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21. 1. 4. 17:36

 

헤라클레이토스의 불, 에르빈 샤르가프 지음, 이현웅 옮김, 달팽이출판, 2020.

 

머지않아 코로나19 백신이 나온다고 한다. 안전하고 효능이 우수한 백신이 널리 보급되면 드디어 코로나19는 우리를 긴장하게 한 사스나 메르스처럼 슬그머니 자취를 감출까? 이후 우리는 국제공항을 혼잡하게 만드는 일상을 회복해도 좋을까? 1937년 닭에서 최초로 발견했다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요즘 세계적으로 창궐하는 이유는 뭘까? 박쥐를 잡아먹거나 천산갑의 껍질을 우려먹은 사람은 1937년 이전에도 많았을 텐데, 그간 왜 잠잠했을까?

 

동물과 사람을 동시에 감염시키는 인수공통질병의 주요 바이러스는 거의 절반이 코로나19와 독감처럼 RNA 유전자를 가진다고 알려졌다. RNA는 복제과정에서 DNA보다 100만 배 이상 실수를 일으킨다는데, 그 이유를 일찍이 에르빈 사르가프가 알려주었다. 상보성(complementarity)이라고 했다. DNA를 구성하는 4가지 핵산 중 아데닌은 반드시 티민과 결합하고 구아닌은 꼭 시토신과 상호 보완적으로 결합한다는 사실을 1948년에 밝혀낸 것이다.

 

두 가닥의 핵산이 나선으로 길게 이어지는 DNA는 복제과정에 핵산 하나가 빠지거나 끼어들어도 상보적인 핵산 가닥이 제 위치를 원본처럼 지키므로 금방 교정이 가능하다. RNA는 불가능하다. 핵산이 한 가닥이므로 실수를 교정하지 못한 채 숙주의 몸에서 거침없이 증식한 뒤 빠져나간다. 1918년 스페인독감이 그랬다. 애초 그다지 위험하지 않았지만, 변형으로 독성이 강화된 독감 바이러스는 당시 세계 인구의 2% 이상을 희생시켰다. 독성이 약해도 전파력이 강력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중국 우한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고 갔던 2020년 봄과 다른 모습으로 세계 곳곳에 창궐한다. 벌써 몇 차례 변형되었다는데, 시판될 백신과 치료제의 효능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우리나라의 과학 분야 연구비는 한 해 20조 원이 훌쩍 넘는다. 세계의 연구자들이 부러워하는 액수라지만, 연구가 사회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논의되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아니더라도, 코로나19 백신이 가져올 사회적 영향은 어디선가 연구하고 있을까? 우리 정부가 선의로 보급하려는 자궁경부암 백신은 남성도 접종받아야 한다는데, 어떨까? 합리적인가? 부작용을 의심하는 전문가는 최고의 의학 스캔들이라고 분개하는데, 사회적 합의를 생략하고 접종을 서두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질병이 무엇일까? 그 정의와 진단은 전적으로 의사와 같은 과학자의 영역일까? 사회에 따라, 문화에 따라, 회자되는 질병의 모습은 다르다. 과거에 질병으로 취급받던 현상이 지금 질병이 아닌 경우가 많고, 그 반대도 많다. 복합오염 시대에 질병의 원인은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아니 원인을 굳이 알아야 할 필요가 없는 질병도 많다. 질병의 원인을 섣불리 재단하는 일은 무모함을 넘어 위험천만한데, 생명공학이 주도하는 의학 분야가 그렇다. 약을 먼저 개발한 뒤 질병을 창안하는 제약회사의 행태는 어떻게 해석해야 옳을까? 샤르가프는 무엇에 홀린 듯 무모함으로 치달리는 생명공학에 성냥을 주었다고 자책한다.

 

 

유전공학과 상보성 원리

 

평생 자리를 지킨 컬럼비아대학에서 은퇴한 뒤 에르빈 사르가프는 자전적인 책 헤라클레이토스의 불을 펴냈다. 제국의 기운을 잃은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나이가 어려 1차대전 참전이 면제되고 나이가 넘쳐 2차대전을 용케 피했지만, 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젊은 연구자에게 유럽은 선뜻 손을 내밀지 못했다. 히틀러의 광기는 과학자들을 허겁지겁 미국으로 향하게 했고 샤르가프는 박봉이라도 연구를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에 감지덕지해야 했다.

 

연구 진전이 느렸던 2차대전 이전의 과학은 인간적이었다. 하지만 잔혹했던 전쟁을 몇 차례 겪으며 세상이 달라졌다. 패권을 놓지 않으려는 국가는 거액의 연구비를 내걸고 승리에 기여할 기술을 요구했고 과학자 사회는 기꺼이 응답했다. 어릴 적부터 동서고금의 인문학에 소홀하지 않은 샤르가프는 달랐다. 공산주의자를 색출하려는 매카시 광풍이 잠시 스쳤던 경험을 에피소드로 기억하면서 세포막의 주요 성분인 인지질을 연구하던 그는 자연스레 생물학으로 이어졌지만, 과학자 본연의 자세를 잃지 않았다. 선행연구를 내밀하게 분석하고 연결되는 과학적 사실을 탐구하는 데 최선을 다했을 뿐이었다. 그는 연구 결과로 유명해지는 걸 원치 않았다.

 

샤르가프가 정리한 DNA의 상보성 원리는 훗날 DNA 구조를 밝힌 두 젊은 과학자, 제임스 왓슨과 프렌시스 크릭에게 노벨생리의학상을 안기게 하는 실마리가 되었다. 그런데 두 젊은이는 헌신적 논의로 자신들의 연구에 영감을 불어넣은 샤르가프에 한 마디의 사례도 없었다. 샤르가프는 미생물의 형질전환을 밝힌 선배 과학자 오즈월드 에이버리에 대한 헌사를 잊지 않았다. 끊어져 병원성을 잃은 폐렴균의 짧은 DNA 가닥이 병원성 없는 폐렴균에 옮겨가면서 병원성을 획득하게 되는 형질전환 현상은 샤르가프의 과학적 상상력을 자극했고, 상보성 원리를 추론하게 이끌었다. 어찌 고맙지 않을 수 있으랴.

 

사진: 에르빈 샤르가프의 <헤라클레이코스의 불> 2020년 달팽이출판, 그 책 서평을 제재한 <녹색평론> 176호, 2021년 1-2월호.

 

샤르가프가 컬럼비아대학에서 연구를 시작할 때 과학자들은 DNA를 구성하는 핵산의 존재와 종류를 파악했어도 대부분 단백질 연구에 몰두했다. 핵산은 단백질을 보조하는 물질로 여겼기에 형질전환이 과학자의 관심사가 될 수 없었지만, 샤르가프는 에이버리의 연구를 계기로 DNA야말로 생물종의 특이성을 전달하는 핵심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생물종은 물론이고 쌍둥이가 아니라면 개체마다 DNA가 다르다는 건 지금 상식이지만, 에이버리의 연구를 무시한 과학자들은 핵산의 상보성 역시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똬리 튼 고정관념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과학자 사회는 핵산을 이해했고 샤르가프를 새롭게 평가하는 분위기가 생겼다. 상보성 원리를 샤르가프 법칙이라 추켜세우는 사람들은 상보성 원리를 바탕으로 DNA 구조를 연구했다면 노벨상을 받았을 거로 상찬했지만, 샤르가프는 그 순간이 불편했다. 유명세를 혐오하도록 교육받았다고 여기는 샤르가프는 무능력의 소치로 대꾸했지만, 한편 자신의 연구 결과가 어디로 이어질지 몰라 두렵기도 했다.

 

나중에 자신의 전기를 쓴 왓슨과 크릭은 루비콘강에 빠졌다. 연구 성과를 각색하고 보충하고 니스칠까지 하자 언론이 한껏 주목했고 더욱 눈부신 성과를 요구하는 연구비가 거액으로 밀려들었다. 장밋빛 전망으로 치장하는 과학은 기술과 만나 거대해졌고, 거대해진 과학기술은 권력이 되었다. 결국 핵무기를 만든 과학기술은 유전자를 조작하는 생명공학으로 이어지지 않았나. 패권을 유지하려는 국가와 더불어 배타적 이윤을 노리는 자본은 거대과학과 손을 잡고 명성과 연구비에 눈이 먼 과학자들을 줄 세운다. 이윽고 코로나19가 창궐할 필요충분조건이 완성되었다.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2020년 유전자가위 기술을 개발한 미 버클리 대학의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에게 노벨화학상을 안겨주었다. 유전자가위 특허를 둘러싼 법정 소송이 마무리되지 않았는데, 다우드나 교수는 지난 10월 유전자가위 기술 가능성을 한껏 홍보했다. 언제 어디서든 빠르고 간편하게 코로나19를 검사할 진단기술을 개발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5분 만에 감염 여부를 확인한다는 그 기술을 미 당국이 현재 한껏 활용하는지 알지 못하는데, 하루 20만 명의 확진자를 양산하는 미국은 30만 명에 다가가는 희생자 수를 조금도 줄이지 못한다.

 

어떤 목적을 위해 다른 생물의 유전자를 넣는 유전자 조작과 달리 유전자가위 기술은 안전과 윤리적인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필요한 유전자를 동일 종에서 찾아서 넣으므로 GMO가 아니라고 강변하는데, 어떤 가치로 노벨상을 받은 것일까? 유전병 치료는 물론이고 농산물과 가축의 유전자를 정교하게 변형할 수 있다면 경제적 가치는 상상 이상일 거로 평가하는 관련 과학자는 유전자가위 기술을 유전자 교정으로 표현한다. 질병에 든 이유는 유전자 때문이고, 그 유전자는 갈아치워야 할 결점이라는 투다. 그런가? 유전자는 마모되었거나 잘 못 끼워놓은 기계의 부품이 아닌데.

 

유전자는 대부분 홀로 발현하지 않는다. 하나의 형질을 발현하는데 하나의 유전자가 관여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뿐이 아니다. 유전자는 환경을 기반으로 발현한다. 젊었을 때 발현하는 유전자는 나이 들면 작동을 멈추거나 다르게 발현한다. 이따금 나이 든 신체에 암을 일으키기도 한다. 영양 상태가 불량하면 누구나 성장에 지장이 생긴다. 하지만 어떤 유전자가 어느 염색체에서 성장 표현에 관계하는지 모른다. 현 환경에 유리하거나 불리한 유전자가 환경이 변화된 이후 어떻게 발현할지 미리 점칠 수 없다. 위기로 치닫는 기후변화로 기상이변이 일상화된 요즘, 홍보부터 현란한 유전자가위 기술은 어떤 경제적 가치를 누구에게 약속할까?

 

상보성 원리에서 한 발 더 나가는 생물학 연구는 샤르가프를 두려움에 떨게 했다. 생명을 기계적으로 정의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술회했는데, “천국으로 인도되는 나선형 계단DNA는 탐욕에 눈이 먼 세상을 어떤 천국으로 인도하려는가? 더 많은 이윤을 독점적으로 확보하려 경쟁하는 자본은 조급하다. 세포와 육체의 움직임을 구조와 기능으로 분별하면서 불충분하게 확보한 지식을 이윤을 위해 선도한다. 대중에 과학기술의 효능을 대대적으로 광고하면서 부를 끌어모은다. 그럴수록 자본도 과학기술도 오만해졌다.

 

다수확 품종에 맞게 경작환경을 통제하면 수확은 눈에 띄게 늘어난다. 그를 위해 관개와 기계를 도입하자 땅인 짓눌리고 가뭄이 일상화되었다. 드넓은 농토의 다수확 품종이 잡초와 해충을 초대하자 자본은 화학비료와 농약을 살포해야 했다. 생물다양성과 유전다양성이 사라진 이후의 일이다. 축산과학이 혹독하게 계산한 좁은 공간에 최대로 밀집시켜 엄선한 사료를 최적으로 제공하자 돼지와 닭은 빠르게 몸집을 키웠지만, 구제역과 조류독감에 맥없이 스러졌다. 질병이 돌기 전에 안전반경 안의 가축은 모조리 살처분해야 한다.

 

 

거대과학이 만든 파국

 

샤르가프는 핵을 파괴하는 과학을 비판한다. 자연에서 결코 나눠질 수 없는 요소가 아닌가. 수 억 년 전 땅속에 응축된 화석연료를 순식간에 소비해 기후를 위기로 몰아가더니 깨끗하다는 불확실한 가설을 앞세워 원소의 핵을 분열시킨다. 파국적인 핵에너지의 실체를 파악한 과학은 아연실색했지만, 안전신화를 창안하고 핵발전소를 세우더니 아니다 싶었는지 핵을 융합하겠다고 벼른다. 생물 세포 안의 핵을 파괴하면서 감당할 수 없는 위기를 생태계에 끌어들였다. 그 존재를 몰랐을 때 절대 불행하지 않았건만, DNARNA를 자르고 붙이며 유전자를 획일화하자 다양성을 잃은 인류는 생존의 대안마저 잃어간다.

 

1970년대 중반 헤라클레이토스의 불을 쓴 샤르가프는 작은과학을 마지막 구원이라고 믿었다. 간디는 자급자족에 기여하는 기술, 슈마허는 필요에 따라 스스로 만들고 수선할 수 있는 기술을 생각했는데, 인문학에 심취한 그는 다양성을 염두에 두었다. 구체적으로 거론하지 않았지만, 적은 수의 과학자가 느린 속도로 진행하는 과학이길 바랬다. 젊은이 수준으로 건강을 진단하는 의학은 분명히 아니다. 질병을 창안하는 병원은 정작 코로나19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바이오 헬스캐어로 개개인의 질환을 발본색원하겠다는 제약회사도 아니다. 샤르가프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탐미하는 과학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맨해튼 프로젝트를 권유하는 서류에 서명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말년에 바이올린으로 자신을 다독거리며 반핵운동에 나섰다. 핵폭탄 개발을 책임졌던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회한으로 말년을 고통 속에 보내야 했다. 극단으로 치달아가는 거대과학의 상업화를 바라보며 노년을 우울하게 보낸 에르빈 샤르가프가 코로나19를 가장 슬기롭게 통제하면서 핵융합을 선도한다고 자랑하는 한국에서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심정이 될까? 22조 원의 연구비는 작은과학을 질식시킬 텐데.

 

온실가스를 가장 효율적으로 제거하던 갯벌을 광활하게 매립한 자리를 차지한 인천공항이 20년 동안 세계 최고를 자랑했지만, 코로나19가 창궐하자 90% 이상 멈췄다. 코로나19 백신이 상용화되면 다시 붐비려나? 가덕도 신공항과 제주도의 제2공항도 신설되려나?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생태적 완충력을 파괴하는 콘크리트와 비례해 창궐한다. 최첨단 과학으로 코로나19를 잠재우는 의약품이 개발되면 코로나바이러스는 변형돼 때를 기다릴 텐데, 단조로운 생태계에서 찾을 대안은 드물다. 어떤 최첨단이 거대과학이 만든 파국을 해결하겠다고 나설까? 샤르가프가 그립다. 연구비에 눈먼 과학자에게 헤라클레이토스의 불을 권하고 싶다. (녹색평론, 2021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