된 사회주의자와 아나키스트, 인권운동가들이 제거되는 걸 방관하던 경찰은 학살을 모르는척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던가.

 

프랑스는 이번 아이티 지진참사를 인재로 규정했다. 탐욕스런 미국계 다국적기업의 지배로 농촌이 황폐해지자 빈민들이 도시로 몰려와 허름한 집을 짓고 살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서 피해가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는 걸 이유로 들었다. 그런데 일찍이 아이티를 식민지로 착취했던 프랑스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시방 미국은 프랑스의 지적과 관계없이 아이티를 카리브 지배의 제물로 삼으려 한다. 인도적 지원을 핑계로 이라크에 버금하는 군인을 파병하지 않았나. 그래도 우리나라에 주둔하는 미군보다는 적지만.

 

유라시아와 태평양 판의 경계면에 있는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지진에서 비교적 안전하다지만 전문가들은 진도 6의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진도 6이면 고베의 고속도로의 교각을 뉘어놓은 지진과 규모가 비슷하다. 핵발전소들은 진도 6 이상의 지진에 대한 대비가 충분하다고 자랑하고 최근에 짓는 세계적 규모의 커다란 다리들도 안전을 장담하지만 문제는 그 나머지 대중이용시설들이다. 최근 한 언론은 아이티 정도의 지진이 서울을 덮친다면 사상자가 60만 명 이상 발생할 것으로 경고했다.

 

얼마 전 약속이 있어 오후 6시 30분에 지하철 3호선 교대역에 내렸다. 2호선과 연결되던 교대역에 9호선까지 이어지면서 이용하는 승객이 얼마나 늘었는지 내리려는 인파가 무척 많았지만 타려는 승객도 상당했다. 등 떠밀려 내리자마자 자칫 다시 그 전동차로 밀려들어갈 뻔했다. 예전 같으면 역에서 10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30분 넘게 걸렸는데, 승강장에서 출입구를 향하는 계단은 물론, 그리 이어지는 지하2층 복도까지 만원버스처럼 가득 찬 역사 안의 시민들은 그저 아무 말도 없었다. 밀지 말라는 짜증 섞인 성화를 귓전에 흘리며 교대역을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다른 대안은 없어 보인다.

 

계단을 밀려 오르면서 무심코 역사 안을 가득 채운 인파를 뒤돌아보는데, 별안간 아이티 규모의 지진이 지금 발생한다면 얼마나 처참해질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아무리 최첨단 장비와 몸을 아끼지 않는 구조대원이 있어도 감당할 수 없는 사고로 이어질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것도 승용차를 이용하지 않는 중산층 이하의 시민들 위주로. 천재지변이 지진만이 아니겠지만 우리나라 역시 지진은 사회적 약자에게 피해가 집중될 게 불을 보듯 뻔해 보인다. 지구온난화 이후 강도가 훨씬 강해진 태풍도, 전에 없이 빈번해졌을 뿐 아니라 정확한 예보가 불가능하다는 국지성호우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상관측 이래 최대의 추위가 한창일 때 ‘살리기’라는 단어를 함부로 사용하고 있는 ‘4대강 사업’의 낙동강 지역을 찾을 기회가 있었다. 가물막이 공사가 24시간 강행되는 현장은 필요 이상 방문자의 출입을 차단하고 있었는데, 낙동강의 가장 하류를 차단하는 ‘함안보’ 공사현상도 예외가 아니었다. 다른 현장과 마찬가지로 방문자를 현혹하려 그린 조감도를 커다랗게 설치한 함안보 지역은 유난히도 좁은 강폭을 가로막고 있었다. 함안보의 관리수위를 애초 정부가 계획하는 7.5미터로 유지할 경우 경상남도 함안과 창녕, 그리고 의령군의 넓은 영역이 침수될 것으로 인제대학교 박재현 교수가 지적한 지역이기도 하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함안보 공사를 책임지는 수자원공사는 관리수위를 5미터로 조절하겠다고 발표했는데, 그는 보의 높이를 낮추겠다는 약속과 거리가 있었지만 그 동안 정부에서 급하게 진행한 4대강 사업이 얼마나 졸속인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관리수위를 5미터로 낮춘다 해도 상당한 면적의 농경지를 침수시킬 수밖에 없다고 동행한 전문가는 지적하는데, 지역 주민들은 평상시에도 지리산에 폭우가 몰아치면 황강과 남강의 물길이 거세게 몰려든다고 증언한다. 함안보 아래 지역 주민들의 생명과 재산은 앞으로 온존할 수 있을까. 막대한 철근콘크리트로 만든 보 자체는 끄떡없을지 모르지만 범람하여 강변의 지지옹벽이 무너진다면 재앙은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당시 건설회사의 사장이었던 현 대통령이 안전을 확신했던 연천댐은 댐 자체가 아니라 댐과 이어지는 옹벽이 붕괴돼 발생했다. 그로 인해 하류의 농촌은 걷잡을 수 없는 피해를 감당해야 했다.

 

언젠가 제방이 무너지면서 7만 마리가 넘는 가축이 수몰돼 죽어야 했던 김해 일원은 제방을 높여 개발한 낙동강의 범람원이었다. 오랜 세월 강이 차지했던 자연을 사람이 함부로 개발한 뒤 발생한 인재였지만 피해는 오로지 그 땅을 불하받은 농부와 가축에 한정되었다. 아마 같은 계통일 개발업자와 복구사업자는 이래저래 큰돈을 벌어들였을 것이다. 굽이치던 강의 자연스런 흐름이 삽날에 의해 좁은 직선으로 획일화되면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의 가난한 계층에 전가된다. 물이 흐르던 자리에 택지와 공장지대를 만든 자들은 안전한 중심부로 멀찌감치 떨어지고 중심부에서 배제된 자들이 몰려와 희생양이 되고 마는 현실. 지구촌 자연재해의 한결같은 모습이다.

 

500년 지나면 강물은 제자리를 찾는다고 말한다. 인간이 제아무리 많은 돈과 막강한 장비로 가로막는다 해도 자연은 제 흐름을 결국 되찾고 말 거라는 것인데, 약 오르는 사실은 그 와중에 발생하는 피해는 온통 사회적 약자에 집중된다는 점이다. 한데, 그건 지나치게 고분고분했기에 약해진 현상과 무관하지 않을지 모른다.

 

물 한 방울은 댐을 허물지 못해도 노도와 같은 물줄기는 연천댐을 밀어냈다. 4대강도 마찬가지일 거라는데 동의한다면, 자연재해 앞에 속수무책이었던 자들은 이제 힘을 모아 자연스러움이 무엇인지 깊이 새겨보아야 한다. 남아시아든, 아이티든, 뉴올리언스든, 고베든, 그리고 우리든 마찬가지다. 자연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작은책, 2010년 3월호)

침수피해도 염려되지만 부산 경남지역 주민들의 취수원인 낙동각이 오염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