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1. 6. 6. 23:36

 

원인 모를 폐렴으로 임산부들이 연이어 사망하는 사건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더니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에서 항생제에 저항력을 가진 장출혈성 슈퍼박테리아가 창궐해 사망자가 속출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독일 정부는 애먼 스페인의 유기농 오이에 혐의를 두어 해당 지역의 농산물 수출이 일거에 차단되었으나 다시 조사한 뒤 번복해 스페인 당국의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분노한 스페인 당국은 보복조치를 암시했는데, 독일 산 새싹에서 문제의 박테리아가 검출되었다는 발표가 나왔다. 스페인 채소를 급히 수입 금지한 국가들은 독일 채소까지 금지목록에 서둘러 포함했다고 언론들은 전한다.

 

평소 고기를 굽거나 감자 따위를 푹 익혀서 먹는 유럽인들은 샐러드 용 채소를 날 것으로 먹는데, 주로 유기농산물을 선택한다. 슈퍼박테리아로 인한 사망자가 20명에 육박하자 놀란 독일은 오염된 가축의 배설물을 유기질 비료로 사용한 채소들을 의심하면서 되도록 익히거나 먹기 전에 흐르는 물에 잘 씻을 것을 신신당부했다. 그러는 사이, 사망자는 스웨덴으로 이어지더니 공포를 동반하는 슈퍼박테리아는 영국과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뿐 아니라 채소에서 검출된 박테리아와 다른 슈퍼박테리아가 영국의 우유에서 검출돼 검역당국에 비상이 걸렸다고 하는데, 우리 정부는 안심해도 좋다고 장담했다. 우리나라 병의원의 항생제 사용이 유럽보다 많다는데, 우리의 면역력이 유럽인보다 높은 걸까.

 

의사의 넥타이와 가운의 소매로 병균이 퍼지는 경우가 많은 우리나라 병원에서 슈퍼박테리아가 이따금 발견되지만 아직 별 탈이 없었단다. 조사된 2000여 명의 감염자 중에 20여 명이 사망한 유럽과 달리 해마다 40명 정도가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되는 우리나라에서 아직 사망자는 없다는데, 면역력을 높이는 것으로 밝혀진 김치를 즐겨 먹기 때문일까. 그럴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지만, 감염자의 수가 유럽처럼 늘어나면 사정이 바뀔지 모른다. 하루 수백 명의 유럽인이 찾아오고 그와 비슷한 수의 내국인이 유럽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현실에서 긴장을 늦출 수 없을 것이다.

 

스페인이나 독일이든, 오이든 새싹이든, 질병 관련 전문가들은 문제의 발단을 유기농 채소로 좁히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유기농업은 퇴비를 활용할 뿐, 석유를 가공한 화학비료나 농약이나 제초제를 일체 사용하지 않는다. 언제 고갈될지 모르는 석유자원을 절약할 뿐 아니라 온실가스 배출을 억제하는데 기여하는 것이다. 유기농업은 세균을 박멸하기 위해 방사선을 쪼이지 않는다. 방사선 조사로 농산물이 변성돼 인체에 유해한 물질이 섭취될 가능성을 사전에 제거하는 건데, 그 때문에 유기농 채소에 박테리아나 바이러스가 포함될 여지는 남을 수 있다.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된 가축의 배설물이 유기질 비료에 섞일 경우, 그 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다.

 

슈퍼박테리아는 당연히 항생제를 개발해서 남용하기 전에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환경이 불리하면 이웃하는 박테리아와 유전자의 일부를 교환해 적응력을 높이는 박테리아의 특성상, 항생제 내성을 강화하는 일은 일상이다. 한 세대의 길이가 매우 짧을 뿐 아니라 순식간에 많은 개체로 분열하는 까닭에 박테리아는 사람이 더욱 강력한 항생제를 개발하는 시간보다 훨씬 빠른 시간 안에 내성을 갱신하게 된다. 심지어 몸에 들어온 항생제가 배설되는 시간이면 충분히 내성을 가진다고 주장하는 전문가가 있을 정도다. 박테리아와 같은 미생물만이 아니다. 한세대의 길이가 사람보다 짧은 곤충과 풀도 새로 개발한 살충제나 제초제를 뿌린지 얼마 되지 않아 내성을 나타낸다. 사람의 과학기술을 간단하게 우롱하면서.

 

모든 생물이 다 그렇듯, 사람도 면역을 타고나지만 손쉽게 항생제를 남용하면서 병원균을 막아낼 면역력이 약화되고 말았다. 약한 내성을 가진 병원균은 기다렸다는 듯 강력한 항생제를 투입해 해결했지만, 이제 그 한계에 부딪혔다. 이제 현재까지 개발한 어떤 항생제에도 끄떡없는 슈퍼박테리아가 창궐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데 이상하다 그런 병원균은 병원에서 퍼지는 게 일반적인데, 왜 유럽은 유기농 채소를 거쳐 사람을 공격한 걸까. 어떤 테러집단이 병원의 슈퍼박테리아를 채소로 옮겼을 리 없다. 가축 역시 거듭 강화된 항생제로 손쉽게 치료한 까닭이다. ‘공장식 축산일수록 그 정도는 심할 게 틀림없다. 가축 배설물을 충분히 발효해 조금씩 사용했다면 이번과 같은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유기농업은 땅과 후손, 생산자와 소비자를 유기적으로 이어주는 생명의 농업이다. 충분히 발효되지 않은 가축의 배설물을 넓은 면적에 한꺼번에 뿌리는 공장식 농업은 아무리 화학비료와 살충제를 기피했더라도 진정한 유기농업으로 볼 수 없다. 면역력이 약화된 공장식 축산에서 구하는 가축의 배설물은 전혀 유기적이지 않다. 따라서 유럽을 공포에 떨게 한 이번 슈퍼박테리아는 사람의 탐욕이 이끈 병리현상일 뿐, 유기농업과 아무 관계가 없다. (푸른생협 소식지, 2011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