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21. 6. 30. 17:44

 

기다리던 코로나19 예방백신을 맞았다. 동네에서 접종하는 첫날이라 그랬을까? 이른 시간부터 기다리는 초로의 주민에게 주의사항을 꼼꼼하게 설명하는 의사도 친절했고 주사기를 든 간호사도 세심했다. 통증은커녕 어떤 불쾌함도 없어 진통제를 마다했지만, 아침에 미약한 몸살기가 비쳤다. 개의치 않고 평소처럼 만보 걷고 샤워하니 몸이 개운해졌다. 60년 넘게 살아온 몸은 주삿바늘로 들어온 이물질에 대항하는 항체를 만드는 데 드디어 성공했나 보다. 2차 접종 때 다소 불편할 수 있다던데, 가족과 이웃을 위해 충분히 견딜 수 있으리라.

 

접종이 지금처럼 이어진다면 집단면역이 예정대로 이루어질 거라 기대하는 보건당국은 그때까지 감염예방수칙을 준수해달라고 접종자들에게 당부한다. 미세먼지가 좋은 수치를 보이는 날이면 사람 드문 길을 걸으며 슬그머니 마스크를 벗는데, 7월이면 실외 마스크 착용이 면제될 거라는 언론보도가 나온다. 최소잔류량 주사기와 마스크도 플라스틱이다. 석유로 가공했다는 의미인데, 석유를 모르던 시절에 코로나19가 창궐했다면 어떡할 뻔했을까? 별걱정을 다한다. 그땐 코로나든 독감이든, 바이러스가 요즘처럼 번지지 않았겠지.

 

코로나19 예방백신의 접종률이 높아지면서 감염자와 희생자가 크게 줄어든 국가마다 규제조치를 완화할 움직임이 나타난다. 독립기념일을 맞은 미국은 국내 비행기 운항이 코로나19 이전 상황을 거의 회복했다는데, 머지않아 크루즈 여행이 재개될 것으로 언론은 전한다. 관광 소득이 적지 않은 국가마다 접종 증명으로 격리 없는 입국을 허용하겠다고 선포하는데, K방역이 유난히 성공적이기 때문인지, 대상 국가 목록에서 대한민국은 빠지지 않는다. 집단면역이 제 궤도에 오르면 해외관광 봇물이 터질까? 국제공항이 다시 미어터질까?

 

코로나19 상황에서 쇼핑에 갈증이 커진 걸까? “보복 소비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우리나 외국이나, 일자리를 잃어 생계를 걱정하던 사람은 기다려야겠지만, ‘집합금지 명령으로 해외여행과 쇼핑의 재미가 차단당했던 사람들은 조바심이 나는 모양이다. 비자 발급이 아직 자유롭지 않아도 명품 소비 열기는 뜨겁다. 설마 국내용은 아니겠지? 백화점 문 열기 전부터 마스크 착용하고 수백 미터 늘어선 고객들은 집단면역을 손꼽아 기다릴 텐데, 기후위기 시대에 지나치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비행기를 타고 들어왔다. 막대한 에너지와 석유를 동원해 어떻게든 막아낼 코로나19는 앞으로 어떤 감염병에 바통을 넘길까?

 

방역수칙을 핑계로 웬만한 결혼식이나 장례식은 입금으로 대신하는 풍토가 조성되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로 손쉽게 전달하는 청첩장이나 부고장마다 계좌번호를 알려주니 찾아갈 수고가 줄었는데, 찾아가야 마음 편한 때도 있다. 환경운동의 현장에서 몸을 아끼지 않는 선배의 막내 결혼식이 그랬는데, 그곳에서 집에 냉장고를 없앤 분을 만났다. 교수를 은퇴했어도 강의실 바깥에서 여전히 활발한 그는 무척 건강한 모습이었는데, 비결이 궁금했다. 냉장고가 없기 때문일까?

 

요즘 보이지 않던데, 코로나19 전 냉장고가 신선한 식료품을 인근 양판점에 척척 주문하는 냉장고를 광고했다. 채워두던 달걀과 우유를 줄어들기 무섭게 주문하려면 양판점에 개인정보를 진작 제공해야겠지. 모니터를 장착한 냉장고는 식구의 변덕스러운 취향을 고려하며 적절한 요리와 조리법을 그때그때 알려준다는데, 그렇게 똑똑한 냉장고를 가진 집은 음식쓰레기가 줄어들까? 냉장고가 클수록 음식쓰레기가 많이 생긴다는 건 분명한 사실인데, 모니터가 붙은 냉장고는 얼마나 클까? 그런 냉장고를 하나 또는 그 이상 가진 사람의 입맛은 대체로 까다롭겠지.

 

외식이나 배달에 의존하지 않는 집에 냉장고가 없다면 식재료를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 준비해야 한다. 부엌에 찬장이 있던 시절에 그랬다. 달걀과 두부는 가까운 가게에서 먹을 만큼 사왔고 누가 생산했는지 잘 아는 감자와 당근은 광에 어느 정도 보관해 놓았다. 남은 반찬은 그릇에 담아 찬장에 두었고 늦게 들어오는 식구가 꺼내 먹었다. 그때 음식쓰레기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이따금 남은 음식은 이웃의 개와 닭에게 먹이로 주었는데, 요즘 주변에 음식쓰레기를 먹는 가축이나 동물은 없다. 대신 동네 가게와 집 냉장고가 한없이 커졌다.

 

냉장고를 점령하는 식재료는 누가 어떻게 생산한 농작물인지, 어떤 공장에서 어떻게 가공한 식품인지 알기 매우 어렵다. 깨알처럼 작은 글씨가 빼곡하지만 돋보기를 걸치며 읽기 귀찮다. 그저 유통기한을 확인할 따름인데, 대형 양판점은 그 지역에서 팔리는 식품과 식재료의 종류와 양을 철저히 추산해 매장에 실시간으로 진열한다. 바이러스를 차단하는 마스크와 두루마기 휴지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코로나19가 닥치자 순간 매장이 텅 비고, 사회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집합명령이라는 없던 변수가 생기자 사재기가 극성을 부린 건데, 동작이 느린 노인이나 차가 없는 소비자는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사진: 채굴, 생산, 배송, 판매, 폐기에 이르기까지 정시 적량이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요즘세상은 화석연료의 지원이 없으면 지속될 수 없다. 코로나19가 닥치자 학자들이 "just in time"이라고 말하는 체제는 사회적 약자를 노골적으로 소외시키는 부작용을 노출했다. 코로나19가 극복되어도 화석연료 과소비가 이어진다면, 기후위기가 심화된다면, 화석연료를 바탕으로 이어온 자본의 정시 적량 체제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사진은 인터넷 자료실에서)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공급하면서 시간과 장소, 그리고 돈 낭비를 줄이는 저스트 인 타임’(just in time)은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돌아가야 효율이 높다. 자동차 생산공장에서 선보인 적량 정시 공급은 식품에 적용했다. 평소에 별문제 없이 돌아가지만, 예기치 못한 변수는 곳곳에 병목현상을 발생시키고 쓰레기를 산더미처럼 쌓이게 한다. 과정마다 얼마나 많은 원자재와 농수축산물을 동원해야 하는지 소비자는 상상하기 어렵다. 낭비되는 에너지의 양은 얼마나 될까?

 

얼마 전 미국 대통령은 우리 기업 경영자를 초대해 자동차용 반도체의 원활한 공급을 주문했다고 언론이 전했다. 반도체가 모자라 미국을 비롯해 우리나라를 포함하는 세계 자동차 조립공장이 멈춘 원인은 코로나19가 제공했다. 집안에 콕 틀어박힌 사람들의 운전 시간이 줄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락에 빠지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컴퓨터용 반도체의 수요가 늘었고, 가격 낮은 차량 반도체의 생산을 줄인 탓이라고 했다. 톱니처럼 정교하던 세계의 공급 체계에 변고가 생가지 자동차 산업이 주저앉았는데, 머지않아 회복될 것인가? 직격탄을 맞은 관광산업도 기지개를 펼칠 것인가? 꼭 그래야 하나?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가 다시 늘어나더니 5월 말이면 어김없던 초여름 냄새가 사라졌다. 야구장 관중이 핫팩을 손에 쥐었던데, 기상학자는 기상이변을 의심한다. 여름에 추우면 넣었던 겉옷을 꺼내 입으면 그만일까? 지난겨울 영하의 날씨를 모르고 살던 미 텍사스주에 혹한이 덮쳤다. 준비 없던 주민들에게 혼란과 희생이 강요되었는데, 우리와 먼 이야기가 아니다. 에너지 과소비에 이은 기후위기와 탐욕이 이끈 생태계 괴멸이 코로나19를 불러들였다. 다행히 평소 에너지를 과소비하던 국가의 과감한 에너지 동원으로 코로나19가 멈칫하더라도 위기는 멈추지 않았다. 집단면역이 멀지 않았다지만, 우리의 삶을 바꾸지 않는다면 기후변화가 초대하는 새로운 감염병은 더욱 치명적인 바통을 이어받을 것이다.

 

부엌에 찬장이 있던 시절, 비만과 당뇨는 드물었을 게 틀림없다. 자신과 이웃이 먹을 농작물을 다양하게 재배하는 사람들은 늘 움직였으니 건강했다. 이웃과 나눌 농작물을 농약과 같은 물질을 퍼부으며 재배하지 않으니 의약품 소비도 요즘과 다를 텐데, 커다란 냉장고가 메뉴를 추천하는 세상을 만난 우리는 해마다 새롭게 갱신하는 백신을 맞아야 안심한다. 태어나자마자 적량 정시 접종하는 백신의 종류는 늘어간다. 그를 위해 화석연료의 소비는 과감해지고 위기를 넘어 멸종을 예고하는 기후변화는 영구동토를 녹인다. 잠들어 있던 바이러스가 깨어날 것이다.

 

천장에서 돌아가는 에어컨은 바깥의 미세먼지 농도에 관심이 없다. 일주일에 두세 번 돌리는 세탁기는 화학섬유 의복 한 벌에서 수천 개 이상 빠져나가는 마이크로플라스틱을 걸러내지 않는다. 성능 좋은 진공청소기와 스타일러가 있다면 집안의 먼지 걱정이 불필요한데, 그 먼지가 바깥으로 나가면 더 큰 진공청소기와 스타일러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언제까지 남의 일일까?

 

지금은 소비를 부추길 때가 아니다. 상품광고는 이웃의 어려움을 배려하지 않는다. 가전제품이 집안의 환경과 편의를 약속한다지만, 이웃이 머무르는 바깥은 그만큼 황폐해진다. 이웃에 생태계와 후손도 당연히 포함해야 한다. 무시무시한 코로나19의 경고를 귀담아야 할 요즘, 전기 없는 삶은 한낱 꿈이런가? (작은책, 20217월호)