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11. 2. 13. 00:47

 

1979년 당시 인기 절정을 달리던 가수 혜은이는 강물은 제3한강교 밑을 흘러간다고 단호하게 노래했다. 당신과 나의 꿈을 싣고서 새처럼 바람처럼 물처럼 흘러만 간다고 읊었다. 그렇다. 적어도 1970년대 한강물은 그렇게 제3한강교를 지나 황해로 흘렀다. 청산리의 벽계수가 수이수이 바다로 가듯, 한강물은 명월이 만공산하든 말든 제3한강교를 거쳐 한강 하구를 지나 강화도와 육지 사이의 염하수로를 밤낮없이 흐르며 인근 갯벌을 한없이 적셔주었다.

 

1969년 완공된 제3한강교가 1984년 한남대교로 개칭되면서 강물은 멈칫멈칫 제 흐름을 잃기 시작했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강남 개발로 넓었던 강폭을 빼앗기며 흐름이 왜곡될 때엔 버틸 수 있었는데, 1982년부터 4년 동안 계속된 전두환 정권의 한강종합개발사업으로 잠실대교와 행주대교에 수중보가 생기면서 그만 도도했던 흐름이 차단되고 만 것이다.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서 경기도 김포시 고촌읍 사이 38킬로미터의 한강을 유람선이 다니게 하려고 만든 잠실과 신곡수중보가 그 원흉이다.

 

지구가 23.5도 정도 기운 상태에서 자전과 공전을 하는 한, 어느 지역이나 지구촌에 계절이 있고 강물은 굽이치며 흐른다. 태양에서 떨어져나온 이후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자연현상이다. 가장 최근에 지구 표면에 등장한 사람을 포함하여, 삼라만상은 덕분에 세상에 태어나 생명을 건강하게 건사할 수 있었다. 십장생이든 하루살이든, 다 마찬가지다. 계절의 흐름을 따라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하는 철새와 파릇파릇한 풀이나 이끼를 찾아 수백 킬로미터를 떼를 지어 이동하는 동물이 툰드라에도, 칼라하리 사막에도, 태평양과 남극해에도 있다. 하루살이도 그 대열에서 빠지지 않는다.

 

하루살이는 하루만 사는 동물은 아니다. 매미 일생의 대부분이 나무둥지 속 굼벵이에 있듯, 하루살이는 물속의 애벌레 때에 있다. 날개가 달린 어엿한 성충의 모습으로 변하기 전 단계를 사람은 애벌레라 칭하며 존재가치를 무시하지만, 듣는 하루살이는 어처구니없어할지 모른다. 하루살이 뿐인가. 대부분의 곤충은 애벌레 시기가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하지 않던가. 번데기를 거쳐 성충으로 변태하는 곤충에게 애벌레 시기는 내일을 위해 아주 중요하다. 그때 잘 먹고 잘 자라야 짝지어 알 낳을 때 찬란할 터. 부지런히 공부하며 자라던 청소년기가 아름답듯, 하루살이도 가장 즐거울 때가 애벌레 시기일지 모른다.

 

2센티미터 이내의 반투명 가까운 몸에 옅은 녹황색을 띈 1.5센티미터 정도의 날개를 곧추세우는 하루살이는 4월에서 5월을 맞은 해질 녘의 물가에 군무를 하며 나타난다. 제 몸보다 긴 두세 개의 가는 꼬리를 뒤로 내밀고 일제히 날아오르는 수컷은 하루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짝을 만나려 남은 에너지를 전부 발산해야 한다. 달빛에 반사되는 물가나 하천 옆을 따라가는 아스팔트의 가로등 아래에서 안간힘을 다해 오르내린다. 자손을 낳으려는 절박한 몸짓이다. 오로지 그 순간을 위해 물속에서 1년 이상을 자랐다.

 

원통 같은 유선형 몸을 가진 유생은 발톱이 단단한 6개의 발로 흐름이 강한 하천 바닥을 버티며 바위 표면의 물이끼나 모래 속의 유기물을 분해하는데, 하루살이 유충이 게 있기에 하천은 언제나 깨끗할 수 있다. 하지만 하루살이 군무에 짜증을 내는 사람들은 그 사실에 둔감하다. 하천 주변의 개발로 쏟아져들어오는 흙탕물은 돌과 바위에 단단히 붙은 물이끼를 덮어 탄소동화작용을 방해하고 모래 틈의 물 흐름을 차단하건만 무심한데, 사실 하천 주변의 축사에서 버리는 폐수와 과수원에서 흘러드는 농약이 훨씬 위협적이다. 물속의 산소를 고갈시키고 몸속의 신진대사를 가로막지 않은가.

 

하천은 주변 생태계를 전후좌우상하로 이어준다. 상류에서 하류로 흐르며 하천 좌우의 생태계에서 다가오는 다채로운 생물에게 마실 물을 제공하고 지하수를 언제나 신선하게 채워주지만 거기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 세월도 이어준다. 4월 어느 저녁 무렵 상류에서 군무를 한 뒤 물속에 수백에서 수천 개의 알을 낳고 기진맥진한 하루살이 떼는 흐름에 제 몸을 내맡기며 수많은 물고기를 먹여살린다. 덕분에 중상류의 버들치와 갈겨니, 중하류의 붕어와 각시붕어도 알을 낳고 내년을 기약할 것이다. 번식하고 하루 만에 죽는 성체만이 아니다. 물속에서 대부분의 일생을 보내는 유생은 물까마귀와 해오라기를 먹여살리고 둑중개와 퉁가리를 살찌운다. 하루살이가 있기에 하천의 생태계는 시시때때로 다채로울 수 있다.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부통령 후보였던 세라 페일린이 아프리카를 하나의 국가로 믿었다던데, 우리는 하루살이를 하나의 종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동토 이외의 하천에 두루 분포하는 하루살이는 거대한 생물 집단이다. 세계적으로 2아목 19200여 속에 2100여 종이 알려져 있고 우리나라만 해도 1127속에 50종이 보고돼 있다. 하찮게 보이더라도 하천 생태계의 기반이 되고 때로 수질평가를 위한 지표종으로 활용되기에 연구자들에게 하루살이는 소홀한 대상일 수 없는 모양이다.

 

4월에 물가에서 밤을 보내는 이 드물고 하천 가까이에 사는 사람들은 귀찮겠지만, 이제 하루살이에 마음을 열었으면 좋겠다. 등불을 찾아 떼로 몰려와 뚜껑 열린 간장독에 빠지고 부엌의 반찬거리 위에 떨어져 해충 취급받지만 사실 하루살이는 하천에 기대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건강상 어떤 피해도 주지 않는 존재가 아니던가. 일생 대부분 하천을 건강하게 만드는데 일조하는 하루살이. 그런데 사람 중에 하루살이 취급당하는 이가 더러 있다. 주목받지 않고 사회를 깨끗하게 만드는 청소원, 일류 요리사에게 한해 농작물을 전하는 농부, 깊은 광산에서 원자재를 캐내는 광부들이 그렇다. 그들의 개성은 대체로 무시된다.

 

생태계를 풍요롭게 만드는 하루살이가 요즘 크게 위협받는다. 전후좌우상하, 그리고 세월을 연결하는 하천이 차단되며 흐름을 잃고 오염되기 때문이다. 넓은 생태계를 유지하며 굽이치던 하천을 직선으로 좁히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중간증간에 보를 쌓아 흐름을 정체시키는 사람 때문에 하루살이의 물속 일생이 위태로워졌다. 생태계도 그만큼 단조로워질 테지만 지구의 자전축이 변화지 않은 한, 사람이 비키면 금세 회복될 테지. 그때까지 잘 견뎌내길. (전원생활, 20114월호)

좋은글 아름답게 읽었읍니다.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