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21. 4. 19. 14:58

 

올겨울에 양간지풍이 산불을 일으키지 않았다. 양양에서 백두대간을 넘어 간성으로 건조한 바람이 불며 화기를 확산시키던 양간지풍은 잊을만하면 지역의 산림을 시커멓게 태웠는데, 이번 겨울은 무사히 지나갔다. 양간지풍이야 늘 있을 텐데, 다행히 산불을 동반하지 않았다. 기록은 모르지만, 예전 양간지풍은 산불을 자주 동반했을까?

 

캘리포니아가 넓기는 넓은가 보다. 서울 버금가는 면적의 숲을 짓밟는 화마가 해마다 반복된다. 20여 년 전, 포도주 시음했던 기억이 머문 나파밸리는 요즘 꽤 유명해졌다는데, 얼마 전 화마에 휩쓸렸다. 그랬더라도 돈벌이가 신통하므로 포도주 농장들이 문을 다시 열 것이다. 완전히 자동화된 나파밸리의 포도주 산업은 태평양에서 로키산맥을 넘어 건조하게 불어오는 바람 덕분에 자리 잡았지만, 불에 아주 취약하다. 캘리포니아는 예전에 울울창창한 산림이었는데, 무슨 일이 생겼던 걸까? 산불이 잦았다면 숲이 형성될 리 없는데.

 

어릴 적 미국의 산림을 소개한 사진을 본 적 있다. 커다란 나무 아래 터널을 뚫고 자동차가 지나가는 장면이었는데,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이 쓴 자전적인 책, 나무 위의 여자는 여전한 미국 서부의 거대한 산림을 소개한다. 캘리포니아의 옛 모습이지만, 대부분의 숲이 위기에 처해 있거나 벌목돼 사라졌다. 요즘도 열 명 이상 앉을 책상의 원목은 거의 미국에서 수입한다던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던 캘리포니아 숲이 사라진 뒤 양간지풍 비슷한 지역풍은 화마를 불러들였다고 전문가는 주장한다.

 

샌프란시스코 일부에 흔적이 남은 울울창창한 숲보다 규모는 작지만, 가까이 가면 경외심으로 가득하게 하는 산림이 우리나라에 있다. 설악산과 이어진 점봉산으로, 산세가 하도 험해 전쟁 준비로 산림자원을 마구 수탈한 일제도 건드릴 수 없어서 보전되었다고 전문학자는 토로한다. 점봉산 일부를 제외한 백두대간은 수탈로 황폐해졌다. 나무를 심어 겉보기 푸르르지만, 불에 약하다. 커다란 나무들을 잃자, 산록이 건조해진 탓이다. 오렌지와 아몬드 같은 과수가 점령한 캘리포니아처럼.

 

최근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선언한 정부 정책에 호응한 발표였을까? 최근 산림청이 2050년까지 30억 그루의 나무를 심겠다는 포부를 밝힌 모양이다. 한데 30억 그루를 심기 위해 수령 30년이 지난 나무를 베어내겠다는 의지를 표명해 논란을 자초했고, 환경단체는 강력하게 반발했다. 산림청은 나무 나이 “30년 이상인 나무는 탄소흡수 능력이 떨어진다.” 주장했다는데, 그럴까? 산림청은 경제 효과에 경도된 걸까? 나무를 단순한 목재로 인식하는 건가? 그리 생각한다면, 산림청은 딱하거나 잔학한 존재다. 다양성의 기반을 생태계에 제공하는 산림의 중추라는 상식을 모르거나 일부러 무시했다.

 

사진: 수천 년 나이의 나무를 베어내 숲을 황폐화하는데 일주일이면 충분하다. 다시 자라오르는 나무에 탄소가 저장되겠지만, 기존 숲의 탄소는 공기중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고 무엇보다 흙에 형성된 토양생태계가 무너지며 막대한 탄소가 배출될 수 있다. 나무가 아니라 숲과 흙에서 안정된 생태계일 때 온난화를 부추기는 대기의 탄소가 효과적으로 줄어들 수 있다.(사진은 인터넷에서)

 

커다란 교목이 한 그루 있다면 그 주변에 교목을 향해 중간 정도 자라 오르는 나무가 20여 그루가 있고 바닥에 뿌리를 내린 어린나무들이 수백 그루 있다고 숲 전문가는 말한다. 흙에는 뿌리 내리려는 나무 수천수만 개의 씨앗이 때를 기다릴 텐데, 나무뿐이 아니다. 풀과 이끼들, 버섯과 미생물, 곤충과 동물은 숫자를 셀 수 없게 많을 것이다. 그렇듯 개체가 큰 나무가 형성한 생태계는 무한히 다양한 생물이 무사하게 얽히고설키며 어우러졌을 게 틀림없다. 그런데 나무를 탄소를 흡수하는 목재에 불과하다고? 고시를 통과한 공직자가 있는 정비기관이므로 무식할 리 없다. 교활했다. 최고 권력자에게 아첨하려는 의도였겠지.

 

나무는 물론 많은 탄소를 함유한다. 점봉산이나 과거 캘리포니아의 거목이라면 30년생보다 훨씬 많은 탄소를 저장할 텐데, 산림청은 냉큼 잘라낼 궁리를 했다. 섣부른 판단을 앞세운다면 산림청은 생태계 학살 기구에 불과한데, 탄소는 나무보다 흙에 저장해야 생태계가 더욱 건강해진다. 토양생태학자 데이비드 몽고메리는 발밑의 혁명에서, 나무뿌리에서 미생물까지 깊을 뿐 아니라 촘촘하게 얽힌 땅속 생태계를 반드시 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화석연료를 태워 대기에 쏟아낸 탄소를 다시 땅에 넣을 수 있다면 위기로 치닫는 기후변화를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을 거로 기대한다.

 

일제가 마구 벌목한 뒤 열심히 나무를 심었기에 이제 녹색을 선보이는 우리 숲은 아직 어리다. 사람이 심은 나무들이 자리를 잡으면 이어 자연림이 들어와 숲은 안정된다. 30년생인 자연림이라면 땅속 미생물과 영양분을 주고받으며 토양 생태계를 풍요롭게 만들 그 시작 단계라고 볼 수 있다. 탄소중립 운운하며 베어낼 고령목일 수 없다.

 

환경단체는 30억 그루의 나무를 심지 말라는 게 아니다. 그 정도의 나무는 공장이 밀집된 산업단지, 콘크리트가 숲을 이루는 도심에 집중적으로 심을 필요가 있다. 30억 그루 식재를 과시하며 청년기에 들어선 나무를 베어내겠다는 발상은 산림 정신에 역행한다. ‘산림학살청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여기, 2021.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