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에너지

디딤돌 2012. 1. 10. 15:59

 

작년 말 도톰하게 내린 눈이 응달에 아직 남았다. 나이 들어갈수록 골절을 조심해야 하기에 조심스레 걷는데, 눈발이 다시 날린다. 우산을 챙기지 않아 외투와 후드로 가리지 못한 얼굴에 차갑게 스치는데, 사람들은 참을 만한가보다. 111일이면 일본 후쿠시마핵발전소 폭발 사고 이후 10개월이 된다. 요즘 우리나라에 내리는 눈은 안전하다 확신해도 좋을까.

 

아스팔트에 기준치 십여 배 이상의 방사능이 오염되고 병원 식당에 방사능이 높은 수치로 유출돼도 안전하다 잡아떼는 우리 사회에 불감증은 만연되어 있는데, 지구 표면에 생명체가 본격적으로 번성할 수 있었던 건, 방사능이 획기적으로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자연 방사능이라 말하는 방사능은 여전히 남아 있고, 그 때문에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나타나지만, 자손을 낳고 세대를 이어가는데 지장이 없는 수준이다. 한데 그 수준의 방사능도 피폭된 개체 하나하나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건 물론이다. 유전병과 암이 발생할 수 있다. 한데 그 수준의 수십 배 높은 방사능이 거리와 병원과 공장지대, 그리고 핵발전소 인근에 노출되어도 어찌 괜찮다 할 수 있는가.

 

일본의 저명한 반핵학자 타까기 진자부로오는 젊은 시절 촉망받는 핵화학자였다. 출세의 탄탄대로를 걷던 그가 가시밭길인 반핵학자로 스스로 들어선 건 과학의 교만과 책임자의 은폐에 진저리쳤기 때문이었다. 빙하에 축적된 방사능을 조사하면서 최근의 얼음층에 방사성 물질이 한정하는 현상에 타까기는 주목했고, 대책을 공론회해야 한다고 제안했지만 처음 외면했던 연구소 책임자는 억압했다. 그는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참여를 택해 그 자리도 걷어치웠고 평생 핵의 문제를 공개하며 행동하는 반핵자료정보실을 운영했다. 그는 한 마디로 정리한다. 안전한 수준의 방사능이란 건 없노라고.

 

후쿠시마에서 4기의 핵발전소가 연속 폭발하자 허둥지둥 떠나야 했던 주민들이 잠시 집에 들를 기회를 얻었다. 놓고 온 물건을 챙기기 위해서였는데, 방호복으로 온몸을 덮어야 했다. 특히 머리를 잘 감싸야 했는데, 두피에 방사성 물질이 끼면 골치 아프기 때문이었다. 물론 위험 반경 내에서 입었던 방호복은 모두 폐기해야 했다. 후쿠시마에서 2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동경의 한 지역에도 기준치의 수백 배에 달하는 방사성 물질이 검출돼 당국을 긴장하게 만들었던 이유는 빗물이었다. 빗물이 모여드는 지역에 방사성 물질의 함량이 높은 건 당연한 노릇이었으므로. 지금은 어떨까. 비록 농도는 낮아졌을지언정 다른 지역에 비해 높은 농도로 검출되는 현상은 바뀌지 않았다.

 

후쿠시마핵발전소 사고 이후 우리나라는 안전하다고 관계당국은 발표하면서 편서풍을 그 이유로 제시했다. 일본 동쪽에서 편서풍을 탄 방사성 물질은 우리나라로 오지 않을 거라고 주장한 건데, 그랬던가. 한 지역에서 발생하는 거대 먼지는 대략 2주일이면 지구 대기권 전체로 확산되는 게 보통이다. 편서풍을 10개월 가까이 탄 방사성 물질은 어디까지 펴졌을까. 1986년 구소련의 체르노빌핵발전소에서 발생한 낙진은 8000킬로미터 떨어진 일본에서 검출되었지만 우리나라에 없었다고 당시 당국은 발표했다. 가당한가. 장담하지만 체르노빌의 방사성 물질은 우리나라에 당연히 떨어졌다. 여전히 분출되는 후쿠시마핵발전소의 방사성 물질은 농도가 늦을지언정 우리 상공에 흩어져 있다. 비 또는 눈에 포함돼 내려올 것이다.

 

부산광역시 기장군에 위치한 고리핵발전소의 인근 주민에게 감상선 암이 유독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당연히 그 지역에 방사성 물질이 많기 때문이다. 고리핵발전소에서 반경 30킬로미터 내에 310만의 인구가 밀집돼 있다. 기술은 물론이고 운영체계가 가장 안전하다고 정평이 난 일본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했다면 자국 핵발전소의 안전도 확신할 수 없다고 여긴 독일은 17기 핵발전소 중 9기의 가동을 즉각 중단했고, 2022년까지 나머지를 폐로하기로 결정했다. ‘세대 간 윤리적 형평성에 위배된다고 보았던 건데, 핵발전소 밀도가 가장 높은 우리나라는 더 짓기로 했다. 명실상부한 핵 도가니를 후손에게 안길 참이다. 흐르는 빗물과 달리 내려오는 눈은 거리에 쌓이는데. (요즘세상, 2012.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