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10. 9. 14. 21:25

 

고등어는 高等이 아니라 高登魚다. 어떤 이는 고단백에 등이 푸른 생선이므로 고등어라고 풀이하던데, 《동국여지승람》은 옛 칼을 닮았다 하여 고도어(古刀魚), 《자산어보》는 푸른 무늬가 있다 하여 벽문어(碧紋魚)로 칭했다고 한 해양 전문기자는 고등어의 편력을 소개한다. 이제 고등어는 ‘국민생선’이다. 남획으로 사라진 조기와 지구온난화로 급격히 자취를 감춘 명태의 뒤를 이어 ‘국민’이라는 작위가 하사된 것이다. 제사상에 오를 날이 멀지않았다는 뜻인가.

 

1983년 산울림의 김창완은 《기타가 있는 수필》이라는 제목의 음반을 발표하면서 〈어머니와 고등어〉라는 트로트풍의 노래를 조용하게 불렀다. 가사는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보니, 한 귀퉁이에 고등어가 소금에 절여져 있네. 어머니 코고는 소리 조그맣게 들리네. 어머니는 고등어를 구워주려 하셨나보다. 소금에 절여놓고 편안하게 주무시는구나. 나는 내일 아침에는 고등어구이를 먹을 수 있네. 어머니는 고등어를 절여 놓고 주무시는구나. 나는 내일 아침에는 고등어구이를 먹을 수 있네. 나는 참 바보다. 엄마만 봐도, 봐도 좋은 걸!”하며 마친다. 듣기만 해도 따뜻한 내용의 가사, 그 노래가 나온 언저리부터 고등어가 국민생선의 지위에 다가간 게 아닐까.

 

올 6월 국립수산과학원은 블로그 개설 1주년을 기념해 “가장 좋아하는 생선”을 네티즌에게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10명 중 7명이 고등어를 꼽았다는데, 멸치, 갈치, 조기가 차례를 잇고 명태가 그 다음이었다고 하니, 명실상부한 국민생선이 된 셈이다. 《자산어보》에 정약전이 간과 콩팥의 기능을 돕는다고 쓴 고등어는 뇌에 좋은 DHA가 풍부해 어린이의 지능을 높이며 시신경을 활성화하고 치매까지 예방한다니 高等魚하고 해도 무방하다 하겠다. 그뿐인가. 혈관의 피를 뭉치지 않게 하는 EPA가 많아 순환기에 좋고, 항산화제인 비타민E가 적지 않아 노화를 방지하며 암을 예방하며, 아토피를 막을 뿐 아니라 중성지방까지 줄인다고 한다. 질로 보아도 국민생선임에 틀림없다.

 

등 푸른 생선의 대명사 중의 하나인 고등어는 요즘부터 제철이다. 가을에 들어가면서 지방이 20퍼센트 가까이 축적될 테니 부드러운 감칠맛을 한결 높이지 않겠는가. 정약전이 “수압이 낮은 얕은 물에서 살아 육질은 연하지만 쉬 상한다.”고 한 고등어는 낚아올린 현장에서 진미를 확인해야 제격인데, 그래서 그런가. 날씨가 선선해지면서 멸치 떼가 늘었고, 멸치를 뒤쫓아 연안으로 고등어가 다가오자 루어낚시꾼들이 남해안과 서해안에 진을 치기 시작했다. 지렁이와 새우도 물지만, 반짝이며 움직이는 물질에 쉬 달려드니 멸치 흉내낸 플라스틱 미끼만으로 초보자도 연실 낚아올릴 수 있다니 마다할 낚시꾼이 어디 있으랴. 다만 입이 뾰족해 미끼가 빠질 수 있으니 채는 순간을 놓치지 말라고 경험 많은 낚시꾼은 충고한다. 간단한 장비라도 작은 기술만 익히면 바다로 떠나는 이른 겨울까지 손맛과 입맛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게 아닌가.

 

바닷물이 따뜻해지는 5월에서 7월 사이. 수만 개의 알에서 부화한 고등어는 동물성 플랑크톤, 저보다 작은 물고기, 오징어와 멸치를 먹으며 무럭무럭 성장, 2년이면 알을 낳을 정도로 성숙하는데, 50센티미터까지 자라는 고등어를 우리는 그저 30센티미터에 싹 잡아들인다. 아무리 솜씨가 무딘 초보자라 해도 커다란 물고기를 외면할 리 없건만, 무슨 영문일까. 영문은 무순 영문! 알 낳을 날이 많이 남은 어린 고등어마저 음파로 어군을 탐지하는 어선들이 싹쓸이하지 않던가. 어장을 풍요롭게 할 커다란 고등어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그거다.

 

따뜻한 연안을 따라 이동하는 고등어는 대략 3센티미터만 넘으면 비슷한 크기로 커다란 군집을 이룬다. 그러면 천적의 공격으로 인한 희생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다. 가는 나무에 실을 도톰하게 감은 듯, 어뢰처럼 둥근 몸이 방추형을 이루다 꼬리에서 가늘어지는 고등어는 돌고래나 물범과 같은 천적이 나타나면 즉각 군무에 들어간다. 파도 무늬의 청록색 등을 별안간 돌려 은백색 배를 노출시키는 거대한 무리는 방향을 일제히 바꾸는데, 웬만한 천적은 정신이 쏙 빠질 것 같다. 막대한 그물로 바다를 둘러막는 어선이 아니라면.

 

한밤중에 냉장고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새삼 확인한 김창완은 자반고등어의 감칠맛을 즐길 게 틀림없지만 고등어는 쉬 상한다. 어부들이 “살아 있어도 부패한다.”고 말하는 고등어를 즉석에서 회로 즐기던 낚시꾼이 집에 남은 가족과 맛을 나누려면 낚자마자 냉동이나 냉장을 해 선도를 지켜야 한다. 푸른 등부터 상하면서 자칫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히스타민이 발생할 수 있다. 바다가 먼 안동에서 ‘간고등어’가 명품이 된 이유는 굵은 천일염으로 부패를 막은 고등어의 맛도 빼어났기 때문이리라.

 

우선 지느러미를 잘라내고 비늘을 벗긴 뒤 배를 가른다. 솜씨 좋게 머리를 끊으면 내장이 붙어서 나올 터. 잘 씻어 용도에 맞게 토막을 내자. 레몬이나 청주, 생강즙으로 비린내를 없앴다면 거의 다 됐다. 파, 마늘, 깻잎, 갖은 채소와 양념을 준비하고, 독특한 풍미를 원한다면 카레나 녹차가루를 추가해도 좋겠지. 고등어를 졸이는 거다. 무와 감자, 호박도 듬성듬성 잘라 넣으면 잘 어울린다. 묵은 김치와 졸이려면 양념은 좀 빼도 되겠지. 후추와 소금을 적당히 뿌린 뒤 튀김가루를 입히면 고등어 튀김으로 이어지고, 양념을 덮고 실고추를 뿌린 뒤 찌면 따끈한 자반고등어 찜이 밥상에 올라온다. 밥도둑들이다.

 

수온이 오르자 북쪽으로 이동한 고등어의 할당량을 놓고 유럽의 국가들은 이해관계가 복잡하다는데, 우리의 국민생선 고등어도 잡히는 양이 줄어든다고 한다. 수온이 예외적으로 낮아 그랬는지, 올해는 작년의 4분의1에 불과하다는 게 아닌가. 먼 바다에서 싹쓸이한 물량 덕분에 가격이 크게 오르지 않아 다행이라고 물가당국이 가슴을 쓸어내리는 가운데, 국립수산과학원은 ‘고등어 즉석식품’을 개발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고등어를 넣은 햇반이나 삼각김밥을 예로 들던데, 이러다 고등어마저 자취를 감추는 건 아닐까. 양식 가능성을 타진하는 제주수산연구소는 4계절 진미를 기대하라는데, 조기와 명태가 사라진 마당이므로 국민생선에 걸맞게 좀 보살피며 잡으면 어떨까. (사이언스타임즈, 201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