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4. 8. 27. 12:38


일제가 추수한 쌀을 쓸어가던 시절, 저장해둔 보리가 떨어질 무렵 무척 배고팠다고 어려서 할머니에게 들었다. 권정생 선생은 가뭄이 심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지역의 할머니에게 들었다. 이삭이 채 여물기 전, 거지들이 몰려들어 허겁지겁 움켜쥔 보리를 손바닥으로 비벼 입에 털어 넣었다는데 그만, 배를 움켜쥐고 죽어갔다는 게 아닌가. 묻어주지 못한 시체가 여기저기 흩어졌다는 그 시절에서 거의 한 세기가 지난 요즘, 우리는 도저히 공감하지 못한다.


지금은 손이 가지 않지만 졸병 시절, 감춰둔 건빵을 누가 가져가면 참 원통했다. 제대 앞둬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서랍에 숨긴 과자를 훈련 뒤 찾아냈더니 쥐가 쏠았고 오줌까지 묻혔다. 그 쥐도 과자를 독점하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그 과자를 버리며 가졌던 황망함이라니. 지금은 재현되지 않을 게 분명한데, 중복이면 삼계탕을 온전하게 먹는 요즘 군인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사병에게 자신의 건빵을 건네주던 군종장교도 훈련 중에는 감춘다던데, 배고픔은 명예 실추보다 견디기 어려운가 보다.


배추 작황이 비참해 김치가 금치일 때, 단골 식당조차 더 달라는 김치를 난처한 표정으로 내어주지 않을 때, 멀쩡한 김치를 남기고 일어서는 젊은이들이 밉살스러웠다. 뷔페식당의 산해진미에 익숙한 요즘 젊은이들은 돈으로 따지면 20조 원이 넘는 음식을 쓰레기로 버리는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이 쌀을 포함해도 23% 정도에 머문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알고 있다면 경각심을 느낄까? 스마트폰에 온종일 고개를 숙이는 요즘 젊은이들이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홍수와 가뭄이 빈발하면서 우리에게 식량을 수출하는 국가의 작황이 예년 같지 않다는 소식을 자신의 일로 걱정할 거 같지 않다.


물론 걱정하는 젊은이가 아예 없는 건 아닐 것이다. 우리가 먹는 거의 전량의 밀과 옥수수들을 수출하는 미국에 해마다 가뭄이 심화된다는 소식에 긴장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친구와 나누며 대학 교정에서 게릴라 경작을 하는 대학생이 있다. 귀농학교 개근한 뒤 안정된 직장 걷어차고 고단한 귀농의 길로 들어서는 청장년층이 해마다 늘어난다. 하지만 자신이 버리는 음식에 민감해하지 않는 대부분의 시민들은 세계 식량의 추이와 우리의 자급 현황에 관심이 없다. 굶주리는 지역의 고통은 남의 일일 뿐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은 여론이 되고 그 여론이 우리의 경각심을 끌어올려 정책 대안을 모색하게 이끌 텐데, 아직 감지되는 절박함이나 정책적 움직임은 미약하다. 쌀을 제외하고 고작 3%만 자급하는 국가의 책임 있는 자세는 분명히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식량안보연구재단이란 게 있는 걸로 보아 민간 수준의 걱정은 없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인데, 그 방향이 바람직하지 않으니 걱정스레 주목하게 된다. 농작물의 유전자 조작을 찬성하는 그 재단의 이사장의 주장은 본질과 어처구니없이 거리가 멀다.


지금은 지구온난화와 더불어 석유위기의 시대다. 과도한 화석연료 소비가 빚은 지구온난화와 그로인한 기상이변은 미국을 비롯한 세계 곡창지대에 가뭄과 홍수를 교차시키며 기록적 흉작을 거듭하지만 그런대로 버티는 건 석유화학의 뒷받침이 있기 때문이다. 석유를 가공한 화학비료와 제초제와 살충제가 경작지에 막대하게 살포하므로 척박한 땅에서 우리나라에 수출할 식량이 재배되지만 가격은 해마다 상승한다. 다국적기업이 지배하는 곡창지대는 생산하는 곡물보다 경작, 수확, 운송, 저장하며 들이붓는 석유의 칼로리가 10배 이상이다. 우리는 식량이 아니라 그 10배의 석유를 수입해 들이키는 셈인데, 퍼올리는 석유가 소비에 뒤처지기 시작한지 여러 해 되었다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한다.


급증하는 중국과 인도의 요구를 감당할 석유는 지구상에 없다. 이미 상당히 오른 석유는 가격을 낮추기 어렵다. 오히려 지금보다 훨씬 뛸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예상이다. 우리나라가 수입할 식량의 가격도 응당 오를 테지만 더 큰 문제는 수출할 식량이 부족하게 될 시기가 멀지 않다는 데 있다. 해외에서 벌어지는 고통을 생각해보자. 위기는 시시각각 다가온다. 자동차와 반도체를 팔아서 벌어들인 돈도 소용없게 되기 전에 우리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


해외의 유전자 조작 농산물이 대안일까? 그런 농작물은 기상이변에 매우 취약하므로 지구온난화와 기상이변은 식량위기를 지금보다 훨씬 부추길 게 틀림없다. 환경변화에 이겨낼 유전자 다양성의 폭이 극단적으로 제한돼 있는 다국적기업의 씨앗에 의존하는 탓이다. 그런 씨앗이 생산하는 식량의 양이 당장 많아 보이더라도, 환경변화 이후 생산이 위축된다면 우리와 세계는 치명적 굶주림을 피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런 농작물일수록 석유 소비가 많아야 하는데, 석유위기 시대에 우리 식량안보 대비에 가당하기나 할 텐가?


식량안보연구재단의 이사장은 유전자 조작 농산물을 찬성한 특정 환경운동가의 변화를 앞세우지만 그런 이보다 실상을 알면서 반대로 바뀐 생명공학자가 상당히 많다는 사실에 눈을 감는다. 유럽은 무역장벽으로 미국 유전자 조작 농산물을 차단한다고 오도하지만, 유전자 조작 농산물의 위험성 때문이라는 주장을 감춘다. 조작된 농산물의 유전자가 유기농산물을 오염시키는 사례가 미국에서 눈에 띄게 늘어나지 않던가. 에볼라바이러스처럼 당장 인체에 피해가 없으니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다. 나중에 드러나면 인류는 돌이킬 방법이 없다. 생태계는 걷잡을 수 없게 파탄될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


얼어붙은 땅에서 농사를 짓도록 유전자를 조작하면 경작지를 늘릴 수 있다는 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의 생각은 단순하다. 그런 농작물이 생태계의 안정성을 크게 해칠 수 있다는 지점으로 사고가 확장되지 못했다. 농작물에서 빠져나간 조작된 유전자가 일으키는 생태적 오염 뿐 아니라 재배 과정에 더욱 많이 들어갈 석유는 고려조차하지 않았다. 그런 농작물을 우리나라에 심는다면? 식량안보? 우리 내일은 더욱 처참해질 것이다.


식량은 돈으로 사면서 자급에 금이 생겼다. 해외에 의존하면서 주권을 잃었다. 식량은 안보보다 주권이 우선이다. 지역에서 자급할 수 있어야 삶은 비로소 지속가능해진다. 멀지 않은 내일의 식량을 근원에서 걱정하는 시각이 우리 정부와 전문가 사회에 이리 없다니, 끔찍하다. (작은책, 2014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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