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0. 12. 6. 23:43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했던가. 지난 달 29일 경북 안동에서 구제역이 발생한데 이어 이웃인 예천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청도와 의성에서 의심 사례가 거푸 이어지면서 전국이 비상체제에 돌입했다고 한다. 안동시 인근 지역은 물론이고 발생 시군과 멀리 떨어진 지방도 비상을 걸었다고 한다. 올 봄 구제역으로 크게 혼이 난 인천시 강화군을 비롯해 경기도 김포시, 심지어 바다 넘어 제주도까지 방역에 철저를 기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아무래도 발생 뒤 허겁지겁 뒤처리하기보다 미리 대비하는 편이 비용도 처리해야 할 일도 크게 줄일 것이다.

 

12월 6일 현재 30곳에서 9만 가까운 소와 돼지를 살처분하게 만든 구제역은 바이러스가 옮기는 ‘제1종가축전염병’이다. 구제역 바이러스는 환경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매우 빼어나 기존 백신을 소용없게 만들 때가 많다고 한다. 백신을 만드는 속도보다 바이러스의 변화가 빠르기 때문이라는 건데, 열에 약한 구제역 바이러스가 겨울에 발생하였기에 방역당국은 더욱 긴장한다고 언론은 전한다. 추운 날씨에 생존기간이 길어지는 까닭이라는데, 이번 창궐은 구제역이 발생한 베트남을 다녀온 축산업자가 원인을 제공했을 것으로 방역당국은 추정한다. 그렇다면 더운 지방에 발생했던 바이러스가 추운 지방에 오자마자 적응한 것이니 예방을 위한 백신 제작은 엄두도 낼 수 없었을 터.

 

1933년 충청북도와 전라남북도를 제외한 전국에서 발생한 이후 66년 동안 없었던 구제역이 2000년 이후 우리 축산농가에 자주 출몰하는 근본 이유는 무엇일까. 2000년 봄 경기도 파주와 화성과 용인시, 충청남도 홍성과 보령시,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발생해 젖소 2200여 마리를 살처분하게 했고 이후 국제수역사무국에서 ‘구제역 청정국’의 지위를 회복시켜주었으나 2002년 경기도 안성시와 용인시와 평택시, 충청북도 진천군 일원에서 발생해 우리나라는 그 지위를 잃었다. 하지만 16만 여 마리의 돼지를 살처분해 확산을 막자 ‘구제역 청정국’의 지위를 다시 회복했지만 올해 3차례나 구제역이 발생했다.

 

올해도 부단한 방역으로 9월 27일 청정국 지위를 회복했지만 그것도 잠시, 3개월 만에 발생했는데, 이번 구제역의 원인이 우리나라와 무관한 만큼 다시금 완벽에 가까운 방역에 힘을 쓴다면 머지않아 경북지방에서 비롯된 구제역도 종식되고 청정국 지위도 부활될 것이다. 태풍 대비에 허술했던 중부지방에 올 추석 전 ‘곤파스’의 피해가 심했던 것처럼 어쩌면 경상북도 축산농가도 방심했을지 모르지만 이번 사태 이후 경각심을 회복하리라 믿는다. 하지만 언제 구제역이 다시 창궐할지 아무도 짐작할 수 없다는데 걱정을 지울 수 없다. 해외 여행객은 그만큼 많다. 당국의 철저한 당부로 구제역 발생국가로 여행을 떠나는 관광객과 축산 관련업자의 동선을 미리 파악할 수 있다고 해도 공항과 항구로 무리지어 들어오는 외국인이 묻혀올 바이러스까지 완전히 차단할 방법은 없는 탓이다.

 

국내 구제역 창궐 소식을 들은 한 동남아시아 여행자는 귀국 전에 공항에서 자진해서 소독을 받고 입국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며 인터넷에 방법을 문의했다. 그에 한 축산인은 입국하는 공항에서 신고하면 친절하게 안내하고 절차도 간단한다는 걸 알려주며 고마워했지만 그런 여행자는 흔하지 않을 것이다. 입국장에서 검역관이 부탁해도 귀찮거나 불쾌해해 피하고 싶은 이가 많을 듯하다. 그 와중에 국회는 구제역을 퍼뜨리면 징역 1년까지 처벌할 수 있는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안’을 법안심사소위원회에 부리나케 통과시켰다고 한다. 고의가 아니라도 처벌하려는 조항을 담은 것인지 알 수 없는데, 처벌한다고 구제역이 일소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입에 물집이 잡히며 침을 흘리고, 발굽 주위에 열이 나며 물집이 터져 절뚝거리게 하는 구제역은 발굽이 달린 소 돼지와 양과 염소에 아주 민감하게 전파된다. 방송 카메라나 수의사의 신발도 조심해야 한다. 감염된 뒤 이틀에서 일주일에 걸치는 잠복기간이 지나면 바이러스가 온몸에 퍼져 폐사할 수 있다고 전하는 전문가는 감염된다고 모든 가축이 죽는 건 아니라고 귀띔한다. 많은 가축은 이내 회복된다는데, 발생 농가에서 500미터의 안전반경을 정하는 우리는 그 안의 소나 돼지는 불문곡직 살처분한다. 안락사시키는 것이니 이해를 부탁하지만 결국 죽이는 것이다. 살아남는 몇 마리보다 시장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방역일 텐데, 통증을 느끼며 죽든 그렇지 않든, 보장된 알량한 수명도 잇지 못하고 죽는 가축의 처지를 얼마나 억울해할 텐가.

 

말이 안락사지 사실 빠른 시간 내에 많은 가축을 철저하게 처리해야 하는 현장은 규정을 일일이 지키기 어렵다. 동물보호단체나 언론사 카메라도 없는 마당에서 규정에 맞는 안락사 여부를 실시하는지 일일이 감시할 겨를도 없을 것이다. 그저 당국이 할 수 있는 건, 늘 그래왔듯,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빨리 회복할 수 있는 철두철미한 방역과 아울러 철퇴를 맞은 시장을 다시 부흥하기 위한 소고기나 돼지고기 시식회와 판매촉진 행사일 것이다. 그러면서 구제역은 사람을 감염시키지 않는 ‘비 인수공통전염병’이라는 걸 강조하는 일일 것이다. 구제역 바이러스는 섭씨 50도가 넘으면 30분 이내 죽고 76도가 넘으면 7초 이내에 죽으니 설사 감염된 살코기일지라도 먹는 이는 안심해도 좋다고 강변할 것이다.

 

19세기 유럽의 학자가 명칭을 정한 구제역은 성격에도 나오는 가축의 오랜 질병이라고 한다. 19세기 이전에도 애지중지하던 가축을 구제역으로 잃은 농민은 슬픔에 잠겼을 텐데, 요즘만큼 많은 가축이 한꺼번에 죽지 않았을 거라 전문가는 주장한다. 요즘도 살처분하지 않으면 절반 정도의 가축은 살지만 예전에는 90퍼센트 이상이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어느덧 생일이나 제삿날이 아니어도 고기를 즐기게 된 우리는 가격이 오른 사료 때문에 수익이 줄어든 상황에서 구제역을 만난 축산농가들의 고통을 십분 이해해야한다. 또한 동시에 왜 요즘 가축들이 구제역에 더욱 약해졌는지 관심을 가질 필요도 있다. 우리가 고기를 지금처럼 찾지 않을 때, 가축들은 지금처럼 속수무책으로 널브러진 건 아니었지 않은가.

 

욕심이 만든 획일성이다. 많은 가축을 한꺼번에 빠르게 대규모로 키워 남보다 많은 돈을 어서 벌어들이려는 욕심이 만든 부메랑이다. 가축의 유전적 다양성을 없애고 몸에도 맞지 않은 옥수수를 중심으로 하는 곡물 사료를 먹으며 속성으로 자랄 수 있도록 육종한 이후에 발굽을 가진 가축들이 질별에 약해지지 않았던가. 그 뿐이 아니다. 성장호르몬과 항생제를 수시로 투여하고 유전자조작 옥수수와 유전자조작 콩을 먹이는 데에서 그치지 않았다. 초식동물인 소와 양에 도살 후 버리는 내장이나 지방을 먹이지 않았나. 태어나자마자 어미에게 떼어 고기용으로 사육되는 요즘의 가축들은 기계화된 도살장의 오차범위 내로 성장해야 한다. 그를 위해 미처 성체로 자라지 못한 나이에 일제히 도축하고 만다. 그때 가장 경제적일 뿐더러 육질이 부드러워 잘 팔리기 때문이라고 영악하게 말한다.

 

1997년대 대만에서 400만 마리의 돼지를 폐사하게 만들어 축산농가의 붕괴를 초래한 구제역은 2000년 영국에서 700만 마리의 소와 양을 도살하게 해 한동안 심각한 경제위기에 빠져야했다. 대만은 양돈농가가 회복되는데 4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고 각종 행사와 경기를 취소했던 영국은 2001년 보통선거까지 연기해야 했다. 감당할 수 없이 무서운 전파력에 속수무책이었기 때문으로 유전적 다양성을 획일적으로 위축시킨 채 공장과 같은 축사에 밀집시켜 사육한 결과였다.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구제역이 전에 없이 무서워진 건 사람의 탐욕이 던진 부메랑의 결과다. 그 대책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자연스러움, 다시 말해 구제역이 무서워지기 전의 사육방식이다. 바로 전통 농가의 가축 사육이고, 고기를 지금처럼 탐하지 않던 조상처럼 채식 위주의 식성이다. 그 이외의 대안은 사실상 없다. (인천in, 2010.12.?)

 

잘 읽었습니다.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