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생명공학

디딤돌 2016. 7. 30. 21:12


미국산 유기농 치즈. 안줏거리로 친구가 가져온 그 치즈의 포장에 유전자 농산물이 없다고 선언하는 ‘non GMO’라는 표시가 버젓하다. 미국엔 공식 ‘GMO 표시제도가 없는데? 임의 표시인가? 한데, 작은 글자들이 더 있다. 돋보기로 보니 non GMO 식품이 GMO 식품보다 안전한 건 아니라는 구색 맞추기였다. 어찌되었든, 그 치즈를 구입한 소비자는 GMO가 아닌 식품을 고를 기회가 있던 셈이다.


GMO 식품을 가공하는 기업의 소송을 대비한 미국의 임의 표시와 달리 우리나라는 국가 차원에서 GMO 식품에 표시를 한다. 하지만 예외가 하도 많아 시장에서 소비자가 GMO 식품을 피하기 매우 어렵다. 우리 땅의 유기농산물로 식품을 가공하는 자가 non GMO로 표시하려 해도 버겁다. non GMO 표시를 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고 주무부서인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으름장을 놓는 마당이므로.


우리나라는 옥수수와 콩을 비롯해 GMO 농작물을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로 알려져 있다. 그 중 상당량을 먹을 텐데, GMO 표시를 찾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공하는 과정에서 조작된 유전자가 제거된 식품을 먹기 때문이라고 담당자는 설명한다. 콩이나 옥수수에서 기름만 추출했으므로 표시할 의무가 없단다. 도심 곳곳에 성업 중인 커피 전문점에 비치된 시럽은 옥수수를 가공했지만 당 성분이 있을 뿐 유전자가 없으므로 표시할 필요가 없단다.


대부분의 가축은 옥수수와 콩이 적당히 섞인 사료를 먹고 몸집을 키운다. 그 사료의 원료는 거의 GMO. 소와 돼지는 물론 닭과 오리도 마찬가지고 요즘은 연어를 비롯한 양식 어류에 GMO 사료를 준다. 다른 사료를 주지 않으니 가축이나 양식 어류도 어쩔 수 없는데, 그런 가축과 어류는 결국 사람이 먹지만 GMO 사료를 주었는지 소비자는 파악하지 못한다. GMO 사료 사용 여부가 궁금해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문의하면, 고기와 우유와 계란에 조작된 유전자가 포함되지 않았다고 동문서답할 게 뻔하다.


유전자 조작 옥수수로 가공한 당분이 들어간 온갖 가공식품과 음료에 GMO 표시는 생략돼 있는데, GMO 농산물로 가공한 식품에도 표시를 찾기 어렵다. 왜 붙이지 않았을까? 가공 과정에서 조작된 유전자가 변성돼 과학적 검증이 정확하지 않으므로 표시를 면제한다는 대답이 준비돼 있을 것이다. 과학적 방법으로 검색이 가능해도 표시를 면제해주기도 한다. GMO의 양이 가공식품 전체의 3% 미만이거나 가공식품을 만드는 재료 중에서 5번 째 이하이므로 표시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설명할 것이다.


비의도적 혼입률이란 개념이 GMO 표시제도에 있다. non GMO를 수입하려 해도 완벽할 수 없다는 논리다. 농산물을 싣는 대형 선박이나 트럭에 전에 실었던 GMO가 남아 있을 수 있으므로 의도하지 않았어도 non GMO 사이에 GMO가 섞일 가능성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3% 이하로 섞여도 양해하겠다는 개념이다. 그러므로 그런 농작물로 가공한 식품에 3% 이하로 GMO 성분이 검출되어도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양해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가공식품에 들어가는 GMO5번 째 이하라면 3% 이하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표시하지 않아도 된다고 덧붙인다.


유럽은 비의도적혼입률이 0.9%이고 그 기준을 초과할 경우 과학적으로 우리도 검증할 수 있는데 왜 여태 2001년 조항을 유지하는가 묻는다면? 2001년 이후 조항 개선을 시민사회나 정치권에서 요구하지 않았고, GMO 표시제도를 논의하는 회의에 시민단체도 포함되었다고 귀띔하겠지. 하지만 충분한 토의 없이 표결로 밀어붙였다는 사실은 생략할 게 틀림없다. 정부에 연구비를 받는 학자들과 정부 산하 기관들, 그리고 정부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다수의 기관에서 2001년 당시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준비한 조항에 순응했다는 사실도 숨길 것이다.


유전자를 조작해 단백질이 많고 빨리 자라는 연어를 미국과 캐나다에서 개발했다. 한미FTA가 체결된 상황이므로 수입될 가능성이 큰데, 현재 연어는 GMO 표시대상이 아니다. 소비자는 지나치게 자라 몸이 혐오스럽게 뒤틀린 GMO 연어를 눈으로 구별하고 구입하는 게 아니다. 훈제로 가공해 얇게 썰어서 예쁘게 포장된 상태로 슈퍼마켓에서 만날 테니 표시가 없다면 속수무책인데, 정작 미국 버몬트 주는 GMO 여부를 표시하겠다고 발표했고 미 의회는 막지 않았다. 버몬트 주의 사례를 따르는 주가 미국에서 이어질 추세라는데, 우리는 역행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non GMO 표시를 하면 GMO가 마치 못 먹을 음식처럼 인식될 수 있고, 소비자가 GMO를 꺼려 비싼 non GMO 가공식품이 많이 유통되면 물가가 상승할 수 있다고 말했단다. 기획재정부도 소비양극화를 부를 것이라 화답했다는데, 산업통상자원부는 미국과 통상마찰이 생길 가능성부터 걱정했다고 한다. 자국의 소비자와 생태계의 건강을 염려한 정부는 우리나라에 없는 모양이다.


GMO는 안전하다고? 먹기 시작한지 이제 20, 서슴없이 식품에 넣은 지 고작 10년 남짓이다. GMO 사료를 먹인 가축에 끔찍한 질병과 기형이 발생하고 수명이 낮아진다는 연구는 GMO를 먹는 사람에게 머지않아 드러날 상황을 반영한다. GMO 농산물을 가장 많이 수입하는 우리나라에서 최근 예전에 드물던 질병이 증가했다. GMO 식품 증가 시기와 일치한다고 자료를 제시하며 통곡하는 책자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GMO 농작물이 기후변화에 몹시 취약하다는 사실은 부각되지 않았다. 수많은 농촌과 농민과 땅을 망가뜨리면서 몇 안 되는 다국적기업의 이익만 늘어난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non GMO 표시는 소비자의 알 권리를 넘어 안 먹을 권리를 보장한다. 소비자들이 GMO를 회피하면 non GMO 생산량이 늘어날 테니 수출 가격이 하락할 것이다. 좋은 이유는 더 있다. 유기농산물 자급 비율이 높아질 테니 먹는 이의 건강을 도모하고 생태계도 그만큼 회복된다. GMO 수출입업체에 눈치 보는 정부가 아니라면 소비자가 피할 수 있을 정도로 확실하게 표시해야 한다. non GMO 표시는 권장 사항이 아니라 국가의 책무다. 시대의 정언명령이다. (작은책, 2016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