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21. 6. 21. 19:42

 

벌써 1년이 지났다. 헤어진다는 건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의미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던 그 날에서 1년이 지난 오늘, 금선사를 다녀왔다. 안치된 곳에 김종철 선생의 사진은 없었다. 없어도 괜찮지만, 만날 수 없다는 사실로 새삼 가슴이 아팠다. 그날 새벽 백사실 계곡은 간밤에 내린 비로 흥건히 젖었을 텐데, 오늘은 화창했다.

 

함께 금선사에 오른 이와 헤어져 광화문의 큰 책방을 두리번거렸다. 기후위기를 상투적으로 진단하는 책이 눈에 띄었다. 기후위기는 기정사실인데, 우리에게 남은 일상은 무엇이지? 선생께서 강조한 생태문명이겠지? 어두운 백사실 계곡을 산책하면서 생존을 위한 마지막 대안인 생태문명을 고민했을까? 부딪히는 현실에서 암담했을까? 마지막까지 사과나무를 심자던 선생은 왜 미끄러졌을까?

 

집에 돌아오니 채점과 원고가 현실이다. 시간을 쪼개기로 한다. 강연 계획과 원고 구상은 미뤄야 한다. 내일 회의에 가지고 갈 의견부터 정리하고 원고를 쓰자. 회의자료를 들여다보니, 다가오는 지방선거와 대선을 앞둔 공약을 시민의 처지에서 평가하자는 내용이다. 최근 선거에 정치권이 내놓은 공약을 열거했는데, 개발, 발전 타령이 대부분이다. 이번에는 달라야 할 텐데, 또 몽상가 소리를 들겠군.

 

시진: 1991년 격월간 평론집 <녹색평론>을 결행 없이 발행하고 2020년 6월 25일 별세한 고 김종철 선생. 생존을 생각해야 한다면 지금과 같은 파국을 불러온 근대문명을 벗어나 생태문명, 다양성의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왔다. 

 

여당 대표 국회의원이 얼마 전 국회에서 연설했는데, 비판이 SNS 공간을 달군다. “지금보다 1.5도 낮추지 못하면 인류사회에 파국이 올 것이므로 소형 핵발전과 핵융합에 투자해야 한다!”하고 주장한 모양이다. 내 참. 지금부터가 아니다. 산업화 시절보다 섭씨 1.5도 이상 지구의 평균 기온이 오르면, 인류사회가 아니라 생태계는 파국을 맞는다. 이미 1.0도 상승했다. 0.5도 더 오르지 않도록 삶을 바꿔야만 하는데, 여당 대표의 연설은 엉뚱했다. 몰랐을까? 어떤 세력의 사탕발림에 정신줄을 놓았을까? 보좌관들은 뭐 했나?

 

집으로 돌아오면서 어릴 적 농토였던 곳에 마구잡이로 오른 다세대주택들이 모조리 헐리는 모습을 보았다. 40층을 넘나드는 초고층 아파트단지로 바뀐다고 한다. 좁은 골목에 주차한 자동차들을 피하며 작은 가게로 드나들던 주민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아파트에서 쏟아져나오는 자동차마다 온실가스를 내뿜으며 도로는 꽉꽉 막히겠지. 입주민들은 서울 직장을 빠르게 오갈 도로를 요구할 텐데, 정부는 수소차와 전기차를 대안이라고 들먹인다. 그럴까? 그렇담, 40층 아파트 이후의 대안은 무엇일까?

 

산림청은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해 나무 30억 그루를 심겠다고 선언하면서 탄소흡수율이 낮은 30년생 나무를 베어내겠다 으름장이다. 그 실체를 고발하는 최병성 목사는 창조주가 인정하는 청지기일 텐데, 30년 나무들을 자른 산록은 민망하게 처참하다. 현장에 아무렇게나 심긴 묘목은 앙상하다. 30년 지나면 2050년 무렵인데, 그때 묘목은 탄소가 대폭 줄어들 만큼 아름드리일까? 홍수로 쓸리지 않을까? 30년 뒤 생태계는 파국을 만나겠다. 핵폐기물까지 쌓일 생태계에서 후손은 괜찮을까?

 

가슴에 손을 얹고 과학적 상식을 직시해보라. 열역학법칙을 무시하는 수소와 전기차는 대안일 수 없다. 세포막을 통과하는 미세먼지와 마이크로플라스틱을 쏟아내는 화석연료는 당장 퇴출해야 한다. 후손의 생존을 염두에 둘 삶은 무엇일까? 코로나19를 초대한 공항과 고속도로는 아니다. 석유 없으면 경작과 수확이 불가능한 농업도 아니다. 대형 선단을 동원하는 어업도 아니다. ‘미사일 주권과 관계없이, 78억은커녕 한 명도 우주에서 아이 낳으며 살아갈 수 없다. 대안은 당연하듯 살아온 근대문명의 삶과 결별해야 보인다.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은 어김없이 경제성장, 번영, 개발, 발전, 선진국, 노래를 부를 모양이다. 근대문명이다. 일찍이 경제학자 케네스 볼딩은 경제성장이 계속될 거라 믿는 자는 미치광이이거나 경제학자라고 지적했건만, 정치인은 그 진의를 알까? 근대문명의 폐해를 직시한 김종철 선생은 녹색평론을 발행하지 않았다면 미쳐버리거나 심한 열병에 걸렸을 거라 토로했다. 그가 말한 생태문명은 기득권의 이익을 배려하는 효율성이 아니다. 다양성을 정의롭게 배려하는 삶이다. 탄소중립은 근대문명에서 찾지 못한다. 생태적 삶일 때 다가올 텐데, 2050년에 생태문명은 가능해질까?

 

기득권은 감언이설로 신기루를 약속할 뿐이다. 고작 30년 남은 2050년 안에 우리 삶이 바뀔 거 같지 않다. 기후위기와 코로나19를 초청한 근대문명과 결별하지 않는다면 후손은 생명을 유지하기 어려울 텐데, 돌이킬 시간이 남긴 남았을까? 사과나무를 심자고 말하는 몽상가는 답답하다. 채점 마치면 금선사를 다시 찾아야겠다. (지금여기, 2021.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