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18. 4. 2. 13:00

 

묘목 250그루로 뭉개진 산림 생태계가 복원될까? 묘목도 묘목 나름이고 생태계도 생태계 나름일 텐데, 알파인 할강 스키장을 위해 파헤친 가리왕산도 가능할까? 그도 10년 이내에? 프랑스의 한 텔레비전 뉴스 인터뷰에 출연한 담당 관료는 당당했다. 그리 주장하는 전문가가 있다는 게 아닌가. 그 전문가는 누굴까? 생태학자일까? 생태학자라면 가리왕산 복원을 요구하는 사람들 앞에 나와 같은 주장을 펼칠 수 있을까?


어떤 나무인지 모르지만, 묘목 250그루로 너비 55미터, 길이 2850미터의 스키 슬로프 모두를 복원할 수 있다는 주장은 아닐지 모른다. 표고차이가 800미터에 경사가 17도라는데, 설마. 인터뷰 당시 눈에 띈 슬로프 일부의 생태계를 간신히 복원할 수 있다면 몰라도, 묘목으로 10년 만에 회복되는 산림 생태계는 없다. 게다가 가리왕산은 정부가 지정한 산림유전자원 보전지역이 아닌가? 일개 생태학자가 하느님처럼 “10년 내에 복원되어라!”하고 영광을 언도할 지역이 아니다.


뉴스 인터뷰에 출연한 담당 관료는 어떤 이의 속내를 대신 전했는지 모르지만, 전문가의 주장 뒤에 숨은 이는 누구일까? 궁금한데, 관료에게 당당함을 선사한 그 전문가는 평창동계올림픽 주관 부서에서 적잖은 연구비를 받았을까? 그렇더라도 학술적 뒷받침은 무척 약하다. 전문가의 여러 말 중, 듣고 싶은 내용만 기억하고 인터뷰에 나선 건 아닐까? 16개의 대형 보로 4대강의 생태계가 파괴되는 건 아니라고 말한 어떤 생태학자도 있긴 있었지만.


식물 생태계에서 표토는 아주 중요하다. 온갖 뿌리가 안착하는 표토는 단순한 흙이 아니다.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미생물에서 버섯의 포자, 수많은 거미와 곤충의 터전으로, 그 자체가 생태계다. 다채로운 생물의 서식공간이기에 크고 작은 식물이 뿌리를 내릴 수 있고 식물이 뿌리를 내리기에 크고 작은 동물이 먹이를 찾으며 오랜 세월 배설물을 내려놓았다. 그 역사는 스키 역사와 비교할 수 없다. 인류가 아니라 생물권의 장구한 역사와 맥을 같이할지 모른다. 가리왕산이 특히 그렇다.


안정된 숲은 키 큰 나무만 울창하지 않다. 전문가들이 상층수라 하는 키 큰 나무가 한 그루라면 그 나무의 중간 정도의 나무, 주위 비슷한 크기의 나무들과 생존경쟁을 하며 한참 자라올라가는 중층의 나무들이 상층수보다 수십 배 많다고 한다. 그뿐인가. 바닥의 낮은 나무들은 훨씬 많다. 하층림이라 전문가들이 말하는데, 살아남을지 초식동물에게 뜯겨 사라질지 모르는 키 작은 나무들은 중상층림의 수백 배에 달할 거로 추산한다. 그런 나무들이 뿌리 내리는 표토에 싹이 트지 않은 씨앗은 나무보다 현저히 많을 것이고 미생물과 포자는 그 수와 종류가 무한할 게 틀림없다.



사진? 평창동계올림픽 대할강을 위한 정선 가리왕산 슬로프.


문명을 등에 지는 사람이 지구 표면에 발을 붙이려면 아무리 조심해도 어느 정도의 개발은 불가피하다. 자연 생태계는 물론이고 근린공원에 시설물을 신축할 때, 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그 지점의 표토를 따로 보관했다가 활용한다. 표토는 새로 심는 나무의 뿌리가 제대로 활착하도록 돕기 때문이다. 독일의 표토 활용은 오랜 관행이다. 독일 유학생이 많은 우리나라도 이제 녹지를 개발하기에 앞서 표토를 실효성 있게 보관하리라 믿었는데 아니란다. 근린공원도 아닌 가리왕산에서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환경단체는 어처구니없어한다.


환경올림픽을 지향한다고 우리 당국은 누차 천명했는데, 공사 일정이 촉박했던 걸까? 가리왕산 슬로프 부지의 표토를 보관하지 않았다는 게 아닌가. 일부 지역은 표토를 떠놓았지만 보관이 부실해 활용할 수 없다고 한숨짓던 환경단체 관계자는 대부분의 슬로프에서 표토는 아예 보관하지 않았다고 개탄한다. 그뿐이 아니다. 스키 슬로프 작업을 위한 도로는 6미터 정도로 충분하지만 그 3배나 넓게 파헤쳤다고 분개한다. 작업도로의 표토로 보관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그렇게 공사를 해놓고 환경올림픽을 참칭하도 무방한 걸까?


이제 동계올림픽과 동계패럴림픽이 마무리된 시점이므로 가리왕산에 대한 본격적인 복원을 요구하지만 환경단체의 걱정은 태산이다. 두꺼운 눈이 사라진 가리왕산의 슬로프 부지에 나무를 심어도 뿌리가 활착할지 의문이기 때문이리라. 나중에 다시 심겠다며 이식한 272그루의 전나무와 주목, 그리고 수려했던 천연의 나무들은 대부분 활력을 잃고 죽어간다. 애초 복원을 염두에 두지 않았는지, 이식해 놓은 나무들의 관리가 부실했다.


철새 도래지를 보호하려고 스피드 스케이트장의 신설 장소를 바꾼 1994년 노르웨이 릴리함메르부터 환경은 올림픽 개최의 조건의 필수항목이 되었다. 2000년 하계올림픽을 유치한 호주는 설계가 완성된 시드니의 주경기장을 옮겼다. 보호종인 호주 금개구리가 서식하기 때문이었는데, 우리는 어떤가? 가리왕산의 주목을 비롯해 수만 그루의 자연림은 사정없이 잘라놓고 수백 묘목으로 생태계를 복원하겠다고? 표토도 없이? 17도의 급경사에 심은 묘목은 세찬 눈보라와 비바람을 견디기 어려울 텐데?


가리왕산의 슬로프는 만들지 않아도 괜찮았다. 1990년 완공한 덕유산의 무주리조트에 국제경기가 충분히 가능한 슬로프가 있으므로. 국제올림픽위원회는 사정에 따라 여러 도시에서 경기를 나누어 진행할 수 있다고 양해했건만 우리 당국은 귀담아 듣지 않았다. 이동 거리를 줄여 탄소 소비를 줄인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그렇게 줄인 탄소는 가리왕산을 파괴하며 쏟아낸 탄소에 비할 바 못된다. 가리왕산 슬로프는 고작 8일 사용하고 수명을 다했다. 8일 동안 수백 명의 선수와 임원이 대중교통으로 이동해 덕유산에서 경기를 치렀다면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은 평화와 환경 올림픽으로 역사에 남을 수 있었지만 무산되고 말았다.



사진: 며칠 동안 사용할 스키 슬로프를 위해 사라진 가리왕산 보호 산림유전자원의 모습.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환경을 신경 썼다고 나름 자부하는 모양이다. 친환경 소재를 일부 사용해 경기장을 짓고 태양광과 지열을 이용하여 에너지 효율을 높였다지만, 거기까지다. 올림픽을 마친 경기장은 통째로 폐기물이 되었다. 북한과 동계 아시안게임을 공동 주최하겠다고 설레발쳤지만 이후 계획은 무엇인가? 20만 조금 넘는 강릉 인구가 즐길 규모의 방상경기장은 그렇게 많을 필요가 없다. 결국 폐기물이 될 시설을 위해 자원과 에너지가 막대하게 허비되었다.


가리왕산과 빙상 경기장만이 아니다. 스키점프대 주변의 거대한 숙박시설인 알펜시아도 골칫거리다. 우리 사정이 딱했는지 국제올림픽위원회가 사후 활용 계획을 세워볼 것을 권유했다지만 지속적인 국제경기의 유치와 관리는 평창군과 강릉시의 재정과 인력으로 감당 가능한 행사가 아니다. 강원도는 물론이고 중앙정부가 주도하더라도 쉽지 않다. 올림픽도 아닌데, 지역 주민을 비롯한 전 국민의 관심이 느닷없이 샘솟을 리 없다.


198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일본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전문부서를 두고 복원을 계속하고 있다. 훼손된 가리왕산 산림의 55%만이라도 복원되기를 희망한다는 정부는 시방 어떤 준비에 나서고 있을까? 2000억 원이 넘는 비용으로 1회용 스키 슬로프를 만든 강원도는 얼마 전 복원계획을 슬며시 제시한 모양인데, 산림청에서 퇴짜를 놓았다고 한다. 애초 477억 원의 비용으로 복원하겠다고 약속하더니 고작 10억 원을 예산에 반영한 강원도는 부실한 복원계획을 내미는데 그치지 않았다는 소문도 들린다. 묘목 수백 그루 심고 자연에 맡기자는 배짱이라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단맛 잃은 가리왕산을 내팽개친 게 틀림없다. (작은책, 2018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