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1. 2. 9. 00:06

 

농경사회에서 한해를 시작하는 의미의 설. 요즘이야 멀리 떨어져 사는 가족이 부모가 계신 곳, 또는 부모의 영전을 모시는 곳에 모여 선조를 기억하며 마주앉는 데 큰 의미를 두겠으나, 농경사회에서 설 차례상은 자신을 태어나게 한 조상의 은덕에 감사하며 올 한해 농사를 기원한다는 데 뜻이 있겠다. 그래서 차례상은 설이든 한가위든 그 고장의 전통 음식문화를 반영하게 되었을 것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꼭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있지만 설 차례상도 추석과 다르지 않으니 풍성한 게 틀림없는데, 요즘은 차례상보다 차례 마치고 식구들과 먹는 음식이 더 호화스럽다. 지방의 문화와 전통에 따라 특색을 갖는 상차림은 세월이 흐른다고 크게 달라지지 않겠지만, 흩어졌던 식구와 마주앉은 밥상에 조상이 구경도 못한 음식이 올라올 게 틀림없다. 계절과 장소가 아주 생소한 열대과일과 양주만이 아니다. 역대 어느 황재 상차림이 부럽지 않다. 차례 핑계로 모처럼 가족이 고기와 여러 나물을 나누던 시절은 아늑해졌다.

 

설이 지난 뒤 한 신문의 환경전문기자는 풍성했던 설 식탁의 원산지를 따져보니 국산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쌀과 달걀, 약간의 채소 이외에 쇠고기와 당면, 표고버섯과 참기름은 수입이라고 고백하면서 국산 음식에서 얻는 칼로리를 가리키는 칼로리 자급률200849%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자료를 들어 독자를 주목하게 했다. 아울러 1980년대 초 30퍼센트에 불과해 위기를 느낀 일본은 최근 40퍼센트까지 끌어올렸지만 1970년 식량자급률이 81퍼센트이던 우리나라는 199043퍼센트에서 현재 27퍼센트로 곤두박질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 수준이라고 걱정했다.

 

우리나라에서 안정적으로 자급하는 농산물은 쌀이 사실상 유일하지만 해마다 일정 물량을 수입해야 한다. 그렇게 협정을 맺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차례상에 올라온 떡국이 국산이 아닐 가능성도 있는데, 국산 쌀이므로 당연히 국산이라 확신할 수 있을까. 일본의 한 단체가 자국에서 생산한 밀로 가공한 우동의 국산화 비율을 40퍼센트 미만으로 분석해 화제에 오른 적 있다. 분명히 일본의 농경지에서 생산했지만 생산하는 과정에서 소비한 화학비료와 농약, 농기계와 그 무거운 기계를 움직이는데 쓴 석유, 농산물을 식품으로 가공하는 과정에 들어가는 에너지와 첨가물들은 수입에 의존했다고 냉정하게 계산한 결과라고 했다. 우리 언론의 환경전문기자는 자신의 차례상에 올라온 떡국이 국산이라고 판단했지만 생산과정까지 다시 고려한다면 국산이라 주장하기 민망해할지 모른다.

 

27퍼센트에 불과한 우리의 식량자급률을 농산물과 가공식품의 생산과정에 들어가는 에너지와 기계 설비를 고려해 다시 분석한다면 얼마나 빈약해질까. 27퍼센트의 40퍼센트라면 11퍼센트도 채 되지 않는다. 우리 식량자급률을 걱정한 그 환경전문기자는 우리의 칼로리 자급률을 2008년 기준으로 49퍼센트로 잡았지만 내폭 낮춰야 옳을지 모른다. 기계화된 농촌에서 사용하는 석유 에너지는 도시의 가정보다 많다. 거기에 화학비료와 농약은 전량 석유로 가공했고, 수확한 농산물을 말리거나 저장할 때 들어가는 에너지도 만만치 않다. 한겨울에 출하를 준비하는 비닐하우스는 어떤가. 수입 에너지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우리 농촌에서 생산한 농산물의 칼로리 자급률을 다시 계산한다면 마이너스로 나올 가능성이 오히려 높을 게다.

 

이집트의 민주화운동이 거세지자 경제계는 석유가격 상승을 우려했고 아니나 다를까, 수에즈운하가 통제되지도 않았건만 가격이 소폭 상승했다. 이집트 사태가 진정되면 국제 석유가격도 진정될 수 있을까. 많은 석유전문가는 고개를 젓는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의 산유국들이 실상을 밝히지 않아 그렇지, 이미 석유는 생산 정점을 지나갔다고 주장하는 그들은 물건을 놓고 흥정하지 않고 돈부터 예치해 거래하는 석유시장은 소문에 극도로 민감하니 석유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리라 점친다. 이른바 선물시장이다. 국제식량도 선물시장에서 거래된다는 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수요보다 생산이 모자라면 가격은 오르는 법이다. 게다가 가격이 소문에 연동하는 선물거래 체제에서 매점매석이 횡행하는데, 석유가격 하락은 기대할 수 있을까. 식량은 어떨까.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의 과소비가 원인인 지구온난화는 곡창지대의 사막화를 몰고오는데 그치지 않았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은 풍수해를 낳았고, 세계 농업지대는 때 아닌 가뭄과 홍수로 예년 수확을 건지지 못하게 했다. 지난해 여름 러시아를 비롯한 카자흐스탄과 우크라이나는 극한 더위에 이은 화재로 밀 작황이 예년의 절반으로 뚝 떨어져 수출을 금지하기에 이르렀고, 그 여파는 러시아에서 밀을 수입하는 아프리카의 폭동으로 이어졌다. 러시아에서 밀을 수입하지 않았어도 우리나라의 밀가루 가격이 들썩들썩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러시아 주변국만의 사정이 아니다. 주요 식량 수축국가의 하나인 파키스탄과 호주의 사정도 전 같지 않다. 그 와중에 세계 최대의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마저 식량 순수입국이 되었다.

 

10배의 석유 칼로리가 부어져야 수확이 가능한 곡물을 사료로 사육하는 요즘 산업축산은 식량위기를 부추긴다. 주로 옥수수와 콩을 주원료인 사료를 16킬로그램 먹이면 쇠고기 살코기 1킬로그램을 얻을 수 있다. 돼지고기 1킬로그램은 소의 절반, 닭과 유제품 1킬로그램은 돼지의 절반에 해당하는 사료를 먹여야 하는데, 세계 고기의 4분의1을 독식하는 미국의 식생활을 따르려는 국가는 늘어나기만 한다. 유럽과 일본, 우리와 중국이 그렇다. 유럽은 그래도 식량을 거의 자급하고 일본은 자급률을 높이려 애를 쓰는데 우리는 식량 증산에 도무지 관심이 없다. 아직 수출대금이 많이 축적돼 안심해도 좋다는 걸까.

 

벌써 십 수 년 전, 당시 월드워치연구소 소장이었던 레스터 브라운은 앞으로 중국을 누가 먹여살릴 것인가걱정했다. 세계 최대의 달러 소유국인 중국에서 지구촌의 농산물을 휩쓸어간다면 나머지 나라들은 굶주릴 수밖에 없으니 미리 자급을 준비해야 한다고 경고한 것인데, 우리는 ‘4대강 사업과 신도시 개발로 경작지가 위축되기만 한다. 논보다 생산력이 뛰어난 갯벌도 매립되었거나 매립 예정이고, 조력발전으로 파괴되기 직전이다. 그렇지만 우리 식탁은 여전히 풍성하다. 대부분 수입 농산물이거나 석유에 의존해 생산한 국산 농산물이고 안전을 확신할 수 없는 가공식품이다.

 

설 차례상은 겉보기 풍성했다. 하지만 대부분 조상들이 외면했을 음식이었다는 걸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 차례 뒤 식구들과 마주한 밥상은 더욱 화려했지만 지속가능하지 않은 음식이었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경작지의 황폐화를 부르는 지구온난화와 지구온난화를 가속시키는 석유자원이 정점을 넘겼거나 넘기려는 시점이다. 자국민이 굶주리는데 식량을 수출하려는 민주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작년의 세계 식량위기는 올해 심화될 것으로 전문가들이 예측한다. 많은 기후학자들은 미국의 경작지도 안심할 수 없다는데 동의한다.

 

징후가 흉흉한 지금은 황제보다 풍성한 식단에 만족할 때가 아니다. 외국의 식량기지 확보보다 자급률 확대를 위한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식량안보보다 식량주권이다. 바로 조상이 먹던 상차림의 회복, 다시 말해 제 철 제 고장 농산물로 자급하는 터전의 확보다. (지금여기, 2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