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11. 8. 21. 19:38

 

긴 여름의 끝, 다이앤 듀마노스키 지음, 황성원 옮김, 이매진, 아카이브, 2011.

 

 

심화되는 온난화에 놀란 유럽 언론들이 연일 대서특필하고 서적이 봇물을 이뤘던 10여 년 전, 수수방관했던 우리나라에서 일부 전문가가 아니라면 관련 정보를 얻기 어려웠다. 오래지않아 현장에서 활용하려던 환경활동가들은 번역된 책자와 자료의 홍수를 경험했는데, 이제는 지겹다 싶다. 특색 없이 쏟아지는 정보에 식상해 선뜻 고개가 돌아가지 않는다. 화려한 도표를 내세우며 잔뜩 겁을 주던 미국 부통령 출신인 맥도날드 빅맥 햄버거 탐식가이자 석유회사 주식 보유자이자 자동 온도 조절 수영장의 소유자인 앨 고어가 대안으로 전등을 바꾸자!”고 제안한 이후의 일일지 모르겠다.

 

다이앤 듀마노스키. 그는 1996년 출간해 이듬해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도둑맞은 미래에서 환경호르몬의 폐해를 절절하게 밝힌 3명 중의 한 저자다. 저자 중에 내분비 교란 화학물질을 연구하던 테오 콜번은 은퇴 후 자연 소재의 작은 주택을 시골에 짓고 유기농산물을 재배하며 소박하게 지낸다던데, 환경 전문기자였던 다이앤 듀마노스키는 어떤 삶을 선택하고 있을까.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후 새로운 경각심을 우리 사회에 던졌던 다이앤 듀마노스키가 지구온난화를 화두로 인간의 탐욕의 끝을 걱정한 긴 여름의 끝을 내놓았다. 과연 그의 책은 진정성이 돋보였다.

 

지난 11700년 동안 은혜롭게 지속된 여름은 1500년 전에 경작을 시작하면서 편견을 갖고 자연을 재단한 인류에 의해 종말을 고해가려 한다고 다이앤 듀마노스키는 주장한다. 수백만 년에 걸친 진화의 험로를 성공적으로 견디며 오늘날까지 이어온 인류의 인구가 70억 가까이 늘어난 현실도 돌이키기 어렵지만, 정작 감당할 수 없는 문제는 지구온난화다. 산업혁명 이후 경제 규모를 한없이 늘린 인류는 에너지를 펑펑 소비하며 문제를 증폭시켰고 그리 흥청거렸던 막간극으로 인해 긴 여름은 머지않아 종식될 게 거의 분명하다. 그러면 연구비를 많이 받는 유수한 대학의 지식인들이 대놓고 개탄하듯, 암적 존재인 우리 인류는 사라져야 마땅한 겐가.

 

온난화가 지속되는 지구의 앞날은 어쩌면 우리가 예상해온 충격보다 훨씬 심각할지 모른다. 지구 곳곳의 지층은 기후 격변이 몰고온 끔찍했던 재앙을 분명히, 그것도 최소 다섯 차례 이상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있건만, 그 진실을 외면하고 싶었던 겐지, 안락한 환경에서 교육받은 많은 지식인은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온난화 여파를 예측했다. 아마 해수면이 서서히 상승하는 정도로 그치길 희망했던 걸까. 석유 재벌의 은밀한 지원을 받는 지식인만이 아니다. 편안하게 살아왔던 방식을 바꾸고 싶지 않은 지식인들의 저항이었는지 모른다.

 

세계은행 수석 경제학자였던 영국의 니콜라스 스턴 경은 당시까지 발표된 수많은 논문을 근거로 200610, ‘기후변화의 경제학이라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BBC날카로운 경고를 보냈다고 평가한 그 보고서는 경각심을 갖고 대책을 고민하는 많은 이들이 인용하는 중요한 보고서지만 20084, 스턴 경은 걷잡을 수 없게 진행되는 온난화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했다고 고백했다. 이른바 스턴 보고서는 재난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처럼 묘사했지만, 장밋빛 관점은 자칫 대중과 정책 입안자들에게 그릇된 위안을 심어줄 수 있다는 비평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거다.

 

낙관론이 지나쳤던 지식인들은 어떤 장밋빛 대안을 제시해왔나. 다이앤 듀마노스키가 터무니없다고 냉소한 대안은 과학기술이 선도한다. 황산염을 성층권에 주입해 태양빛을 우주로 반사시키자는 발상은 빛을 반사하는 작은 거울을 우주에 무수히 설치하자는 안보다 덜 황당한 게 아닌데, 요드화은이나 드라이아이스를 구름 위에서 살포하거나 대포로 발사해 가뭄 심한 지역에 인공강우를 뿌리자는 대안은 곳곳에서 실험되고 있다. 실제 2008년 북경은 올림픽 기간에 비가 내리지 않도록 엉뚱한 곳에 조치를 취했다는 설이 분분하다. 하지만 그 여파로 강우의 질적 양적 변화가 초래되는 건 물론이고, 비 내리는 시기와 방향을 교란시켜 더욱 치명적인 피해를 엉뚱한 지역에 안길 수 있다.

 

이산화탄소를 화력발전소의 굴뚝에서 차단해 포집하는 기술도 개발되는데, 어떻게 저장해야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까. 심해나 폐석유공에 가두는 일은 실패 가능성이 높고, 실패했을 때 닥칠 피해는 더욱 심각할 수밖에 없다. 대리석으로 가공해 영구 저장하는 방법은 공정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상정할 때, 아직 상상력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연구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은 얼마나 많은 과학자들의 호주머니로 사라지는 걸까. “부분의 합이 전체라고 믿는 과학자들은 모든 현상을 선형적으로 해석하는 고집을 여태 버리지 않기에 다이앤 듀마노스키는 새로운 과학은 문제를 잠재우기보다 오히려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간파한다. 요즘 과학기술은 차라리 그들만의 주술이 된 셈이다.

 

그러니 인류는 어떤 대안을 찾아야 하나. 인간의 종말을 당연시하는 지식인과 달리 본질적인 숙명론에 굴복할 수 없다며 고개를 흔들고 어두운 생각의 유혹에 진저리친 다이앤 듀마노스키는 수많았던 선조의 뿌리 중에 우리 직계만이 진화 과정에서 살아남은 사실을 주목한다. 10세기 그린란드에 정착해 5000명까지 증가했던 노르웨이 인들이 기온이 다시 내려가자 400년 만에 사라진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자연에 순응하는 이누잇의 삶을 외면하고 유럽 방식의 삶을 고집한 데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껏 외면했던 도덕적 사고의 회복을 바탕으로 지구적 행동이 필요하다고 다이앤 듀마노스키는 호소한다. “현대 문화가 인간으로 살아가는 유일한 길도, 최선의 길도 아님을 조상의 유연성 있는 유전자를 물려받은 인류는 직시하고, 삶의 방식을 한시바삐 바꾸자고 진정성 깊게 제안한다.

 

저자는 지적하지 않았지만, 현재 지나치게 많은 인구는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까. 삶의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온난화 충격에 대한 완충력이 생길 때까지 시간은 충분할까. 다이앤 듀마노스키의 제안이 효과가 있으려면 인구부터 급하게 줄여야하는 건 아닐까. (우리와다음, 2011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