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8. 10. 3. 16:54


생산인구는 무엇인가? 전문가는 14세부터 64세까지라고 정의하던데, 아이를 생산하는 인구의 폭을 의미하는 걸까? 하긴 정상이라면 14세 이하나 65세 이상의 연령의 여성이 아기를 낳지 않겠는데, 요즘은 예외가 적지 않다. 성장호르몬이 섞인 육류와 플라스틱 용기에서 비롯되는 환경호르몬이 어린이의 성조속증을 부추기는 현실만이 아니다. 가공음식에 섞인 각종 첨가물과 더불어 일상의 피로와 스트레스는 폐경을 앞당기고 이른 나이의 치매 현상을 전에 없이 높였다.


생산인구가 줄어 걱정이란다. 작년 우리나라의 가구 당 출산율이 사상 유래 없는 1.052명으로 줄었다는데, 올해는 작년보다 심각하게 출발한다는 게 아닌가. 세계 초유로 1.0명 이하로 곤두박질쳤다니 초비상을 넘어 국가의 존립이 걱정일 지경이라는 장탄식이 들린다. 정당 대표 연설에 나선 한 정치인은 국회에서 소득주도성장이 아니라 출산주도성장을 역설했다가 여성계의 호된 질책을 받았다. 그 정치인은 여성계가 자신을 왜 질책 받았는지 궁금해 하고 있을까?


우리 사회에서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건 생산인구가 줄었기 때문이 아니다. 신생아 수가 아무리 줄고 노인이 늘어나도 5천만이 넘는 남한에 생산인구는 충분하다. 젊은 부부가 아이를 낳기를 주저하기 때문일 텐데, 출산주도성정 정책을 펼치면 개선될까? 결혼 적령기에 접어드는 두 아들에게 물으니 코웃음이다. 이성친구가 있어도 결혼을 엄두에 두지 못하는 건 태어날 아이에 대한 걱정이 아니란다. 결혼 이후 자신들의 삶을 먼저 걱정한다. 번듯한 직장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다행인가? 아이들은 연봉 높은 기업을 노크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원하는 일을 추구하며 행복한 가정을 이끌 자신이 없다. 현실이 그렇지 않은가.


생산인구는 그런 뜻이 아니라고? 아이가 아니라 물건을 생산할 인구, 다시 말해 노동 가능한 인구를 뜻하는가? 고등학생보다 어린 소년을 착취하는 사회를 우리는 비난하는데, 65세 이상의 노인은 지금 우리 농촌에서 주류 노동인구다.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우리 농촌에서 청년회와 노인회의 나이차는 그리 크지 않다. 미국 아미쉬 사회는 10세만 넘으면 일을 한다. 남자는 밭에서 여자는 집에서 집안일을 돕지만 그들의 부모가 비난 대상은 아니다.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해도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65세 이상의 노인은커녕 50세만 넘어도 노동에서 소외되기 일쑤다. 우리 사회의 생산인구는 누가 왜 줄이는가?


제 스스로 잘 성장한 아이들은 시방 알바인생이다. 대학 졸업 여부와 관계없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려 애를 쓰지만 세상은 그리 녹록치 않다. 원고료와 강의료로 연명하는 부모에게 대학생 이후 용돈을 받지 않아 고맙기 짝이 없는데, 저축할 여유가 전혀 없다. 알바로 벌어들이는 돈은 모조리 소비하며 순환 경제에 나름 헌신하지만 보잘 것 없을 것이다. 자신을 채용한 자영업자가 알바 수당을 올려준다면? 그래도 모두 소비할 게 틀림없는데, 다정다감한 자영업자가 흔쾌히 올려주고 싶어도 감당이 어렵다. 젠트리피캐이션을 염려하는 처지가 아니던가. 조물주보다 높은 건물주도 할 말이 없지 않겠지.


물건 이야기의 저자 애니 레너드는 4.99달러에 파는 라디오에 경탄한다. 작고 예쁜 라디오가 어쩜 이렇게 저렴할 수 있는가? 곰곰이 생각하다 라디오의 생산과 판매, 그리고 폐기까지 진행되는 과정을 파헤치더니 소스라치게 놀란다. 세계 곳곳의 자원이 낭비돼 무책임하게 폐기되며 오염물질을 내놓지 않던가. 한발 더 나아간 애니 레너드는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착취되는지 살피는데 그치지 않았다. 가전제품 매장에 전시된 라디오는 과연 생산품일까? 구입하자마자 폐기물 신세가 되는 실상에 전율한다.


마시지 않더라도 뚜껑을 따자마자 폐기물이 되는 각종 술과 숙취해소음료 뿐이 아니다. 큰맘 먹고 구입한 최신 전자제품과 고급 자동차도 시간이 지나면 애물단지가 된다. 다양한 자원과 부품과 땀이 들어가 세상에 화려하게 등장했어도 결국 폐기된다. 그 과정에서 숱한 폐기물과 돌이키기 어려운 오염물질을 내놓았다. 작던 크던, 단순하던 복잡하던, 가격이 높던 낮던, 물건들은 생산된 것이 아니다. 변형되었다. 진정한 생산과 다르다. 생산은 한 톨의 씨앗에서 수십 배의 알곡과 열매를 맺는 농사에 있다. 생명의 잉태와 출산에 있다. 그래서 현인은 농부와 여성의 역할을 같다고 경외했다.


농부와 여성의 생산에 폐기물이란 없다. 그렇다. 삼라만상의 생산에 폐기물이란 없어야 옳다. 그런데 라디오를 생산했다고? 자동차와 전자제품을 생산한다고? 터무니없는 언사로 생태계는 훼손되고 말았다. 지구는 온난화되고 마이크로플라스틱은 바다를 초미세먼지는 대기를 끔찍하게 오염시켰다. 자본의 탐욕이 클수록, 노동자가 착취가 가혹할수록 생태계는 더러워지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일자리와 젊은이의 행복이 위축된다. 자본은 늘어나지만 희한하게 경제의 순환은 정체돼 노동 가능한 인구를 압박한다. 그런데 주권자를 대의하겠다는 자는 소득주도보다 출산주도성장을 주창하는가? ‘소득보다 성장에 문제를 제기해야 명징하지 않나? 그가 이야기하는 성장의 주체는 도대체 누구인가?


자본이 추구하는 경제성장은 곧 자본가의 파이를 키울 성장을 의미할 텐데, 경제성장은 무한정 계속될 수 없다. 경제성장을 뒷받침할 자원은 벌써 바닥을 드러냈다. 수많은 지하자원은 물론이고 화석연료와 같은 에너지도 얼마 남지 않았다. 특히 석유는 머지않아 종말을 고할 텐데, 경제성장이 지속될 것인가? 순환 경제의 바탕이 되는 노동자의 수입, 그 수입에 이바지하는 소득이 늘어난다면 정체된 시민경제가 잠시 활발해지겠지만 자원과 에너지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그 역시 지속될 수 없다. 자제하지 않으면 지구온난화에 이은 기상이변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일본보다 7년 빠른 17년 만에 올해 우리나라가 고령사회로 진입했다고 아우성치던 언론은 중국의 진입 속도가 우리보다 빠르다는 걸 굳이 외면했는데, 많은 전문가들은 현재 74억을 넘는 세계 인구는 100억까지 늘어나다 서서히 정체되다 줄어들 것으로 전망한다. 문제는 경제성장을 위한 세계적인 생산이고 소비다. 1983729일 인구 4천만이 넘었다며, 제발 산아제한에 동참해달라던 우리나라의 인구는 현재 세계의 0.71%, 5천만을 헤아린다. 음식 쓰레기를 포함해 식량의 80%를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 내일도 지속 가능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미 어떤 조상도 꿈을 꾸지 못할 만큼 호강하고 있다. 불합리한 분배로 위화감이 커져 그렇지, 자연의 균형을 흩트리는 내연기관과 가전제품을 보유하며 보이지 않는 친지와 영상통화를 즐기지 않던가. 이런 호강은 결코 지속될 수 없다. 지금과 같은 생산과 소비가 필연적으로 빚은 초미세먼지와 마이크로플라스틱은 후손의 건강과 행복은 물론이고 생명마저 지켜주지 못한다. 늦기 전에 생존을 최우선으로 염려하는 대안적 삶을 모색해야 한다. 생산인구 감소를 핑계로 가임여성들 들들 볶을 때가 절대 아니다.


세계인이 미국적 삶을 추구하려면 지구가 6개 필요하다는데 우리는 지구를 생산할 수 없다. 처리 못할 쓰레기로 더럽혀진 지구에서 성장이나 생산을 되뇔 수 없다. 물건을 생산해 소비할 인구가 모자란다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노인의 지혜와 경륜으로 다음세대의 행복과 건강을 고민해야 한다. 65세 이상은 생산인구가 아니라고? 망측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다. (작은책, 2018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