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11. 1. 21. 00:39

 

미국은 주간고속도로가 국토를 바둑판같이 종횡으로 가르는 자동차의 나라다. 그 고속도로 가장자리에 일반도로가 나란히 이어지고 대도시와 가까운 일반도로 옆에 상자 같은 거대한 건물이 무리지어 늘어서 있다. 영화관은 물론이고 축구장 서너 개도 너끈히 품어낼 수 있는 규모의 쇼핑몰들로, 그런 도로를 타고 집과 직장을 오가는 시민들은 쇼핑몰에 수시로 들려 자동차 트렁크 가득 온갖 물건을 채운다. 덕분에 미국의 주택은 점점 도시에서 떨어져나가 정원을 잠식한다. ‘스프롤 현상이다.

 

따뜻하면서 건조해 나이든 이가 살기 좋다는 미국의 애리조나 주는 넉넉한 연금을 받는 노인들이 유난히 많다. 주간고속도로에서 사막지대까지 멀리 이어지는 아스팔트의 끝에는 고급주택들이 즐비하지만 거기엔 상가도 학교도 없다. 오로지 주택들이다. 상하수도와 전기와 가스와 통신시설이 없다면 존재가 아예 불가능한 사막의 고급주택 단지는 어처구니없는 명분으로 중동을 선제공격한 역대 미국 정권마다 포기할 수 없다는 이른바 미국식 삶의 일면을 보여주는데, 석유위기 시대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외부 지원과 자동차와 낭비를 전제하는 삶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대략 3.8리터인 1갤런의 휘발유 가격이 4달러 정도이므로 우리보다 미국이 조금 저렴한 편인데, 앞으로 갤런 당 6달러로 오른다면? 미국인들은 휘발유를 벌컥벌컥 마셔대는 SUV를 버리고 세단 형 승용차를 몰 것이라고 포브스 지의 크리스토퍼 스타이너 기자는 석유 종말 시계에서 말했다. 인구 1000명 당 750대의 자동차를 소유하는 미국은 어이없게도 인구 1000명 당 4대에 불과한 중국의 마이카 시대를 걱정한다. 가구 당 한 대 꼴로 중국인들이 자동차를 굴린다면 적어도 4억 대가 늘어날 테고, 지금도 내릴 기미가 없는 국제 석유 가격은 더욱 치솟을 게 아닌가.

 

새롭게 발견돼 시추하는 석유 양의 10배를 뽑아대는 요즘, 석유 생산에 정점이 멀지 않았다고 전문가는 말한다. 아니 이미 지났을지 모른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석유를 뽑아 올리는 양이 최고인 석유 정점이 지났다 해도 석유가 당장 없어지는 건 아니지만 늘어나기만 하는 소비에 비해 공급이 모자라기 시작할 테고, 그러면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 요즘 국제 석유 가격은 심상치 않다. 만일 석유 가격이 갤런 당 12달러가 된다면? 미국인들은 교외의 집을 탈출하지 않을 수 없을 거로 석유 종말 시계의 저자는 예상한다. 그렇다고 독일의 역사가가 꼬집은 억겁의 세월 동안 쌓인 석유 자원을 200년 동안 다 써버리는 단발성의 짧은 중독성 발작까지 즉시 종료되는 건 아니다.

 

석유 종말 시계는 치솟으며 줄어들 석유 시대를 대비할 수 있는 도시의 모형인 이른바 컴팩시티의 좋은 예로 송도신도시를 들었다. 그래서 작년 인천시장 후보였던 어떤 이는 2월에 번역 출간된 그 책이 송도신도시를 찬양하고 있다고 은근히 자신의 업적을 자랑했는데, 그는 석유 종말 시계를 처음부터 정독한 것 같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경제 전문지의 기자인 크리스토퍼 스타이너는 홍보자료에 의존했을 테지만 송도신도시의 역사는 물론이고 참모습도 볼 기회가 없었을 게 틀림없다. 송도신도시가 지구온난화를 예방하는 갯벌을 파괴했다는 사실, 호화판으로 지은 지하철을 외면하고 고급 승용차를 고집하는 주민들은 엄청난 전기료 부담을 외부인이 알면 집값이 떨어질까 두려워한다는 사실, 투기에 힘입어 주택 가격은 높지만 전세 값이 싼 건 편의 시설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사실 들을 알 턱이 없을 것이다.

 

도넛 현상이라 했던가. 주말이 되면 도심이 도넛처럼 텅 비는 현상은 도심 외곽에 사는 시민들의 출퇴근 시 이동을 전제로 한다. 주말에 건물 현관의 셔터를 내리는 서울이 그렇다. 일본 동경도, 뉴욕 맨해튼도 그럴 것이다. 시끄럽고 복잡한 도심에 위치한 주거시설은 아주 고급이거나 엉망일 텐데, 충분한 돈으로 외부에서 물자를 원활하게 공급하고 내부의 쓰레기를 외부로 치워내지 못한다면 도심은 사람이 머물만한 공간일 수 없다. 면적이 확장되고 건물이 높아질수록 그 정도는 더할 것인데, 석유 가격이 오르면 그만큼 시민들의 경제적 부담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도시를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은 석유 소비를 줄일 수 있는 주거 방식, 다시 말해 컴팩시티를 구상할 것이다.

 

컴팩시티는 어떤 인천시장 후보가 오해하듯, 단순히 거주하는 시민들을 집적시키는데 의미를 두는 도시의 형태가 아니다. 거주하는 시민들의 이동을 최대한 줄여 지역 안에서 기초적인 교육과 상거래가 이루어지도록 구조를 개선하고 가능한 한 직장도 지역 안에서 찾을 수 있도록 배려한다. 승용차가 없으면 이동이 불편한 송도신도시처럼 막대한 에너지를 요구하는 초고층으로 숲을 만들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번듯한 외관보다 이웃 사이의 따뜻한 소통을 중시하는 컴팩시티는 에너지나 농산물의 자급까지 지향하려 최대한 노력한다.

 

활기를 잃지 않는 도시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크든 작든 주기적인 재개발이 필요하게 된다. 재개발이라 해서 단독주택을 헐어 다세대주택을 짓고, 아직 멀쩡한 다세대주택과 저층 아파트를 투기 목적을 위해 헐어낸 뒤 고층, 또는 초고층으로 올리는 방식은 우리 이외의 국가에서 매우 보기 어렵다. 주변의 경관을 방해할 뿐 아니라 주민 사이의 왕래를 어렵게 만드는 고층빌딩은 인기가 없어 변두리에서 빈곤 계층에게 낮은 가격으로 임대되는 예가 대부분이다. 역사와 문화의 자취를 자랑스레 생각하는 도시일수록 기존 건물의 외관을 보전하려 무던히 애를 쓴다. 주거시설로 개조할 경우, 컴팩시티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한결같다.

 

상가나 공장, 심지어 군부대 터를 주택단지로 재개발할 경우라도 기존 건물의 외관을 최대한 활용하며 내부를 보수하는 독일 컴팩시티의 원칙을 들여다보자. 독일에서 고층아파트를 신축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최대 3층을 넘기지 않는 주택은 단열이 철저할 뿐 아니라 지붕마다 태양광 패널을 붙였고 작은 텃밭이나 화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마당을 두는 것을 당연시한다. 주거단지의 외부에 주차장을 두어 노선버스와 공사용 차량을 제외한 일체의 승용차를 단지 내에 사용하지 못하게 배제하는 대신 보행자와 자전거를 위한 도로를 완비하여 학교와 상가를 오고가는 주부와 아이들의 안전을 도모하며 나무가 우거진 공원을 곳곳에 조성해 주민들의 소통공간을 확보한다.

 

폐기된 비행장 부지에 지열과 태양광 발전을 도입한 독일 뮌헨의 생태주택단지는 빗물을 재활용하거나 지하로 이어지도록 설계되었으며 사무공간을 확보해 가까운 곳에 직장을 잡을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했다. 도심에서 떨어진 군부대를 주택으로 재개발한 프라이부르크의 경우, 기존 도심과 연결하는 철도가 입주 이전에 완공되는 것은 물론이고 도심에서 누릴 수 없는 초원과 경작지를 가까이 두어 먹을거리의 자급을 지원하고 쾌적한 환경을 보장해주었다. 독일은 유럽에서 독특한 사례가 아니다. 보행자와 자전거에 도로를 배려하고 대중교통이 편리한 교통정책을 펼치는 유럽의 많은 도시들은 5분 걸어 반가운 이웃을 만날 수 있는 공원을 도시 곳곳에 만든다. 재개발은 관공서와 사무공간과 시장과 학교를 가까운 지역으로 모아 주민들이 이동하느라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유도하고 외곽에 텃밭을 조성해 저렴하게 임대해주기도 한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칠갑이 된 도시는 빗물을 전혀 완충하지 못하고 호수를 조성하지 않은 공원은 빗물을 저장하지 못해 지하수를 보전하지 못한다. 외곽의 농경지를 잠식하며 확장되는 도시는 먹을거리를 외부에서 가져오지 않으면 안 된다. 인천이 그렇다. 근대화 이후 확장되기만 하다 그 한계를 절감한 일본도 2000년 들어 에너지 낭비구조의 도시를 컴팩시티로 변화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는데 우리는 어떤가. 청량산과 문학산 일원의 전원지대를 잠식하는 것도 모자라 천혜의 갯벌을 막대하게 매립한 인천 연수구, 김포평야를 잠식한 계양구와 부천의 중동과 상동, 그리고 넓은 갯벌과 경작지를 맹렬하게 매립하는 인천의 서구, 심지어 절대농지까지 기웃거리는 강화군은 컴팩시티와 거리가 멀다. 인천만의 사정은 아닐 것인데, 직장과 상가를 찾아 시도 때도 없이 도로를 메우는 자동차로 시민들의 몸과 마음은 점점 질식된다. 에너지는 물론, 약간의 농작물의 자급도 꿈꾸지 못한다.

 

인천을 컴팩시티로 개발하겠다는 목소리가 한때 들렸는데, 요즘 잠잠하다. 고급 초고층빌딩을 밀집시켜 투기에 관심이 높은 시민들을 끌어들이겠다는 발상으로 들려 내심 불편했는데, 일단 조용해져 다행이다 싶다. 하지만 구도심의 오래된 주거지역은 컴팩시티로 재개발이 오히려 절실하지 않을까. 망국적 투기바람으로 외지인 현혹하는 초고층 아파트단지의 신기루에서 벗어나 다정한 이웃과 소통할 수 있는 주거단지에서 지역에 뿌리내린 문화와 역사를 나눌 수 있는 공동체를 지향할 기회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불필요한 이동을 줄일 수 있는 생태도시를 구상할 기회가 아닐까.

 

뒤에서 다가오는 자동차 때문에 출퇴근이나 등하교 길에서 불안하지 않을 수 있는 주거단지의 곳곳에 나무가 울창한 공원이나 텃밭을 만든다고 생각해보자. 걷거나 자전가를 타고 모인 주민들이 이야기꽃을 피우는 도시, 아스팔트나 콘크리트보다 녹색이 완연한 공간은 빗물이 완충되어 지하수로 이어지는 도시, 태양이나 바람에서 상당한 에너지를 충당하는 도시, 그리고 그런 주거단지에서 이웃들과 삶을 뿌리내릴 수 있는 정주공간으로 거듭나지 않겠나. 낯모르는 직원이 기계적으로 인사하는 대형 양판점보다 손님의 얼굴을 기억하며 반갑게 맞는 동네 가게에서 물건을 구입하고, 텃밭에서 생산한 농작물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컴팩시티는 쌀쌀맞은 초고층아파트 단지에서 도저히 꿈꿀 수 없는 구도심만의 기회가 된다. 그 실천을 위한 논의와 연구의 필요성이 인천에서 제기돼 시민사회로 널리 번져나갔으면 좋겠다.

 

도시의 아들이 기름보일러를 설치해준 시골 양옥집의 노인들은 겨울이면 한 집으로 모여 난방비를 아낀다는데, 지구온난화의 역설적 여파로 올 겨울은 예전에 없이 춥다. 국제 석유 가격이 오르기만 하는 요즘은 석유 위기를 염두에 둔 마음가짐과 행동을 요구한다. 흥청거리는 도시도 머지않아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 전기나 석유와 같은 에너지 과소비 없이 유지가 불가능한 초고층빌딩일수록 그 정도가 더할 것이고, 석유 없이 생산이 아예 불가능한 산업축산이나 산업농업도 곧 대안을 찾아야 한다.

 

석유 위기를 앞둔 농촌은 물론 도시도 최대한 에너지와 먹을거리의 자급자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유기농업으로 노력한다면 석유 과소비 없어도 농촌은 버틸 수 있겠지만 외부의 지원이 절실한 도시는 발상의 획기적인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바로 컴팩시티다. 막대한 자금을 동원해야 할 필요가 없는 환경 친화적인 재개발로 가능하다. 다정한 이웃과 지역에 뿌리 내리는 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인천in 201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