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11. 9. 29. 17:13

긴 여름의 끝, 다이앤 듀마노스키 지음, 황성원 옮김, 아카이브, 2011.

 

기상이변은 이미 이변이 아닌 시대가 되었는데, 장마철 뒤 정체전선의 국지성호우가 한바탕 지나가자 전력당국은 대대적인 발전기 점검에 들어갔다. 기상청은 9월 중순의 때늦은 열대야를 누누이 예보했지만 겨울철 전력수요를 대비한 정비에 여념 없었는데, 조금만 더워도 에어컨 켜고 추우면 전기난로 켜는 민심을 깜빡한 걸까. 그만 전력예비율에 비상이 걸렸고, 예고 없는 단전으로 많은 시민들이 당황해야 했다.

 

여름이 시원하고 겨울이 따뜻한 인큐베이터 같은 실내 온도는 전기 과소비 없이 유지가 불가능한데, 그로 인해 누적된 온실가스는 지구온난화를 심화시키고 기상이변을 일상화했다. 에어컨과 전기난로로 기상이변을 피하자는 심리는 과학기술을 앞세운 소비주의가 부추기는데, 이제 그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다이앤 듀마노스키가 말하는 긴 여름이 종말을 고하려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예고 없는 단전에 목숨까지 잃을 뻔했던 우리는 불안한 내일을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지구의 숱한 경고에도 성능 높이는 인큐베이터 안에서 꿈쩍 않는 인간은 추워질 내일을 견디지 못할 텐데.

 

노벨평화상을 받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위원회’(IPCC)2007년 살벌하기 짝이 없는 지구온난화 시나리오를 발표했고, 영국의 니콜라스 스턴 경은 그를 토대로 이대로 가면 안전한 내일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경고를 내놓았지만 IPCC의 보고서 작성에 심혈을 기울인 핵심 과학자의 증언을 토대로 듀마노스키는 11700년 동안 예외적으로 지속되었던 이 긴 여름은 머지않아 끝날 것이라고 단언한다. IPCC나 스턴 경은 인간의 노력 여하에 따라 온난화를 막을 수 있을 것처럼 지나치게 낙관했다는 거였다.

 

그렇다면 어찌 해야 하나. 저명한 학자들의 푸념처럼, 인간의 멸종을 기정사실로 여겨 내일을 포기할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를 생각한다면 반드시 대안을 찾아야 한다. 학자의 숙명론에 진저리치는 듀마노스키는 성층권에 브롬화은을 뿌려 태양광을 반사시키거나 우주에 거울을 설치하자는 과학자의 대안에 어처구니없어하면서 천 년 전 그린란드에 정착한 바이킹의 후예를 주목한다.

 

따뜻해지자 농장과 목장을 일궈 유럽처럼 지내며 늘었던 인구가 그린란드가 다시 얼어붙으며 위축될 때 대책을 세워야 했다. 이누이트의 생존법에서 대안을 찾아야 했건만 부정했고, 결국 멸종하고 말았다. 여름이 끝날 걸 기정사실로 여기고, 석유 없이 행복했던 과거에서 삶의 대안을 찾자는 듀마노스키의 절절함이다. 길게 잡아도 고작 100년 전이다. 불가능할 것 같지 않은 삶인데, 종말을 향한 지구의 여름은 이변으로 요동친다.

 

미국의 할리우드식 삶을 동경하는 지구촌 70억의 인구는 석유 없는 삶으로 순순히 이행할까 궁금한데, 석유가 제공하는 안락한 삶을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할 때 발생할 충격을 최대로 억제하려면 인큐베이터에서 적잖게 증식한 인구부터 시급히 줄여야하는 건 아닐까. 예고 없는 단전에도 몸살 앓는 인구는 인큐베이터 없는 삶으로 옮기자는 권고에 몹시 저항할 텐데, 어떤 설득력과 솔선수범으로 변화를 추동해야 할까.

 

일찍이 도둑맞은 미래에서 환경호르몬의 문제를 역설했던 듀마노스키는 온난화를 막겠다는 과학기술을 추문으로 여기면서 대안에 대한 고민을 독자에게 넘겼는데, “지구온난화를 대비한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4대강 사업을 어떻게 평가할까. (시사인, 201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