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20. 12. 31. 15:55

 

지난해 말,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은 색다른 표지를 선보였다. 숫자 2020을 붉은 X자로 씌운 그림이었다. 하단에 역대 최악의 해라는 문구가 없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의미였다. 미국의 언론인은 2020년을 잊고 싶을 것이다. 우리도 다를 리 없다. 입시나 결혼을 준비하던 청년, 자영업자와 회사원, 남녀노소 누구든, 아름다운 기억은 거의 없으리라.

 

아버지를 임종한 상주는 몹쓸 짓 할 뻔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동서고금의 관혼상례에 이런 일은 없었다. 요양원에서 몸이 쇠약해지며 의식이 흐려지는 아버지를 먼발치에서 뵙고 돌아서는 자신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 양해를 구하고 모셔오자, 당신의 깊숙한 기억에 오롯한 자식과 손주를 마주하며 편안하게 마지막 길을 떠났다고 한다.

 

이번 학기도 수업을 온라인으로 마쳤다. ‘이라는 프로그램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강의가 끝났다. 그나마 잠시라도 교실에서 학생을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거리두기가 완화되자 대학은 선생 재량으로 교실 강의를 허용했다. 학생 대다수는 온라인 방식을 선호했어도 받아들이기 싫었다. 코로나19 상황이야 이해하지만, 교실 수업으로 환원된 마당에 학생과 선생이 얼굴을 마주하고 토론하지 못하는 수업이라면, 대학에서 차라리 모독이리라.

 

교실과 도서관을 마음껏 이용하지 못하는 학생은 학교에서 선생을 만나지 못했다. 지성의 전당이라더니, 학교에 교육이 사라진 셈이다. 등록금 반환을 요구하는 학생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학교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교실마다 카메라를 설치해 수업 이후 자동으로 강의 내용이 응용프로그램에 올라가는 방식이었다. 굳이 교실에 출석하지 않아도 온라인으로 편히 강의를 들을 수 있어 그런지, 학생 없는 교실에서 강의하는 경험도 생겼다.

 

사진: 고 김종철 선생의 녹색사상집. 철들기 전부터 우리가 마땅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철썩 같이 믿었던 근대문명이 무엇인가? 생태계는 물론이고 조상에게 없던 파멸의 문화가 아닌가. 다 늦었더라도, 다음세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문명은 행복과 거리가 멀다. 그저 생존을 어느 정도 뒷받침하는 문명, 바로 생존을 생각하는 문명은 '생태문명'이라는 걸 처절하게 되뇌는 책,

다음 학기는 어떨까? 6개월 이어지리라 예상하던데, 비대면 온라인 기술로 수업은 가능하겠지. 적당히 또는 허전하게 학점을 받았더라도, 학생들은 학년이 오르거나 졸업해 취업전선에 뛰어들 수 있으리라. 온라인 기술이 없을 때 코로나19와 비슷한 감염병이 창궐했다면 어쩔 뻔했을까? 강의 없는 대학이 처음은 아니다. 1968년 전후 우리나라는 덜했지만, 세계 각국의 대학은 반전 물결에 휘말려 수업을 거의 하지 못했다. 우리도 군사독재의 억압이 극에 달했을 때, 비슷했다.

 

그 시절의 대학생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할까? 배운 게 없어서 허송세월로 지내지 않는다. 여느 때 대학생처럼 각계에서 자신을 일을 무난하게 해왔고 은퇴했다면 뜨거웠던 시절을 기억하리라. 설사 입학한 전공과 다른 분야라도 최선을 다했으리라. 전공을 마쳤더라도 직장에 다니면서 색다른 일에 도전할 기회가 많고 젊은이라면 대체로 무난하게 해낸다. 대학에서 전공이라는 거, 돌이켜보면 내세울 게 못 된다. 경험에서 배우는 일이 훨씬 넓고 깊다.

 

현재 잘 나가는 직업 중 80%는 사라질 거라 많은 미래학자는 예견한다. 하지만 대다수 대학은 대안을 찾지 못하고 예전 전공 분야를 고집한다. 학과목을 맡는 교수가 여전하기 때문이리라. 대학이 직업학교는 분명히 아니지만, 졸업 후 전공을 찾아 직장을 선택하는 관례는 바뀌기 어렵다. 타성과 관성에 젖은 대학은 장차 사라질 직업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고 대책 연구에 무감각하다. 그러니 코로나19 기억으로 2020년을 보낸 청년들이여. 괜스레 무기력할 이유가 없다. 지성에서 멀어져가는 대학이라면, 애틋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요즘 투명 아크릴 가림막을 생산하는 자영업자는 즐거운 비명을 지를까? 알 수 없는데, 코로나19 백신이 보급되면 일상으로 돌아가야겠지. 코로나19는 이제까지 생태계의 모든 생물을 막무가내로 지배해온 인류에 새로운 각오를 요구했다. 영겁의 세월 모진 풍상을 겪으며 형성된 인천의 갯벌은 시방 어떻게 변했나? 세계 5대라던 갯벌은 비행장으로, 화력발전소와 공단으로, 휘황찬란한 초고층빌딩에 짓밟혔고, 그 자리는 대기권에 온실가스를 펑펑 쏟아낸다. 그러자 생태적 완충력을 잃었고 코로나19가 손쉽게 파고들었다. 인천과 우리나라의 수도권만이 아니다. 세계의 회색도시들이 마찬가지다.

 

코로나19 백신이 널리 보급된 이후 떠오를 분야는 무엇일까? 대학은 분명히 아니다. 인공지능이 대신할 직업도 당분간 지위를 잃을 수 있다. 법조 관련 직업이 그럴 거로 미래학자들은 전망한다. 인공지능이 그럴싸한 소설과 시도 내놓는 세상이라니, 있는 사실을 무미건조하게 써내는 기자도, 이익이나 권력을 지향하며 어떤 불순한 의도로 기사를 왜곡 남발하는 기자도 없어지겠지. 창의력이 필요한 직업군? 리얼리? 그렇다면 남을지 모른다. 분명한 건, 그 분야에서 남의 것 슬며시 베끼고 큰소리치던 인간은 도태될 테지.

 

전자출판이 자리를 잡자 신문사는 조판공과 식자공을 내보냈다. 전자자물쇠가 현관문을 차지하면서 남의 집 열쇠 구멍마다 접착제 짜넣던 자물쇠 자영업자는 자취를 감췄다. 다행인데, 앞으로 다시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아직 훗날이라고 믿고 싶지만, 석유가 지배하는 일상이 지나가면 전기 가격이 오르며 부족해질 터.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얻는 전기는 아껴야 할 테니, 우리는 열쇠 수리공을 다시 소환할지 모른다. 전자출판? 무슨! 그때 원고지에 글을 써 출판사로 넘겨야 할 텐데, 가능하려나? 오른손 중지 첫 마디의 굳은살이 다시 딱딱해지기까지 구겨 버리는 종이가 예전처럼 많을까? 지레 걱정한다.

 

최근 유엔 사무총장은 기후위기에 대한 즉각 대응을 촉구하는 자리에서 인간은 자연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이는 자멸과 같다라고 연설했다고 언론이 보도했다. “공기와 물이 오염돼 해마다 900만 명이 사망한다.” 추산하면서 코로나196배에 달한다고 덧붙였다고 한다. 지금과 같은 추세로 사람과 가축이 야생동물의 서식지와 서식공간을 빼앗으면 더 많은 바이러스와 질병이 동물에서 옮겨올 것으로 예견한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젊은이에게 새로운 일상을 열어달라고 부탁한 것일지 모른다.

 

우리는 이름도 복잡한 세계 각국의 다채로운 음식을 두루 맛보지만, 재료는 엇비슷하다. 채소와 과일, 곡물과 육류, 설탕과 알코올, 그리고 가공식품들이 그렇다. 가축과 농산물의 사육과 재배 과정을 살피면 지극히 단조롭다. 석유다. 석유가 없으면 지금과 같은 물량의 음식은 전혀 맛볼 수 없다. 하루만 정전돼도 탈출해야 하는 고층건물마다 텅텅 비는 순간, 어떤 직업이 주목받을까? 골프장 잔디를 걷어낸 자리에 농토를 조성하는 일자리는 어떨까?

 

근대화 이후 인류사회는 개발이라는 마패를 앞세웠다. 기득권의 탐욕을 위해 효율화를 추구하면서 다양성을 희생시켰다. 개개인의 개성도, 생태계의 다채로움도 질식시켰다. 과정보다 속도를 중시했지만, 재생 불가능한 화석에너지를 남용해야 했다. 현란한 현대와 더욱 현란할 내일을 위해 파국 부를 핵에너지를 뽑아내는 무모함을 자랑했고, 나머지는 박수갈채를 보내야 했다. 그러자 코로나19가 엄습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다행히 건강한 사람에게 치명적이지 않지만 새롭게 등장할 감염병은 어떨지 모른다. 기후위기로 영구동토가 녹으면 부패할 동물의 몸에서 어떤 인수공통감염증 바이러스가 빠져나가 고속도로와 국제공항을 따라 세계로 퍼질지 아무도 모른다. 얼마나 위험할지, 백신을 제때 개발할 수 있을지 누구도 점치지 못한다.

 

새로운 일상을 열어가자는 사람이 있다. 우리 정부는 코로나19 이후의 한국판뉴딜을 온라인과 그린뉴딜로 열겠다는데, 아리송하다. 있는 공항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녹지나 습지 또는 농경지를 조성하기는커녕 과거 정권이 오히려 무색하게 생겼다. 간신히 남긴 생태계마저 허문 자리에 공항과 화력발전소를 추진하지 않던가. 코로나19 이후에 어떤 퇴행으로 후손을 밀어붙이려는가? 비인간적인 비대면 사회인가?

 

지난 세기의 유력한 경제학자 케네스 볼딩은 유한한 세계에서 상승적 성장이 지속할 것이라고 믿는 자는 미친 사람이거나 아니면 경제학자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코로나19를 초대한 근대문명은 이제 마패를 내려놓아야 한다. 저항한다면? 자식을 키우는 우리가 빼앗아야 한다. 근대문명보다 훨씬 길었던 생태문명으로 인류 역사는 안정적으로 지탱해왔다. 내 발이 현실에 있으니 당장 실행에 옮길 수 없지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늦지 않게 대안적 삶을 실천해야 한다. (작은책, 20211월호)

 

지극히 타당하고 옳은 지적 말씀, 감사합니다. 무한성장이 가능할 것처럼 외쳐대는 생태 파괴론자들에게 내리치는 죽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