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에너지

디딤돌 2011. 4. 8. 02:17

 

어젯밤부터 내리던 비가 하루 종일 이어진다. 어제 수도권의 한 시민단체에서 활동가들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내일 아이들 등교를 막아야 하는 게 아닌가를 염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정부와 관련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이야기, 기준치 이하이므로 괜찮다, 엑스레이 한번보다 몇 분의 일에 불과하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고, 그 말이 사실일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걸 알아도 아이들의 등교를 막아야 한다고 활동가들은 반응했다. 핵에 대한 경각심을 사회적으로 높여야 하기 때문이라면서.

 

아닌 게 아니라 제주도를 비롯한 전국에 방사능이 섞인 비가 내렸다. 전문가들이 걱정할 수준이 아니라고 여전히 강조했지만 제주도의 경우 이틀 전에 비해 농도가 7배 이상 높아진 방사성 요오드와 세슘이 검출되었다고 언론은 보도했다. 엑스레이 한번 촬영할 때 받는 선량의 44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였지만, 우리는 공연히 엑스레이에 노출되고 싶지 않다. 교장 재량으로 휴교를 한 학교가 120여 군데가 되고,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 모인 학부모들로 초등학교 앞이 북새통인 와중에, 시민들은 하루에 2리터 씩 2년 반을 마시면 엑스레이 한 번 촬영하는 정도가 검출되었을 뿐이라는 정부의 발표에도 마음을 놓지 못한다.

 

기준치라. 안전을 누누이 강조하는 정부는 언제나 기준치를 앞세우는데, 기준치는 과연 안전을 담보하는 걸까. 새로 개발한 의약품이나 화학물질의 독성과 그 기준치는 보통 동물실험으로 얻는데 방사능의 기준치는 어떻게 구한 것일까. 동물실험? 아니면 경험? 어떤 동물을 희생시킨 실험으로 수치를 얻었는지 알 수 없지만, 많은 학자들은 동물에서 구한 기준치흫 사람에게 적용하기 어렵다는 데 동의한다. 그런데 희한하다. 공개하지 않아 그렇지, 핵발전소마다 겪는 크고 작은 사고로 경험이 축적된 마당임에도 방사능의 기준치는 세계보건기구 권고치가 다르고 유럽과 일본이 또 다르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배출되는 방사능이 기준치를 수백에서 수천, 수천만에서 억 배를 초과해서 그런지, 기준치보다 약간 높으면 별 게 아닌 것처럼 생각하게 된다. 위험의 경계를 알리는 한계 수치로 이해하지 못한다.

 

엑스레이 촬영에서 받는 방사선량과 비교하길 좋아하는 정부가 안전을 마냥 읊을 때, 한 시민단체 활동가는 우리나라는 이미 위험한 수준으로 방사능에 오염되었으니 서둘러 국민 방사능 대응 행동지침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안해하는 시민들의 생활이 안정될 수 있도록 상황에 따라 야외활동과 농수산물 구입에 대한 대응 지침을 제시할 것을 촉구한 그는 순간 방사능 피폭량만 고려하는 정부의 안일한 자세를 질타했다. 47일 시간 당 0.3마이크로시버트로 검출된 우리나라의 방사능이 계속 유지된다면 연간 암환자가 12천 명 발생할 정도인 2.628밀리시버트에 해당한다는 오스트리아 기상연구소의 자료를 그 근거로 들면서.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태평양 방향으로 배출된 방사능은 비록 희석될지언정 지구 곳곳으로 퍼진다. 가끔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북극으로 올라가 우리나라 상공으로 덜 희석된 상태로 내려갈 테고 태풍이라도 만나면 직격탄이 될 수 있다. 일본 정부와 후쿠시마 발전소를 운영하는 동경전력은 최선을 다해 방사능 유출을 막으려 애를 쓰고 있지만 미국을 비롯한 유럽의 많은 핵전문가들은 쉽지 않을 거라고 걱정한다. 숫자에 무감각할 정도로 기준치를 초과하는 방사능이 쉼 없이 분출되는 상황에서, 핵연료가 담긴 노심이 녹을 경우, 지금부터 꼭 25년 전인 1986426일의 구소련의 체르노빌 핵발전소처럼 폭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문가는 전한다. 그땐 방사능 재앙이 우리나라에 엄습할 것이다.

 

한 의사는 낮은 수치의 방사능이라도 위험할 수 있다는 걸 주장했다. 엑스레이처럼 몸을 순간적으로 투과하는 방사선도 누적되면 위험할 수 있지만 미량이라도 방사능 동위원소가 몸에 흡수될 경우 암을 일으킬 수 있다는 주장한 것인데, 결국 기준치가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빗물이나 바람을 타고 옷이나 피부에 닿은 방사성 물질은 세탁이나 목욕으로 씻겨낼 수 있다지만 호흡이나 음식으로 폐나 장기에 흡수될 경우 사뭇 사정이 달라진다. 갑상선암을 유발시키는 것으로 알려진 요오드는 반감기가 7일이지만 암 치료에도 사용하는 세슘은 반감기가 30년이다. 수 백 년 이상 방사선을 내뿜는 만큼 화장한 사체의 재에도 남아 방사능을 내보내는 세슘이 바다 생태계의 먹이사슬을 타고 사람에게 이어질 가능성은 후손 대대로 이어질 텐데, 일본은 기준치의 수천에서 억 배 이상 오염된 물을 바다에 쏟아버렸다.

 

체르노빌 핵발전소 인근 토양과 하천은 심각하게 오염돼 지금도 방사능을 내놓지만 30킬로미터 밖의 민중 대부분은 일상을 살아갈 뿐이다. 달리 피할 공간도 없다. 32년 전의 미국 드리마일 핵발전소의 노심 용융 사고 이후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에서 거푸 사고를 일으킨 핵발전소는 지구촌에 400기가 넘는다. 일본인들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방사능 유출이 획기적으로 차단된다고 해도 이미 내보낸 방사성 물질은 남아있을 게고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갈 텐데, 핵발전소에 둘러싸인 우리는 앞으로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에 있을 수밖에 없다. 일본 55기에 이어 우리나라는 21, 중국은 13기의 핵발전소가 가동되지만 현재 동아시아 삼국은 100기 이상을 추가할 예정이 아닌가.

 

최근 동아시아의 안전을 위해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모인 일본대지진핵사고 피해 지원 및 핵발전 정책 전환 공동행동은 핵발전소 확대를 중단하라는 성명서를 채택했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그나마 분별없는 핵발전소 확산과 핵폐기물에 의한 방사능 오염을 경계하며 행동하는 시민단체가 있지만 중국은 그렇지 못하다. 신뢰를 주지 못하더라도 우리와 일본의 정부는 핵발전소의 운영과 사고의 실태를 공개한다. 제 나라 동해안에 핵발전소를 집중하는 중국에서 후쿠시마 핵발전소에 버금가는 사고가 발생한다면? 방사능은 편서풍을 타고 우리나라로 몰려들 것이다. 지진이 잦은 중국에 세운 핵발전소는 시방 안전하게 운영되고 있나. 공개되지 않을수록 사고의 확률은 높아지는데, 우리는 그저 정부가 발표하는 기준치에 내내 안심안 채 일상생활에 젖어야 하나.

 

지진에 이은 쓰나미, 그리고 핵발전소의 연이은 사고로 누구보다 큰 고통을 겪는 일본인들을 위로하고 조속한 사고의 수습과 복구를 희망하면서, 이 불안한 위기는 기준치 타령으로 극복할 수 없다는 점을 다시금 거론하고자 한다. 수 주일이면 지구촌 곳곳으로 퍼져나가는 방사능을 피할 도리가 없는 우리와 후손을 조금이라도 더 안심시키려면 동아시아를 포함한 세계 모든 국가의 정부는 당장 핵발전을 멈추고 핵폐기물의 안전한 관리 방안을 찾아야 한다. 30년 흥청망청 전기 쓰자고 수만 세대의 후손을 위험에 빠뜨릴 핵발전은 기준치 따위로 위안을 얻는 사고뭉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여기, 2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