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10. 9. 2. 16:32

 

곤파스가 지나갔다. 컴퍼스의 일본 식 발음인 곤파스는 태풍 이름 치고 꽤 근사하다는 느낌이다. 뾰족한 철침으로 도화지를 꼭 찌르고 다른 쪽에 끼운 연필을 한 바퀴 돌려 원을 그리던 물건이 아닌가. 10년 내 최대의 태풍답게 우측 위험반경에 매서운 상처를 남긴 곤파스는 새벽 7시 강화에 도착하자마자 제트기류를 타고 인천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고 기상대는 전했다.

 

강화에 도착하기 두 시간 전, 19층 아파트를 당장 허물어버릴 것 같은 기세로 베란다를 흔들어대는 곤파스의 바람에 잠에서 깼다. 새벽녘, 꼭꼭 닫은 베란다 새시 틈을 파고드는 바람은 묘한 음역의 소리를 내는데, 창밖의 녹지대는 뿌리 째 뽑히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로 나무들이 마구 흔들렸다. 저 나무들이 견디지 못하면 베란다 새시는 떨어져나갈지 모른다. 그러면 거실의 창을 밀어 침실을 난장판으로 만들겠지. 아침까지 잠을 이룰 수 없었는데, 강화에 도착한 곤파스는 이내 잠잠해졌다. 밖에서 확인한 위력은 대단했다. 얼핏 보아도 아파트 가구의 10퍼센트는 베란다 새시가 깨지거나 통째로 떨어져나갔고 뿌리가 얕은 근린공원과 가로수는 수도 없이 옆으로 누웠다.

 

해마다 두서너 개 다가오는 태풍은 대부분 우리나라 남부를 스쳤지 이번처럼 중부를 관통하는 경우는 드물다. 따라서 인천시민들은 남부에 비해 경각심이 낮았고, 피해도 그만큼 컸을 것이다. 농토가 적으므로 농작물 피해는 두드러지지 않았어도 가로수가 넘어지거나 베란다 새시와 간판이 떨어져 자동차가 찌그러진 피해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뿐인가. 수도권 지하철 1호선의 전원이 끊겨 서울로 가려던 통근자의 발목을 잡았고 문학경기장의 지붕이 뜯겨 100억 원이 넘는 재산피해를 안겼다.

 

기상대는 곤파스의 경로가 예년의 이맘때 태풍과 달랐던 이유를 설명했다. 뜨거운 북태평양 고기압이 대만 인근의 서북쪽까지 확장되면서 진로를 서쪽으로 밀어, 동해안을 지나 일본 열도로 향하던 태풍이 우리 서해안으로 올라왔다는 것이다. 적도 부분 태평양의 수온이 예년보다 낮아지는 라니냐현상도 한몫했다고 덧붙이는데, 거기까지는 원인이라기보다 현상이다. 슈퍼컴퓨터를 서너 대 동원하는 전문가들도 정확한 예측을 어려워하는 마당에 감히 비전공자가 원인을 추정할 수 없지만, 지구가 요즘처럼 뜨거워지기 전에는 없던 현상이라는 건 분명해 보인다.

 

곤파스만이 아니다. 장마전선이 사라진 뒤, 잠시 맹렬했던 삼복더위가 주춤해지자 난데없이 나타난 정체전선은 무엇인가. 남부 중국에서 우리 중부지방까지 구름을 정체시키며 보름 이상 비를 뿌리는 그 전선은 가을장마를 연상케 한다. 곤파스 직전, 200밀리 이상의 비를 인천에 퍼부은 정체전선도 예년에 없었다. 라니냐현상과 반대로 적도 부분 태평양의 수온이 올라가는 엘니뇨현상이 예년보다 빨리 라니냐와 반복되면서 세계 곳곳에 기상이변을 일으키는 원인을 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라고 주장한다. 서늘해져야 할 북태평양 고기압이 아직도 극성인 원인 역시 지구온난화가 아닐까. 그 추측이 맞는다면 결국 인간의 분별없는 개발이 가을장마를 끌어들였고, 태풍의 진로를 바꿨다는 뜻이 된다.

 

곤파스는 송도신도시에 큰 상처를 남기지 않았다.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시설이므로 단단하고, 바다가 가까우니 배수가 원활했기 때문이라고 언제까지 자부할 것인가. 만조 시간이 가까워 해일이 염려되었지만 주민의 생명과 재산상의 피해가 컸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으니 천만다행이지만 걱정은 오히려 증폭된다. 온난화를 생태적으로 막아주는 갯벌을 막대하게 매립한 자리에 세운 초고층빌딩이 바닷바람을 받으며 서 있지 않은가. 해수면이 상승할수록 바닷가는 완충지대로 남겨야 하건만 세계 평균보다 두 배나 수온이 높아진 서해안을 바라보며 너울성 파고와 해일이 엄습할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송도신도시만의 걱정일 수 없다. 서구의 매립지도, 인천공항도, 갯벌을 파괴하려는 강화의 조력발전도 ‘자연의 역습’을 대비하지 못한다. 심화되는 가을장마에 편승할 더욱 기괴한 기상이변과 제2 제3의 곤파스는 인천으로 다가오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없는데. (인천신문, 2010.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