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21. 5. 31. 22:51

 

51일은 노동절이다. 전국의 노동자들은 노동절에 푹 쉬었을까? 세계가 노동절로 기억하는 그 날을 우리 법은 근로자의 날이라 고집하면서 달력을 붉게 인쇄하는 걸 한사코 마다한다. 노동절을 기념하기까지 세계 노동자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희생이 강요당했던가. 저항의 역사를 잘 알았기에 군사정권은 노동절이라는 명칭을 노골적으로 꺼렸고, 탄압까지 불사했다. 한데 노동자의 촛불에 힘입어 탄생한 정권은 무슨 연유가 있기에 관행의 사슬을 여태 풀지 못할까? 그래도 많은 노동자는 51일에 쉬었다.

 

422일은 지구의 날이다. 지구는 쉬었을까? 46억 년 넘게 존재한 지구는 고작 51년 전, 자신을 기념하는 날이 제정되었으므로 흔쾌할 리 없다. 422일도 어김없이 지구는 인간의 분별없는 생채기로 고통스러운 땀을 뻘뻘 흘렸다. 자연을 정복하겠다는 인간은 지구 깊숙한 곳에 오래전에 묻힌 석유를 멋대로 뽑아내 마구 소비했고 여기저기 흘렸다. 재앙 징후를 눈치챈 극소수 인간은 지구의 날을 제안했는데, 한국의 환경단체는 10분 동안 전등 끄기로 호응했다. 그 시간, 프로야구가 한창이었다. 사방을 둘러보니, 전등을 끈 집은 거의 없었다.

 

지구의 날 이틀 전, 인천의 환경단체는 국민연금관리공단(이후 연금공단) 지역 사무소의 앞마당을 찾아갔다. 10조 원에 달하는 석탄 투자를 당장 멈추라!” 요구하려고 행동한 것인데, 연금공단은 놀랐을까? 한 무리의 열혈 청년이 소동을 일으킬까 괜스레 긴장하며 서성였는데, 웬걸. 예고한 행동을 짧게 연출하면서 큰소리로 읽은 성명서를 전달한 환경단체는 30분 만에 일정을 마무리했다. 환경단체와 동행하며 나는 사진기자들 앞에서 불끈 쥔 주먹을 몇 차례 치켜올렸는데, 쑥스러웠다. 다음날 몇 지역언론이 단신 처리한 기사와 사진을 본 시민은 거의 없으리라. 과연 연금공단은 석탄 투자를 망설일까?

 

사진: 지구의 날에 앞서 인천환경운동연합은 국민연금관리공단 인천 사무국 마당에 모였다. 석탄에 연 10조 원의 국민연금을 투자하는 행태를 비판하는 집회와 간단한 행동을 보여주는 자리였다. 후손의 숨결을 옥죄는 투자로 모으는 돈을 연금으로 받을 수 없다고 외쳤했다.

 

표면의 70%를 바다로 덮은 지구는 23.5도 기울어진 상태에서 하루 한 차례 자전하고 1년에 한 차례 태양을 공전한다. 그 결과 어느 강이든 해마다 한 차례 범람하고 한번은 마른다. 햇볕에 증발한 바다와 숲의 수증기는 태곳적부터 적도 이북에서 서풍, 이남에서 동풍을 타고 흐르다 산등성이에 부딪히면 비로 떨어져 바다로 흘러드는데, 대략 5억 년 전, 바다의 생물은 육지로 올라설 수 있었다. 깨끗한 물과 공기가 충만한 이후의 사건인데, 독특한 육지 지형에 어우러지며 다채로운 모습으로 퍼져나간 진화는 다분히 우연이었다.

 

생태계를 다채롭게 지탱하는 지각과 대기는 매우 얇다. 살짝 굳은 지각은 뜨겁게 움직이는 마그마의 분출을 용케 막아내고, 지표면이 공기 흐름을 안정시키기에 독특한 생태계는 수많은 생물로 얽히고설키며 번성했다. 변고도 적지 않았다. 지각과 대기가 안정을 잃을 때마다 생물들이 괴멸하거나 번성하기를 반복했지만, 필연이 아니었다. 대멸종도 다섯 차례 있었다. 지각을 뚫은 거대한 운석과 지진은 화산에 이은 마그마 분출을 일으키며 대기는 파국을 만났고, 당시 생물종의 70% 이상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6500만 년 전의 5번째 대멸종을 넘긴 뒤 겨우 안정되었는데, 이런! 다시 위기에 몰렸다.

 

이번 위기는 우연이 아니었다. 지구 생태계에 가장 늦게 나타난 인간이 문제를 일으켰다. 날카로운 송곳니와 발톱이 없고, 단단한 가죽과 민첩함도 없이, 놀라운 지능으로 생태계에 돌이키기 어려운 충격을 가했다. 자신의 번영을 위해 지구 환경을 독단적으로 변화시킨 것인데, 지나쳤다. 안정을 잃은 지각과 생태계는 회복하려 움직인다. 뒤틀린 지각은 지진과 해일을 일으키고 교란된 생태계는 전에 없던 감염병을 퍼뜨린다. 그렇듯 지구는 인간에게 경고를 거듭했건만, 인간은 교만해졌고 위기는 증폭되었다.

 

예민한 사람도 이따금 존재한다. 그들이 지구의 날을 제창했지만. 지구를 위한 반성이었을까? 거듭되는 경고를 짐작하자 더럭 겁이 났고,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는 인간에게 생존을 도모하자고 절박하게 호소하는 건 아닐까? 5차례 대멸종은 대부분 이산화탄소 같은 온실가스의 축적이 화근이었다. 마지막 대멸종 이후 어렵사리 형성된 생태계는 인간이 화석연료를 소비한 지 불과 1만 년 만에 파국을 만나려 한다. 전대미문의 속도로 탄소가 대기에 축적되면서 온난화가 가속된다. 교만을 깨닫지 못하는 인간은 언제까지 온전할까?

 

봄비는 풍년을 예고한다며 조상은 쌀비라 했다. 봄비가 잦은 올해에 풍년이 들까? 아까시나무의 꽃이 만개한 다음에 산불이 나지 않는다고 믿었건만 요즘은 아니다. 언젠가부터 산불이 잦다. 잦은 봄비에도 낙엽이 젖지 않는 이유는 봄철의 강력한 먼지바람 때문이 아니다. 지구가 뜨거워진 탓이다. 코로나19 이후 화석연료 소비가 다소 줄어들자 황사와 미세먼지도 줄어 얼마 전의 하늘은 제법 쾌청했지만, 기상학자는 고개를 갸웃한다. 이례적이라는 거다. 5월에 들어도 오싹하게 쌀쌀한 날씨가 이어지더니 미세먼지가 며칠 끔찍해졌다. 프로야구에 제동을 건 철 지난 먼지는 지난겨울 몽골과 고비사막에 눈이 적었기 때문이라데, 기상학자는 느닷없을 폭염을 걱정한다. 북태평양고기압이 북상해 한랭전선을 밀어낼 거라는데, 우리는 심각해지는 기상이변을 어떤 각오로 맞아야 하나?

 

물속 생태계에 시아노박테리아가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모양이다. 시아노박테리아와 같이 강력한 독성 물질을 배출하는 생물이 늘어나는 변고는 온난화를 웅변한다고 해석하는 기상학자는 갯벌을 잃은 우리 서해안과 흐름이 멈춘 4대강을 주목한다. 호수가 바싹 마른 몽골과 눈이 사라지는 고비사막은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다. 기후위기의 참혹한 결과다. 남북아메리카 대륙과 유럽의 피레네산맥도 마찬가지다. 물 부족으로 사막화가 가속되는 지역에서 미국과 호주를 제외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 막대한 농산물과 화석연료를 수출하는 국가다. 4대강에 늘어날 시아노박테리아는 첨단 과학기술로 제거할 수 있을까? 미국이 식량 수출을 중단하면 바이오팜이 해결할까? 그러자면 막대한 화석연료를 추가로 준비해야 한다. 첨단일수록 화석연료 소비는 늘어날 것인데.

 

연금공단의 기금운용 능력이 탁월하다고 우리 언론이 뿌듯해한다. 덕분에 가입자들은 안정된 연금을 기대할 수 있다는데, 언론은 석탄에 투자하는 태도까지 칭찬한 걸까? 지난 420일 인천 연금공단 사무소에 모인 인파 중 국민연금을 받는 이는 오롯이 한 명이었다. 대학을 졸업했거나 작파하고 자기의 행복을 찾아 헤매는 자녀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초로의 인간이었다. 그는 점점 비좁아지는 생존공간을 물려줄 수밖에 없는 현실에 좌절한다. 어떻게든 기후위기를 최선으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는데, 연금공단이 석탄에 투자한다고? 자녀의 숨통을 조이며 벌어들인 돈으로 연금으로 받아야 한다고?

 

1992, ‘환경을 지키는 어린이를 대표한 12세 세번 스즈키는 리우환경정상회담에서 세상의 모든 어버이에게가슴 절절하게 연설했다. “착한 사람이 되라, 동물을 사랑하라가르치면서 전쟁을 일삼는 어른에게 눈물로 호소했다, 죽은 연어를 되돌아오게 하거나 사막이 된 숲을 되살릴 능력이 없으면서, 생태계 파괴를 멈추지 않는 어른에게 매달렸다. “당신의 아이들을 사랑한다면 당장 탐욕을 멈춰달라고 30년 전에 애원했지만, 30년이 속절없이 지나갔다. 대신 한국의 연금공단은 석탄에 거액을 투자한다. 스스로 멸종위기종을 자처하는 10대의 목소리를 대변해 집이 불타고 있으니 절박한 마음으로 당장 행동해달라고 어른에게 외친 그레타 툰베리는 눈을 부릅뜬다. 연금공단은 어떤 변명을 늘어놓을 수 있겠나.

 

지난 54일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정부의 ‘2050 탄소중립을 비웃었다. 새만금 간척지에 온실가스를 대거 배출할 시설을 밀집시키겠다는 후보자의 포부가 불길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지구 처지에서 가증스럽게 탐욕스러운 이제까지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꿀 정책에 전혀 관심이 없는 후보자를 우리의 국회는 전혀 책망하지 않았다. 점점 분명해지는 온난화의 위기 앞에서 후손의 생명은 화석연료에 저당된 것이 분명하다. 이 땅의 어버이는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제 자녀의 생명을 이권에 팔아넘기려는가! (작은책, 2021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