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21. 1. 28. 22:20

 

지난해 말 노르웨이는 커다란 재난을 당했다. 어린이를 포함해 20여 명이 실종되거나 다치고 700명의 주민이 황급히 대피해야 했다. 산사태에 이은 싱크홀이었다. 오슬로 인근 도시에서 주택 30여 채를 삼키거나 파괴한 재난의 원인으로 노르웨이 당국은 최근 집중된 비를 지목했다고 언론은 전했다. 그런데 큰비는 원인이 아니라 현상이다. 원인은 무엇일까? 지진이나 강우를 만나면 점성 잃고 액체 상태로 흘러내리는 지반이지만, 길고 혹독한 겨울을 보내던 북유럽에 큰비가 내린 까닭을 물어야 했다.

 

2010년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캐나다 밴쿠버는 자칫 노르딕 스키대회를 포기할 뻔했다. 2월에 눈 대신 내린 것이다. 부랴부랴 제설기를 수소문해 가동했고 대회를 마쳤지만, 고위도 지역의 기상이변도 일상이 되어간다. 눈 덮인 시베리아에 산불이 빈발하더니 싱크홀을 만났다. 지하철 공사장에 빗물이 휩쓸자 도로 일부가 무너지는 우리나라는 애교에 불과했다. 북유럽의 무시무시한 싱크홀은 기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마을을 집어삼킨 노르웨이나 어두울 만큼 넓고 깊은 시베리아의 싱크홀은 현재 진행형이다.

 

영구동토의 이누잇 가옥이 한쪽으로 기울다 무너지는 사고는 지하의 메탄이 슬금슬금 빠져나가며 생기는 현상이다. 툰드라 지대의 한대림은 길고 긴 세월 땅속에 파묻혀 토탄이나 갈탄으로 변했고 유럽의 산업화에 일조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는 풍부한 갈탄을 더는 채굴하지 않는다. 대기오염은 최신 설비로 줄일 수 있지만, 이산화탄소 방출을 막을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시베리아의 메탄은 러시아에 막대한 부와 싱크홀을 안긴다. 집어삼킬 마을이 없어 주목받지 않았지만, 산불을 무시무시하게 키웠다.

 

사진: 시베리아에 나타나는 싱크홀. 기후변화로 지하에 얼었던 메탄이 녹아 빠져나가면서 거대하게 발생한다. 사진은 인터넷에서.

 

20115월 전후, 유럽은 공포에 절었다. 신선하다 믿었던 채소를 먹은 2000여 유럽인이 용혈성 요독증후군을 앓았고 20여 명이 사망한 까닭이다. 외교분쟁과 손해배상 공방이 이어지면서 원인은 오리무중이 되었어도 짐작은 한다. 전문가들은 스페인 남부 알메리아의 비닐하우스 단지를 주시한다. 알메리아는 15세기 대항해시대 이전 울창한 숲이었지만 범선을 위해 벌채한 뒤 황무지로 방치된 곳이었다. 1980년대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피레네산맥의 만년설에서 농업용수를 가져오면서 황무지는 세계 최대 비닐하우스 단지로 개과천선했다, 하지만 기후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눈 쌓이던 피레네산맥에 비가 쏟아진다. 강수량이 부족한 알메리아는 지하수를 찾았는데, 점점 깊어졌다. 비닐하우스 농작물은 영양분을 포함하는 물을 적량 적시에 받아야하므로 알메리아는 농업용수를 재활용했다. 경쟁에 몰리는 농부는 생산비를 줄여야 했고, 이따금 농업용수 정화에 소홀했다. 용혈성 대장균이 발생한 원인으로 전문가는 추정하는데, 모름지기 인과관계는 소송에 휘말릴수록 규명이 어려운 법이다.

 

올겨울은 추워서 다행이다. 작년 겨울은 눈다운 눈을 허용하지 않았다. 요즘 털장갑 낀 손을 호주머니에 찌르고 종종걸음칠 때 보이는 부자동네의 가로수는 알록달록한 털옷을 입었다. 보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필요없는 장식이다. 잎사귀 갉는 애벌레를 예방하려고 예전에 짚을 씌웠다. 나방이 땅이 아니라 짚에 알을 낳도록 유도하고, 그 짚은 봄에 태웠다. 가로수 옷은 주인 취향으로 입힌 반려견의 옷처럼 부자연스럽다.

 

관측 이래 수치를 거듭 경신하는 기상이변은 2019년 여름에 형벌 같은 더위를 안겼다. 2018년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일본 큐슈와 오키나와 그리고 대만까지 영하의 날씨에 휘감은 한파는 기후위기가 빚은 뜻밖의 사태였다. 온난화로 북극해의 빙하가 녹자 상층권에서 한기를 붙잡던 제트기류가 느슨해졌고, 한파가 낮은 위도 지역으로 빠져나가 생긴 재난이었다. 2019년 여름의 폭염은 티베트고원 만년설의 빙하가 녹아 벌어졌다. 설원이 사라지자 상층 제트기류가 느슨해졌고, 폭염이 우리나라 쪽으로 번졌다고 기상 전문가는 해석했다.

 

제설차가 꼼짝하지 않았던 겨울이 지나가자 지난봄에 매미나방 유충이 전국 산림과 논밭을 뒤덮었다. 경상북도와 충청북도의 과수원은 병균에 감염돼 잎사귀가 바싹 말랐는데, 올봄에 매미나방은 들끓지 않겠지. 하지만 기후변화는 사과 재배지를 끌어올린다. 언제까지 추석 차례상에 사과가 올라갈지 궁금한데, 제주도와 남도 숲의 요정인 긴꼬리딱새와 동박새는 강원도 일원에 둥지를 친다. 제주도 곶자왈이 훼손된 탓이 크지만, 기후위기가 곁에 왔다는 증거다. 아열대 해파리와 어패류는 일찌감치 우리 바다를 점령했다.

 

그린란드 빙하가 녹아내리자 공포를 느낀 아이슬란드 소설가 안드리 스나이르 마그나손은 변질되는 시간과 물에 대하여고뇌한 책에서 사람들의 안일한 태도에 절망한다. 생태계와 인류를 파국으로 몰고가는 기후변화를 절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자신을 채찍질하며 히말라야 빙원이 녹아내릴 상황에 안절부절한다. 운 좋게 나치의 사슬을 피한 조부모 덕분에 태어난 소설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점점 강력해지는 자연의 경고를 귀찮은 소음 정도로 취급하는 자들에게 우리가 날씨다라고 외친다. ‘K방역에 취한 우리는 어떤가? 기후위기의 파국을 모면할 운이 찾아올까?

 

대통령이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자 자동차 대기업은 2040년까지 내연기관을 가진 자동차 생산을 중단하겠다 호응했다. 유럽과 일본은 2030년에 생산 중단을 선언했고 미국 새 정권도 동참을 예고하는데, 우리는 한가하다. 2040년 이전에 내연기관 자동차를 팔 수 있다고 보는가? 유럽 대부분의 국가는 2030년에 모든 화력발전을 폐쇄하겠다고 선언했는데, 화력발전소를 계속 짓는 우리나라는 고물 발전소 연료를 천연가스로 대체하겠다며 생색을 낸다. 막대한 전력이 필요한 디지털 산업을 한국판 뉴딜로 선전하는 국가다운데, 천연가스는 기후변화와 무관하다고 믿는 걸까? 전기와 수소로 움직이는 자율자동차는 그린뉴딜인가?

 

바닷물이 시내까지 넘치자 베네치아는 8조 원의 예산으로 해수면 상승을 막으려고 발버둥치지만 전문가들은 가당찮게 본다. 이번 세기 내에 25cm 상승할 해수면은 그린란드 빙하가 모두 녹는다면 7미터 이상 육지를 삼킬 거로 예견한다. 해수면은 목욕물이 욕조에 차오르듯 상승할 리 없다. 해일과 쓰나미를 동반하며 해안 방호벽을 가볍게 넘거나 파괴할 게 틀림없다. 중국 상하이는 해수면 아래로 사라질 텐데, 인천공항은 온전할까? 자동차 광고의 매카인 송도신도시와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해운대 아파트는 언제까지 명성을 유지할까? 이용객이 90% 이상 줄어도 만들겠다는 가덕도, 울릉도, 흑산도, 백령도의 공항은 무슨 소용인가?

 

경작이 시작된 이래 홀로세였던 지층이 오로지 인류의 탐욕으로 변질되었다. 홀로세가 아니라 인류세로 변경하자고 학자들은 2000년에 제안했다. 사회학자 클라이브 해밀턴은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않는 인류가 빚은 필연적 파국으로 분석한다. 코로나19가 번지자 유럽과 미국의 부자들은 비상식량과 생존배낭을 챙겨 안전지대로 탈출했지만, 소용없었다. 인류세 지층에 탈출할 안전공간은 없다. “자네만 잠자고 있으면” “걔만 잘했다면아무 문제 없는 듯 지나가던 시절은 지나갔다.

 

1991년 미국 애리조나 사막에서 시도한 인공 생태계 연구는 실패했다. 우주에서 자급자족하며 살아갈 공간은 연구자의 허황일 뿐 인류의 꿈이 아니다. 생태계에서 태어난 인류는 어찌되든 지구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코로나19는 지금과 같은 삶은 틀렸다고 분명하게 경고한다. 콘크리트로 생태계를 질식시키는 삶은 후손의 몫까지 빼앗아 짓밟는다. 포유류 생태계의 97%를 차지한 인류는 식물의 70%, 동물의 60%를 먹어치운 뒤 버린다. 다양성이 손상된 생태계는 완충력을 잃었다. 파국 부르는 기후위기에 포위됐다.

 

2021년 백신을 개발한 인류는 석유로 유지되는 과학기술로 코로나19는 통제할 수 있다고 교만해한다. 티베트의 영구동토가 녹으면 온난화된 콘크리트 지층에 어떤 인수공통질병들이 스멀스멀 창궐할까? 자신의 비빌언덕인 생태계를 유린한 인류는 코로나19 이후의 바이러스에 대항할 수 있다고 믿는 걸까? 입춘 지나 신축년에 들어서면 백신이 본격 보급될 텐데, 코로나19의 경고는 2020년 소음으로 잊혀질 것인가? (작은책, 202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