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21. 1. 18. 17:25

 

올해는 눈이 잦다. 온난화로 북극권에 빙하가 형성되지 않아 발생한 현상이라고 기상학자가 풀이하던데, 언론은 교통을 걱정한다. 제설차와 염화칼슘은 교통체증을 해결한다. 하지만 기상이변은 해결하지 못한다. 심각해지는 기후위기의 속도를 서둘러 줄여야 할 텐데, 지난해 대통령은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2050년까지 내놓은 탄소를 흡수하는 탄소로 상쇄하겠다는 의지였는데, 한가했다. 이어진 정부의 다짐과 계획도 분명치 않았다. 구체성 없는 정부의 한국판뉴딜그린뉴딜의 목록에서 진정성을 느낄 수 없었다.

 

지난 11일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2021년은 회복의 해’, ‘포용의 해’, ‘도약의 해가 될 것이라고 천명했다. 코로나19 고통에서 회복하고, 희생된 이를 포용하며 경제성장하자는 다짐이었는데, 가능할까? 코로나19는 진정 기미를 보이는데, 거리두기로 고통스러운 이의 기다림은 길어진다. ‘K방역으로 선도한다고 운을 띄운 대통령은 OECD 국가에서 성장률이 최고였다며 경제성장을 당연시했는데, 흔쾌하기 어려웠다. 코로나19 고통은 경제성장과 무관하지 않다. 게다기 탄소중립과 경제성장은 양립할 수 없지 않은가.

 

사진: 도시가 확장될수록 자연과 생태계는 파괴된다는 의미의 유럽 어느 도시의 그래피티. (출처는 인터넷)

 

며칠 뒤, 민생의 절박함을 이해하지만 조금 더 견디자던 국무총리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회의를 주관하면서 생뚱맞게 선진국을 언급했다. “일부 선진국에서 경험하고 있는 접종이 지연되거나 백신이 폐기되는 일이 우리나라에 일어나면 안 된다는 다짐이었는데, 집단면역 형성이 달린 문제이므로 주저하지 말자는 당부였으니 이해한다. 하지만 선진국이라는 단어를 굳이 소환해야 했을까? 거슬렸다. 방역을 선도한다는 국가에서.

 

선진국은 우리가 뒤따라야 하는 관행적 모범이었다. 미국을 비롯해 캐나다와 유럽, 그리고 일본과 호주 일원의 국가가 주요 대상이었다. 그동안 열정적인 경제성장으로 우리나라는 이제 소득 수준을 끌어올렸고 한류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선도한다는 의미일 텐데, 국무총리가 선진국으로 거론한 국가들은 현재 방역에 혼선을 빚는다. 방역이든 면역 접종이든 흉내를 낼 일이 거의 없는데, 선진국이라니. 이참에 우쭐해져야 할까? 하지만 생각해보자. 코로나19는 생태계를 분별없이 파괴한 근대 이후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따지자면 선진국들이 코로나19를 창궐할 환경을 조성했다.

 

기후변화 관련 국제협약을 외면해온 미국이 새 정권 이후 어떻게 바뀔까? 미국식 생활은 협상 대상이 아니라던 정권에서 얼마나 달라질까? 코로나19 상황 해결이 시급하니 경제성장을 강조할 여력이 없겠지만, 백신과 치료제로 극복한다면 다시 성장의 길로 나서야 할까? 우리가 막연히 기대하는 선진국의 모델인 미국식 생활을 너나 할 것 없이 매진해야 할까? 에너지를 과소비하고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생태계를 짓밟으며 공항을 만들어야 할까? 코로나19는 주식 가치가 상승하고 에너지 소비가 늘어난 세상에 나타났다. 선진국이 여전히 우리의 선망이어야 하나?

 

거리두기 강화로 9시 이후에 식당을 찾을 수 없다. 23차로 흐느적거릴 기회가 줄어들더니 차차 익숙해진다. 약속이 줄면서 집에 서둘러 들어가자 책을 손에 들 시간이 늘었다. 강사 수입이 다소 줄었지만, 독서량이 늘었다. 어색했던 비대면 수업이 익숙해진다. 학생이나 선생이 타성에 젖은 탓인데, 이런 수업은 차라리 없애는 게 어떨까? 효율을 앞세우는 개발은 생태계에 파국을 안겼고, 철학 없는 교육은 인류사회에 파탄을 불러들였다, 반성 없는 선진국 타령은 코로나19 이후에 어떤 파국을 선도할까? 경제성장을 모르던 근대 이전이 2021년 이후의 대안일 수 없을까? (지금여기, 202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