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15. 6. 14. 14:13


간첩은 녹음기를 노린다!”


1980년대 6월이면 도시 곳곳에 붙는 현수막의 내용이 그랬다. 녹음기? 대학원생에게 사환학생이 물었다. “오빠, 왜 간첩이 카세트를 노려요?” 그 시절부터 간첩에 대한 경각심이 무너진 걸까? 학과사무실에서 잔심부름하던 야간고등학교 학생은 간첩이 카세트녹음기를 훔치려하니 조심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6월은 그렇게 짙푸르러갔다.


4월 말 부끄럽게 봉오리를 연 나무들은 5월부터 작은 잎사귀를 조심스레 펼친다. 그때 곤충의 알이 부화된다. 연두색으로 물드는 5월의 산록은 아름다운데, 작은 애벌레들이 잎사귀를 갉기 시작할 것이다. 점점 뜨거워지는 햇볕을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려 표면을 한껏 펼치는 6월의 잎사귀들은 완연한 녹색이고 다 자란 애벌레들은 변태를 준비한다. 아직 싱싱하지만 제법 단단해지며 광합성에 여염이 없는 잎사귀는 7월을 넘어 8월이 되면 지치기 시작하고 9월이 되면 피로를 느끼다 10월부터 가지 끝에서 한둘 떨어지겠지. 애벌레 걱정이 없어진 11월의 잎사귀들은 갈색으로 변해 나뭇가지와 연이 끊어질 것이다.


5월 초순, 한두 정거장을 일부러 걷고 지하철을 타려는데 맑은 하늘에서 가랑비가 내린다. 뭐지?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 사람들. 보도블록이 젖었다. 이내 코끝을 스치는 냄새. 생명을 저주하는 섬뜩함. 여린 나뭇잎을 향해 살충제를 뿌린 게 틀림없다. 그것도 나무 아래서 위를 향해. 어쩐지 직박구리들이 며칠 전 시끄럽게 울어댔군. 오늘은 흔한 참새 한 마리 볼 수 없다. 비 내리면 유난히 많은 지렁이가 꾸역꾸역 올라올 테지. 땅속으로 밀려들어가는 빗물에 살충제 성분이 섞이니.


5월이면 어미 새들이 막 태어난 새끼들에게 연한 먹이를 먹여야 한다. 작고 부드러운 먹이는 5월의 잎사귀에 많다. 변태를 앞둔 6월의 애벌레들은 단단해진 잎사귀도 마다하지 않고, 어미만큼 자란 새끼 새들은 커다란 먹이도 꿀떡꿀떡 삼킨다. 나무는 충분히 많은 잎사귀를 달았다. 애벌레에게 뜯겨도 새들이 다가오기에 광합성에 부족함이 없다. 애벌레를 먹고 흘린 배설물은 훌륭한 양분이 된다.


수억의 세월을 그리 공생했건만, 살충제는 관계를 단절시킨다. 살충제에 이내 내성을 갖는 애벌레들이 잎사귀를 마구 갉을 때 섬뜩한 냄새를 피한 새들은 한동안 나뭇잎을 외면한다. 잎사귀를 지나치게 잃는 나무들은 시들고 만다. 살충제가 떨어진 땅에 미생물이 사라진다. 가을에 떨어진 나무 씨앗은 봄이 와도 발아하지 못한다.


나무에 분무하는 살충제는 아교를 섞어 끈끈하다. 그래야 나뭇잎에 오래 붙어있지만 보도블록에 오래 남았다 햇살에 말라 바람에 흩날린다. 보도블록에 사람들이 걷는다. 근린공원을 수놓은 값비싼 조경수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 아래 아기가 아장아장 엄마와 걷는다. 학교를 파한 초등학생들이 뛰고, 노인들이 운동 삼아 걷는다. 비 내리고 나면 다시 냄새가 날 것이다. 조금 희석되더라도.


녹음기를 조심해야 했던 6월이 오자 짙푸르다. 새들이 다시 찾아와 고마운데, 덩치가 큰 직박구리가 늘었다. 살충제에 잘 견디나보다. 사람도 그렇겠지. 약국과 병원은 늘어난다. (푸른두레생협, 2015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