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1. 10. 10. 00:57

 

미국 금융가에서 세계로 확산되는 시민 99퍼센트의 집회는 탐욕스런 자본 1퍼센트에 분노의 함성을 쏟아낸다. 경쟁을 앞세우는 신자유주의 물결은 얇아지는 중산층까지 빈곤층으로 내몬다. 소득을 일방적으로 편취하는 1퍼센트에 의해 99퍼센트가 수렁으로 빠지는 기현상은 더욱 거친 경쟁으로 해결할 수 없다. 경쟁을 부추겨 이익을 가로채려는 세력의 유혹에서 자유로운 시장, 다시 말해 협동조합의 가치를 다시 되새겨야 한다. 분노의 물결을 넘어 이행해야 할 행동이다.

 

비교우위를 앞세우는 무역자유화는 결국 가진 자의 이윤에 충성하는데,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은 ‘FTA’라는 양자 간 자유무역협정으로 전이되고 있다. 체급이 전혀 다른 미국과 FTA협정에 나선 우리나라는 곧 실행될 모양이다. 세계의 정치와 무역에 관한 의혹을 폭로해 유명해진 위키리크스한미FTA협정에 참여한 우리 고위 관료의 어처구니없는 비화를 공개했다. 협상에서 미국 요구에 응해 우리의 국회와 시민사회를 설득하겠다고 상대측에 약속했다는 게 아닌가. 그쯤 되면 우리 협상단은 차라리 미국인이거나 미국에 맹종하는 하수인이었던 셈인데, 그로 인해 이미 위축돼버린 우리 농업은 설 땅마저 잃게 생겼다.

 

공산품 수출을 위해 희생시킨 우리의 농업은 지금도 비참해 식량 자급률이 26퍼센트에 불과한 실정이다. 쌀이나마 자급할 수 있어 겨우 버티는 것으로 보이지만 한계가 심각하다. 밥만 먹고 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일찍이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은 국가의 진정한 독립은 식량 자급에 있다고 했다. 무던한 노력으로 80퍼센트였던 자급률을 200퍼센트 이상 끌어올린 프랑스도 자국의 농업을 지키려 애를 쓰지만 다국적기업의 횡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쌀 이외 대부분의 곡물을 비롯해 육류와 가공식품을 다국적기업에 의존하는 우리는 한미FTA에 신중해야했건만 실패했다. 드골이 보기에 우리는 식민지나 다름없는 정도였다.

 

한미FTA가 실행될 즈음, 세계 최대 미국계 곡물 다국적기업인 카길이 한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문을 열 예정이라는 뉴스를 지난 10월 초 국내 언론이 보도했다. 충청남도의 공장이 가동되면 국내 최대 콩기름과 사료업체의 매출을 앞지를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자사 농산물을 대량 가공할 테니 소비자는 값싸고 질 좋은콩기름과 사료를 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가격 열세에 놓일 국내업체는 고전할 게 틀림없다. 장차 국내업체들이 경쟁에서 밀려난다면? 카길이 가격을 슬그머니 올려도 우리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응할 수밖에 없다. 빗발치는 민원으로 정부가 나서 가격 통제에 나선다면? 카길은 한미FTA협정의 당사자 직접 소송 조항을 근거로 우리 정부를 고소할 테고, 당연히 패소할 우리 정부는 카길이 주장하는 손실액을 세금으로 고스란히 보전해주어야 한다.

 

막대한 자본을 동원하는 카길은 콩만 취급하지 않는다. 우리가 수입하는 미국산 쇠고기의 대부분을 취급하는 카길이 아예 쇠고기 매장을 연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의 값비싼 한우가 파고를 막아낼 수 있을까.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한미FTA는 카길의 시장 진출을 통제할 정부의 수단을 무력화한다. 농축산물은 물론이고 그 가공식품까지 포괄하는 카길이 막강한 협상력으로 우리 정부를 굴복시켜 한국 내 매장에서 우리네 입맛에 맞는 미국산 쌀을 대거 진열해 비교할 수 없이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 농업은 어떻게 될까. 식량 자급률과 더불어 사망선고를 받지 않을까,

 

아무리 막강한 한미FTA라도 소비자의 의지까지 좌지우지할 수는 없다. 농약으로 땅을 황폐화시키며 농민을 착취한 관행 농산물이 낮은 가격표를 붙여도 생활협동의 소비자 조합원들이 외면했던 건, 땅과 내일을 살리려 애를 쓴 생산자 조합원들의 땀을 신뢰하기 때문이지 정부의 요구나 통제가 없었던 까닭은 아니다. 한미FTA도 마찬가지다. 가격이 높아도 공정무역 커피와 설탕의 흔쾌히 사먹는 소비자의 의지가 더욱 굳어진다면, 카길 또는 그 이상의 다국적기업이 이 땅에 거듭 문을 열어 낮은 가격으로 아무리 유혹해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한미FTA협정으로 자진에서 무력해진 우리 정부에 대책을 호소할 이유도 전혀 없다.

 

한미FT협정 본격 실행을 계기로 생활협동조합은 새로운 사업을 기획할 때가 되었다. 신뢰할만한 유기농산물의 활발한 거래와 더불어 생산자 조합원의 의욕을 한껏 높여줄 자본을 모을 사업이 필요한 때가 된 것이다. 더는 견딜 수 없어 유기농업으로 전환하려는 농민을 적극 도와 전환기 농산물도 흔쾌히 취급하는 것은 물론, 영농비도 지원하자는 거다. 도전하는 생산자 조합원의 생계와 자립을 지원하는 비용까지 생활재의 가격에 공개적으로 포함하면 어떨까. 신뢰를 바탕으로 거래하는 생산자와 소비자 조합원의 의지가 흔들리지 않는다면 생활협동조합은 한미FTA의 파고 따위는 능히 극복할 수 있다. 조상과 후손 앞에 뿌듯한 일이다. (푸른생협 소식지, 2011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